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211)
형제의 축구-211화(211/251)
형제의 축구 211화
레이스
정말 모처럼 챔피언스 리그 결승 티켓을 거머쥔 맨유는 벌써부터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그 와중에 대단한 사건 하나.
그것은 다름 아닌 정우의 챔피언스 리그 17골이었다.
호날두와 메시가 등장하기 전에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득점이었고, 그들의 시대가 저물어 가는 지금에 와서도 네이마르와 수아레즈가 각각 13골과 14골로 근접하기만 할 뿐 감히 다가서지 못하던 이 기록을 정우가 따라잡은 것이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인 만큼 모두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정우가 이 위대한 기록을 갱신하고 단독 타이틀을 거머쥐게 될 것인지도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다시 살아 돌아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여전히 강력해 열두 번째 우승을 노리는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할 것인지.
모두가 궁금해하고 기다리는 상황이었지만, 한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이라면 그보다 더 간절하게 기다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프리미어리그, 아니, 세계 최고, 아니,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손꼽히는 전설의 명장 알렉스 퍼거슨 경이 은퇴한 이후 단 한 번도 우승을 이뤄 내지 못한 맨유가 무리뉴의 체제에서 4시즌 만에 드디어 우승을 코앞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불안한 상황이긴 했다.
2위인 맨체스터 시티와 승점 차이는 고작 2점.
남은 3경기 만에 충분히 뒤집힐 수도 있는 승점이었던 것이다.
맨시티가 두 번의 경기를 모두 이긴다는 가정하에 맨유가 단 한 번의 무승부라도 기록하게 된다면, 양 팀의 득실차가 현 시점에서 고작 3골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간 승점이 같은 상황에서 득실차로 우승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은 맨유의 마지막 상대가 크리스탈 팰리스와 스완시라는 비교적 만만한 상대라면, 맨시티의 상대는 레스터와 아스날이라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무시할 수 없는 상대라는 점이었다.
[자 자, 상대는 크리스탈 팰리스다. 방심이랑 친구를 먹었다가 멍청하게 우승 트로피를 놓치는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란다. 다들 같은 생각이지?]리그 강등권에서 진땀 싸움을 하다가 간신히 탈출해 2경기 모두 패배를 기록해도 강등되지 않는 상황에 놓인 크리스탈 팰리스였다.
우승과는 또 다른 의미로 여유로운 이 팀을 상대로 진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는 일.
무리뉴는 가용할 수 있는 선수들을 모두 선발로 내세워 크리스탈 팰리스를 전력으로 상대했다.
-오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한정우는 1골만 더 기록한다면 놀라운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바로 프리미어리그 최초의 40골 고지를 넘는 거죠.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이네요. 아니, 한정우의 컨디션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프리미어리그의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처음인 한정우입니다. 적지 않은 선수들이 다른 리그에서 이곳으로 넘어오면서 겪는 문제가 바로 체력 관리입니다. 다른 리그에서처럼 시즌을 소화하다 마치 방전된 배터리처럼 후반기에 들어서 제대로 경기를 소화하지 못하고는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39골이나 넣은 한정우가 대단한 겁니다. 오늘 저조한 컨디션은 이해해야죠.
-그럼 한윤석은 뭐라 설명해야 하죠?
-아, 음…….
쾅!
때 마침 윤석이 골대를 향해 공을 때려 넣었다.
선제골을 넣고 포효하는 윤석을 바라보며 해설이 입을 열었다.
-저 선수는 예외로 하죠. 설명이 불가능한 선수입니다.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경기는 윤석의 골이 결승 골이 되어 승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맨시티가 레스터를 상대로 5 대 0 대승을 거두며 승점을 유지했고, 맨유의 득실차를 앞서면서 여전히 우승의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 38라운드에서 만약 무승부, 혹은 지기라도 한다면 우승을 놓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희망 고문 하는 맨시티보다는 낫지.”
그 가운데 긴장감 없이 여유로운 것은 정우뿐이었다.
“네 말이 일리가 있기는 하네.”
