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147)
형제의 축구-147화(147/251)
형제의 축구 147화
분투
2002년 홈에서 열린 월드컵을 제외하고, 2010년 이후 사상 두 번째로 대한민국이 16강에 진출했다. 이번에는 힘겨운 싸움 끝에 얻은 기적 같은 일이 아니라 그야말로 실력으로 얻어 낸 월드컵 16강이기에 국민들은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재작년부터 참으로 다사다난했고 아직도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국민들에게 잠시라도 기대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일이 생겼다.
그 가운데 월드컵은 몇 가지 이변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A조에서는 러시아가 사상 처음으로 개최국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이탈리아에게 밀려 월드컵 진출을 실패하는 일이 생겼고, V조에서는 멕시코가 포르투갈을 누르고 스페인과 16강 진출에 성공하는 이변을 낳았으며, D조에서는 독일과 잉글랜드가 진출하리라 예상한 결과와 달리 칠레가 잉글랜드에게 승리를 거둬 잉글랜드가 탈락의 고배를 들이켰다.
그 가운데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16강에 진출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해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그 상대가 독일이었으니, 마냥 좋아할 수도 없었다.
그 가운데 독일이 상대팀으로 결정되고 나서 망연자실한 선수단 속에서도 독일의 경기 영상을 지켜보는 형제의 눈은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젤케, 저 자식 골도 넣었네.”
“그러게.”
독일 대표 팀에는 형제가 한솥밥을 먹고 지내는 다비 젤케와 조나단 타, 율리안 브란트, 헥토르가 대표 팀으로 선출되었다. 티모 베르너와 리뒤거 같은 대표급 선수들도 많았지만…….
“스쿼드 봐라…….”
한탄하듯 구자천이 말한다.
그렇다.
우승팀의 맹활약하던 선수들이 낄 틈도 없을 정도로 지금 독일 대표 팀에는 대단한 선수들이 워낙 많았던 것이다.
“야, 저 나라에서 뛴 사람으로서 어때?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함께 경기를 지켜보던 기선용이 물어오자 독일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으음, 글쎄요.”
윤석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어렵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독일을 우리가…….”
구자천이 고개를 젓는다.
“에이, 그래도 저기 있는 자식들 다 나한테 1골씩 먹어 본 자식들인데.”
정우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새삼스럽게 선수들이 정우를 바라본다.
생각해 보면 저 괴물 같은 하늘 위 하늘같은 세계적인 선수들 틈에서 33골로 득점왕에 오른 정우였다.
그런 정우의 말을 듣고 선수들이 와,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드물게 장난기가 발동한 윤석도 비죽 웃으며 말했다.
“쟤들 몸싸움 약해요.”
그래, 저 선수들 틈에서 저들을 바보로 만들던 사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외국인에게 불릴 수 없었던 군주와 관련된 칭호를 단 한 시즌 만에 얻은 사나이.
듀란.
“허허, 대단한 동생들을 뒀네, 우리가.”
“축구공은 둥근 법이니까. 잘할 수 있을 겁니다.”
윤석은 그렇게 말하며 선수단의 사기를 북돋았다.
하지만 사실 윤석 본인도 자신은 없었다.
과거와 다른 지금의 대한민국 대표 팀이라고 하더라도 세계적인 무대에서 핵심 선수들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이 모인 곳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다른 팀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팀워크를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 바이에른 뮌헨의 선수들,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이 가장 많은 수로 주축을 이루고 맨시티나 아스날,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중심이 되고 그들이 기본적으로 독일 축구 철학에 익숙한 선수들이기에 가능한 부분이기도 했다.
이 점이 가장 무서운 거다.
대단한 선수들이 팀워크마저 완벽하다.
‘이길 수 있을까?’
확신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16강에서 만족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것은 비단 윤석뿐만이 아니라, 대표 팀 선수들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 * *
독일 대표 팀의 감독, 뢰브는 진지한 얼굴로 선수들에게 말했다.
