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120)
형제의 축구-120화(120/251)
형제의 축구 120화
벼랑 끝
볼프스부르크와 경기가 있은 직후 형제는 바쁘게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국가 대표 경기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가 대표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형제는 소집이 해체된 이후 바로 귀국하지 않고 모처럼 아버지의 유골을 뿌린 춘천을 찾게 되었다.
아버지의 고향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춘천 출신으로 어머니의 유골을 소양강에 뿌려, 아버지의 유골도 이곳에서 보냈기 때문이었다.
사실 너무 오래되어서 정확한 위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소양강 처녀의 동상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 강원도라 그런가 춥네.”
정우는 옷깃을 여미며 그리 말하고 소양강을 바라봤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소양강에서는 인파도 별로 없었고 소양강 처녀 동상만이 노을을 받아 붉게 물들어 가고 있을 뿐이었다.
“가지고 온 것 꺼내 봐.”
“아, 응.”
정우는 점퍼 속에서 청주 한 병을 꺼내 들었다.
“모처럼 왔는데 술이라도 한 병 드리고 가야지.”
윤석은 그리 말하고 정우에게서 청주를 받아 뚜껑을 까고 소양강에 술을 부었다.
콸콸 떨어지는 술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정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아빠가 술을 좋아했나?”
“글쎄, 젊어서는 말술이었다고 할머니가 그러시더라.”
“그래? 그런 것도 몰랐네.”
형제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가 술을 드시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긴 그 조그마한 쪽방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들었는데 술 사 먹을 여유가 있었겠는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며칠을 굶어서 배가 고팠던 순간도 있었던 게 기억났다.
그 탓에 형제는 식탐이 강했다.
윤석은 그나마 덜했지만, 정우는 누군가에게 음식을 주거나 공유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배고픈 시절, 형제끼리 나눠 먹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은 아깝지 않은데 먹을 것을 나누는 것엔 인색하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아, 진짜 시간 빠르네. 할머니랑 기차 타고 여기 왔다가 청량리 시장 들렀던 거 기억난다.”
“그것까지 기억나? 기억력도 좋다, 자식.”
“이제는 다른 기차가 든다며? 1시간이면 여기 온다더라. 세상 참 좋아졌지?”
“그러게.”
“그 좋은 세상도 못 보고. 우리 아부지도 참 불쌍해.”
정우는 그리 말하면서 코를 훌쩍이고는 말했다.
“춥다. 이만 가자, 형.”
“그럴까.”
윤석은 그리 말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길 한편에는 한국에서 임시로 매니저를 맡게 된 사람이 차를 대기 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차에 올라타며 윤석은 다시 한번 소양강을 바라봤다.
‘아버지, 다음에 또 올게요.’
마음속으로 아버지에게 작별을 고하고 형제는 몇몇 일정을 소화하고 바로 독일로 귀국하게 되었다.
바쁜 일정이었다.
덕분에 강철 같은 체력을 자랑하는 형제라고 해도 피곤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핵심이나 다름없는 형제는 경기에서 빠지는 게 여의치 않았다. 정우는 몰라도 윤석은 팀의 경기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더욱더 말이다.
어느덧 승점 31점으로 리그 2위까지 치고 올라온 도르트문트와 4점 차라고 하지만, 아직 도르트문트와 일전이 남아 있는 상황이어서 이 승점 차이를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사실 현재 6위까지는 아직까지 우승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았다고 보는 게 옳았다.
2위인 도르트문트와 3위인 볼프스부르크는 승점이 같았으며, 2위에서 4위까지 내려온 바이에른 뮌헨도 승점이 26점으로 2, 3위와 고작 1점 차에 불과했다. 그 아래 마인츠가 승점 21점, 6위인 쾰른이 19점으로 다소 격차가 있긴 했지만, 아직 일정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상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RB 라이프치히는 얼마 남지 않은 전반기 리그에서 전승해서 안정적으로 전반기를 마무리하고 싶어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13라운드를 치르게 되었다.
RB 라이프치히의 상대는 호펜하임.
리그 10위를 차지하고 있는 팀이었다.
이날 경기에서 결국 정우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윤석은 중원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서 뛰어야 했다.
그리고 윤석이 대폭발했다.
평소 공수 안정을 위해서 어시스트나 득점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던 그가 볼프스부르크 전에서 보여 준 것과 같은 모습으로 움직이면서 미친 활약을 보여 준 것이다.
-와, 골입니다! 젤케의 득점! 한윤석 선수가 전반전에만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합니다. 3 대 0! 호펜하임이 RB 라이프치히에게 압도당하고 있습니다!
전반전에만 어시스트를 세 번이나 달성한 윤석은 그대로 후반전에서 미친 것 같이 활발하게 최전선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한윤석! 달립니다. 수비수가 달려들지만 소용없어요, 그대로 수비수를 밀어 내고 강슛! 골키퍼 막지 못하고, 고오오오올! 골골! 오늘 경기에서 네 번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합니다!