옆에서 부지런히 원두를 갈아서 모닝커피를 즐기던 윤석이 피식 웃었다.
“그지? 생각해 봐, 우리는 이기면 무조건 우승인데, 쟤들은 이겨도 우승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지 않잖아? 근데 우리는 벌써부터 지거나 무승부 걱정이나 하고 있으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하나같이 새가슴 같어, 이길 생각이나 해야지.”
“맞아. 그런데 그럴 만하지 않냐? 6년이 넘도록 우승을 못 했으니. 새가슴이 될 수도 있지, 충분히.”
“맨유면 응, 아주 그냥, 응? 시즌 초반 비틀거리더라도, 응? 막 막판에 다 이기고 우승 똭! 응? 막 이래야 하는 거 아니야?”
윤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맨유가 아니야.”
“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고 쓰고 알렉스 퍼거슨이라고 읽던 시절이지.”
“아.”
정우가 수긍하는 것을 보고 빵 터져 웃음을 흘리던 윤석은 때마침 울리는 핸드폰을 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형이 전화를 받는 걸 보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신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정우는.
[네에?]화들짝 놀라는 형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형을 바라봤다.
“야, 나갈 준비해라.”
“왜? 나 감독님이 어디 나가서 싸돌아다니지 말라고 그랬어. 일분일초가 아깝지 않게 쉬라고!”
“그 감독님이 호출한 거야.”
“응? 왜?”
“퍼거슨 경께서 얼굴 좀 보자고 하신다.”
“헐.”
* * *
알렉스 퍼거슨.
어떤 감독은 트레블을 몇 번을 하고, 누구는 무패 우승, 또 누구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몇 번이나 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역대 감독들 중에 최고의 감독을 꼽으라고 하면 대부분 한 사람을 거론할 것이다. 그 사람이 바로 알렉스 퍼거슨.
은퇴한 것도 어느덧 여섯 시즌이 흐르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사람.
“도대체 왜 우릴 부른 걸까?”
맨체스터 시내에 위치한 조그마한 식당에 앉아 정우가 손톱을 잘근 깨물면서 형에게 물었다.
“글쎄…… 마주치는 일이 많아야지.”
자신의 시대가 끝나고 로커 룸이나 훈련장을 찾는 일이 드문, 아니, 아예 없다시피 한 이 사람이 갑작스럽게 자신들을 부른 게 의아한 형제였다.
사실 그들도 무슨 행사를 제외하고는 이적 계약을 하던 때 이후 한 번도 그를 본 적이 없었다.
[아, 벌써 왔는가?]한참을 둘이서 수군거리는 사이에 식당 문을 열고 노인이 들어왔다. 저녁에는 퍼브로 운영되는 작은 식당인지라 순식간에 모두의 시선이 문을 향했다.
[퍼거슨 경, 오랜만이네요!]카운터를 지키는 아주머니가 반가운 목소리로 노인, 퍼거슨에게 말을 걸어왔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집에서 나오기가 힘들어.] [에이, 그리 말씀하시는 양반이 매주 축구 경기는 보러 가시면서 무슨.] [허허,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갈까 말까인데 무슨 말을. 나도 다 되었어. 소파에 앉아서 TV나 보는 게 더 편하니.]식당의 여주인과 대화를 나누며 퍼거슨은 자연스럽게 형제의 앞에 앉았다.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정우도 괜스레 경직돼 몸을 바로 하고 그를 바라보는 사이, 퍼거슨은 붉은 얼굴에 인자한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다들 편하게 하게. 동양인, 특히 한국 사람들은 나이 많은 사람들을 보면 경직되는 거 같아.] [아, 네…….]윤석이 멋쩍게 고개를 끄덕이자 퍼거슨은 문득 옛 생각이 났는지 입을 열었다.
[그래, 치성이도 그랬지. 참으로 묵묵한 친구였어. 나를 보면 항상 깍듯했고. 그보다 나를 깍듯하게 대한 친구는 내 감독 시절에 없었지. 뭐, 실력 하나만큼은 정말 최고였지만.]형제를 보며 과거를 회상하던 퍼거슨은 이내 현실로 돌아와 입을 열었다.
