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250)
형제의 축구-250화(250/251)
형제의 축구 250화
시간은 흐른다
기적 같은 쿼드러플을 이루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다시 황금기를 맞이했다.
시대를 이끄는 팀, 적수가 없는 무적의 팀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맞이하게 될 새로운 시즌.
떠나가는 선수들도 있었고, 새롭게 들어올 선수들도 있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다가오는 21-22 시즌도 우승하리라 자부하고 있었다.
그렇게 맞이하는 8월.
리그는 일찍이 시작돼서 벌써 네 번째 경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그 3연승을 기록하며 어느덧 51경기 무패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리그 4라운드! 지난 시즌 돌풍의 팀 스토크를 상대로 52경기 무패에 도전하게 되겠네요.
-하지만 과연 오늘 경기가 잘 풀릴 것인지 걱정이 들기는 하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한 선수의 부재는 크게 다가옵니다. 한윤석 선수가 빠진 자리를 무리뉴 감독이 어떻게 메꾸느냐가 중요한데요. 아, 여러분, 한윤석 선수는 부상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에게 오늘은 아주 경사스러운 일이 일어날 예정이거든요.
-무리뉴 감독의 특별 배려로 오늘 경기에 출전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오늘 그의 둘째 자녀가 태어나는 날입니다.
-하하, 지금 병원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킹의 모습이 상상되네요.
“아, 우리 세경이 잘 나와야 할 텐데.”
경기를 앞두고 정우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세경? 그게 누구에요?”
“아, 있어, 그런 애가.”
이번 시즌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합류하게 된 선수, 이강운의 물음에 정우가 말했다. 강운은 바짝 군기가 든 모습으로 넵! 하고 대답하고는 이내 정우를 따랐다.
“야, 좀 떨어져. 누가 보면 너 게이로 오해한다.”
“게이는 아니지만, 형이 좋은 걸 어떻게 해요.”
“그 말은 니 여자 친구한테 하고, 자식아.”
정우는 그리 말하면서 강운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마저도 좋은지 강운이 헤헤, 웃음을 흘리는 사이 무리뉴가 모습을 드러냈다.
[뭣들 하나! 다들 나가자! 맨유는 킹이 없어도 강하다는 것을 보여 줘야지!] [네!]선수들이 기운차게 대답하고 필드로 나서는 사이.
윤석은 초조한 마음으로 분만실 앞을 지키고 있었다.
* * *
“정신 사나워, 이눔아! 앉아 있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장손을 보고 할머니가 버럭 소리를 치자, 윤석은 그제야 할머니의 옆에 앉았다.
“아빠, 동생 언제 나와?”
“이제 곧…… 나오지 않을까?”
“산통 시작한 지 30분도 안 되얐는디 뭘 나와, 나오기를! 진득하니 기다리지 못 햐?”
할머니의 말에 윤석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할머니는 그런 윤석을 엄하게 바라보는 듯하다가 이내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두 걱정되냐?”
“걱정보다는…… 기다림 아닐까요?”
윤석의 말에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도 그랬던 거 같다. 첫 자식을 낳으면서 정신이 없는 가운데 채신머리없이 방문 앞을 기웃거린다고 시어머니에게 혼나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라왔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고된 생활 속에서 남들보다 힘들게 살아온 아들놈은 비록 일찍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 아들이 지금 당신의 앞에서 또 다른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혀도 세경이는 아니지 않누?”
“세경이가 어때서요?”
“그래두 니 아버지 이름 아니냐. 단명한 눔 이름이 뭐 좋다구 그러냐.”
“그런 말씀 마세요, 할머니. 아버지가 저희 키우려고 얼마나 고생하셨는데요. 저는 제 아들에게 아버지에게 못다 한 것만큼 아낌없이 키울 겁니다.”
단호한 윤석의 말에 할머니는 흘흘 웃음을 흘렸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어린 눔이 어느새 저리 커서 지 할 말을 곧잘 하는 아이가 되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한세경.
한때는 형제의 아버지의 이름이었지만, 이제 태어날 아이에게 붙여질 이름이기도 했다.
윤석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지만, 부디 아들이 할아버지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바른 아이가 되었으면 했다.
“그러고 보니…… 제 아들, 저 많이 닮았겠죠?”
윤석의 물음에 할머니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둘째 아는 보통 지 엄마 닮는다지? 첫째는 지 아빠 닮고.”
