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217)
형제의 축구-217화(217/251)
형제의 축구 217화
쉴 수 없어
늦은 시간 잠에서 깨어난 정우는 잔뜩 부은 얼굴로 핸드폰 시간을 확인하고 마른세수를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끄응…… 시즌 끝나고 나흘이나 됐는데도 죽을 것 같네.”
프리미어 리그라는 축구계에서 가장 타이트한 일정을 처음으로 보낸 정우는 쉽사리 피곤이 가시지 않아 죽을 지경이었다. 거의 매일을 죽은 듯이 잠만 잤는데도 말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방을 나서 부엌으로 향하니 식탁에 앉아 점심을 먹는 형이 보인다.
“우리 형이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아닌 거 같아.”
마치 기계로 만들어진 사람인 것처럼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는 형은 시즌이 끝나 훈련을 안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하루 일과가 시즌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다. 다른 거라고는 훈련을 가던 시간을 세아에게 더 투자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다 들린다, 자식아.”
남은 밥을 입으로 털어 넣고 일어난 윤석의 말에 정우는 피식 웃으며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 마셨다.
“그나저나 언제 간다고 했지?”
정우의 말에 윤석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야, 남 일처럼 말하지 마라, 좀. 네 일이기도 하거든?”
“몰라, 귀찮아. 아, 힘들어. 한국 언제 가?”
이제는 머나먼 곳이 되어 버린 한국에 갈 생각에 정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뜩이나 피곤한데 몸이 더 축날 생각에 짜증이 난다.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냐. 국위선양.”
“국위선양은 개뿔.”
“그래, 국위선양보다 더 중요한 거지. 금메달, 그지?”
윤석이 웃으면서 말하자 정우는 얼굴을 구겼다.
형제가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
바로 다가오는 2020년 도쿄 올림픽 축구 대표 팀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덕에 윤석은 이미 4주 군사훈련을 끝으로 군 문제를 해결한 뒤였지만, 정우는 그렇지 못했다.
정우에게 있어서 이번 올림픽은 군대 문제를 4주 훈련으로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그런 정우를 위해서 윤석도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될 올림픽에 나서게 되었다.
“아무튼…… 내일 비행을 위해서라도 좀 더 쉬어야겠어.”
“그래, 좀 더 자 둬라. 빈약한 체력, 조금이라도 보충해야 금메달 따지.”
“동메달 정도로 만족하면 안 되려나?”
“사실 메달이 쉬운 건 아니지.”
“으으…….”
정우는 여유로운 윤석을 보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이미 모든 것을 해결한 남자의 여유로움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뒤 올림픽을 위해 얼마 쉬지도 못하고 한국으로 향하게 되었지만, 이번 비행길에는 형제뿐만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
할머니는 행여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주희의 할머니와의 만남을 위해서, 이보네와 세아는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라가 되었지만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기에 이번 기회에 할머니와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다섯 식구가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이미 공항은 마비가 되어 있었다.
인산인해를 이룬 형제의 팬들이 형제 가족이 모습을 드러내자 마치 아이돌을 만난 소녀 팬들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형제를 반겼다.
“와, 이렇게 많이 찾아오는 건 또 처음 보네.”
정우는 벙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매번 한국을 찾아올 때마다 팬들과 기자들이 대기를 하고는 했지만,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팬들이 찾아온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발롱도르를 수상과 발롱도르 2위,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에서 역대급 활약을 펼치며 세계적인 선수가 된 형제의 위상은 저번 시즌보다 훨씬 더 높았다.
오죽하면 이번 올림픽과 관련해서 인터넷을 포함한 각종 매체에서 형제를 칭할 때 한국 축협도 고개 숙여 모셔 가야 하는 국가 대표 선수라고 할 정도였다.
“세아야, 괜찮아?”
형제나 이보네, 할머니는 상관없지만, 이런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고 세아가 놀라지 않았나 싶어 윤석이 세아를 살폈다.
세아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기가 죽거나 놀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보네의 말에 윤석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긴 올드 트래포트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지.”
물론 그게 세아를 향하지 않지만, 수많은 인파는 익숙하다 이거다.
“그건 그거고 빠져나가는 건 쉽지 않겠는데……”
정우가 난색을 표하는 사이, 기다렸다는 듯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에서는 오랜만이지, 친구들?”
“티스 씨!”
형제의 에이전트, 티스 블리히마이스터가 형제를 맞이했다.
“아니, 그 풍성했던 수염은 다 어디로?”
마치 산타크로스처럼 덥수룩하던 수염이 상징이다시피 하던 티스의 얼굴은 수염 하나 없이 말끔했다.
인상이 확 달라져서 하마터면 몰라볼 정도로 사람의 인상이 확 바뀌어 나타나자 정우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내 자부심을 포기했지. 결혼을 위해서!”
“오오, 자부심을 포기할 정도로 중요한 거군요, 결혼이?”
정우가 장난스럽게 물어보자, 티스는 히죽 웃었다.
바쁜 와중에도 자신의 짝을 만나 결혼을 앞둔 티스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정우가 생각하던 사이.
“이럴 게 아니지. 오늘 일정에는 가족 때문에 기자회견 같은 건 따로 없어. 공항의 도움으로 다른 곳을 통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니, 서두르자고.”
티스는 그리 말하며 형제와 가족들을 안내했다.
그렇게 티스의 안내로 공항을 빠져나온 형제는 가족과 함께 티스가 가져온 벤을 타고 이동하게 되었다.
“일전에 부탁한 한국의 집으로 갈까?”
티스의 물음에 윤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할머니가 처음 듣는 얘기인 듯 윤석에게 물었다.
“한국의 집이라니? 내가 모르는 집두 있댜?”
할머니의 말에 윤석이 웃으며 말했다.