독일의 이번 목표는 월드컵 2연패였다.
스쿼드만 봐도 세계 최강의 전력이라고 해도 무방한 곳이었지만, 단 한 번의 경기로 모든 것이 갈라지는 월드컵에서 매 경기 진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상대 팀의 전력을 생각해서 스쿼드 로테이션은 이뤄질 수 있었다. 하지만 2군 급 전력이라고 해도 세계에서 적수가 없을지 모를 정도로 대단한 곳 또한 독일이었다.
[타이트하게 압박해서 전반에 많은 득점을 올리는 게 중요하다. 공격진은 우리에게도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지만, 저들의 수비는 그렇지 못하니.]뢰브 감독은 전방의 압박을 통해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많은 득점을 노리고 있었다.
-네, 니즈니 노브고로드 경기장에서 우리 대한민국과 독일의 경기가 잠시 후 펼쳐집니다. 양 국가의 라인업부터 보실까요? 대한민국의 라인업입니다.
FW 한정우.
MF 손형민, 백성호, 이성우, 기선용, 한윤석.
DF 김진서, 김영건, 홍전호, 장헌수.
GK 김성규. 독일을 상대로 대한민국은 젊은 선수들이 공격의 중심이 되는 라인업을 구축했습니다. 이번에는 독일의 라인업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FW 다비 젤케.
MF 사네, 괴체, 쉬를레, 케디라, 귄도간.
DF 헥토르, 훔멜스, 보아텡, 파슬락.
GK 노이어. 이상입니다. 독일은 외질, 뮐러, 크로스, 로이어와 같은 최정예 선수들을 쉬게 하고 젤케와 사네, 괴체와 쉬를레 같은 선수들을 투입했습니다. 하지만 이 스쿼드만으로도 우승을 노릴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전력입니다. 이게 1.5군이라고 친다면 독일은 여전히 강력한 우승 후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보시면 수비진과 그들을 보호하는 중앙과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뛸 선수들 여섯 명은 거의 최고의 전력으로 구성했습니다. 이들이 우리의 중원과 공격진에 대해서는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죠. 사실 독일은 1군, 2군이라는 규범으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화려한 더블 스쿼드로 로테이션을 돌리는 팀이라고 보는 게 맞아요. 자국 선수들만으로도 어지간한 빅클럽의 스쿼드를 능가하는 게 바로 이 독일입니다.
-듣기만 해도 두렵네요. 우리 태극 전사들이 부담을 느낄 게 눈에 선합니다.
-최선을 다한다면 기적은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야, 잘하자.]경기장 안으로 들어서면서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던 젤케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어차피 우리 독일이 이길 거라는 듯한 그 모습을 떠올리며 정우는 이를 악물었다.
“두고 봐라, 개눔의 시끼.”
그렇게 다짐하고 전의를 활활 불태우는 사이에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대한민국의 선축이었다.
정우가 이성우에게 공을 밀어 주면서 대한민국은 공을 돌리면서 빠르게 전방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이 노리는 것은 선제골이었다.
정우는 전방으로 올라가면서 여러 선수들과 눈이 마주쳤다.
중원의 귄도간, 케디라, 그리고 수비진영에서 무서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보아텡과 훔멜스.
모두가 하나같이 낯이 익은 선수들이었다.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에서 봐왔던 선수들.
그들이 자기를 경계하는 것이 한눈에 보이자 정우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들의 경계심을 기대라고 한다면, 그 기대에 부응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때마침 한윤석에게까지 내려갔던 공이 다시 백성호에게 전달되면서 백성호가 공을 가지고 올라오다 정우의 발밑으로 공을 패스했다.
정우는 보아텡과 훔멜스를 상대로 자신 있게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정우에게 가속할 공간을 주지 않으려고 준족의 보아텡이 정우에게 달라붙는 순간, 정우는 공을 옆으로 밀어 내며 옆으로 횡단에 달려가기 시작했다. 보아텡이 정우를 따라 달리다가 어느 순간 훔멜스와 위치가 겹치는 그 순간이 오고 말았다.
