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152)
형제의 축구-152화(152/251)
형제의 축구 152화
함부르크
“언니, 이렇게 일찍이 가야 해요?”
영숙은 아쉬운 얼굴로 할머니를 바라봤다. 할머니는 헐헐, 웃으며 말했다.
“함부르크도 가 봐야 혀. 여 와서 한 번도 안 가봤지 뭐여.”
함부르크는 할머니가 간호사로 있던 곳이었다.
“그렇군요…….”
아쉬운 표정으로 할머니의 손을 어루만지던 영숙은 시선을 돌려 옆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남편이 있었다.
[꼭 이번 시즌에도, 반드시 득점왕이 되어 주게! 그리고…… 그리고…….]감정에 북받친 듯 울먹거리기까지 하는 남편.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아니, RB 라이프치히가 마침내 마이스터 샬레를 들어 올릴 때 본 것도 같다. 그때 집 안 가득 함성을 지르던 남편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네, 뭐, 꼭…… 할 수 있다면 저도…….] [아니야, 아닐세! 자네, 그래, 자네 형제라면 꼭 우리 라이프치히에게 마이스터 샬레를 또다시 선물해 줄 수 있을 거라 믿네. 할 수 있어, 자네들은!]할아버지의 기대 가득한 목소리에 정우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꼭 그렇게 할게요. 뭐! 까짓거! 2연패! 뭐! 확! 그까이꺼!] [그렇지, 그거야! 자네는 할 수 있네!] [알겠습니다. 마이스터 샬레 반드시 또 차지하겠습니다!]그제야 안심한 듯 영숙의 남편, 칼츠는 흐뭇하게 웃으며 정우의 어깨를 두들겼다.
“나보다는 우리 남편이 더 아쉬운 모양이에요.”
영숙의 말에 할머니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려, 독일 사람들 축구 사랑은 징하지! 징혀!”
옛날 부터 축구에 죽고 축구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축구의 종가라는 영국인들보다 더하다는 소리를 그 당시부터 익히 들어 왔었다.
그걸 실감한 것은 차붐이 분데스리가 무대를 휩쓸던 당시 차붐과 관련이 없는 함부르크에서도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하면 환한 웃음으로 차붐을 외치는 걸 보면서다.
“라이프치히서도 우리 남편처럼 그래요?”
“라이프치히? 오죽할까, 흘흘.”
할머니는 웃었다.
어느 순간 할머니가 형제의 할머니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주 들르는 가게 같은 곳에서는 형제가 활약해서 골을 넣거나 MOM을 차지하는 날이면 박수를 치며 환호로 할머니를 맞이하는 일이 있었다.
세월이 지나도 독일의 축구 사랑은 여전, 아니, 더하다.
“손주들 정말로 잘 키웠어요, 언니.”
“내가 키운 게 아니여. 지들이 스스로 큰 거지.”
그리 말하면서도 할머니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가득 묻어나왔다. 그런 할머니를 보고서 영숙은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어찌 세월이 지나니 능글맞아졌어요, 언니는.”
“늙어서 그렇지. 늙어서. 아이고, 시간 봐라. 시간도 있고 허니 서둘러서 가야 쓰겄네.”
“그래요…….”
이제 정말 떠나는가.
아쉬운 마음에 영숙의 표정이 다시 우울해지는 차, 할머니는 영숙의 손을 다독이며 말했다.
“이리 가까이 사는디 뭔 걱정이여. 또 만나믄 되는 게지. 이번에는 언니한티 영숙이가 와야 혀. 한 살이라도 더 젊은 사람이 움직여야지 않겄누?”
“호호, 그러게요. 언니 말이 맞네. 꼭 찾아뵐게요.”
“그려, 그려.”
할머니는 그리 말하고 고개를 돌려 정우에게 말했다.
“가자, 정우야.”
“으응.”
[믿네, 믿어!] [네에, 가 볼게요. 수고하세요.]정우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영숙의 남편에게 꾸벅 인사를 건네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영숙 부부를 뒤로하고 조손이 향하는 곳은 함부르크.
