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126)
형제의 축구-126화(126/251)
형제의 축구 126화
따듯한 겨울
“정례 씨, 이거 정말 맛있네요!”
전구가 다 되어 깜빡거리는 스탠드 등 아래에서 조용히 숨죽여 무언가를 먹던 사내가 말했다. 그는 포마드로 단정하게 가르마를 탄 헤어 스타일에 품이 딱 맞아 떨어지는 체크무늬 정장을 입고 있었고, 정장 재킷 속에 갖춰 입은 터틀넥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입안에 음식을 집어넣으면서도 그 남자는 홀린 것 같은 얼굴로 앞에 다소곳이 앉은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쌍꺼풀은 없지만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눈매에 새하얀 피부, 발갛게 피어오른 홍조와 그만큼이나 매력적인 봉숭아빛 입술을 하고 있는 단아한 외모에 아가씨였다.
그녀는 수줍음을 타느듯 몸을 웅크리고 있었지만, 봉숭아빛 입술 사이에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아름다운 미소를 뽐내고 있었다.
“맛있게 드세요. 배추가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맛이 괜찮더라고요, 생각보다.”
“양배추로 김치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네요. 젓갈 없이도 이렇게 겉절이가……. 정말 김치가 먹고 싶었는데…… 고맙습니다, 정례 씨.”
사내다운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를 바라보며 정례는 수줍게 웃었다.
“정례 씨 덕분에 독일에서 김치도 먹고…… 저만큼 행복한 남자도 없을 것 같아요.”
“무슨 말씀을…….”
“그래서 말인데, 정례 씨…….”
“네?”
순간 남자는 긴장한 얼굴로 정례를 바라봤다.
정례 본인도 긴장하게 만드는 표정이었다.
그런 정례를 바라보면서 남자는 이를 악물더니 정례의 손을 잡았다.
“어머!”
“다른 말은 않겠습니다. 정례 씨,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네…… 말씀하세요.”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뒤로하고.
남자가 말했다.
“나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그토록 기다려 왔던 그 말에 정례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지었다.
“어? 어어? 왜 우세요, 정례 씨! 괜찮아요? 제가 뭐 잘못이라도…….”
“아니, 아니요. 기뻐서요.”
“아, 정말?”
“네…… 고마워요, 프로포즈.”
남자는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아직 남은 게 있는데 벌써부터 기뻐하면 어떻게 합니까?”
남자는 그리 말하면서 재킷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어슴프레한 불 빛 아래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금반지였다.
“결혼반지예요. 저와 함께…… 꼭 행복합시다.”
그리 말하며 정례의 손에 남자는 반지를 끼워 줬다.
파독 간호사로서 고생 끝에 이리저리 갈라지고 푸석푸석한 손이었지만, 남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이라고 생각했다.
“사……사랑합니다, 정례 씨.”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해 주는 남자.
남자를 바라보며 정례도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두요.”
* * *
행진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할머니는 옛 생각이 나서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꿈도 없이 오로지 미래를 향한 희망만으로 건너온 이역만리의 땅.
그 땅에서 올 곳이 자신만을 사랑해 줄 남자를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눈부실 정도로 빠르게 흘러 남편과 자신의 피가 흐르는 후손이 그때 당시의 남편과 같은 모습으로 멋지게 행진하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소, 영감.”
이제는 없을 남편에게 쓸쓸하게 대답하며 그녀는 환하게 웃음짓는 장손의 모습을 바라봤다.
“큰 아는 젊을 적 당신 모습이 간혹 보이기도 하는구랴.”
단정하게 가르마를 탄 스타일 아래로 반듯하니 남자답게 생긴 외모는 간혹 저승을 떠난 영감의 모습이 떠오르고는 했다. 아들이 지 아비를 쏙 빼닮았더니, 그 손주도 아버지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었다.
시간이 흘러 증손주를 낳으면 그 아이의 모습도 그러할까?
감성적인 생각을 하는 가운데 식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빛나는 다이아 반지가 이보네의 약지에, 그리고 마찬가지로 윤석의 손에도 반지가 끼워진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두 사람이 교회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정우는 물론이고 오늘 이 자리에서 초대된 사람들이 환호하며 두 사람을 축복했다.
“아, 이렇게 형은 가는구나.”
정우가 허전한 마음에 그리 입을 열고서는 할머니를 바라봤다.
붉어진 눈시울로 흐뭇하게 웃는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니 더욱더 허전해진다.
“할머니, 이제 밥 무러 가요.”
“그려, 그래야지.”
정우는 할머니와 함께 피로연이 열릴 식당으로 향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결혼한 두 사람과 함께 피로연 파티가 열렸다.