보아텡이 그제야 훔멜스를 보고서 멈칫하고, 훔멜스 역시 보아텡을 보고 멈칫하는 그 사이.
그 둘 사이의 좁은 간격으로 공을 밀어 넣었다.
-한정우의 패스! 손형민이 받아서 슈팅!
-아, 아쉽습니다. 노이어의 손에 맞고 골대 밖으로 벗어납니다. 코너킥으로 이어지네요.
단숨에 허를 찌르는 공격으로 독일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서 곧 바로 코너킥 상황에서 윤석이 페널티에어리어 한가운데로 들어선다.
독일이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윤석의 주위로 보아텡과 훔멜스가 바짝 붙고, 케디라와 귄도간이 언제든지 윤석을 견제할 수 있는 위치에 서서 한국의 선수들을 경계하는 사이 손형민이 코너킥을 차올렸다.
크게 떴다가 밖으로 휘면서 들어오는 공을 향해 윤석이 뛰어오르려 하자 보아텡이 윤석의 앞을 잽싸게 차지하면서 등으로 윤석을 밀고자 했다.
“음.”
하지만 밀리지 않는다.
보아텡은 벽에 등을 기댄 기분마저 들었다.
리그에서 이미 소름 돋도록 경험한 그런 상황이 떠오르며 보아텡의 얼굴이 굳는 사이.
윤석은 보아텡을 가뿐하게 밀어내며 뛰어올랐다.
퉁!
윤석의 머리를 맞고 떨어지는 공!
-아, 이마저도 노이어가 잡아 냅니다!
-역시 세계 최고의 골키퍼라 이건가요? 대단한 반사 신경입니다!
다행히 노이어가 두 번째 선방으로 공을 막아 냈지만, 독일 선수들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봐야 했다.
한윤석과 한정우.
한 시즌 만에 독일 리그를 점령한 형제를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독일 선수들이 지나치게 형제를 의식하고 있는 게 보입니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 뢰브 감독도, 그리고 주장인 노이도 형제가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우습게 볼 수 없다고 말했는데, 실제로도 이들을 지나치게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네요!
-그럴 수밖에요! 분데스리가 득점왕과 도움왕입니다! 오늘 경기에서 뛰는 독일 선수들 모두가 형제의 위용을 직접 경험한 선수들이에요. 한윤석이 중원에서 어떤 존재감을 보여 주는지 잘 알고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독일의 수비를 책임지는 센터 백 두 사람은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한정우에게 두 번의 해트트릭, 지난 1년 반 동안 3경기 8골을 허용하면서 체면을 구긴 전력이 있습니다. 노이어도 마찬가지죠. 이 세 사람이 한정우를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자신들을 몇 번이나 바보로 만든 장본인이 한정우입니다!
형제에게 지나친 경계심을 보이는 독일 대표 팀을 보고 해설들이 흥분하기 시작했고, 국민들도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래, 새삼스럽게 와닿는다.
이 형제가 분데스리가에서 어떤 입지를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펼쳤는지 말이다.
그것은 비단 이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함께 경기를 뛰는 필드 위 선수들도 느끼고 있었다.
한국의 기세가 오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오늘 경기에서 뛰는 선수들 중에서 독일에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생활을 보낸 선수들이 한둘인가?
명문인 바르셀로나에서 크고 프리메라리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도 있고, EPL에서 오랫동안 버티고 선 선수도 있었다.
‘아무리 대단해도 우리도 경쟁력이 있다.’
그런 생각이 드니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신감도 오래가지 않았다.
독일은 이미 완성된, 클럽 못지않은 팀워크를 자랑하는 팀.
그런 그들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것은 압박과 연계였다.
