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222)
형제의 축구-222화(222/251)
형제의 축구 222화
밀착 다큐
“이거 먹어 봐, 맛있다.”
“……응.”
“와, 내가 지금까지 먹어 본 초밥 중에서 제일 맛있는 것 같아, 참치도 맛있는데 연어도…… 왜 안 먹고 사람을 그렇게 뚫어지게 봐?”
주희는 맞은편에 앉아 초밥은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턱을 괴고 자신을 바라보는 정우를 마주봤다. 정우는 그 자세 그대로 말했다.
“예뻐서.”
“참 나,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먹기나 하셔!”
주희의 말에 정우는 자세를 풀고 그제야 젓가락을 들면서 말했다.
“지금이라도 많이 봐 둬야지. 시즌이 시작되거나 자기 학교 시작되면 우리 또 한동안 못 보잖아.”
“……우울한 소리는 나중에 하는 거야.”
주희의 말에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지? 그래도 벌써부터 아쉬운 걸 어떻게 해. 이참에 우리 결혼할까?”
“그럼 내 공부는?”
“영국에서 하면 되는 거 아냐?”
“기껏 독일어 배워 가고 있는데 다시 리셋해서 영어 배우라고?”
“학교에서 공부 안 했어? 영어 정도는 금방 배워야지!”
정우의 말에 주희는 울컥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저 바보도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판에 자신이라고 못할 것 있겠냐는 자존심이었다.
그렇다고…
“결혼은 아직 일러.”
“아, 왜!”
정우가 앙탈을 부리자 주희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정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가 몇 살이지?”
“나는 스물세 살. 자기는 이제 스물다섯 살이지. 우리 형보다 한 살 많으니.”
“그지? 우리 아직 파릇파릇한 20대야, 그것도 후반도 아닌 초중반! 근데 벌써 결혼해서 얽매여 살라고?”
“얽매여 살다니! 매일 같이 보고 좋은 거지!”
“그래도 항상 함께해야 하는 거잖아, 부부라는 건. 나는 좀 더 나 혼자서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난 필요 없는데…….”
“물론 필요 없으시겠죠! 그리고…….”
“그리고?”
“아니야, 초밥이나 먹어, 얼른!”
“쳇…….”
정우는 입술을 비죽이면서 입안으로 초밥을 밀어 넣었다.
‘나도 자리 잡고 당당하게 내 일하면서 결혼하고 싶다고…….’
정우가 웃을까 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을 할까 봐 자존심상 입으로 열지 않았지만, 주희는 결혼하고서도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
돈을 보고 결혼해 평생 흥청망청 사는 골 빈 WAGS는 되고 싶지 않았다.
“오늘까지만 쉬고 내일부터는 일한다고 하지 않았어?”
초밥을 먹다 문득 드는 생각에 주희가 물어보자 정우의 인상이 대번 구겨졌다.
“내일부터 지옥이 시작되지.”
“왜 지옥이야, 너 좋아하는 돈 실컷 버는 일 아니야? 가만히 세트장에서 촬영하고 사진 찍고 하는 건데?”
“으으, 말도 마. 좀 쑤셔서 죽을 거 같아, 그거 하면. 게다가 화장도 시킨다고. 손톱으로 긁으면 자국 남을 정도로 두껍게. 질색이야, 남자가 웬 화장이야?”
정우의 말에 주희는 웃음을 터뜨렸다.
“돈 버는 일이 어디 쉽나? 그래도 TV에서 보면 잘하는 거 같던데.”
TV를 틀면 종종 정우나 윤석의 얼굴을 광고로 볼 수 있었다. 한껏 멋을 내고 진지한 얼굴로…….
“써 보세요? 푸훗!”
“이 씨…… 하지 마라.”
맨유의 앰배서더, 어떤 선배의 대를 이어 면도기 광고를 하고 있는 정우는 오글거리는 멘트를 생각하며 더욱더 얼굴을 구겼다.