-오늘 한윤석이 다 하는 경기가 되었습니다! 한윤석이 하고자 하면 다 됩니다! 듀란이 필드를 지배합니다!
골을 넣은 윤석은 환하게 웃으면서 좀처럼 하지 않은 세리머니를 하기 시작했다.
엄지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젖병을 무는 시늉을 하며 카메라를 향해 뛰어가 환하게 웃으며 소리를 질렀다.
-아, 젖병 세리머니입니다! 한윤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글쎄요, 보통 아이가 생기면 하는 세리머니가 아닙니까?
-물론 예외는 있죠, AS 로마의 토티의 전용 세리머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윤석은 평소에는 저런 세리머니를 보여 주지 않아요.
벤치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정우는 혀를 끌끌 찼다.
필드는 물론이고 벤치에 앉은 사람들까지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는 윤석의 사정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우, 축하하네.]그 가운데 벤치에서 하센휘틀이 정우에게 말을 걸어왔다. 정우의 얼굴이 구겨졌다.
[제가요? 제가 왜요?] [조카가 생기지 않았나. 삼촌이 되는 기분이 어떤가?] [으음, 아직 잘 모르겠네요. 애 아빠 되는 사람도 실감을 못 하는 마당이거든요.] [하하, 뭐 다들 그렇지.]공개적으로 혼전임신과 결혼을 알리는 형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얄밉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아무튼 묘한 기분이었다. 삼촌이라는 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니 더욱더 기분이 묘하다.
그 가운데 골 세리머니까지 끝낸 RB 라이프치히의 선수들은 다시 경기를 시작했다.
분위기를 탄 가운데 라이프치히는 그대로 호펜하임을 압도하다 4 대 0으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이번 13라운드는 우승을 다투는 모든 팀들이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순위 변동은 없었지만, 승리를 거둬야 할 경기에서 승리한 것이기 때문에 팀 분위기는 좋았다.
그리고 이날 경기에서 MOM을 차지한 윤석은 결혼을 발표하고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라는 것도 밝히게 되었다.
세리머니가 단순한 게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 것에 대한 자축 세리머니임을 안 언론들, 특히 한국의 언론은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급해졌다.
한윤석이 평범한 독일 여자를 아내로 두게 되었다는 소식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가끔 악플러들이 혼전임신이니, 서양인과 결혼을 하는 것에 대해 이상한 소리를 하기는 했지만, 그것들은 금세 다른 사람들의 야유 속에 묻히게 되었고, 윤석과 이보네는 사람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으며 결혼을 앞두게 되었다.
그 가운데 전반기 남은 경기는 어느덧 4경기.
하센휘틀은 리그에서 안정을 찾고 유벤투스와 경기를 준비했다.
이번에는 레드불 아레나에서 맞이하는 경기였기 때문에 1차전 때와는 달리 부담감이 덜했지만,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번 경기에서 지기라도 한다면 AS 모나코가 승리할 경우 순위가 바뀔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은 AS 모나코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하지 않으면 본선 진출은 물 건너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긴장이 너무 과했던 걸까?
-아아…… 유벤투스, 경기 종료 직전 디발라가 득점에 성공하면서 2 대 1로 앞서갑니다. 한정우의 선제골로 기세를 타던 RB 라이프치히가 무너지네요.
-이제 남은 시간은 1분도 되지 않아요. 사실상 라이프치히의 패배네요.
-아쉽습니다. 좋은 경기를 펼쳐 줬지만, 디발라, 무섭네요. 홀로 2골을 넣으면서 지난 1차전과 경기를 설욕합니다.
-네…… 경기…… 종료됩니다! AS 모나코가 샤흐타르를 이겼다는 소식과 함께 RB 라이프치히가 3위로 밀려났음을 알려 드립니다.
이러면 피곤하게 되었네요. 이미 한 번 패배했던 AS 모나코와 싸움에서 본선 진출 여부가 결정되겠습니다.
하센휘틀은 종료 휘슬과 동시에 자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쓸어내렸다.
이제 본선에 진출하려면 AS 모나코를 상대로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번 경기에서 최소 무승부라도 거뒀다면 안정적으로 AS 모나코를 부담 없이 상대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그야말로 벼랑 끝 싸움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마 AS 모나코 역시도 RB 라이프치히와 싸움이 본선 진출 여부가 달린 상황이어서 필사적일 테니 피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굳은 얼굴을 하게 되었지만, 하센휘틀은 선수들을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경기력 자체는 좋았다.
그저 운이 좋지 않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끝까지 집중하지 못한 부분이 조금 아쉽지만, 잘 싸웠다. 다음 경기에서는 반드시 싸워 이기도록 하자. 우리는 할 수 있다.]하센휘틀은 로커 룸에서 선수들에게 그리 말하며 위로했다.
하지만 굳은 하센휘틀의 표정만큼이나 선수들의 표정도 그리 좋지 못했다.
