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151)
형제의 축구-151화(151/251)
형제의 축구 151화
선물
늦은 밤까지 고된 하루를 보내고 교대를 하고 기숙사를 찾을 때면 걸음이 무거웠다.
지친 걸음으로 기숙사를 찾아 들어오면 좁은 방 안에 빼곡히 창문까지 가리는 2층 침대가 반긴다.
‘다들 어디 갔지?’
늦은 시간, 일이 없을 동료들이 자고 있어야 하는데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의아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다가 입고 있던 옷을 갈아입고 낡은 공용 샤워실에서 미지근하다 못해 차갑게 느껴지는 물에 서둘러 씻고 나왔는데도 사람들이 없었다.
인원이 많아 제대로 빨래를 하지 못해 퀴퀴한 냄새가 올라오는 이불을 덮고 몸을 뉘인다.
아무도 없으니 문득 고국의 가족들이 생각난다.
자신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동생들, 부모님들.
자신을 떠나보내던 밤,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그 거친 손으로 연신 어루만져 주던 엄마의 손길이 너무나도 그리워진다.
울컥,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몇 년이 지나 이제는 무덤덤해질 법도 하지만, 가족의 대한 그리움은 가시질 않는다.
끼이익.
그렇게 홀로 눈물을 훌쩍이는 가운데 기숙사 방문이 열린다.
서둘러 눈물을 닦고 자는 척하는데, 고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영숙아, 자니?”
“아, 아니요, 언니. 이제 막 자려고 하고 있었어요.”
영숙은 애써 눈물을 숨기고 울음기를 지우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런 영숙의 뒷모습을 보고서, 막 방 안으로 들어온 여인은 애잔한 웃음을 짓는다.
“배 안 고파?”
“……괜찮아요, 일하면서 빵 먹었어요.”
“에이, 그거 가지고 되겠어? 어린애가 한참 먹을 때인데.”
“저 그렇게 안 어려요, 언니.”
“호호, 그래, 그래도 일어나 봐. 언니 따라서 가자.”
“어, 어딜요?”
영숙이 궁금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곱디고운 얼굴로 엄마보다도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언니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따라오면 알아.”
언니의 말에 영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라 나섰다.
그녀가 향하는 길은 기숙사의 지하실이었다.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쾌쾌한 냄새의 지하실.
음험한 기운에 몸을 떠는 것도 잠시, 그녀는 꺄르르, 들려오는 동료들의 웃음소리에 화들짝 놀랐다가, 이내 코로 스며드는 냄새에 눈을 휘둥그레 뜬다.
“언니, 이 냄새는……?”
꼬르르륵.
냄새와 동시에 영숙의 배가 배고픔을 호소했다.
사실 오늘 하루 종일 거동이 불편해 대소변을 받아 내야 하는 환자를 케어하느라 입맛이 없어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던 터였다.
영숙의 얼굴이 붉어졌고, 언니는 웃었다.
“배고프지?”
“……네.”
“얼른 가서 먹자.”
언니는 영숙을 한쪽으로 이끌었다.
퀘퀘한 냄새와 곰팡이가 가득한 불쾌한 지하실이었음에도,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나는 곳을 향했다.
다른 동료들이 곤로와 냄비 앞에 앉아서 무언가를 열심히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영숙이도 김치찌개 좋아하지?”
두말하면 잔소리다.
고국의 음식을 그리워하지 않을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눈앞에는, 비록 한국의 그 찰진 밥이 아니라 훌훌 불면 찰기가 없어 날아갈 것 같더라도 새하얀 쌀밥에, 어디서 구해 온 것인지 몰라도 새콤한 냄새가 제대로 익은 김치로 끓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김치찌개와 김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많이 먹어.”
언니가 환하게 웃으면서 영숙에게 밥과 김치찌개를 퍼서 건넨다.
독일인들이 지독하게 싫어하는 냄새이기에 기껏 구해 온 음식을 이런 지하실에서 먹는다.
그래도 그것이 뭐가 그리 좋은지 동료들이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누군가는 정신없이 음식을 먹기 바쁘다.
영숙은 그런 동료들 틈에서 김치찌개를 한술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어때, 맛있어?”
“네, 네, 언니…… 너무 맛있어요.”
영숙이 그리움에 사무쳐 눈물을 터뜨린다.
일순 떠들고 먹기 바쁘던 동료들이 멈칫하고 영숙을 바라본다.
그러고는 이내 애잔한 미소를 피어 올리며 너 나 할 것 없이 영숙을 위로했다.
지금 이 순간 그리운 가족들도 잊게 해 주는 소중한 사람들.
그 사람들을 마주하고 영숙은 웃었다.
* * *
“으음…….”
눈을 떴다.
밝은 빛이 들어오는 침실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니 옆에서 의아한 얼굴로 남편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어본다.