“아…… 진짜 싫다. 이번에는 TV도 출연해야 하는디.”
“TV? 광고가 아니라? 뭐, 예능?”
“아니, 다큐…… 다큐 예능인가? 아무튼, 몰라. 연예인이 와서 우리 밀착 취재하는 거래.”
“우와, 대박인데? 예능 같은 거 출연하기 싫다던 양반이 왜? 윤석이도 같이?”
“으응. 이번에 거절하려고 했는데 티스 씨가 마케팅 차원에서 하자고 해서 했지. 사실 궁금하기도 해서 하자고 하긴 했는데, 막상 하려니 귀찮네?”
“왜,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해 봐. 기대된다.”
“흥.”
정우는 콧방귀를 뀌며 초밥을 입으로 밀어 넣었다.
“맛있네, 여기.”
* * *
“준형 씨, 준비됐어요?”
“아, 네…… 하하.”
촬영 장비들이 세팅되고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배우 류준형이 머리를 긁적이며 PD에게 머리를 꾸벅였다.
“이제 이 위치에서 준형 씨가 준비된 멘트를 하시고 저기 안으로 들어가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 안에서 촬영하고 있는 형제를 보고 다시 멘트 한 번! 그리고 촬영이 끝나는 타이밍에 가서…… 아셨죠?”
“네, 알고 있습니다.”
류준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른 손을 마주 비비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하하, 준형 씨, 너무 긴장하신 거 아녜요?”
“아무래도…….”
준형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촬영 세트장 입구를 바라봤다.
설렘 가득한 그 표정을 바라보며 PD는 고개를 저었다.
류준형이 누구인가, 개성 있는, 아니, 못생긴 외모임에도 응신 시리즈 주연으로 출연해 일약 스타가 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한편으론 ‘성공한 축덕’이라 불리는 배우였다.
이미 축구 선수들과 많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시작합니다, 컷!”
카메라가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며, 스태프들이 류준형을 빙 둘러싼 채로 PD가 물었다.
-류준형 씨,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아, 네…… 떨립니다. 여기에 있는 거 맞죠?”
-네, 그렇죠, 그렇게 떨리세요?
“다들 아시다시피 제가 열렬한 축구 팬이잖아요. 아무래도 떨릴 수밖에 없죠. 지금은 여기는 촬영 세트장이잖아요. 이곳에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 두 사람이 있습니다. 성공한 축덕으로서 긴장되지 않을 수 없죠. 음, 이제 들어가 봐도 될까요?”
-지금쯤이면 촬영이 끝날 거 같네요. 한 번 들어가 보세요.
류준형은 PD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선 세트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컷! 좋아요, 그 모습 그대로 한 번만 더 찍고 갈게요! 그렇지! 좋아!”
혼자 신나서 셔터를 눌러 대는 사진작가의 앞에서 정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조금만 더 있으면 경련이 일어날 것 같은 얼굴 근육을 최대한 활짝 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쪽에는 이미 촬영을 끝낸 윤석이 폼 클렌저를 찾아 두꺼운 화장을 지우고 있었다.
“좋아, 수고했어요! 이야, 역시 한정우 선수 외모가 좋으니 사진발이 그냥 살아나네!”
“하…… 하…… 감사합니다.”
정우는 촬영이 끝났다는 말에 두 손으로 얼얼한 광대와 뺨을 비비며 형에게 냉큼 달려갔다.
“나도 줘.”
“어어.”
서둘러 세수를 하는 사이, 화장을 모두 지운 윤석이 개운하다는 표정으로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이제 광고 촬영은 모두 끝났네. 고생했다.”
“푸, 푸, 후…… 아, 진짜 이건 사람이 못 할 짓이야. 좀 쑤셔 죽을 것 같아.”
“근데…… 이제 시작인 거 같다.”
“응? 뭐가? 뭐? 광고가 아직도 남았어? 이런 씨…….”
