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19)
형제의 축구-19화(19/251)
형제의 축구 19화
자유선발제도
송진호는 피곤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화이트보드를 바라봤다.
화이트보드에는 이적이 예정된 선수들과 영입이 예정된 선수들의 명단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송진호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송진호 감독이 계속해서 공들이고 있었던 것은 수비진의 보존이었다.
팀워크도 물이 올랐고, 그 팀워크를 바탕으로 탄탄한 수비를 보여 주고 있는 지금의 선수들은 송진호의 전술 핵심이자 보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여기에 선수층이 얇은 풀백을 보강하면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런 그의 생각과 달리 핵심의 이탈이 일어났다.
좌측 풀백으로 좋은 활약을 펼쳐 줬던 전광훈이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떠나게 된 것이다.
풀백이 귀한 것은, 그것도 좌측 풀백이 귀한 것은 세계 어디를 봐도 마찬가지인 상황.
지금의 수비진과 호흡을 맞춰 줄 좌측 풀백, 아니, 애초부터 얇디얇았던 풀백의 선수진을 두껍게 할 필요가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당장 미드필더들의 영입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부천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중원 장악력이었다.
이 부분을 채워 주고 새로운 공격 루트를 마련해 줄 선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문제는 수비진과 미드필더뿐만이 아니었다.
당장 공격진에서도 팀의 주포였던 공민우가 입대가 예정되었고, 로드리고는 일찍이 다른 곳으로 이적이 예정되어 이적 시장이 열리는 즉시 떠나게 되었다.
주포인 두 사람이 나갔으니 골치가 아프게 되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루키앙과 김운도가 남아서 그 빈자리를 어느 정도, 아니, 충분히 메꿔 줄 것 같았다.
여기에 브라질에서 링크되고 있는 두 명의 공격수의 기량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 같은 상황이었고, 머지않아 계약에 성공할 것 같아서 공격수는 사실 큰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변수는 남아 있다.
지나친 브라질 선수의 의존도.
브라질 선수들은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이들은 잘하면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리지만, 막상 영입하고 보니 리그에 적응하지 못하고 브라질에서 발휘하던 실력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곤 했기 때문에 영입이 예정된 두 명의 공격수도 100% 신뢰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루키앙도 마찬가지였다.
뒤늦게 향수병에 걸릴 수도 있고, 갑작스럽게 기량이 하락할 수도 있었다.
브라질 용병 자체가 변수투성이인 셈이었다.
더욱 확실하게 실력을 믿을 수 있는 공격수가 필요했다.
“미드필더는 윤석이가 있고…… 관심을 보이는 녀석들도 있으니…….”
당장 미드필더 걱정은 없었다.
수비진도 중앙을 단단히 지켜 주던 중앙 수비수 최병조와 권지용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래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격진은…….
물론 다들 괜찮은 녀석들이었지만…….
“자꾸 아쉽네.”
자신의 입맛에, 아니, 굳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선수가 아니라도 핵심 선수로 쓸 수밖에 없을 것만 같은 녀석의 모습이 그의 눈가에 아른거렸다.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니 원…….”
다름 아닌 정우.
그 준족의 다리와 환상적인 발끝, 그리고 침착한 결정력.
그 빛나는 재능을 1년이나 더 아끼면서 봐야 하는 게 답답할 지경이었다.
“생각난 김에 애들이나 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아침, 점심도 거르고 하늘은 어둑어둑하니 저녁을 알리고 있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서 사무실을 빠져나와 숙소로 전화를 걸어보니 시즌이 끝나서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요즘 정신이 없어서 내가 너무 관심이 없었군.”
송진호는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차를 몰아 신앙촌을 향했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음산한 신앙촌의 골목길을 걸어 형제의 집을 향하니 집 앞 입구부터 전구의 누런 불빛이 자신을 반겼다.
“할머님, 저 왔습니다.”
목소리를 높여서 안에다가 말하니 이내 정우가 머리를 쑥 하니 내민다.
“어라, 감독님!”
반가운 얼굴로 정우가 다가오니 아까 생각에 절로 입이 써지는 송진호였다. 송진호는 굳이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오냐, 정우야. 잘 있었고?”
“그럼요, 들어오세요, 감독님.”
“그래.”
정우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 보니 집이 어수선했다.
“아이고, 오셨소?”
할머니가 송진호를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예, 할머님. 건강하셨죠?”