독일은 긴장하던 것도 잠시 자신들이 공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빠르게 경기를 주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한윤석이 이들도 두려워하는 피지컬과 경기력을 지녔다고 해도, 한정우가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수로 떠오른다고 해도, 경기는 열한 명이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독일은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팀이었다.
한윤석을 상대하기 어려우면 그를 피해서 다른 곳을 공략하면 된다.
한윤석이 다가오지 못하게 빠른 템포로 정신없이 경기장 전체를 활용하면서 공을 최전방으로 운반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이 단숨에 수세에 몰려 미드필더들까지 수비 진영으로 몰려와 공간을 좁히고자 했지만, 독일은 그 좁은 공간에서도 자연스럽게 패스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수비진은 그 빠른 템포의 패스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했고 이내 포지션 자체가 꼬이기 시작하면서 공간을 만들어 냈다.
-괴체의 패스를 사네가 잡습니다! 르노이 사네 그대로 측면에서 중원으로 들어와 페널티에어리어로 접근합니다! 홍전호가 가로막습니다! 앗!
사네는 홍전호가 김영건과 거리를 벌리고 자신에게 달려오자 능숙한 상체 페인팅으로 홍전호의 균형을 무너뜨리면서 공을 한 번 접어 옆으로 다시 파고 들어갔다.
홍전호가 무너질 것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윤석이 열심히 달려와 그런 사네의 앞을 막아선다.
사네의 눈이 빛났다.
한윤석이 자신의 코앞으로 다가오기 전, 사네는 윤석이 달려온 위치로 공을 밀어 줬다.
그 자리에는 괴체가 있었고, 괴체는 바로 옆에서 자신을 따라온 기선용이 손써 볼 틈도 없이 원터치로 김영건의 등 뒤로 공을 밀어 줬다.
-다비 젤케에에에! 아……!
김영건을 단숨에 따돌린 젤케가 골대를 향해 힘껏 공을 찼다.
김성규의 손이 닿기도 전에 공은 그대로 골 망을 가르며 골을 알리는 주심의 휘슬과 함께 젤케가 양팔을 번쩍 들고 세리머니를 하게 만들어줬다.
-전반 9분, 독일이 앞서가게 됩니다.
-무섭네요, 노도같이 한국을 밀어 붙여 골까지 만들어 내는 독일입니다.
독일이 아무리 형제를 어려워하고, 손형민과 같은 선수들을 경계한다고 하더라도 독일은 독일이었다. 그리고 이 독일을 상대하기에는 한국의 수비진, 그리고 전체적인 호흡이 좋지 못했다.
독일도 이 점을 알고 있었기에 기세에서 밀리고 있더라도 자신들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독일은 경기 흐름이 자신에게 넘어가는 지금의 순간을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먹이를 문 악어와 같이 공을 가지고 움직이는 한국을 압박해 들어갔다.
윤석은 대한민국의 수비진이 이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가능하면 공을 수비진으로 넘기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윤석 혼자 그리한다고 해서 경기가 풀리는 것이 아니었다.
기껏 공을 앞으로 전개한다 하더라도 독일은 한국의 공세를 압박을 통해 막아 내며 공이 뒤로 돌게 만들어 냈다.
윤석을 거치지 않고 한국의 수비 라인으로 공이 떨어지는 순간.
최전방 압박에 능숙한 독일의 공격진이 한국의 포백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RB 라이프치히, 도르트문트, 맨시티 소속 선수들로 구성된 오늘의 공격진들은 하나같이 전방 압박이 익숙한 팀들 소속인 만큼 수비진을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 수비진이 위험스러울 정도로 볼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수비진으로 공이 넘어가자 공이 앞으로 나가질 못하고 있네요!
-독일의 강점이 이것입니다! 현대 전술의 트랜드라고 할 수 있는 전방 압박에 있어서 모든 공격진이 능숙하다는 겁니다. 저 자리에 지금 벤치에서 대기하고 있는 다른 선수들이 투입된다고 해도 상황은 지금과 같았을 겁니다. 아니, 더 위험할 수도 있겠군요.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수비진은 이와 같은 고도의 전방 압박이 생소하다는 겁니다!
