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154)
형제의 축구-154화(154/251)
형제의 축구 154화
생명
“할머니, 밥, 먹어요!”
이보네가 어설픈 한국어로 말하자 할머니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른한티는 밥 먹어요가 아니라 진지 드세요, 잡수세요 하는겨!”
“그래요? 아, 한, 국, 말 너무 어려워. 이보네 힘들어요.”
“독일말이랑 한국말이랑 완전히 다르니 글쟤. 이 할미도 첨 독일 왔을 땐 그리 힘들었어. 그래도 곧잘 알아듣는 게 신기하구먼.”
“알아듣는 건, 쉬워요. 퍼즐처럼 맞춰.”
“그려그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리 배운 것도 장한 겨. 밥 묵자. 얘들은 언제 올지 모르니.”
그리 말하며 할머니는 식탁에 앉았다.
식탁에는 간단하게 햄버거가 준비되어 있었다. 한식 외에는 밥을 잘 못 먹는 사람들, 특히 노인분들이 많은데, 독일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경력에 어디 가서 잘 적응하는 성격인 할머니는 독일 음식도 곧잘 입에 맞아서 어려워하지 않았다.
“오늘 햄버거, 괜찮아요?”
“그려, 우리가 새아가 음식도 잘혀.”
할머니의 말에 이보네가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독일 함부르크 지방에서 시작된 햄버거란 음식은 미국의 햄버거와 달리 포크와 나이프가 없으면 먹기 힘들 정도로 큼직한 음식으로, 인스턴트라고 보기 힘들었다.
그렇게 햄버거를 잘게 잘라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으음…….”
이보네의 신음 소리에 할머니의 시선이 이보네를 향한다.
“잉? 왜 그려?”
이보네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배를 어루만졌다. 그런 이보네의 모습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할머니가 물었다.
“어디가 아퍼? 어디여? 배가 아픈 겨?”
“할머니, 나, 이상…….”
[편하게 독일말로 혀, 어디가 아픈 거야? 아기가 발길질이라도 심하게 혔어?] [으음…… 그게…….]이보네는 할머니에게 말을 하려다가 무언가 이상한 느낌에 아래를 내려다봤다.
이보네가 놀란 얼굴로 고개 숙이고 있자, 불안함을 느낀 할머니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이보네에게 다가갔다.
“아이고, 시상에나!”
할머니의 두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편안하게 집에서 입을 원피스를 입고 있는 이보네의 치맛자락이 흠뻑 젖어 가고 있었다.
[아가 날라 보다! 문이 열린 거 같네!]할머니는 당황한 얼굴로 부엌 쪽에 걸린 달력을 바라봤다. 혹시 몰라서 출산 예정일을 체크해 뒀기 때문이다.
[아이고, 출산일보다 빨리 나설라 보네! 이눔이 성격이 왜 이리 급한 겨!]할머니는 놀라면서도 침착하게 전화를 걸었다.
-예, 부인!
전화기 너머에서 형제의 매니저인 게르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게르트 씨, 어디요? 지금 훈련장에 손주들이랑 같이 있는가?]-네, 부인. 지금 형제 두 분 모두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고, 큰애 좀 얼른 데리고 오시오!]-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애가 나올라 하네!]-애…… 애! 맙소사! 알겠습니다. 서둘러서 갈게요!
게르트가 전화기를 끊는 사이 할머니는 이보네를 소파에 눕혔다.
원래 양수가 터지고 멈추지 않고 계속 나오면 좋지 아이가 위험하지만, 다행히 더 이상 양수는 나오지 않고 진통만 호소하는 게, 위험하진 않을 것 같았다.
이보네도 진통을 크게 느끼지 않는 것을 보니 아직은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병원에 전화를 거는 것보다 윤석을 부르고 같이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자신보다는 남편이 함께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할머니는 윤석은 기다리기로 했다.
처음으로 출산을 한다는 두려움은 생각보다 크다.
자신보다는 든든한 남편이 함께 있는게 좋으리라…….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현관이 활짝 열린다.
“이보네!”
윤석이 그 큰 덩치로 성큼성큼 집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아이고, 왔냐!”
“할머니, 이보네는요?”
“여, 소파에 있지 않누! 얼른 가자!”
할머니의 말을 뒤로 하고 윤석은 이보네를 바라봤다. 진통이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한 듯 인상을 찌푸리고 끙끙거리는 그녀를 바라보고 윤석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당황하는 윤석을 보고서 할머니는 윤석의 등짝을 후려쳤다.
“뭐 혀, 이눔아! 얼른 안 가!”
“아, 아!”
윤석은 그제야 아내를 번쩍 들어 올리고 서둘러 내려갔다. 그 옆에서는 게르트가 더 당황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뭣 혀! 니두 가!]보다 못한 할머니가 게르트의 등짝을 때리자 그제야 게르트가 윤석을 따라 나섰다.
