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20)
형제의 축구-20화(20/251)
형제의 축구 20화
프로 선수
해가 지나가고 마침내 K리그의 이적 시장이 활짝 열렸다.
1부와 2부의 모든 구단들은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해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소리 없는 전쟁을 펼치기 시작한 가운데 부천 역시도 팀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분주하게 영입전을 벌였다.
자유 선발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서 선수들의 영입이 자유로워지자 굵직한 영입들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빅샤이닝 없이 조용히 흘러갔다.
K리그의 관심도가 떨어지는 만큼 재정적으로 풍족한 구단이 몇 없었기 때문이었고, 재정적으로 풍족한 구단들은 대부분 이미 스쿼드 자체가 단단해서 몇몇 계약을 제외하고는 무자비하게 선수들을 데려올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 부천은 브라질 용병으로 이벨튼과 바그지뉴를 데려왔고, 미드필더를 강화하기 위해 서울 소속으로 대구에서 임대되어 10어시스트를 기록했던 문기훈과 고양에서 7골 6어시스트를 기록한 진정수를, 수비수로는 한희준과 서명진을 데리고 왔다.
나름대로 알찬 영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부천 U-18의 돌풍의 핵심.
K리그에서도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피지컬의 괴물, 부천 팬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부천의 기둥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윤석이 우선 지명으로 콜 업 되었다.
하지만 정작 부천이 언론이나 축구 팬들 사이에서 영입으로 입소문에 오르게 된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K리그 자유 선발 제도 최초의 미성년 선수 등록.
바로 정우의 콜 업이었다.
다른 구단에서 굳이 만 18세의 어린아이를 데려오지 않는 판국에 부천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만 18세의 어린 정우를 성인 팀에 등록하게 된 것이다.
이 탓에 정우는 다니던 학교에서 자퇴서를 내야 했지만, 한 치의 미련도 없었다.
한편, 정우의 프로 리그 계약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대부분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부천이 얇은 공격진과 이적료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어린 선수를 땜빵용으로 올렸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유소년 리그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였던 정우라고 해도 성인 팀의 경기는 또 다르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것 같은 작은 키를 지닌 정우가 과연 성인들과 경기장 안에서 부대끼면서 버틸 수 있겠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미 피지컬적으로 프로 선수들을 압도하며 부족한 것은 경험뿐이라고 평가되는 윤석과는 완전히 다른 의견이었다.
그 가운데 형제는 구단 사무실을 방문했다.
드디어 정식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날이 찾아온 것이다.
“형, 나 떨려.”
“그러게.”
형제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무실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언제나 찾아오는 익숙한 곳이었지만, 오늘은 그 익숙한 곳이 낯설게 느껴지는 그런 날이었다.
그 가운데 구단 직원이 형제를 보고서는 웃으며 다가왔다.
“한씨 형제가 웬일로 이리 긴장한 거야?”
유소년 팀에서 행정 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이었다. 그의 말에 형제가 어색하게 웃었다.
“이제 함부로 대할 수도 없겠네. 귀하디 귀한 우리 부천의 ‘프로’ 선수들 아닌가. 그지?”
직원의 말에서 프로라는 말이 형제의 가슴에 콕 하고 박혀 들었다.
“프로, 하하, 그렇죠.”
“아무튼, 잘 부탁들 한다. 감독님 곧 오시면 바로 계약할 거 같더라.”
그리 말하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린 직원은 작은 목소리로 형제만 들리게 말했다.
“이건 내가 주워들은 말인데, 감독님이 계약에 신경을 많이 썼나 봐. 기대해도 좋을걸?”
“아…….”
그 말에 가슴이 더욱더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그 가운데 마침내 송진호와 구단의 계약을 전담하는 직원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구단의 다른 직원들도 나타났다. 그들은 카메라를 들고서 선수들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그런 모습에 형제가 당황하는 사이 송진호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많이들 기다렸냐?”
“아, 아니요, 감독님.”
“그래? 자식들, 앉아라. 사인 연습들 좀 했나?”
“헤헤.”
형제가 어색하게 웃는 사이 송진호는 형제에게 각각의 계약서를 전달했다.
계약 내용에는 법과 관련된 사항들과 각종 내용들이 잔뜩 들어가 있었는데 사실 나이 어린 형제의 입장에서는 그런 것들을 읽어도 알아듣기 힘든 것들뿐이었다.
그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숫자들.
계약금과 연봉이었다.
“계약금…….”
대부분의 팀들이 그렇지만 최소한의 금액으로 신인 선수들을 계약하려 들 것이다. 그런 만큼 계약금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예외는 있다.
계약금이 있을 경우에는 무조건 5년을 계약하게 된다.
뛰어난 유망주이고, 구단의 비전이라면 계약금을 통해서 5년이나 묶어 둘 수 있다. 물론 그런 것들이 있다고 해도 이적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이 선수들이 이적하게 되더라도 계약 기간이 길기 때문에 적지 않은 이적료를 챙길 수도 있었다.