“헐헐, 노인네야 뭐 언제 갈지 모르는 건 바뀌지 않지, 헐헐헐.”
할머니가 죽는소리하자 정우가 야유하는 사이 윤석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감독님, 안녕하십니까.”
윤석이 송진호에게 깍듯이 인사하자 송진호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눔아. 별일 없지? 근데 이게 다 뭐냐?”
어수선한 집을 바라보며 송진호가 물어 오자 윤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사를 가야 해서요.”
“이사?”
“네. 이제 저희 집도 재개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감독님.”
“허허…… 그런 일이 있으면 말을 하지.”
송진호의 말에 할머니가 나서서 말했다.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이런 말을 일일이 감독님께 한답디까.”
“허허, 그래도요. 짐이라도 같이 싸 드릴 수 있을 텐데.”
“일없수. 집에 장정이 둘이나 있는데 남의 도움은 무신…….”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며 송진호는 웃음을 지었다.
없이 사는 할머니였지만 남에게 신세를 지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했다.
“그래요……. 할머님, 식사는 하셨어요?”
“나야 묵었지. 손주 놈들이 안 먹어서 그렇지.”
“얘들은 왜요? 너희들 왜 밥 안 먹었어?”
“순대국밥 먹으러 간다는 걸, 나는 고기 싫어서 집에서 먹는다 하고 이눔들은 안 먹였지. 나가서 사 먹고 오라고 말이오.”
“그래도 같이 먹으러 가자니까, 할머니 고집은 진짜…….”
정우가 아쉬운 듯 그리 말하는 사이 송진호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그러면 이 짐들 다 같이 싸고, 쟤가 손주들 데리고 밥 좀 먹이고 오겠습니다. 할 얘기도 있고요.”
“그러슈.”
송진호는 할머니의 허락이 떨어지자 손을 거들었다.
짐들도 별로 없는 터여서 송진호까지 가세하고 나자 30분도 안 되어서 모든 짐을 다 쌀 수 있었다. 할머니는 가구와 가전제품 같은 것들도 내심 가져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형제가 곰팡이가 슨 가구들을 가져가면 새집도 곰팡이가 생긴다고 극구 반대해서 가구들은 모두 버리고 가게 되었다.
사실 가구라고 해 봤자 거의 다 곰팡이가 슬고 낡아서 가져갈 것도 없었다.
“가자.”
“네, 감독님.”
아이들을 데리고 차에 올라탄 송진호는 생각 없이 국밥집을 향하려다 멈칫하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기분이다. 너희들 이사도 간다고 하는데, 오늘은 소고기를 먹으러 가자.”
“소고기요?”
“왜?”
“그거 비싼 거 아니에요? 식당에서 먹으면 엄청 비싸다고 들었는데…….”
정우가 걱정스럽게 말하자 송진호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비싸기야 하지, 그래서 소고기는 맛만 보고 대부분 냉면이나 밥 같은 거로 배를 채우곤 한다. 너희한테는 좀 아쉬우려나?”
“아, 아니에요. 먹어 보고 싶어요, 소고기!”
정우의 말에 송진호는 내심 얘들이 소고기를 제대로 먹어 본 적이 없구나 생각했다.
사실 그걸 생각해서 데려가는 거기도 했다.
짜장면이니 탕수육, 뷔페 등등.
항상 데리고 가는 곳마다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미친 듯이 먹어 대고는 했다.
가난한 형편에 그런 음식들은 아이들에게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오죽하면 형제의 꿈이 성공하고 나면 이 세상 모든 음식을 다 할 수 있는 요리사를 고용해서 배터지게 먹겠다는 웃기지도 않는 것이겠는가.
그 생각을 하며 송진호는 형제를 데리고 근처 소고깃집을 향했다. 다른 부위는 주문해야 하지만 갈빗살만큼은 무한 리필이 되는 곳이었다.
“자주 가는 곳인데, 여기서 먹자.”
“네, 감독님.”
“알겠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자리 한편에 앉아서 자신은 소주를, 아이들에게는 음료수를 시키고 고기를 부위별로 몇 가지를 1인분씩 시키고 갈빗살 무한 리필을 주문했다.
“어, 엄청 비싼 거 같은데…….”
형제가 가격표를 바라보며 입을 헤, 하니 벌리자 송진호는 웃었다.
“먹어. 걱정 마라, 자식들아. 이 감독님이 그래도 돈 좀 벌었다 아니냐. 그리고 기념할 만한 일도 있고.”