할머니가 처음 지냈던 독일 땅이었다.
베를린에서 서쪽으로 넉넉잡아 3시간 정도 걸리는 길.
가깝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못 갈 정도로 먼 곳은 아니었다.
“시간 나면 함부르크나 갈걸.”
기차에 오른 정우가 입맛을 다시며 말하자 할머니가 웃었다.
“흘흘, 적응하느라 바빴지 않누. 지금 가는 것도 어디여.”
“그래도…….”
정우는 입맛을 다셨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독일의 풍경을 바라보다 할머니에게 물었다.
“함부르크에서 많이 힘들었어? 어제 들어보니 고생 많이 한 것 같은데.”
정우는 파독 간호사라고 해서 먼 나라 와서 단순하게 간호사 일을 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힘들고 많은 고초를 겪은 것 같았다.
“흘흘, 다 지난 일이여.”
할머니는 굳이 정우에게 그 시절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
함부르크.
정확히는 그녀가 일하던 곳은 함부르크 시립 외과 병원이었다.
항구도시인 함부르크에는 외상 환자들이 항상 득시글했다. 항구와 선원들의 일이 험한 만큼 다치는 스케일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뼈가 뒤틀리고, 살이 찢기고, 심한 경우는 팔다리를 잃은 사람들이 매일 같이 병원을 찾고는 했다.
그곳에서 한국의 간호사들은 고된 일을 도맡아 했다. 과장 조금 보탠다면 뼈와 살을 떡 주무르듯이 만졌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말이다.
굳이 이야기해서 무엇하랴.
하는 짓과 다르게 알고 보면 그 누구보다도 맘 약한 막내 손주 놈은 눈물을 글썽글썽할 게 뻔했다.
그 시절.
그 고되고 힘든 시절을 생각하면 언감생심 함부르크 쪽으로는 오줌도 누기 싫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가고자 했다.
왜?
그 힘든 만큼이나 추억도 가득 있는 곳이 함부르크였기 때문이다.
옛 생각에 홀로 슬펐다 웃었다 하는 사이에 어느새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일어나, 이눔아. 도착혔어.”
“으응? 응?”
정우가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이 떠지지 않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 정우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어, 멀기도 혀라. 삭신이 다 쑤시네.”
“그러게 뭣하러 먼 길을 이리 따라오누!”
할머니는 그리 말하면서 정우의 엉덩이를 툭 하고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할머니, 이거 성희롱이야. 어디 다 큰 남자 엉덩이를!”
“신소리 그만하고 얼른 나와!”
단호하게 정우의 장난을 끊은 할머니가 기차에서 내리자 정우는 칫, 하고는 할머니를 따라 서둘러 나섰다.
기차역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고 보니 보이는 것은 거대한 옛 건물.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랑하는 이곳은 북독일 지역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함부르크의 시청사였다.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시청이었다.
“이야, 건물 으리으리하네.”
정우가 감탄하는 사이 할머니도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네. 운이 좋구먼.”
함부르크는 한 달 동안 날씨가 좋은 날을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흐린 날씨를 자랑하는 동네였다. 모처럼 온 함부르크에서 좋은 날을 만나게 된 것이니 운이 좋다고 볼 수도 있었다.
한국은 10년이 아니라, 1년만 지나도 강산이 변하고 으리으리한 건물이 들어서는 반면 유럽은 시간이 지나도 변한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를 그리움에 빠지게 만들었다.
시청사에서 앞으로 조금 걸어 나오니 거대한 강이 펼쳐진다.
함부르크가 항구도시로 불리고 워낙 넓어서 바다로 착각하게 만드는 알스터 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흘흘.”
할머니는 알스터 강을 보고서 웃음을 흘렸다.
먼 옛날 모처럼 쉬는 날이면 항상 이곳을 찾았더랬다.
오늘같이 날씨가 좋은 날이면 누군가는 바베큐 파티를 열고, 누군가는 일광욕을 즐기기 위해 잔디밭 위에 몸을 누이고 알스터 강의 전경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낙원과도 같던 곳.