형제의 계약금은 2천만 원, 연봉으로는 윤석이 2천8백만 원, 정우가 2천5백만 원이 적혀 있었다.
형제가 놀라서 송진호를 바라봤다.
사실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그런 형제의 모습을 바라보며 송진호가 윙크하며 말했다.
“구단에다가 사정사정 좀 했지. 이놈들은 대단한 놈들이라고 말이야. 나중에 비싸게 팔아먹으려면 이 정도 대우는 해 주고 계약 기간도 5년 딱 고정해 놔야 한다고 말이지. 너희들이 유소년 리그에서 대활약해 준 덕분에 조금 애먹긴 했어도 간신히 승낙받았다. 큰돈은 아니지만, 우리 같은 가난한 구단의 신인 연봉치고는 두둑하게 해 뒀으니 너무 불만 가지지 마라, 알았지?”
불만이 있을 수가 없었다.
계약금은 둘째 치고 연봉은 형제가 생각하기에 사회 초년생치고 꽤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계약금도 형제가 합치기만 해도 얼마 전에 할머니가 구했던 전셋집을 한 채 더 계약할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이었다.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든 돈.
이 돈이면 소고기가 몇 인분이란 말인가.
“너무 놀라워하지 마라. 너희가 잘하면 머지않아서 그 돈도 껌값이 되는 날이 올 테니까.”
송진호는 그리 말하고는 직원 중 하나를 바라봤다.
여직원이 송진호에게 유니폼 상의 두 개를 건넸다.
“자, 너희들 유니폼이다. 팀 홍보 때문에 사진 찍고 해야 해서 가져온 거야. 위에다 껴입어라.”
송진호가 무심히 건넨 유니폼을 바라보고 형제는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벗겨 펼쳐보았다.
한윤석
6
한정우
11
“아…….”
원래 입었어야 할 부천의 유니폼이기 때문에 익숙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등에 마킹된 번호가 달랐다. 6번과 11번.
형제가 처음으로 프로 선수로서 입을 유니폼의 등 번호였다.
“어린애들한테 주전 선수들 등 번호 주는 일이 흔치 않은데. 무슨 의미인지는…… 잘 알지?”
송진호의 말에 윤석이 먼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폐가 터지도록 뛰겠습니다. 경기에 나가게만 해 주십시오, 감독님.”
그래, 기다렸다.
무려 6년이란 기나긴 시간을 말이다.
이 천재들을 자신의 선수로서 부리는 그날을.
K리그에서 함께 활개 칠 그 날을.
“좋아, 걱정마라.”
송진호는 웃으면서 형제에게 손을 내밀었다.
형제가 그런 송진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부천의 신성들이 K리그의 정식 선수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부천의 관계자를 제외하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그런 순간이었다.
하지만 머지않았다.
이 나라가 형제에게 관심을 보일 때가.
* * *
“으, 떨린다.”
정우는 긴장된 얼굴로 ATM 기기 앞에 섰다.
부들부들 떨리는 정우의 손에는 이번에 새로 만든 통장이 쥐어져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얼른 확인해 봐.”
윤석이 그런 정우를 바라보며 보채자, 정우가 휙 하니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역사적인 순간에 방해하지 마, 형!”
“웃기지 마, 형도 궁금하거든?”
윤석이 머리통만 한 주먹을 들이밀자 움찔한 정우는 이내 통장을 ATM기에 넣고 통장 정리를 시작했다.
우웅, 위이잉, 차라라락.
기계음이 들리길 얼마간.
정우는 조심스럽게 혀를 내밀듯 ATM 기기에서 튀어나온 통장을 꺼내 확인해 보았다.
“오오!”
그곳에는 정확하게 형제의 계약금이 들어와 있었다.
“이게 도대체 0이 몇 개야?”
이런 거금은 만져 본 적도, 눈으로 본 적도 없는 정우가 손가락으로 0의 개수를 헤아리며 말하는 사이 윤석도 자신의 통장을 정리해서 말없이 통장을 바라봤다.
“이게 내 돈…….”
남다른 기분으로 돈을 확인한 형제는 소중하게 통장을 챙겨서 은행을 빠져나왔다.
“이제 뭐 하지, 형?”
멍하니 있던 윤석은 정우의 말에 고개를 돌려 정우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백화점.”
“응?”
“백화점을 가자. 할머니 선물 사러.”
처음으로 받은 돈이고, 워낙 큰돈이라 건드는 것도 심장이 떨릴 정도였지만, 윤석은 결심한 듯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백…… 화…… 점!”
정우가 백화점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탄성을 내질렀다.
형제에게는 단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생소한 장소였다.
하지만 백화점이 무얼 하는 곳인지는 알고 있었다.
대충 형제의 생각대로 말하자면, 비싼 것들을 파는 곳!