김진서를 제외한 세 명, 그리고 골키퍼까지.
모두가 중국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인 만큼 지금과 같은 전방 압박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독일이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특히 RB 라이프치히에서 주로 정우와 로벤과 같은 선수들을 지원하면서 연계와 거센 압박이 주특기가 되어 버린 젤케가 왕성한 움직임을 보여 주면서 사네와 함께 홍전호를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사네가 가려 버린 장헌수에게 볼을 이어 주려던 홍전호는 그게 여의치 않자 옆에 있는 김영건에게 공을 패스했다.
그 순간을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괴체가 귀신같이 파고들어 김영건의 공을 가로챈 것이다.
-한국! 아……!
한 수 앞을 바라본 독일.
그리고 그 한 수 앞에 앞을 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한윤석! 한윤석이 괴체의 공을 가로챕니다!
-이 순간을 한윤석은 예측하고 있었어요!
공을 가로챈 윤석은 수비에게 공을 돌리지 않고 곧바로 전방으로 보냈다.
높이 솟아올라 뻗어가는 공을 향해 독일과 한국의 선수들이 달라붙는다.
그 상황에서 공을 차지한 것은 2선까지 올라온 기선용이었다. 기선용은 헤딩으로 앞에 있는 백성호에게 공을 연결했고, 백성호는 이성우와 공을 주고받으며 빠르게 독일의 골문을 공략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독일과 같은 빠른 패스가 한국에게도 가능했다.
다만 이를 맞이하는 상대가 수준이 다른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훔멜스와 헥토르, 그리고 내려온 케디라가 가세해서 이성우의 코스를 차단해 들어갔다.
하지만 이는 백성호가 노린 결과였다.
이성우에게 지속해서 공을 주면서 그와 호흡을 과시하면서 독일이 이성우를 차단해 들어가길 원했던 거다.
그리고 이를 인지한 이성우가 공을 받으려는 움직임을 계속해서 보여 주면서 훔멜스와 헥토르를 묶어 두다시피 한 상황에서 백성호가 기습적으로 공을 왼쪽으로 돌렸다.
손형민이 백성호의 공을 받고 빠르게 파고들어 가는 사이, 정우는 그 타이밍에 맞춰 갑작스레 컷 아웃하며 보아텡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하면서 손형민이 깊숙하게 들어오는 것을 도왔다.
손형민은 정우와 보아텡의 옆을 지나치며 골대를 향해 슈팅했다.
콰앙!
좌측 사이드에서 대각선으로 때리는 슈팅은 손형민의 전매특허.
그런 만큼 노이어도 이를 예측하고 있었다.
예측과 동물적인 감각이 하나가 되어서 너무나도 손쉽게 손형민의 슈팅을 품에 안는다.
그것이 전반전 대한민국이 보여준 마지막 공격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수비진에서부터 압박을 당하며 제대로 공을 만져보지 못하고 점유율에서부터 밀려서 여러 차례 유효 슈팅을 허락했다.
한윤석과 기선용, 그리고 이따금씩 김성규의 선방이 터져 나왔지만, 모든 슈팅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젤케와 쉬를레의 연속 골로 대한민국은 전반전을 3 대 0으로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한국이 전반전 3 대 0이라는 스코어로 압도당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입니다. 3점이나 뒤지고 있는 것을 원래도 만들기 쉽지 않아요. 독일, 무서운 경기력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공격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최전방 압박에 능숙한 이 팀에게 지금 한국의 수비진은 보기 좋은 먹잇감에 불과합니다. 제대로 천적을 만났다고 할 수 있어요.