할머니는 정우의 할아버지와 함께 이 알스터 강가를 산책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고 할 정도로 이곳에서 데이트를 즐겼다.
날이 흐려도, 날이 좋아도 알스터 강은 운치 있는 분위기를 자랑했다.
“네 할아버지를 여서 만났다.”
할머니의 말에 정우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래? 그건 또 처음 듣네.”
“흘흘, 훤칠하니 한국 사람 같지 않게 생긴 양반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지.”
청바지에 셔츠를 입고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할머니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이국에서 만난 동포, 훤칠하게 잘생긴 그의 모습이 아른거리던 어느 날.
뒤숭숭한 마음을 뒤로하고 또다시 찾은 알스터 강에서 그를 또 만났다.
-안녕하세요? 한국인이시군요?
별거 아니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말.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건넨 첫 인사는 바로 그것이었다.
수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나도 늙었구랴.”
알스터 강을 바라보며 할머니는 하늘나라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볼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근디 이 강은 여전히 보기 좋소. 당신도 보고 계시우?’
언제나 시간이 지나도 그리운 사람의 모습이 떠올라 할머니는 멍하니 강가를 구경하고 있는 정우 몰래 눈가를 훔치고는 말했다.
“이제 그만 가자.”
“어디로 가?”
“그냥 동네 구경하러 가는 겨.”
할머니는 그리 말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따듯한 평일, 도시를 걷자 세계대전으로 불타 버린 니콜라이 성당도 보고, 그 뒤에 베네치아처럼 건물과 건물 사이의 운하를 구경하다가 이내 란둥스브뤼케 앞에 도착한다.
부지런히 온 덕분인지 아직 피시마켓이 열려 있었다.
함부르크에서 가장 큰 요일장 같은 것이었다.
“우와, 사람들 봐.”
정우가 입을 떡 벌리고 그것을 구경하는 사이에 할머니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할머니, 어디 가?”
정우가 서둘러 할머니를 따랐는데 어디서 그런 기력이 나오는지 몰라도 할머니는 인파를 헤치고 요리조리 걸음을 옮기며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쯤에 항상 있었는디…….”
“휴, 덥네, 더워! 뭐가? 뭘 찾는 거야, 할머니?”
정우의 물음에도 할머니는 대답을 하지 않고 연신 시선을 돌리며 무언가를 찾으시다 말했다.
“허긴 세월이 워낙 오래되었으니…… 이제 안 하는감.”
할머니는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휴, 여기 도대체 뭐가 있었길래 그래?”
“여기 과일을 파는 아가씨가 있었쟤. 이 할머니 또래였는디…… 그 사람이 그렇게 인심이 좋았어.”
한국에서 온 간호사들을 안타깝게 여겨서 과일을 사면 항상 푸짐하게 내놓던 사람이 있었다. 그 마음씨가 너무나도 고마워 이제 와서라도 얼굴을 보고 은혜를 갚고 싶었건만…….
지나간 세월을 되돌릴 수 없는 만큼,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을 할머니는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었다.
[혹시 한정우?] [네……? 아, 네…… 하하…….] [와우!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여기서 만나다니! 우리 피시마켓에는 무슨 일로?] [한정우?] [한정우래, 한정우!] [라이프치히의 블리츠?]그 가운데 옆에 선 정우를 알아본 사람들이 정우에게 다가와 아는 척을 하며 몰려들기 시작했다. 정우는 그 사람들을 보며 당황하면서도 그들의 사인 요청과 사진 촬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흘흘.”
할머니는 이제는 몰라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이 된 손주를 바라보며 뿌듯한 마음에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할머니는 함부르크의 시립 외과 병원을 방문하는 것을 끝으로 짧은 여행을 끝냈다. 연락이 끊긴 인연들을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며 말이다.
그리고…….
18-19년 분데스리가.
새로운 시즌이 마침내 코앞으로 다가왔다.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경기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