형제는 그렇게 백화점을 향했다.
으리으리한 백화점 앞에서 감탄하고 안에서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또 한 번 감탄했다.
할머니에게 사 줄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한참을 돌아다니면서도 지루하거나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 형제에게는 백화점 내부 하나하나가 다 신기한 구경거리였던 것이다.
그러다 중장년층이 입을 만한 옷가게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따듯한 외투와 스웨터라도 사 드릴 생각으로 가격을 본 형제는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이게 몇십만 원짜리래…….”
“시장에서 이거랑 비슷한 거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형제는 멍한 얼굴로 가격표를 바라봤다.
저절로 머릿속에 이거면 소고기가 몇 인분인지 계산이 될 지경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윤석은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내가 이 점퍼를 살 테니까, 네가 스웨터를 사.”
“으음…… 그래, 형!”
그렇게 옷을 산 형제는 화장품 가게로 가서 핸드크림과 스킨로션 세트도 샀다. 화장품에 대해서 문외한인 형제에게 있어서 화장품의 가격들도 컬쳐 쇼크였다. 10만 원이 넘어서는 스킨로션이라니!
비싸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아깝지는 않았다.
할머니에게는 억만금을 줘도 아깝지 않다.
“저 아래 마트도 있던데, 마트도 가 볼까, 형?”
“그래.”
형제는 쇼핑백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서 지하 마트로 향했다.
마트는 익숙했다.
가끔 배가 고픈데 맛있는 걸 먹고 싶을 때면 대형 마트를 찾아 시식 코너에서 이것저것 주워 먹던 전력이 있던 형제였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시식 코너에서 음식들을 먹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과일을 몇 개 샀다. 비싸서 먹지 못한다는 망고나 무화과도 샀다.
“할머니도 처음 먹어 볼 거야, 그지, 형?”
망고와 무화과를 바라보며 정우가 말하자, 윤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어떤 맛일까? 망고 스무디는 먹어 봤잖아, 그거랑 비슷하겠지, 역시?”
“글쎄…… 나도 궁금하긴 하다.”
형제는 그리 수다를 떨면서 이가 없는 할머니가 먹을 수 있는 생선까지 몇 마리 사서는 집으로 향했다.
이사한 형제의 집은 주택 2층의 전세였다.
감독의 집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는 곳인데 방 두 칸에다가 거실, 화장실이 있는 멀쩡한 집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마저도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었다. 워낙 낡은 주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제의 지난 형편을 생각하면 이마저도 감지덕지였다.
“할머니,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어, 할무이!”
형제가 나란히 안으로 들어서자 할머니가 굽은 허리를 펴며 형제를 반기다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메, 그게 다 뭐여?”
“우리 계약금 나왔잖아, 그래서 샀어!”
“아이고, 돈 아까운 줄 모르는 놈들! 보니까 백화점이라도 다녀온 모양인디, 돈이 넘쳐나누!”
할머니가 형제를 야단쳤다.
그런 할머니의 호통에 윤석이 머쓱해 머리를 긁적이는 가운데 정우는 살갑게 할머니의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우리도 이제 돈 안 써! 이게 다 할머니 때문에 사 온 거잖아!”
“뭐가 나 때문이여!”
“생각해 봐, 할머니. 우리가 돈을 이렇게 벌어. 근데 할머니가 남루하게 입고 다니고, 잘 못 먹고 다니면 누굴 욕하겠어?”
“…….”
“할머니 손주들이 욕먹겠지? 그지? 그래서 사 온 거 아냐! 욕 안 먹으려고. 그지, 형?”
“어? 어, 으응. 그래요, 할머니. 우리 욕먹게 하려고 그래요?”
윤석까지 가세하자 이내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입만 살아서는. 먹은 게 키로는 안 가고 혀로 갔나 벼!”
“헤헤, 우리 생선도 사 왔어. 갈치 먹어 봤어, 할머니? 나는 먹어 봤지롱! 우리 이거 구워 먹자, 할머니!”
“끄응, 그려! 얼른 밥 할 테니까, 씻고들 있어!”
“네!”
형제가 한번에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본 할머니는 물끄러미 형제가 내려놓은 쇼핑백을 바라봤다.
“이눔 새끼들, 돈을 벌었음 지들 것이나 살 것이지…….”
쇼핑백 안에는 죄다 자신과 관련된 것들밖에 없었다.
옷이며, 과일을 좋아하는 할미를 생각한 과일들까지.
문득 죽은 애비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코가 시큰해져 훌쩍인 할머니는 형제가 사 온 생선을 챙겨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내 새끼들 다 컸네. 언제 이렇게 커서 할미를 호강시키는 겨. 기특한 내 새끼들.”
아마도 할머니는 형제가 사 온 옷을 몇 년 동안은 입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너무나 소중해 행여나 올 하나 나가도 속상해서 잠을 이룰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다 큰 형제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해준다는 것에서 할머니는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