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223)
형제의 축구-223화(223/251)
형제의 축구 223화
준형은 멍하니 형제를 바라보다가 VJ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러고 우리 며칠이나 있었죠?”
“글쎄…… 한 사흘 됐나요?”
VJ의 말에 준형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형제를 바라봤다.
촬영을 시작한 지 어느덧 사흘. 밀착 다큐는 약 보름 동안 진행되는데 그중에서 벌써 사흘이 소비되었다.
그동안 형제가 한 일은?
“어떻게…… 저렇게 재미없게 살 수가……!”
한국에 와서 형제가 한 일이라고는 죽어라 잠을 자다 일어나서 밥을 먹고 또 자고, 그게 아니면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는 것뿐이었다.
형제의 가족들과 알게 되고 형제와 제법 친해지는 시간이 있기는 했지만, 그때 술을 한 번 먹은 것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이래 가지고 3부작이나 되는 밀착 다큐를 제대로 편집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아, 아니지…….
“원래 이거 며칠이나 찍어요?”
“한 1주일? 그 정도 돼요.”
VJ의 말에 과연……이라며 준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부터 길게 잡은 거였다. 설마 보름이란 기간 동안 3부작에 담을 내용 하나 나오지 않겠냐는 심정으로.
사실 그런 의도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준형은 그렇게 믿기로 했다.
“으아함…… 형, 오셨어요.”
그 가운데 잠에서 깨어난 정우가 꾸벅 인사한다.
“어, 어어, 오늘은 뭐 안 해? 또 잠?”
“아뇨, 오늘은 VJ 형도 오랜만에 촬영 좀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정우가 씨익 웃으며 말하자 준형과 VJ의 얼굴이 반색이 되었다.
“정말? 어디 가는데?”
“부천이요. 부천 유나이티드!”
“아, 옛 동료들 만나러?”
“아뇨, 유소년들 보러 가요. 대부님이 후배들이나 보고 가라고 하셔서요. 씻고 올게요.”
정우가 샤워하러 들어가는 사이 먼저 들어갔던 윤석이 나오며 준형에게 인사했다.
“아침 드셨어요?”
“이제 점심시간인데?”
“아, 그렇지. 요즘 피곤해서 잠만 자서……”
“가족들은?”
“아아, 우리 오늘 다른 곳에 가는 거 알고 따로 놀러 갔어요. 용인에 있는 놀이공원.”
“아아…….”
준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입을 닫았다.
시간이 지나 말을 편하게 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윤석이 어려웠던 것이다.
윤석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 물을 들이켜고 핸드폰을 바라보며 정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뒤 정우가 씻고 나와 옷을 갈아입고서야 일행은 호텔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아…… 가기 전에 밥 먹고 가자, 형.”
“그래,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뭐 먹을까?”
“음…… 소고기?”
“좋네.”
형제의 말을 들은 준형은 사색이 되었다.
“이번에는 얼마나 먹으려고…….”
“아무리 애들 축구 봐주러 간다고 해도 좀 뛰어야 하니까 너무 많이 먹진 않을 걸요?”
정우의 말에 준형은 조금이나마 안도하게 되었다.
형제의 식사량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윤석은 덩치값을 한다고 쳐도, 정우도 만만치 않은 게, 앉은 자리에서 순댓국 세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는 그것도 모자라 지나가면서 분식이니 과자니 엄청나게 먹는 식성을 자랑했다.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 형제 둘이서 20인분은 거덜 내기도 했다.
형제의 말로는 이 정도는 먹어야 살이 빠지지 않는다고 하니 신진대사량이 어마어마하다는 소리였다.
다만 걱정되는 건…….
“그렇게 먹는 건 좋은데 나중에 은퇴하면 살 엄청 찌는 거 아니냐?’
“글쎄요? 내일 걱정은 내일모레?”
……하고 웃으며 대답할 뿐.
이날도 부천 유나이티드에 들르기 전에 형제는 가볍게 먹는다고 말한 주제에 둘이서 고기 8인분을 먹어 치우고 사이좋게 냉면도 한 그릇씩 먹고 나서야 이동할 수 있었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럽고 지루한 식사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부천 유나이티드는 매년 방문하나 봐?”
“아무래도 대부님이 계시잖아요.”
“송진호 감독님?”
“네. 송진호 감독님이 없었으면 우리는 축구 못 했어요. 우리에겐 진짜 아버지나 다름없는 분이세요.”
“그렇구나…….”
윤석이 대답을 하는 사이에 정우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부천은 우리 첫 팀이기도 하고. 우리 키운 곳이 대부님이랑 부천 아니겠슴까? 나중에 은퇴도 부천에서 하고 싶어요, 저희는.”