“기념할 만한 일이요?”
“그래. 너희들은 잘 모르겠다만 이 감독님이 드디어 부천의 정식 감독으로 계약을 했다!”
“와! 진짜요?”
“역시…… 축하드립니다, 감독님.”
사실 송진호의 감독 내정은 확정적이나 다름없었지만, 그걸 실제로 듣게 되니 형제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 형제의 모습에 송진호도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러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마음껏 먹어라. 걱정하지 말고. 오늘은 사제끼리 축하하는 날로 하자.”
“예, 감독님.”
“옙!”
그러길 잠시.
어느새 붉은 빛 육질에 새하얀 마블링을 자랑하는 소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잘 달궈진 불판 위에 고기를 올리자 치이익, 하고 고기가 익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향기가 아이들의 식욕을 자극했다.
어른스럽고 평소 표정을 잘 보이지 않는 윤석의 얼굴에도 식탐이 보인다.
다른 것에는 그렇게 마이 페이스를 유지하는 녀석이 음식 앞에서는 저런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 게 우스워 송진호 감독은 그 웃음을 안주 삼아 소주를 한 잔 들이켰다. 다디달았다.
“캬, 좋다. 먹자.”
“에, 다 안 익었는데요?”
“소고기는 살짝만 익혀서 먹는 거야. 너무 익으면 질겨서 맛없다. 얼른 먹어라. 소금에 살짝 찍어서 맛봐라.”
송진호의 말대로 형제가 너나할 거 없이 소고기를 한 점씩 가져가 소금을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사르르.
소고기가 녹는 기분이다.
형제의 표정이 동시에 멍해진다.
“이게…….”
“와…….”
형제는 신세계를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먹어 본 음식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 같았다.
처음 순댓국을 먹었던 그 컬쳐 쇼크가 지금 또다시 찾아오고 있었다.
“뭐…… 뭐죠, 이건……?”
“뭐긴 뭐야, 고기지. 얼른 먹어라. 고기 다 익는다.”
굳이 송진호가 말을 하지 않아도 형제는 다시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송진호는 문득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봤다. 자신이 감독 대행이 되면서 수석 코치로 데려온 후배, 이범룡이었다.
“어, 그래, 이 코치.”
-감독님, 소식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식? 지금 밥 먹으러 나왔어.”
-드래프트 제도 없어진답니다.
“아아, 말로만 한다, 한다 하더니 확정된 거야? 돈 없는 구단들은 더 죽어나겠구만.”
-그게 마냥 그렇게 되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S급 계약은 세 건으로 제한한다고 그러는 거 같은데요?
“뭐, 나름대로 대책은 세웠으니 내보내겠지. 그래, 그거 때문에 전화한 거야?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닌 거 같구먼. 어차피 드래프트라고 해 봤자 우리 부천 유소년 팀 애들이나 데려올 계획이지 않았나.”
-그것도 그런데…… 감독님께서 좋아할 만한 일이 또 있어서요.
“뭔데?”
송진호는 아무 생각 없이 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던 순간 수석 코치가 하는 말에 고기를 내려놓았다.
-연령 제한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어, 그래……. 뭐?”
송진호의 시선이 절로 정우를 향했다.
“자유 선발 제도에다가…… 연령 제한 규제까지 풀린다고?”
K리그는 최근 드래프트 제도를 운용하기 전에 자유 선발 제도를 시행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몇 년간 자유 선발 제도를 이용해 좋은 선수들을 돈으로 독점하고, 유망주들을 싹쓸이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유스 제도가 없던 시절인지라 고등학교에서는 유망주들을 데리고 갑질을 하는 그런 현상이 지속하면서 연령 제한과 동시에 드래프트 제도로 다시 회귀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 자유 선발 제도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준비한 끝에 다가오는 2016년 시즌 이적 시장부터는 자유 선발 제도를 부활시킬 거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다만 과거처럼 연령을 자유화하는 게 아니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만 18세의 선수만이 K리그를 뛸 수 있도록 하는 연령 제한은 그대로 둘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설명하자면 길 정도로 연령 제한 규제를 풀어야 할 이유는 많았다.
그런데 일이 잘 풀렸나 보다.
연령 제한 규제가 풀린 것이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송진호 감독은 정우를 바라봤다.
“정우야.”
“네, 감독님.”
“K리그서 뛰어 보자.”
“네?”
정우도 K리그에서 뛸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