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2)
형제의 축구-2화(2/251)
형제의 축구 2화
형제
부천에는 신앙촌이 있다.
1950년대 당시 모 종교의 신자들이 모여서 살기 시작하면서 생겨났다고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신자들뿐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도 그곳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부천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로 손꼽히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많은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지금도 새롭게 아파트들이 생기고 역들이 생기는 와중에도 이 동네는 여전히 빗물이 줄줄 새는 판자를 지붕으로 삼은 허름한 집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보일러는커녕 아직도 연탄으로 겨울을 보내는 곳이 있었다.
신앙촌 아래, 아파트 단지에서 사는 아이들에게 이 동네는 모험의 장소였다.
생소하고 신기하기도 했지만, 마치 귀신이 나올 것 같이 음침하기 때문이었다.
“야, 조용히 해 봐.”
늦은 저녁.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할로겐 전등의 누리끼리한 빛 아래에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이제 곧 귀신이 나오는 시간 맞지?”
“그래, 그러니까 조용히 해. 귀신은 사람이 지나가면 도망간다고 했단 말야.”
한 아이가 나직한 목소리로 하는 말에 다른 아이가 콧방귀를 뀌었다.
“지랄, 야, 귀신이 사람보고 도망가면 그게 귀신이냐? 등신이지, 등신.”
“시끄러워, 진짜라고! 우리 형이 봤다고 그랬단 말야!”
“우리 형은 다 거짓말이라고 했는데?”
“너네 형 몇 살이야?”
“우리 형, 중 3이다!”
“그럼 내 말이 맞아! 우리 형은 고 3이거든? 까불고 있어.”
“치…….”
자기들 나이도 아니고 형들의 나이로 으스대면서 아이들이 시간을 확인했다. 침침한 할로겐 등 아래에서 확인되는 시간은 어느덧 밤 9시.
귀신이 나온다는 시간이었다.
“이제 가 보자.”
아이들 중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아이가 그리 말하며 걸음을 옮기자 다른 아이들도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믿지 않는다고 한 아이들도 있으면서 걸음은 쉬이 떨어지지 않고 무겁기 그지없다.
“야, 이 겁쟁이들아! 얼른 안 와?”
아이들이 따라오는 기척이 멀게 느껴지자 대장 아이가 뒤를 돌아보더니 버럭 성질을 냈다.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머리 하나는 더 큰 그 아이가 엄포를 놓자 행여나 얻어맞을까 두려워 아이들이 서둘러 대장 아이의 뒤를 바짝 따라 붙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할로겐 등도 없이 다 허물어져 가는 담벼락에 어설프게 걸린 전구의 불빛이 이따금씩 보이는 골목길에서 대장 아이가 걸음을 멈췄다.
어둠 속에서 덩치가 제법 큰 그 아이도 겁을 집어 먹은 모양이다.
“야, 들려?”
대장 아이의 말에 아이들이 귀를 기울였다.
통. 툭툭.
어디선가 무언가 튕기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내 말 맞지? 여기 콩콩이 귀신이 나온다고.”
“헐…….”
괴담으로만 들어오던 콩콩이 귀신.
사이비 종교를 믿다가 패가망신한 여자가 이곳 신앙촌에서 투신자살을 했는데 거꾸로 떨어져 내리는 바람에 머리가 떨어져 나가 귀신이 되어서 자신의 몸을 찾기 위해 콩콩, 공 마냥 튕기면서 돌아다닌다는 괴담이었다.
근데 그게 실재할 줄이야…….
아이들이 점점 겁먹은 얼굴을 하는 순간.
통, 데구르르르.
어디선가 시커먼 무언가가 튕겨져 나와 아이들의 앞에 떨어져 내렸다.
대장 아이부터 시작해 아이들 모두가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지르며 너나 할 것 없이 서둘러 골목길을 빠져 도망 나갔다.
그렇게 아이들이 사라진 골목길.
어둠 속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데구르르 굴러와 전구 아래에서 멈춰 섰다.
낡고 헤진 축구공이었다.
그 공을 향해 어둠 속에서 한 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저 등신들은.”
꾀죄죄한 몰골에 공만큼이나 헤진 옷을 걸친 아이였다.
제대로 뭘 먹지 못했는지 깡마른 얼굴에 독기만 남은 아이가 도망간 아이들을 떠올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정우야, 얼른 공 가져와!”
소년, 정우는 멀찍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둘러 공을 들었다.