[아, 식사들 안 했지? 뭐 먹겠나? 이 집에서 먹을 거라고 해 봤자 피시 앤 칩스밖에 없지만.]퍼거슨의 말에 여주인이 다 들린다고 소리치자 퍼거슨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카리스마 하나로 선수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구단주까지 휘어잡았던 감독으로서의 모습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래, 질문이 늦었지만, 맨체스터는 마음에 드나?] [아, 뭐…….]윤석이 말을 머뭇거리는 사이 정우가 입을 열었다.
[도시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구단은 더없이 만족스럽습니다.] [허허, 솔직하구먼. 그래, 머나먼 타국의 도시가 익숙하지 않을 법도 하지. 자네 경기는 잘 보고 있네. 내 생애 프리미어리그에서 40골을 목전에 둔 선수를 이렇게 마주하는구먼. 내 손자가 자네 팬일세. 아, 물론 나도 그렇고.]퍼거슨은 흐뭇한 얼굴로 정우를 바라봤다.
정우의 경기를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
퍼거슨은 전율을 느껴야만 했다.
아주 예전 자신에게 이런 재능이 또 있을까 싶었던 선수, 호날두 이상의 충격이었다.
아주 빠르고 영리하며, 다재다능하다.
하지만 그중에서 퍼거슨이 가장 으뜸으로 치는 정우의 능력은 두 가지.
소름 돋는 후각과 센스였다.
이건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 빠른 발과 함께 나서부터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재능이었다.
‘10년만 더 젊었어도.’
정우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선수를 제대로 키워 보고 싶다는…….
정우를 보며 현역의 욕심을 잠시 내 보던 퍼거슨의 시선이 이번에는 윤석을 향했다.
정우가 키워 보고 싶은 재능이라면, 윤석은 존경스러운, 이미 완성된 선수였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부상 병동 속에서 나머지 열 명을 수비수로 채운다고 하더라도 윤석이 있다면 안심이 될 것 같은 그런 선수였다.
[아, 얼른 들지.]어느새 온 피쉬 앤 칩스를 권하며 퍼거슨은 정말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그를 마주한 형제는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헷갈릴 정도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말없이 식사를 하고 난 뒤 퍼거슨은 형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자네들을 부른 이유는 별다른 게 없네. 그냥 이렇게 식사라도 한 끼 하고 싶었어.] [아, 네…….] [다음에는 초밥이나 이런 거 먹으러 가요. 피쉬 앤 칩스는 영…….] [한정우……!]쭈뼛거리면서도 입만 산 정우의 옆구리를 쿡 찌르는 윤석을 바라보며 퍼거슨은 너털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래, 그러지. 나도 즐겨 가는 초밥집이 있어. 거기서 보도록 하지, 다음에는.]그리 말하고도 한참 동안 웃음을 잃지 않던 퍼거슨이 웃음을 멈추며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 요즘만큼 기분 좋은 시기도 없을 걸세. 코앞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네? 뭐가요?] [우승.] [아아…… 그렇게 많이 우승하시고도 기대됩니까?]또다시 당돌한 정우의 말을 듣고서 퍼거슨은 웃었다.
[이번에는 팬으로서 기대하는 게지. 설레지 않는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팀이 우승을 하는 걸세!]형제는 가뜩이나 붉어진 얼굴이 더욱더 붉어지고 있는 퍼거슨을 바라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 형제를 바라보며 퍼거슨은 말했다.
기대한 것보다 시답잖은 그의 말에 정우는 입맛을 다시다가 이내 음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음, 우승하면 초밥. 어때요?] [음, 우승이라…….]벤치에서 얼굴을 붉힌 날이 하루 이틀이던가.
심지어 현역 복귀까지 생각한 게 몇 번이던가.
퍼거슨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면 배가 터지도록 대접하도록 하지!]퍼거슨은 그리 말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날부터 마지막 경기가 있기 전날까지 퍼거슨은 무리뉴와 함께, 혹은 단독으로 맨유 대부분의 선수들을 마주했다.
과연 이게 우승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