“말 가려서 해라, 이번에는 TV다.”
“아…… 아?”
윤석의 시선을 쫓은 정우의 인상이 대번 새하얗게 질렸다.
“뭐여, TV여? 뭐 이리 빨리 와, 얘기도 없이?”
“리얼리티를 위해 이런 식으로 할지도 모른다고 티스 씨가 얘기하긴 했지만, 정말 리얼리티로 갈 줄은 몰랐네.”
“PD가 열혈인가? 우리 이미지 관리는?”
“글세…….”
정우가 불퉁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선수한테는 이미지 관리 같은 건 없다 이건가, 응?”
광고가 막 끝나고 더할 나위 없이 예민해진 정우가 잔뜩 독이 오른 가운데, 그런 줄도 모르고 TV에서 자주 본 것 같은 남자 하나가 웃는 낯으로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정우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못 본 척하는 사이 윤석이 정우의 옆구리를 쿡 하고 찌르면서 억지로 함께 인사를 건넨다.
“밀착 다큐, 사람을 말한다에서 왔습니다. 이번 밀착 MC 류준형입니다. 저…… 아세요?”
“아, 그럼요. 그…… 응시 시리즈에 나오셨잖아요.”
윤석의 말에 류준형의 얼굴이 대번 밝아진다.
“와, 그거 벌써 5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기억하시네요?”
“그럼요, 그때 고등학생이었는데요. 제가 마지막으로 본 드라마가 그걸 걸요.”
윤석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하자 류준형은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카메라 앞에서는 바보가 되어 버리곤 하는 윤석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카메라가 익숙해졌다. 아니,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빈번히 카메라 앞에서 서게 되다 보니 익숙해졌다.
무엇보다 기자와 대담이 아니라 이렇게 사람과 1대1로 마주하는 건 쉬웠다. 개성이 강한 선수들과 얼굴을 마주하다 보니 사람을 다룰 줄 알게 되었다.
편안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할 수 없는 분위기.
준형은 윤석이 자신보다 한참 어려서 십이지를 한 바퀴 넘게 도는 나이 차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왠지 형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 어디 가세요?”
준형의 물음에 윤석은 흘끔 정우를 바라보고 말했다.
“음…… 밥 먹으러 가아죠. 뭐 먹고 싶냐, 정우야?”
윤석의 말에 혼자 툴툴 거리던 정우는 흘끔 형을 보고서 말했다.
“순댓국?”
“순댓국, 좋지. 같이 가실 거죠?”
“그럼요.”
형제와 류준형의 첫 번째 신이 끝났다.
다른 스태프들을 제외하고 류준형과 VJ만이 형제를 따라 본격적으로 밀착 다큐가 시작되었다. 몇몇 순간과 1대1 대화를 제외하고 대부분 VJ만 따라다니게 되었다.
촬영장을 벗어나 평범한 순댓국 집 안으로 들어가 식탁에 앉고 나서야 정우의 얼굴이 펴졌다.
“와, 그 많던 사람들 쓸데없이 왜 온 거래요? 진작에 이랬으면 얼마나 편해.”
정우는 식탁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수저를 돌리다가 카메라를 든 VJ를 보고는 물었다.
“형, 형은 밥 안 먹어요? 계속 그렇게 촬영하시는 거예요?”
자신의 목소리가 섞이면 안 되는 VJ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 그렇구나…… 힘드시겠어요.”
정우가 걱정스럽게 말하자 준형이 웃으며 물었다.
“아까랑 태도가 다른데요? 엄청 예민해 보이던데.”
“아까는 너무 예민해서요. 간신히 쉬겠다 싶었는데 쉬지를 못해서요.”
“그죠, 처음 프리미어 리그 끝내고, 올림픽 끝낸 것도 모자라 스케줄이 빼곡하니…… 프리미어 리그가 좀 빡센가?”
류준형의 말에 정우가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프리미어 리그…… 좀 잘 아세요?”