어제 그렇게 질펀하게 술을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부천의 선수들은 물론이고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라이프치히의 동료들까지 모두 죽어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될 리그를 생각하면 오늘 같이 술을 실컷 마실 수 있는 날도 없기 때문이리라.
오늘 참석한 하센휘틀이나 송진호가 자기의 선수들을 향해 과음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었지만, 양측 모두 이를 듣는 선수들은 아무도 없었다. 감독들도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 가운데 윤석이 로벤이 구해 온 거대한 잔에 한가득 담긴 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반장난으로 술을 권한 것인데 윤석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 술을 모두 들이켜 모두를 놀라게 했다.
“흘흘.”
할머니는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저 웃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피로연이 끝나고, 모두들 집으로 향했다.
불콰하게 술이 오른 정우는 풀리는 눈에 힘을 주고 할머니와 송진호 감독 부부, 그리고 주희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빈방이 되어 버린 그곳에 송진호 부부가 머물게 되었고, 주희는 예전에 쓰던 방을 쓰게 되었다.
“이제 윤석이도 없어서 쓸쓸해서 어떻게 하냐?”
송진호가 장난스럽게 정우에게 묻는다.
취한 정우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형 없으니 내 세상이죠 뭐, 편하고 좋은데요, 전.”
“이렇게 떨어져 본 적도 없지?”
“그죠, 사실 그래서 그런가 기분이 묘하기도 해요.”
“다 그런 거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랄까.”
송진호 감독의 말에 정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만 들어가서 자야겠다. 너도 얼른 쉬어라. 이제 며칠 뒤면 다시 합류해야 하지 않겠냐, 구단에.”
“네, 감독님, 아니, 대부님도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
“그래.”
송진호가 들어간 뒤, 정우는 송진호가 들어가는 예전 윤석의 방을 말 없이 바라보다가 냉장고를 열었다.
어제 파티에서 먹다 남은 샴페인이 보여 정우는 그것을 꺼내 잔에 가득 따라 벌컥 들이켰다.
“햐, 달다.”
그리 말하며 거실 너머 창밖을 바라보니 아름답게 보름달이 떠 있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 정우는 테라스로 나섰다.
쌀쌀한 겨울이었지만, 한국보다 춥지는 않아서 견딜 만했다. 오히려 싸늘한 그 기운에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안 자고 뭐 해?”
멍하니 한참을 달을 바라보는 사이 주희가 테라스의 문을 열고 나온다.
정우는 그녀를 흘끔 바라보고는 말했다.
“그냥 쓸쓸해서?”
안타까울 법도 하건만.
그런 정우의 모습을 보고 주희는 콧방귀를 꼈다.
“아주 웃기고 앉아 있네. 마마보이, 아니, 브라더보이냐?”
“무슨 소리야? 형이 집에 없잖아, 쓸쓸할 수도 있지.”
“퍽이나. 신혼여행 짧게 다녀오고 나면 아래층에서 노크도 없이 들어올 거다, 네 형이.”
정우는 쓸쓸해했지만, 사실 윤석은 독립했지만 독립하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지금 사는 집보다 크지 않지만,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해 지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굳이 한 집에 살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윤석 부부는 이 집에서 함께 지내기를 원했지만, 신혼 때는 시댁 등살 없이 단둘이 오붓하게 지내야 한다며 할머니가 내치다시피 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였다.
“아씨, 나는 좀 감성에 젖으면 안 되냐?”
“감성에 젖을 걸 젖어야 동정이라도 하지, 바보야!”
“에잉…….”
정우는 못마땅한 듯 혀를 찼지만, 주희는 히죽 웃으면서 정우의 옆에 앉았다.
“달이 참 밝네. 그지?”
“…….”
“왜 대답이 없어? 내가 그 말 했다고 삐진 거야?”
정우는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내가 언제 삐졌다고그래!”
“에이, 삐진 거 같은데?”
“아니야!”
정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 가?”
“잘 거야!”
“와, 진짜 쫌생이 같으니라고.”
“뭐어, 쫌생이?”
정우는 얼굴을 찡그리며 주희를 바라봤다. 그러다 멈칫하고 만다. 평소와 다르게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봤기 때문이다.
“야, 한정우.”
“왜?”
“너 똑바로 말해 봐.”
“뭘?”
주희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애써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정우를 똑바로 바라봤다. 지금 이 순간 확실하게 해 둬야 할 게 있었다.
이번에 확인하지 않으면 앞으로 몇 개월은 확인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 순간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엇갈릴 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으로 넘어가기 전인 바로 지금, 꼭 확인해 보고 싶었다.