[무슨 일이라도 있소? 자면서 그리 앓는 소리를 내고 말이오.]수십 년을 함께한 남편이 걱정스레 물어온다.
이국에서 만난 이 멋진 독일 남자도 새삼스럽게 늙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온다.
그런 만큼 자신도 이제 늙었겠지…… 하고 생각하며 영숙은 입을 열었다.
[아니요, 그냥 옛 시절 꿈을 꿨어요.] [간호사 시절 말이오?]남편의 말에 영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은 그런 영숙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 시절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직접 본 자신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일하던 병원의 의사였다.
성심성의껏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환한 미소와 함께 돌보는 그녀의 모습에 반해 결혼을 하고 지금 이렇게 은퇴하고서도 황혼을 함께하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그 시절 꿈은 왜…….] [그러게요. 근데 나쁜 꿈은 아니었어요.]영숙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남편을 반하게 만들었던 그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요? 그런 날도 있었소?] [나를 참…… 잘 돌봐 주던 언니가 꿈에서 나왔어요. 그 언니가 아니었으면 많이 힘들었을 텐데…….] [좋은 사람이었나 보군?]남편의 말에 영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남편은 그녀를 깨우기 위해 가져왔던 커피를 건넸다. 따듯한 커피 잔을 받아들며 영숙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언니가 제게 힘이 되어 줬어요. 언제나 절 돌봐 주고 챙겨 줬거든요. 아, 당신이 내 웃음에 반했다고 했는데, 이 웃음도 그 언니가 가르쳐 준 거예요.] [허허, 그렇소?] [네, 힘들수록 웃으라고……. 그래도 간호사니까, 환자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고. 그리고 나 스스로도 웃어야 힘을 낼 수 있다고 말해 줬거든요. 그 뒤로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그녀의 말에 남편은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참 좋은 말을 해 준 사람이군. 당신에게 멘토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멘토…… 맞아요. 그녀는 제 멘토였어요.] [그녀는 어찌 되었소? 한국으로 돌아갔소?] [제가 함부르크에서 베를린으로 옮기면서 그녀는 얼마 안 가서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모르겠네요. 아마 지금쯤 한국에 있지 않을까요?]이제는 그 언니의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이름이…….]그녀가 떠나고 난 뒤 정신없이 바쁜 삶을 살아왔다. 그녀를 떠올릴 틈도 없이.
간호사 일을 하다 남편을 만나고, 자식을 낳고 어머니로서, 그리고 간호사로서 여전히 남아서 바쁘게 살아오느라 그녀를 그리워할 틈도 없었던 거다.
딩동!
그사이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에 부부의 시선이 방문 밖을 향한다.
[누구 손님 오기로 했어요?]영숙의 물음에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 아들놈이나 옛 동료들이 놀러온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는데.]은퇴한 이후에는 집을 찾아오는 손님도 현저히 줄어들었고, 오더라도 사전에 연락이 오기 때문에 예고 없는 초인종 소리는 드물었다.
[집배원인가…….]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서는 것을 보고 그녀도 자리에서 일어나 잠옷 차림에 그대로 가운을 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시간을 보니 점심이 다 되어 가는 시간.
[내가 오늘 늦게 잤구나.]늙을수록 잠이 없어져 늦잠을 자 본 적이 없는데 오늘은 긴 꿈을 꿔서 그런가 늦잠을 자고 말았다.
[여보!]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긴 사이에 다급하게 남편이 방으로 들어온다.
[무슨 일이에요, 당신답지 않게?]절대로 뛰거나 서두르지 않는 남편의 의외에 모습에 그녀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남편이 말했다.
[당신을 찾아온 손님이구려.] [저를요?]그럴 일이 있는가?
그녀는 더욱더 의아해져 고개를 갸웃하며, 나가 보라 재촉하는 남편의 손길에 이끌려 현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현관을 가 보니 한 청년과 노부인이 있었다.
[어머……!]그녀는 청년을 알아봤다.
라이프치히 출신인 남편은 축구를 좋아했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팀은 RB 라이프치히였다. 그래서 알아볼 수 있었고, 남편이 왜 흥분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라이프치히에서 자랑하는 스트라이커, 분데스리가의 득점왕 한정우였다.
같은 한국인인 만큼 얼굴을 헷갈릴 수가 없었다.
그런 그가 영숙과 시선이 마주치자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한다.
마주 인사를 하면서 영숙의 시선이 이번에는 그의 옆에 있는 노부인에게 향한다.
주름진 얼굴로 반가움에, 그리고 애잔함이 잔뜩 묻은 포근한 미소…….
영숙의 두 눈이 휘둥그레 떠진다.
이렇게 마주하니 떠오른다.
이제는 가물가물하던 한국어마저 말이다.
“저, 정례 언니?”
“영숙이 맞누?”