“저 몰라요? 성공한 축덕.”
“축덕……? 그…… 축구 덕후 그런 말이에요?”
“형민이하고도 잘 알아요. 축구도 엄청 좋아하고. 마라도나랑 뛰어 봤어요.”
“아, 진짜요? 신기하네, 축구 좋아하는 연예인은 처음 봐요. 아, 아니, 사실 연예인을 처음 보지. 그지, 형?”
“그지, 이런 사석……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사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은 단 한 번도 없지.”
“신기하네, 형민이도 연예인 친구도 많고 그런데.”
정우는 준형의 말에 히죽 웃으며 말했다.
“저나 형이나 친구라고는 축구하던 때 학창 시절 친구랑 축구 같이 한 형들밖에 없어요, 축구에 미쳐서 살다 보니. 그지, 형?”
“응, 세아도 생기고 뭐 사적으로 사람 새로 사귈 일이 있나.”
축구를 일이라고 한다면 정말 죽어라 일만 하고 살아왔다.
“진짜? 대단하네요, 저도 그렇게는 못 살 것 같은데.”
준형이 대단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자 윤석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이도 저희보다 더 많으신데, 말씀 편하게 하세요. 불편해요.”
“아…… 그, 그럴까? 근데 쉽지 않에.”
정우가 피식 웃었다.
“우리 형이 쉬운 사람은 아니죠. 하하하, 아무튼, 편하게 하세요. 저도 형이라 불러도 되죠? 음…… 그러기엔 나이 차가 많이 나나?”
“아냐, 괜찮아. 우리들은 아버지뻘도 형이라 부르는 곳인데, 뭐.”
“그러게, 진짜 TV 보면 신기하던데요. 나이가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도 형, 동생하고. 족보를 얼마나 꼬아야 하는 거예요?”
“하하, 글쎄…….”
준형이 머리를 긁적이며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는 사이 뽀얀 국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댓국이 나왔다.
정우는 기다렸다는 듯 들깨 가루를 잔뜩 집어넣고 청양 고추 썰어 놓은 것과 다진 양념, 새우젓을 넣고 밥을 말아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순댓국 좋아하나 봐?”
순댓국 한술을 뜨려다가 미친듯이 먹기 시작하는 정우를 보고서 준형이 물었다.
“네, 젤 좋아하는 것 중 하나에요. 아니, 제일 좋아하나?”
“전 이게 제일 좋더라구요. 영국에서 못 먹어서 아쉬워서 한국 오면 하루 한 끼는 이거 먹는 거 같은데요.”
“진짜? 신기하네, 돈은 그렇게 버는데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순댓국이야?”
“이 순댓국 없었음 어쩌면 축구 선수를 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응?”
윤석은 지난 과거, 송진호 감독과 순댓국을 먹으면서 축구 선수가 되기로 다짐했던 이야기를 했다.
“와…… 순댓국을 그 나이에 처음 먹어 봤다고?”
“네, 순댓국 먹는 돈도 아까웠을 때거든요, 그때는. 저녁에는 라면, 가끔 할머니가 닭이 엄청 싸게 나오면 그거 삶아 주는 게 제일 맛있는 음식이었어요.”
“아니야, 시장에서 목살이나 뒷다리 살 같은 거 구워 먹을 때지. 마트 같은데 세일하면 세 근, 네 근을 사도 만 원을 안 넘을 때가 있었거든요. 삼겹살도 냉동 삼겹살은 세 근에 만 원 하고. 할머니가 가게에서 박스 많이 받는 날은 그거 먹을 수 있었어요.”
“…….”
준형은 신기한 얼굴로 형제를 바라봤다.
분명 나이는 자신이 훨씬 많았다. 그런 자신도 겪어 보지 못한 가난을 겪어 봤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게 지금 이렇게 성공한 비결이죠.”
윤석은 이미 지난 일이라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하지만 오늘 형제만이 가지고 있던 과거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해 들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형제가 존경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