* * *
[정우, 윤석에게 무슨 일 있어?]평소처럼 훈련을 마무리한 정우가 샤워실에서 씻고 있는 사이 로벤이 물어왔다. 로벤의 말에 정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조카가 태어나거든.] [아아, 오늘이 그날인가? 윤석이 생명의 신비를 체험하고 있겠군.] [하하, 나는 아직 잘 모르겠네. 조카라니…… 로벤은 어땠어?] [나 말인가? 글쎄, 정신이 없었지. 그런데 그 작은 아이가 내 품에 들어오는 순간은…… 참, 말로 설명하기 어렵군.]로벤의 말에 정우는 흐음, 하며 생각에 잠겼다가 보이는 선수를 보고 손을 번쩍 들었다.
[헤이, 하트!]정우의 외침에 이번 시즌 RB 라이프치히의 골문을 지키게 된 조 하트가 흘끔 그를 바라본다.
[어때? 독일은 지낼 만해?]자신보다 한참 어린 선수의 물음에 조 하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무엇보다 독일 악센트도 아닌, 그렇다고 미국의 악센트도, 영국의 악센트도 아닌 애매한 영어 발음이 조 하트를 웃기게 만들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배워 회화가 가능하긴 했지만, 아쉬운 것은 발음.
발음이 중요한 영어에 있어서 정우의 발음은 최악이었다.
[독일은 즐겁지. 사람들이 재미없는 거 빼고는.]조 하트의 말에 로벤이 웃음을 터뜨리는 사이, 어느새 나타난 헥토르가 말했다.
[이봐, 영국 사람이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니라고 본다만?]정우가 헥토르의 독일말을 즉각 번역해 조 하트에게 말한다.
[……라는데, 요나스가.] [왜? 우리가 뭐 어때서? 우리만큼 유쾌한 유럽인이 있는 거 같아?] [영국인은 영 별로야. 젠틀맨이라는 말부터가…….] [……라는데? 로벤이. 가 아니라 로벤은 영어로 말하는구나, 나보다 잘하는데?] [프리미어 리그에 있을 당시에 금방 배웠지, 훗.] [아니, 구두쇠 네덜란드가 어디…….] [뭐? 우리가 왜 구두쇠야!] [유명하잖아?]각국의 유럽인들이 서로의 나라를 성토하는 것을 보고 정우는 한숨을 내쉬며 혀를 찼다.
[쯧쯧, 이래서 유럽인들이란…….]정우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발끈해서 정우를 향하는 동안.
정우는 어느새 옷을 입고서는 말했다.
[나는 조카가 생겨서 이만.]바람같이 사라지는 정우를 보며 세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
[저래서 블리츠인가.] [쟤는 다 빨라.] [그나저나 윤석의 딸이라…… 과연 어떨까?] [엄마를 닮아서 예쁠걸?] [아빠를 닮아서 엄청 클지도 몰라.]팀의 주장인 윤석의 2세는 모두의 관심이기도 했다. 그만큼 RB 라이프치히의 팀내 분위기가 좋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 * *
한편 병원을 찾은 윤석은 아내와 함께 병실에서 대기하다가 본격적으로 진통이 시작되자 서둘러 분만실 안으로 들어갔다.
[괜찮을까요?]윤석이 걱정스레 물어오자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첫 아이는 대부분 다 늦어서 길면 5시간 걸리기도 하는데, 예정일보다 빠르기도 하고 벌써 진통이 시작한 게 생각보다 빨리 나올 것 같은데요?] [아…… 그래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예정일보다 빠른 것 빼고는 하혈도 없고 양수가 계속 나온 것도 아니고, 괜찮아요.]의사의 말에 윤석이 안심하는 사이, 의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내분 손 잡아 주세요. 호흡 잊지 마시구요.] [씁, 하…… 씁, 하…….]진통과 두려움으로 흥분으로 물든 이보네에게 윤석이 손가락을 내밀자 이보네는 윤석의 두툼한 손가락을 굳게 쥔다.
“으음…….”
윤석은 있는 힘껏 자신의 손가락을 쥐는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의사가 그녀의 회음부를 자르고 분만을 유도하기 시작하면서 이보네는 식은땀을 흘리며 힘을 주기 시작했다.
[엄마, 침착하게 타이밍 맞춰서 힘주세요. 이제 나오기 시작해요. 그렇지, 호흡! 호흡!]다급하고 불안한 당사자들과 달리 의사는 침착했다.
[아아아아…… 으히이잉, 으아아아!]그리고 터져 나오는 이보네의 신음과 비명 소리.
윤석의 얼굴은 그럴수록 사색이 되어 갔다.
* * *
“어휴, 별일 없는 거겠지?”
이보네를 기다리는 정우는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아이고, 정신 사납게! 앉아 있어! 똥 마려운 복순이처럼 뭐 하누!”