스틀링켈은 붉어진 얼굴로 로커 룸에서 선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호되게 질책하는 스틀링켈이었지만, 사실 그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당장 역대급 중원과 공격진이라고 평해지는 지금의 대표 팀이었지만, 지금의 수비진은 독일과 같은 높은 수준의 전술을 구사하는 팀에게 대항할 수 있는 그런 선수들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현실에 안정을 찾은 선수들에게 간절함이 없기에 그러한 것일지도 몰랐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후회 없는 경기를 해라.]스틀링켈은 무책임하다시피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속은 새카맣게 재가 되어 있었다.
그 스스로가 선포한 자신의 마지막 감독직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가 로커 룸을 떠난 이후.
한정우가 분에 이기지 못해 씩씩거리면서 말했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지.”
적막 속에서 흘러나온 정우의 말을 모두가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정우를 향한다.
“그래, 아직이지.”
이성우가 이어서 말했다.
“그러면…… 개같이 뛰어야지. 체력 보존이니 뭐니 우리한테 사치 아니겠나.”
한윤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가자.”
그리고 윤석은 다가오는 후반을 위해 또래 아이들에게 그리 말하고 앞장서서 로커 룸으로 나갔다. 그런 윤석을 바라보며 누군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저 새끼는 지네 팀에서 듀란 듀란 하니까 진짜로 지가 듀란인 줄 아나, 선배들 앞에서 건방지게.”
그 누군가의 목소리에 기선용이 발끈해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한숨을 쉬고는 혀를 차며 말했다.
“쟤 실력 반이라도 따라오고 말해라. 아니, 쟤 반만큼 간절해서라도. 개새끼야.”
“뭐?”
이미 전의를 잃은 것 같은 안일한 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기선용도 로커 룸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한국, 아직 경기는 끝난 게 아닙니다! 마지막! 그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뛰어 주길 바랍니다!
해설이 간절히 말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대부분의 선수들이 해설의 말대로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
윤석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공을 가지고 저돌적으로 올라간다.
귄도간이 달려들고 케디라가 달라붙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기세를 타고 달려 나가는 윤석에게서 공을 뺏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를 알고 있다는 듯 독일은 윤석에게 몸싸움을 시도하기보다는 윤석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다른 선수들에게 패스하지 못하도록 요소요소 자리 잡았다.
윤석은 그런 선수들을 피해 움직이면서 틈을 찾았다.
그 틈에 백성호가 보였다.
윤석이 선수 하나를 피해 백성호에게 공을 밀어 주었고, 백성호는 원 터치로 공을 앞으로 흘려보냈다.
보아텡과 훔멜스의 사이를 지나가는 공을 향해 정우가 미친 속도로 달려들었다.
[괴물 새끼!]보아텡은 바로 옆에 있다가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는 정우에게 그리 외치면서 이를 악물고 따라 붙었다.
훔멜스는 정우가 아닌 공을 향해 움직인다.
간발의 차이로 정우가 공에게 발을 갖다 대면서 훔멜스의 가랑이 사이로 공을 밀어 넣는다. 스핀을 먹은 공이 훔멜스의 가랑이 사이를 곡선을 그리며 파고들어 지나가 정우의 앞쪽으로 향한다.
신기에 가까운 터치로 공의 위치를 조절한 정우가 다시 앞으로 달려가는 순간.
[덤벼, 자식아!]항상 정우를 벼르던 노이어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온다.
코앞으로 다가오는 노이어를 보면서 정우는 타이밍을 맞춰서 발끝으로 공을 건드렸다.
노이어가 공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공은 노이어의 가랑이 사이를 스쳐지나가 골라인을 넘어서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골! 한정우의 추격 골입니다! 스코어는 3 대 1!
-상대방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한정우 선수의 발기술! 속된 말로 저걸 알 까기라고 하는데 훔멜스와 노이어가 동시에 비슷한 수법으로 당하면서 골을 허락하고 맙니다! 한정우 공포증이라도 생길 것 같은 독일입니다!
정우는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지 않고 곧바로 공을 가지고 하프라인으로 달려갔다.