“너…… 나 좋아해?”
푼수라는 소리도 많이 들어 봤고, 어리바리하다는 소리도 참 많이 들어 봤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어리숙한 모습과 달리 단호한 면이 있었다. 자기 고집도 있는 편이었고, 할 말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리면서도 단도직입적으로 정우에게 물은 것이다.
좋아하냐고.
순간 멍하니 대답을 못하던 정우가 당황해 말했다.
“무, 무슨 소리야.”
“나 진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 줘.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말고. 네가 자꾸 헷갈리게 하니까 내가 흔들리잖아.”
“흐, 흔들린다고?”
“그래, 네가 나를 쥐었다 폈다 하고 있다고. 이대로 가다간 심장 터져서 죽을 것 같단 말이야. 단순하게 끼 부리는 건지, 아니면 정말 내가 좋아서 그러는 건지 확실하게 해 줘.”
정우는 그녀의 말에 당황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언제나 당하기만 하던 그녀가 이렇게 똑 부러지게 자신에게 물어올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문득 정우는 자신이 주희를 아직 다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뭐 문제될 건 없잖아?’
정우는 그리 생각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어느새 당황하던 마음도 사라지고 진지한 얼굴로 주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대답을 듣고 싶어?”
“응.”
“내 대답은…….”
정우가 주희에게 성큼 다가섰다.
그녀 얼굴을 향해 정우의 얼굴이 직진하는 순간.
주희는 놀라운 순발력으로 정우의 얼굴을 가로막았다.
“우풉! 뭐, 뭐야?”
“너 자꾸 드라마 따라 할래? 누가 버르장머리 없이 고백도 전에 진도 빼라고 그랬어?”
“…….”
“말해 봐, 할 말이 있지 않아? 이렇게까지 하는데?”
“아 씨, 알면서 그만해!”
“뭘? 뭘? 뭐얼?”
깐족거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정우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냥 없던 일로 할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의 깐족거림이었다.
하지만 참기로 했다.
된장찌개 잘 끓이는 미녀는 보기 드무니까.
자기 성격 받아 주는 그런 여자도 드무니까.
정우는 쑥스러움을 무릎쓰고 말했다.
“사랑해.”
“……응!”
정우의 대답에 주희는 그의 품에 안겼다.
형의 뒤를 이어서 정우가 마침내 모태 솔로에서 탈출하는 순간이었다.
“야, 근데 손이 너무 아래지 않니?”
“내가 키가 작아서 그래. 가만히 있어 봐,”
“야, 변태 자식아!”
“아야!”
……형과 달리 정신 사나운 커플이었다.
* * *
그렇게 휴식 기간이 지나가는 가운데 챔피언스 리그 16강 조 추첨이 진행되었다.
16강에 진출한 팀 중에서 분데스리가는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 RB 라이프치히 세 팀이 진출하게 되었다.
이번 시즌 본선 진출한 열여섯 개 팀 중에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가 강세를 보여 맨시티, 맨유, 아스날, 리버풀 네 팀이나 진출하게 되었고, 그다음으로 많은 팀을 본선에 진출한 곳이 바로 각각 세 팀을 진출시킨 독일과 스페인이었다.
전세계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은 17-18 챔피언스 리그 조 추첨.
모두가 비교적 약팀인 벤피카나 아약스, 아인트호벤을 상대로 하기를 염원했지만, 모두가 원하는 대로 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누군가는 아쉬워하고, 누군가는 괴로워하며, 누군가는 도전 의식을 불태울 16강 추첨이 완료되었다. 편성은 다음과 같았다.
AT 마드리드 VS 벤피카
파리SG VS 바이에른 뮌헨
유벤투스 VS PSV
바르셀로나 VS 리버풀
아약스 V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VS 아스날
맨체스터 시티 VS RB 라이프치히
도르트문트 VS 인테르
매 시즌 16강에서 만만치 않은, 특히 바이에른 뮌헨을 만나며 좌절해야 했던 아스날은 이번에는 레알 마드리드라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가장 많이 빅이어를 들어 올린 상대를 만나며 또다시 괴로워해야 했으며, 간신히 본선에 진출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운 좋가 상대적 약팀을 만나 환호했다.
그 와중에 RB 라이프치히는 결코 달가워할 수 없는 상대를 만나야 했다.
축구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으로 손꼽히는 사람, 그리고 그가 만들어 낸 빅클럽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경기는 두 달 뒤인 2월에 진행되겠지만, RB 라이프치히로서는 그 기간 동안 꽤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