할머니의 말에 정우는 깨갱하고는 할머니의 옆에 앉았다. 그러다 이내…….
덜덜덜…….
“복 나가게! 다리 좀 그만 떨어, 이눔아!”
“아, 안 불안해, 할머니는?”
정우의 물음에 할머니는 헐헐 웃으며 말했다.
“요즘 같이 좋은 시상에 불안할 게 뭐있누, 큰 수술 하는 것도 아닌디! 애만 멀쩡하면 그만이지! 요즘은 배 속에서 멀쩡한지 아닌지도 다 알고 좋더만! 우리 때는 배 속 아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도 못허고 걱정만 가득이였는디, 얼마나 좋아?”
연륜이 묻어 나는 할머니의 말에 정우가 빈정거렸다.
“그래 봤자, 아부지 하나 낳았음서…….”
“떽! 그때랑 지금이랑 같어! 하나 낳아서 키우기도 힘든 시상이었구만!”
“그건 요즘도 같아요!”
“애도 없는 눔이 뭐 젠체여!”
보다 못한 할머니가 정우의 등을 후려쳤다.
“아이고, 아파라! 힘도 좋아, 아주 백년 만년 살겄어, 우리 할무이!”
“징그러운 소리 하고 있네!”
조손이 투닥거리는 사이, 그것을 지켜보던 병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국말로 대화를 나눠서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상황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그런 광경이었다.
정우를 알아보고 핸드폰 촬영까지 하는 사람들을 보고서 정우는 그제야 멋쩍어 머리를 긁적이며 얌전히 있는 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은 정처 없이 흘러가기 시작한다.
1시간이 2시간이 되고, 2시간이 3시간이 되어 간다.
* * *
…….
…….
“으앙, 으앙, 으아앙!”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분만실 가득 울려 퍼진다.
아이를 받은 의사가 간호사에게 넘기고 간호사가 이보네와 윤석에게 아이를 보여 준다.
“아…….”
윤석이 멍하니 아이를 바라봤다.
붉고 쭈글쭈글하니 다 닦이지 않은 양수와 피가 뒤엉킨 그 모습이 자칫 징그러울 수도 있었지만 그 살벌한 장면도 사랑스럽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신비가 그곳에 있었다.
이보네와 윤석이 멍하니 자신의 아이를 바라봤다.
[간단한 검사를 하고 씻긴 후에 병실로 데리고 갑니다. 남편 분은 병실에 먼저 가시고, 산모는 마무리하고 가실게요.]간호사의 말과 함께 윤석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분만실에서 쫓겨났다.
“형!”
“아이구, 나왔나?”
할머니와 정우가 윤석에게 다가왔다.
“으응, 마무리해야 한다고 나 먼저 가 있으라고 하네?”
그리 말한 윤석은 멍하니 병실로 향했다.
정신을 어디 하나 놓고 있는 것 같은 그 모습에 정우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형, 왜 저래?”
“그럴 만허지.”
할머니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함께 병실로 향했다.
병실을 정리하고 이보네가 누울 자리를 준비하는 동안, 머지않아서 이보네가 병실로 들어왔다.
[아이고, 고생혔다. 고생혀.]할머니는 그리 말하며 이보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온 힘을 다한 듯 창백해진 얼굴을 한 이보네였지만, 할머니의 손길에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참 위대한 것 같아요, 할머니.]자신의 엄마도 이러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울컥,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이제 아가도 엄마지 않누? 엄마가 되었으니 이제 열심히 키워야지.] [네, 그래야죠.]똑똑.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병실에 아이를 안고서 간호사가 들어왔다.
새하얀 강보에 둘러싸인 아이에게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언청이나 그런 것 없이 아이는 건강합니다. 고생하셨어요.]간호사가 누워 있는 이보네에게 조심스럽게 아이를 건넸다. 이보네는 자신의 품으로 들어온 아이를 보고서 한참을 바라보다 이내 눈물을 터뜨린다.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아이가 엄마의 품에서 꾸물거리는 순간.
정말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안아 봐, 자기야.]이보네가 윤석에게 아이를 보냈다.
“으음…….”
윤석은 자신에게 오는 아이를 보고 침음을 흘렸다.
자신의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아이를 보고서 행여나 다칠까 봐 겁이나 제대로 안아 주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난감해했다. 병실 안에 있던 모두가 그런 윤석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거인이네, 거인이야.”
정우가 형을 놀렸지만, 윤석의 신경은 온통 아이를 향해 있었다.
“아가…… 내가 아빠야.”
윤석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아듣기라도 한 걸까?
핏덩이나 다름없는 조그마한 아이가 입을 오물오물하다가 배시시 웃음을 흘린다.
“허억!”
윤석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고…….
그걸 옆에서 지켜본 정우도 심장을 움켜쥐었다.
딸 바보와, 조카 바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