“알았어, 형!”
정우는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조그마한 전구가 밝히는 희미한 불빛을 조명삼아 아이는 발등으로 공을 튕기며 걸었다.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아이는 공을 보지 않고 매우 자연스럽게 공을 트래핑했다.
“여기!”
그렇게 몇 걸음 걸었을까, 멀찍이 잔뜩 녹슨 가로등 아래에서 한 아이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정우보다 머리 하나, 아니, 두 개는 더 커 보이는 아이였다.
“형! 이제 다음부턴 형이 공 주우러 가!”
그 아이는 정우의 형인 윤석이었다.
윤석이는 툴툴거리는 동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리 줘 봐. 이제 좀만 더 하면 저거 부술 수 있을 것 같아.”
“응!”
정우가 윤석에게 공을 찼다.
제법 멀리 떨어진 거리, 정우가 찬 공이 크게 휘면서 윤석의 앞으로 떨어졌다.
“이야, 너 이제 제법 잘 감아 찬다?”
“뭐, 이 정도야 껌이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하는 정우를 뒤로하고 윤석은 앞을 바라봤다.
다 허물어져 가는 담벼락이 보였다.
재작년에 빚에 시달려 도망 왔다가 꿈도 희망도 없어 결국 연탄을 피워 놓고 일가족 모두가 자살한 집의 담벼락이었다.
아주 잠깐 그 일가족이 살았을 뿐이지 원래부터 사람이 살지 않았던 집이라 집 자체도 이곳저곳 콘크리트가 떨어져 철근이 보일 정도로 무너져 내려 가고 있었고, 담벼락 역시 블럭이 거의 깨지고 떨어져 담벼락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조선시대 옛 성터도 이보다는 멀쩡하리라 생각될 정도였다.
그 무너져 가는 담벼락을 바라보며 윤석은 공을 내려놓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깐다!”
“으응.”
정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윤석은 다시 공을 향해 달려갔다.
뻥!
가죽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면서 윤석이 찬 공이 담벼락을 향해 나아갔다.
쿵!
제법 묵직한 소리가 들려오면서 후드득, 블럭 잔해가 떨어져 내렸다.
“에이, 꿈쩍도 안 하네.”
“아, 이번에는 될 줄 알았는데. 돌은 아무리 차도 안 무너지나 봐.”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지. 공이나 가져와, 형! 패스 놀이 하자.”
“그래.”
이번에는 윤석이 공을 가져와 동생과 함께 패스 놀이를 했다.
패스 놀이는 말이 패스 놀이지 공중에 공을 띄워 주고받다가 먼저 공을 땅에 떨어뜨린 사람이 지는 게임이었다.
아이들은 가로등 아래 자신들의 그림자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는 공을 용케도 잘 주고받았다.
가로등이 비추는 순간 공의 모습을 기억하고 떨어질 장소를 감으로 때려잡아 발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주고받으면 지는 건 항상 형인 윤석이였다.
윤석은 덩치도 좋고 힘도 좋아서 슛 같은 것을 잘 찼지만, 발재간은 동생인 정우가 더 좋았던 것이다.
“이번에도 내가 이겼다, 히히. 이제 형은 내 상대가 안 된다고.”
“시끄러.”
히히거리는 동생을 퉁명스럽게 바라보며 정우가 공을 튕겼다.
그사이 어디선가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 할머니다!”
“할머니!”
아이들의 얼굴이 환하게 변하면서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낡은 리어카를 느릿하게 끌고 오는 노파가 골목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것을 본 형제는 너나 할 것 없이 노인에게 달려갔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들!”
아이들의 모습을 본 노파는 환하게 웃으며 리어카를 내려놓고 꾀죄죄한 손을 슥슥 몸빼 바지에 닦고는 아이들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할머니, 오늘은 박스 많이 주웠어?”
“식당일은 안 힘들었어?”
동시에 묻는 아이들의 모습에 할머니는 환하게 웃었다.
“그려, 오늘은 박스도 많이 줍고, 식당일도 안 힘들었지. 내 새끼들은 뭐 하고 놀고 있었누?”
“공놀이!”
“공놀이가 그렇게 좋나?”
“응! 나랑 형은 커서 축구 선수 할 거야! 국가 대표 돼서 할머니 호강시켜 줄 거야!”