“한국에 와서 매일 호텔 이용하는 것도 불편하고 해서 작은 아파트 하나 샀어요.”
“아이고, 거 얼마나 산다고 비싸게 안 쓰는 집을 사고 그려? 응?”
할머니가 질색을 하며 윤석을 나무라자 티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할머니, 그래 봤자 형제 주급을 합친 돈밖에 되지 않아요, 그 아파트.”
“그래두 그렇지! 그게 한두 푼이여!”
할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며 형제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못 들은 척 창문을 바라봤다.
그런 형제를 바라보며 혀를 차는 할머니, 눈치 보는 이보네, 처음 보는 한국이 신기해 아빠의 무릎 위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세아를 바라보며 티스는 속으로 연신 웃었다.
형제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이제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 축구 선수들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아니,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자랑하고 있었다.
형제와 주급과 기타 수익과 관련해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선수는 포그바, 네이마르, 디발라 정도밖에 없었다.
포그바나 네이마르, 디발라는 물론이고 형제보다 수익이 적은 축구 선수들도 자신들의 부를 자랑하며, 수많은 왁스를 끌고 다니고, 스포츠카와 같은 고가의 물건들을 사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형제는 무척, 아니, 한국말로 구두쇠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씀씀이가 적었다.
형제가 타고 다니는 차 역시도 그들의 주급을 생각한다면 무척이나 검소한 편이었고, 사는 집, 옷, 악세서리 하나까지 모든 것들이 평범한 서민이나 다를 바 없이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든 원인은 다름 아닌 할머니와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기인하고 있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사는 그들의 모습은 티스를 기껍게 만들었다.
돈이라는 것에 맛 들리는 순간 선수로서 인생이 끝난 선수들을 수도 없이 봐 왔기 때문이다.
“아무튼, 거기로 갑니다.”
티스는 자신의 인생을 바꿔 준 두 선수와 가족들을 향해 그리 말하고 서둘러 이동했다.
가는 길.
할머니는 점점 보이는 낯익은 길에 눈을 게슴츠레 뜨고 창밖을 바라봤다.
“여기 옛날 우리 동네 아니여?”
할머니의 물음에 정우가 신나서 이야기했다.
“맞아, 할무이! 알아보겠어?”
“이 할미, 아직 노망 안 났다. 내 수십 년 살았던 동네도 못 알아볼까.”
할머니는 그리 말하며 동네 골목골목을 바라봤다.
저기 저 골목, 저쪽으로 들어가면 파출소가 있었는데 거기 있는 김 순경이 그리도 착해서 리어카를 끌고 지나가면 오르막길이 지나도록 밀어 주고는 했다.
그리고 저 다음 골목 마트에서는 할머니만을 위해 박스를 챙겨 줬었고, 그 마트를 지나면 보이는 고물상 여주인은 맘씨도 고와 없는 살림에도 돈을 더 주고는 했다.
“그려…… 여가 아니었음 니들도 없었지.”
맘씨 좋은 사람들이 있던 동네.
다들 부자도 아니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힘든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마음은 고왔던 사람들이 살았기에 형제가 치이지 않고 올곧게 클 수 있었다.
“다들 잘 있는가 모르겄네.”
할머니는 그리 말하는 사이, 벤이 멈춰서 한 아파트 단지 안에 멈췄다.
“여기입니다, 할머니.”
“여기 우리 집 앞에 있던 그 아파트 아니여?”
이제는 없어진 신앙촌, 그리고 형제가 전세로 살았던 동네 앞쪽에 위치한 오래된 아파트였다.
그리고 형제에겐 추억으로 남은 아파트.
“집에서 이 아파트가 보였는데, 기억나, 할머니?”
정우가 굳이 묻지 않아도 할머니도 기억하고 있었다.
“어려서 우리도 거지같은 집에서 살지 말고 여기로 이사 와서 살자고 했잖아, 내가.”
정우의 말에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를 생각하니 또다시 코끝이 시큰하다.
어려서 세상 물정도 모르는 정우가 친구가 살던 아파트를 구경하고는 속도 없이 할머니에게 이사 가자고 조르던 적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울고 떼쓰는 건 아니었지만, 그 말 한마디가 할머니 가슴에 대못이 되어 박혔던 적이 있었다.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던 그 당시가 얼마나 속상하던지……
“생각 해보면 나도 참 못돼 먹었지. 그래서 내가 샀어. 내가 가고 싶어 했으니, 내가 사야지.”
정우는 그리 말하며 씨익 웃었다.
“그랴, 잘혔다. 잘혔어!”
할머니의 뒤늦은 칭찬에 정우는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
방 세 칸밖에 안 되는, 이제 사는 집을 생각하면 작디작은 집이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원래 어릴 적 가지고 싶던 것들이 더 간절한 법이니 말이다.
“오늘은 시차 적응하기도 바쁘실 테니, 일단은 집에서 쉬고 계세요, 할머니. 형제는 내일 파주로 가고, 가족분들한테 매니저를 보낼게요.”
“아이고, 안 그려도 되는디.”
“아이, 그래도 세아한테 한국 구경 좀 시켜 줘야죠. 운전할 사람들도 없는데.”
“우리 생각하는 건 티스 씨밖에 없구먼.”
할머니의 말을 듣고 티스는 웃으며 말했다.
“저도 형제 없음 안 되니까 잘 보이려 이러는 겁니다, 하하하.”
함께 웃고서 티스는 가족들과 시간을 배려해 자리를 벗어났고, 가족들은 시차 앞에 장사 없듯,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음 날.
형제는 올림픽 축구 대표 팀 합류를 위해서 파주 트레이닝 센터로 향했다.
이성우, 백성호, 장결휘, 그리고 이강일과 같은 한국의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역대급 황금 세대가 올림픽 대표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