한정우의 심정을 알기에 다른 선수들도 지나가는 정우의 어깨를 다독이며 잘했다고 할 뿐 기뻐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독일이 공을 가지고 매우 느린 템포로 경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이렇게 앞서가는 상황에서 기세를 올린 대한민국을 상대로 체력을 낭비하면서까지 한국을 상대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 가운데 귄도간을 대신해서 크로스가, 훔멜스를 대신해서 조나단 타가 투입되었다.
조나단 타는 보아텡과 마찬가지로 피지컬이 좋고 발이 빠른 수비수였기에 정우에게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이었고, 귄도간의 체력을 안배하고 크로스의 경기력을 유지하려는 조치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토니 크로스는 공수 양면에서 세계적인 실력을 보여 주는 선수였다.
한국의 경기는 더욱더 어려워졌다.
경기는 그렇게 야속하게 후반 87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촤아악!
모처럼 기선용이 공을 빼앗으며 한국이 공격으로 전환했다.
“윤석아!”
기선용이 윤석에게 공을 패스했고, 윤석은 다시 2선으로 침투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윤석의 파워풀한 진격에는 독일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리고…….
콰앙!
윤석은 젖 먹던 힘을 다해 틈을 노리고 힘껏 슈팅을 시도했다.
빠르게 뻗어가는 공을 향해 노이어는 달려들다가 이내 멈춰서고 말았다.
일직선으로 뻗어오던 공이 기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노이어에게 멀어져서 골대 구석으로 꽂혀 버렸기 때문이다.
-고, 고오오오오올! 한윤석이 노이어마저 멈칫하게 만드는 엄청난 슈팅으로 두 번째 골을 만들어 냅니다!
-이게 대한민국의 저력입니다! 3 대 2! 남은 시간은 인저리 타임까지 고려한다면 6, 7분이 주어질 겁니다! 아직 가능성이 있습니다!
[으음…….]코앞까지 쫓아온 한국의 모습에 뢰브는 침음을 흘리다가 이내 선수 교체를 단행했다. 마지막 카드는 젤케를 대신해 뮐러가 투입되었다.
그리고 체력을 안배한 느린 템포에서 단숨에 빠른 템포에 강한 압박을 보이기 시작했다.
-크로스! 공 잡고 바로 다이렉트로 패스으으으! 뮐러!
-수비진이 단숨에 뚫렸습니다!
빠른 템포 속에서 2선 가까이 올라온 크로스가 약간의 틈을 노리고 힘 있게 공을 찔러 넣었다.
옆을 지나가는 공을 향해 다급하게 윤석이 발을 뻗었지만, 간발의 차이로 스쳐지나가는 공을 보며 무릎을 꿇었다가 일어나서 뒤를 돌아봤다.
뮐러가 가뿐하게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김성규를 피해 골대를 향해 공을 쑤셔 넣고 있었다.
-아아! 네 번째 골! 독일이 또다시 2점 차로 앞서갑니다.
-남은 시간은 3분여……. 비록 패색이 짙지만 우리 대한민국 선수들 잘 싸워 줬습니다! 훌륭합니다!
-한정우, 한윤석, 백성호, 이성우, 손형민과 같은 선수들은 우리 대표 팀의 미래입니다. 다음 월드컵에서도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그런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선수들이 더 성장한다면 우리 대한민국, 다음 월드컵에서는 지금보다도 더 좋은 성적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잘 싸우고 있어요!
마지막 독일의 골을 보면서 정우는 문득 한마디를 떠올렸다.
졌지만, 잘 싸웠다.
흔히들 말하는 그 말.
“잘 싸우기는 개뿔…….”
삐익, 삐이익, 삐익!
얼마가지 않아 들려오는 종료 휘슬을 들으며 정우는 입술을 잘근 깨물어야 했다.
형제의 월드컵은 그렇게 마지막을 알리고 있었다.
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다음에는 반드시…….”
아쉬움과 함께 그저 다음을 기약할 뿐.
“그렇지, 형?”
“……음.”
그것은 윤석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