“아, 진짜? 해외에서가 아니라?”
“약속했어요. 나중에 K리그에서 트레블 하자고.”
오래된 약속 같은데 생각해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은퇴할 나이까지 생각하면 까마득한 나중 일이긴 하네요.”
“은퇴라……. 아직 은퇴 걱정하기엔 이른 거 아니냐?”
준형의 말에 정우나 윤석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흔히 말하는 전성기 나이대도 아니었고, 선수들의 육체적인 능력이나 과학의 발전으로 선수들의 은퇴 시기도 점점 늦어지는 지금, 정우와 윤석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10년 이상은 더 현역으로 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멀긴 했죠.”
“대충 은퇴는 언제쯤 생각하는데?”
“음, 제 발이 남들보다 훨씬 느려졌을 때? 형은?”
“음, 글쎄…… 지도자가 되고 싶어질 때일까?”
“그지, 형은 쉰 살이 되도 육체 능력은 남들보다 앞설지 몰라.”
“시끄러워, 내가 무슨 사이보그냐?”
“신빙성이 있어…….”
“형까지 이러기에요?”
윤석이 인상을 구기자 준형과 정우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사이에 차는 어느새 부천 유나이티드의 연습장, 정확히는 유소년 아이들이 훈련하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이는 낯익은 얼굴.
“저 감독님은 하나도 안 늙는 것 같아.”
“그러게, 어린애들이랑만 살아서 그런가.”
형제는 정말 반가운 사람을 바라보며 수군거리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감독님!”
“어라, 너네들?”
그는 다름 아닌 김태웅.
송진호가 성인 팀으로 올라가면서 부천 유스 팀의 감독이 된 사람이었다.
그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도 성인 팀 감독 제의를 뿌리치고 지금까지 부천 유나이티드 유소년 팀의 감독을 맡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와 달리, 유소년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총괄하는 유스 팀 총괄 감독이 되었다.
“이야, 이게 누구야. 송 감독님만 만나고 나는 쌩 까는 불효막심한 제자들 아니야?”
“언제 우리가 쌩을 깠어요. 올 때마다 감독님이 자리에 없었지.”
정우가 툴툴거리면서 말하자 김태웅이 씨익 웃었다.
“그래, 그랬나? 내가 좀 바빠야지. 제2의 윤석이 정우 찾느라 말이다.”
“열일 하시네요. 박봉이실 텐데.”
정우의 농담에 태웅이 얼굴을 구겼다.
“돈 많다고 자랑하냐?”
“하하, 아니에요. 진짜 몇 년째에요. 프로 팀 감독은 아예 안 하실 생각이에요?”
정우의 물음에 태웅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어린 선수들이 형제가 온 줄도 모르고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제 고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쟤들을 두고 어딜 가. 아, 옆에 계신 분은…… 류준형 씨 아니냐? 아이고, 연예인까지 데리고 오네, 얘들이 이제.”
“하하, 안녕하세요.”
“네네, 안녕합니다. 이따 사인 좀……?”
“물론이죠.”
류준형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태웅은 다시 선수들을 바라보고는 형제에게 물었다.
“어떠냐, 옛 생각 좀 나냐?”
“네, 뭐…… 애들 잘 뛰네요.”
태웅은 윤석의 말에 함지박만 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지? 내가 진짜 발품 팔면서 데리고 온 애들이다. 쟤들이 우리 부천의 미래고, 한국의 미래가 될 거야!”
예전에만 해도 유소년 감독은 자신의 최종 목표를 향한 거쳐 가는 단계라고 생각했던 태웅이었다. 하지만 형제를 키우고, 그 형제가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자신의 힘으로 세계적인 선수들을 키워 내는 것.
바로 지금 앞의 형제처럼 말이다.
비록 자신이 발굴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가르친 형제가 세계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 줄 때마다 그는 짜릿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키운 선수가 이렇게 활약한다니!
형제를 지켜보면서 김태웅의 목표는 지금의 부천을 정말로 한국의 라마시아 클럽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세계적인 유소년 육성가가 되는 게 꿈이 되었다.
그 꿈을 위해 재능 있는 선수들을 발굴하기 위해서 한국 구석구석 안 다녀 본 곳이 없었다.
수도 없이 많은 책들을 보고, 수도 없이 많은 클럽들의 유소년 정책을 연구해 왔다.
그리고 지금의 아이들은 정우와 윤석을 발판으로 만들어 낸 그의 라마시아였다.
“쟤 봐라, 쟤.”
흐뭇한 얼굴로 정우에게 한 아이를 가리켰다.
정우의 시선이 그 아이를 향한다.