영숙은 놀란 눈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자신에게 세월이 비껴 가지 않은 것처럼, 그녀도 세월을 고스란히 맞은 모습이었다.
곱디고왔던 얼굴에는 이제 자글자글한 주름이 자리 잡았고, 검고 영롱하게 빛나던 맑았던 그 두 눈도 회색빛으로 탁하게 물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이 그리워하던 동료, 여정례라는 것을 말이다.
“언니, 참 많이 늙었소.”
영숙이 눈물을 주륵 흘리며 말하자, 할머니는 헐헐,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너도 그렇다. 그 갓난아 같던 게 이리도 늙었누?”
“언니, 정례 언니……!”
영숙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주름이 자글자글하니 지난 시간 고생을 많이 했는지 거친 손이 그녀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 손에 이끌려 몰래 김치찌개를 먹던 시절이 어제 같은데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우는 자신의 등을 다독여 주던, 힘들 때면 힘껏 어깨를 주물러 주던 그 따듯함은 변하지 않았다.
“어찌 알고 왔어요. 이 먼 곳으로…….”
“흘흘, 독일로 오고 나니 동기들이 참으로 그립지 않누? 그래서 열심히 알아봤지. 독일서 남아서 잘 살고 있나 궁금혀서 찾아왔구만.”
할머니의 말에 영숙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었다.
“참으로 잘 왔어요. 너무 보고 싶었는데…….”
바쁜 세월이 지나가고 나니 꿈에서도 나올 정도로 그리웠던 언니를 마주하니 꿈만 같았다.
그래서 영숙은 눈물이 마를 틈도 없이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 영숙에게 그 옛 시절, 젊은 시절처럼 할머니는 영숙의 어깨를 다독여 줬다.
한참이나 해후를 푼 뒤, 거실 소파에 앉은 두 사람은 이야기꽃을 피웠다.
영숙의 남편이 커피를 타 오고, 마주할 일 없을 것 같은 네 사람이 소파에 앉았다.
남편은 들뜬 표정으로 정우를 흘끔흘끔 바라보고, 정우는 할머니의 대화를 듣는 둥 마는 둥 핸드폰을 만지는 사이에 영숙과 할머니는 헤어진 뒤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좋은 남자 만나서 한국 가신 건 들었는데, 그 뒤로 그리 힘들었어요?”
“그랴, 나라고 내 팔자가 그리 될 줄 알았는감. 흘흘, 그래도 손주들 덕에 말년에는 팔자가 폈지 않누?”
한참을 이야기하다 할머니는 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영숙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정우를 향하다 남편을 보고서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 사실 우리 남편이 RB 라이프치히의 팬이라오. 저 표정 보시오. 마치 첫사랑을 보는 것처럼 들뜬 것 같지 않아요?”
“그랴? 흘흘, 정우야, 들었누?”
“으응, 할머니.”
정우는 뒤늦게 영숙의 남편을 보고서는 멋쩍어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을 바라보면서 마치 우상을 보는 것 같은 소년의 표정을 하고 있는 독일인 할아버지를 마주보는 것은 생각보다 편치는 않았다.
[그…… 에…… 사인이라도……?]정우가 어색해하며 입을 열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딘가를 갔다 온다.
얼굴에 홍조까지 띄워 가며 소년처럼 웃는 그의 손에는 하얀색, 라이프치히의 유니폼이 들렸다. 그것도 등 번호 9번, 정우의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이었다.
[내 생전에 나의 지역의 팀에서 마이스터 샬레를 들어 올릴 줄은 몰랐소. 그 꿈을 내 아내의 조국에서 온 선수가 이뤄 줄 거라는 것도!]떠밀리듯 분단이 되면서 한동안 돌아가지 못하던 고향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애착이 가는 자신의 고향.
고향을 떠나서 힘들게 살아가던 시절 그의 유일한 위안은 축구였는데, 그 축구와 고향이 하나가 되어서 말년에 자신에게 큰 기쁨을 선사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게 현실이 되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매년 지켜보던 팀이 자신이 죽기 전에 놀랍게 발전해 마이스터 샬레까지 들어 올리다니!
그것도 놀라운 인연으로 아내의 고향에서 온 두 선수가 팀의 대들보가 되어 주었다.
차붐과도 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놀라운 활약을 펼쳐 준 동방의 땅에서 온 형제.
남편 인생에서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인을 해 주게. 아, 가능하다면 종이에도 해 주겠나? 우리 아들도 손자도 라이프치히의 팬이라네. 참으로 묘한 인연이군, 하하하.]아내가 과거의 추억을 마주하며 젊어진 기분만큼이나 남편도 오늘 젊은 시절처럼 들뜨고 흥분하고 있었다.
은퇴 후 하루하루가 적적하던 노부부에게 선물과도 같은 하루가 찾아온 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