정우의 말에 윤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손주들의 모습에 할머니는 씨익 웃었다. 이빨 몇 개가 빠져서 구멍이 숭숭 뚫린 그 모습이 볼품없었지만,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따듯하고 자애로운 미소였다.
“축구는 안 되야, 돈 못 벌어야. 공부 열심히 해서 판사, 검사 되어야지.”
“치이, 공부보다 축구가 더 재밌어!”
정우의 말에 할머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피는 못 속인다더만, 그런가 벼. 그래도 안 된다, 이눔아! 그냥 공 가지고 노는 걸로 만족혀! 니 애비가 어떻게 죽었는지 잊었냐?”
할머니의 말에 정우는 입술을 비죽였다.
형제의 아버지는 축구 선수였다.
그것도 한때는 전도유망했었던.
하지만 교통사고로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게 되고, 코치가 되고자 했지만, 그조차도 여의치 못해 전전긍긍하다 결국 가난의 길로 들어서 객사나 다름없이 운명을 달리했지만 말이다.
“흰소리는 그만하고, 배고프지? 얼른 집에 가자.”
정우가 으응, 하고 대답하려는 순간 윤석이 정우의 발을 꾸욱 밟아 입을 막고서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아니야, 할머니. 우리 배 하나도 안 고팠어. 집에 가서 라면 끓여 줘!”
“그랴, 할미가 라면 끓여 줄게. 밥 말아 묵자.”
“으응!”
형제는 할머니를 대신해 리어카를 끌고 집으로 걸어갔다.
형제의 집은 일가족이 자살한 집의 옆집이었다.
옆집보다는 아니지만,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집이었다.
그나마 이런 집에서도 살아 보려고 어디선가 주워 온 비닐과 푸른 천막 같은 것들로 구멍이 뚫린 곳 이곳저곳을 보수한 집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결로로 구석구석 곰팡이가 져 있었고, 별다른 가구들도 없었다.
요즘 세상에서는 흔하다는 가스레인지도 없이, 요즘에 더 보기 힘들다는 난방과 취사가 가능한 기름때가 잔뜩 진 곤로가 방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한쪽에는 TV가 있긴 했지만, 리모컨 없이 손으로 채널을 돌리고 꺼야 하는 낡은 금성 TV였고, 냉장고는 망해 버린 여관에서 몰래 주워 온 소형 냉장고가 전부였는데, 우습게도 이 집에서 가장 비싼 가전제품이 이 소형 냉장고였다.
“기둘려, 할미가 라면 끓여 줄게, 잉?”
굽은 등으로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한쪽 구석에 놓인 라면 박스에서 남은 라면 두 개를 들고 온 할머니는 손주들을 바라봤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손주들은, 큰놈은 이제 막 중학교를 입학할 나이였고, 작은놈은 그보다 한 살 어린 연년생 형제였다.
이제 막 한창 먹어야 할 나이.
지금도 밥을 한 솥 가득 해 놔도 한 끼에 뚝딱 해 버리는 아이들이었다.
뭐라도 잔뜩 먹이고 싶었지만, 할머니 입장에선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었다.
이 돈을 차곡차곡 모아야, 안심하고 중학교랑 고등학교를 보낼 수 있었다.
그 전에 행여 자신이 죽기라도 하면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돈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악착같이 일하고 모으고 있는 할머니였다.
“좀만 더, 쪼매만…….”
할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그리 혼잣말하며 어느새 푹 익어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라면을 들고서 뒤를 돌아봤다.
라면이 익기만을 기다리며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형제가 눈에 들어왔다.
“옛다, 라면이다!”
“와아!”
좋다고 달려드는 아이들이 후루룩, 라면을 먹는 것을 바라보며 할머니는 흐뭇하게 웃었다.
라면을 한 젓가락 집어서 삼킨 윤석이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할머니는? 할머니는 안 먹어?”
“잉, 할미? 할미는 식당서 밥 먹었어! 배 안 고프니 걱정 말어잉!”
“진짜? 알았어!”
금세 고개를 돌려 동생이 다 먹을까 서둘러 라면을 먹는 아이를 바라보며 할머니는 웃었다.
“그려, 많이 먹어라, 금쪽같은 내 새끼들.”
그렇게 아이들이 라면을 다 먹고 잠들 때.
졸졸 흐르는 수돗물로 할머니는 주린 배를 채울 것이다.
그래도 배가 부를 거다.
나날이 쑥쑥 커 가는 손주들의 잠든 모습만 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