“쟤…… 제법 빠른데요?”
“제법이라니! 쟤가 올해 열일곱 살인데, 열일곱 살 때 네 달리기 평균 속도보다 0.2초나 빠른 애다.”
“그래요……?”
정우가 그제야 흥미롭게 아이를 바라본다.
빠른 발을 자랑하듯 반대편 골대를 향해 침투해 들어가는 속도가 상당하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발재간이 좀 부족하네요. 공을 잡으니 달리기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요.”
“그지…… 너처럼 어려서부터 미친 발끝을 보여 준 애는 아니니까. 재작년까지만 해도 육상선수였어, 쟤. 저것도 엄청나게 발전한 거야.”
태웅의 말에 윤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키우면 저건 무서운 무기죠. 빠른 것도 재능이니까요. 맨유에서도 드리블 이런 거 잘 못해도 발 빠르면 일단 키우기 시작하더라구요.”
“그지? 그래도 요즘은 시대가 많이 달라져서, 빠른 애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보기도 해. 가령…… 쟤! 쟤는 발은 보통인 편인데, 시야가 엄청나게 좋다. 머리도 좋고. 체력도 다른 애들보다 좋은 편이야. 그래, 박치성 같은 느낌이랄까?”
“미드필더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거죠?”
“그지. 요즘은 저런 스타일의 아이들이 스타성은 몰라도 감독의 입장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카드가 되고 있으니깐. 아, 이제 경기 끝난다. 애들 좀 봐줄 수 있겠지?”
“그럼요.”
형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웅은 곧바로 훈련하던 어린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경기에 집중하다가 형제를 목격하고서 집중하지 못하고 연신 필드 밖 형제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들은 감독의 부름에 너 나 할 거 없이 미친 듯이 달려오기 시작한다.
“햐, 내가 부를 때는 듣는 척도 안 하는 자식들이 너네들 왔다고 단번에 뛰어오는 거 봐라, 짜식들.”
형제가 멋쩍은 듯 웃는 사이, 이내 모인 아이들을 보며 김태웅이 말했다.
“자, 다들 이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그래, 그렇겠지. 모르면 간첩이지, 축구하는 애들이. 너네들 보고 싶다고 이렇게 친히 유소년 팀 선배들이 찾아왔다. K리그 어느 팀을 가도 이런 선수들이 선배랍시고 찾아오는 일이 없어, 자식들아. 부천 유소년이라는 걸 감사히 생각하라고!”
김태웅이 열변을 토하든 말든, 아이들의 시선은 형제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K리그에서도 하위권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별 볼 일 없는 부천 UTD에,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아이들,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다른 구단의 제의를 무시하고 이곳 유소년 팀으로 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
세계적인 형제를 키워 낸 곳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미래를 축구로 정한 학부모들이 부천으로 몰리는 것도 당연한 수순.
그리고 몰려드는 아이들을 키워서 1군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부천이 유소년 팀을 투자하지 않을 리도 없었다.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는 것보다 재능 있는 아이를 좋은 선수로 키워서 이적료 없이 콜 업해 활용하는 것만큼 경제적인 일도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사실 내심 고대하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쯤은 형제가 자신들을 찾아와 줄 거라고.
그리고 오늘 고대하던 그날이 찾아온 아이들은 뛰는 가슴으로 자신들의 선배들을 바라봤다.
부천에서 시작해 한국에서 또 이런 선수가 나올 수 있을까 싶은, 아직 20대지만 이미 벌써 한국의 전설이 되어 버린 형제를 말이다.
“축구하는 거 잘 봤다. 김태웅 감독님이 워낙 잘 가르치시다 보니 너네들도 잘하는 거 같더라.”
윤석이 후배들을 바라보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만큼 선수들 재능을 꽃피워 주는 유소년 팀도 없을 거야. 나도 그랬고, 정우도 그랬고 여기서 배운 걸 바탕으로 여기까지 올라왔거든. 여기가 아니었음 우리 둘도 그저 그런 선수가 됐을지도 모르지.”
아이들은 어느새 윤석의 말에 빠져들었다.
형제는 다큐 촬영도 잊고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언젠가 또 다른 자신들이 나오길 바라며.
그리고 그다음 날.
부천은 형제의 이름으로 유소년 팀 발전 기금을 기부받게 되었다.
형제에게는 1년 연봉은커녕 반년, 아니, 한두 달 월급 정도 밖에 안 되는 돈이지만, 부천의 입장에서는 몇 년 치 유소년 운영자금에 해당되는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형제는 이 돈을 바탕으로 먼 훗날, 이 아이들을 이끌고 부천에서 트레블을 이루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