벼랑 끝, 치열한 다툼을 벌일 생각이 선수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했다. 하지만 이제 끝난 경기를 후회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 * *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분데스리가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14라운드의 상대는 헤르타 베를린, 지난 시즌에는 좋은 성적을 보여 주며 유로파까지 진출한 팀이었지만, 이번 시즌에서는 강등권에서 강등 싸움을 할 정도로 몰락하고 있는 팀이었다.
워낙 분위기가 좋지 못한 팀이었고, 리그에서는 일정한 리듬을 타고 있는 RB 라이프치히는 정우와 베라르디의 득점으로 2 대 0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15라운드.
이번 상대는 아우그스부르크였다.
이날 경기에는 대부분의 주전급 선수가 빠지게 되었다. 사흘 뒤 AS 모나코전을 대비해야 했고 나흘 뒤 곧 바로 전반기 마지막 난적이라고 볼 수 있는 도르트문트를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서 이번 시즌에 좀처럼 기회를 붙잡지 못하던 일잔커와 카이저, 올리버 버크와 같은 선수들이 선발로 나서게 되었다.
중하위권의 아우그스부르크였지만, RB 라이프치히는 자신들이 탄탄한 스쿼드를 지닌 저력의 팀이라는 것을 자랑하듯 포스베리의 1골을 결승골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연달아 승리를 거두면서 리그 1위를 굳건히 했지만, 상위권들의 팀들 역시 단 1경기라도 미끄러지게 된다면 우승권이 멀어진다는 것을 의식한 듯 지지 않고 무패 행진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AS 모나코와의 경기가 다가왔다.
-레드불 아레나입니다. 챔피언스 리그 C조 마지막 경기가 잠시 후 펼쳐질 예정입니다. AS 모나코와 힘겨운 싸움을 앞둔 RB 라이프치히! 결연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네요.
-정말이지 오늘의 경기는 벼랑 끝에 선 RB 라이프치히가 벼랑으로 떨어지느냐, 아니면 살아남아 더 높은 곳으로 가느냐가 걸린 경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AS 모나코는 RB 라이프치히와 경기에서 무승부만 거둬도 본선에 오를 수 있지만, RB 라이프치히는 오늘 경기에서 반드시 AS 모나코를 이겨야만 본선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양 팀 다 중요한 경기이긴 하지만, 마음이 급한 건 RB 라이프치히입니다.
-유벤투스와 패배가 아직도 뼈아프게 다가올 것 같네요. 이 경기에서 RB 라이프치히가 만약 승리하게 된다면 본선 진출뿐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압박감을 이기면서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죠. RB 라이프치히의 최대 단점은 선수단이 젊다는 것, 그만큼 멘탈의 기복이 심하다는 점입니다. 그 부분으로 인해 잠시나마 흔들린 적도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 경기도 어렵게 진행될 거라고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어찌 되었든 RB 라이프치히의 첫 챔피언스 리그 본선 진출이 성사되느냐, 그러지 못하냐는 잠시 후 경기에서 결정되겠습니다.
레드불 아레나를 가득 채운 관중의 기대 속에서 선수들은 로커 룸에서 하센휘틀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센휘틀은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 경기가 우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드느냐, 그러지 못하느냐가 달린 중요한 경기가 되었다. 부담스럽겠지. 나 역시도 부담스러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너희들에게 부담감을 덜라는 되도 않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 부담스럽더라도, 오늘 이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중에 경기가 끝난 뒤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다오.]그리 말한 뒤 하센휘틀은 선수들을 바라봤다.
일부 선수들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태연한 표정을, 누군가는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을, 누군가는 지나치게 경직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젊은 팀이기 때문에 정신력이 문제라고 말하고는 하지. 그 말에 큰소리치려면 오늘 같은 경기에서 정말 멋진 모습을 보여 줘야 할 거야.]하센휘틀은 그리 말하고 로커 룸을 빠져나갔다.
[자자, 챔피언스 리그도 어쨌든 경기일 뿐이고, 우리가 이긴 바이에른 뮌헨보다 AS 모나코가 강하다고 볼 수도 없어. 저번에 지기는 했지만, 오늘은 우리의 홈이다. 다들 집중하자.]모처럼 로벤이 입을 열어 선수들을 독려했다.
그런 로벤의 말에 사비처가 물었다.
[로벤,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는 기분은 어때?]팀 내에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경험한 사람은 로벤이 유일했다.
2013년, 바이에른 뮌헨이 무적이라고 불리던 때였다.
문득 그게 벌써 4년을 넘어 5년 전 이야기가 되어 간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떠올리며 로벤이 말했다.
[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지.] [뭔데?]로벤은 씨익 웃었다.
[최고로 짜릿했어.]그 말에 선수들이 피식 웃음을 흘리는 가운데 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고로 짜릿한 게 어떤 기분인지 알려면, 당장 오늘 이겨야겠네. 가자고.]정우의 말에 선수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하나둘 일어났다.
벼랑 끝.
이 순간 그곳에서 기어 올라와 정상을 향하려는 젊은 선수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