“음, 세아는 저 안 닮았는데요?”
“우리 세아?”
“웅?”
세아가 큰 눈을 깜빡이며 할머니를 바라본다.
어느새 많이 커서 지 할 거 다 하는 어린이가 되어 버린 세아는 할머니 옆에서도 차분하게 기다릴 줄 아는 아이로 커 가고 있었다.
“우리 세아도 가만히 보면 니랑 닮은 게 많어. 엄마 태가 조금 나서 그러지.”
“그래요? 난 모르겠는데. 세아, 누구 딸?”
“음, 우리 할미 증손자!”
엄마 아빠보다도 자기 증조할머니를 더 좋아하는 세아의 말에 윤석이 입맛을 다시는 사이, 할머니는 자신이 좋다는 증손자를 안고서 행복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미스터 한!]분만실 문을 열고 산부의과 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들어가 보시겠어요?] [아아, 감사합니다.]윤석은 의사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의사와 함께 서둘러 분만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들리는 것은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
유난히 기운이 넘치는 그 소리에 윤석이 걱정스럽게 의사를 바라보자 의사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아빠를 닮아서 그런가 기운이 넘치네요.] [아, 그래요?] [네, 부인이 많이 고생했어요. 아이가 보통 우량아가 아니라서요. 이것도 한윤석 선수를 닮은 건가 싶을 정도로요.] [하, 하하하…….]윤석은 웃음을 터뜨리며 의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분만실 침대 위에는 우는 아이를 품에 안고 다소 초췌한 모습이긴 했지만,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보네가 있었다.
“여보.”
윤석의 부름에 이보네가 윤석을 바라봤다.
“자기야, 이거 봐. 우리 둘째 아이야.”
윤석은 이보네의 말에 한 걸음 다가가 아이를 바라봤다.
어느새 울음을 그친 핏덩이 같은 아이가 눈도 뜨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엄마의 젖을 더듬고 있었다.
“세경이구나.”
“응, 우리 세경이…… 자기를 꼭 닮은 거 같지?”
그녀의 말에 윤석은 아이를 바라봤다.
세아를 낳았을 때도 느낀 거지만…….
“난 도저히 모르겠는데?”
아이를 보고서 누구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어리숙하게 머리를 긁적이는 윤석을 보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그렇게 한씨 가족이 한 사람 더 늘어나게 되었다.
둘째 세경이 태어난 이후, 윤석과 정우 형제는 의욕적으로 1경기, 1경기를 뛰게 되었다.
윤석은 매 경기마다 필드를 지배하는 모습을 어김없이 보여 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정우는 골을 넣는 것도 모자라 이번 시즌 그의 공약대로 메시를 넘기 위해서 수많은 어시스트를 만들어 냈다.
그 가운데 지난 시즌 78골이라는 어마어마한 골을 기록한 정우는 2021년 발롱도르와 피파 올해의 선수를 모두 석권하는 기염을 토해 냈다.
21-22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프리미어 리그 3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리고 비록 리그컵과 FA컵은 놓치게 되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빅이어를 들어 올리며 2연패를 달성했다.
이번 시즌 유난히 맹활약한 윤석은 리그에서만 18골 19도움을 기록하면서 어지간한 스트라이커보다 더 많은 골을 기록했으며, 정우는 리그에서 41골 17도움,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7골 10도움을 기록하면서 모두 다 해서 69골 30도움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해 냈다.
세 번의 골든부츠와 세 번의 득점왕을 차지하며 자타 공인 세계 최고, 아니,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되는 길을 향해 나아갔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2022-23시즌에서도 형제는 맹활약했고, 이번 시즌에서도 무적의 위용을 과시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그 4연패를 달성했다.
4연속으로 리그를 우승한 것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뛰어난 감독들이 즐비했고, 퍼거슨 경이라는 역대 최고의 명장으로 손꼽히는 감독도 하지 못했던 일을 무리뉴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해낸 것이다.
리그 스물네 번째 우승.
지금의 프리미어 리그가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강팀들이 즐비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네 번 연속으로 우승을 이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역대 최강의 강팀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맨유에게도 리빌딩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리즈만의 나이도 어느덧 32세, 벨로티와 포그바의 나이도 서른 살이었다.
첨단을 달리는 과학 앞에 30대 나이는 흠이 아니었지만, 젊은 유망주들을 훌륭하게 키워 내 다음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맨유는 현역 최강, 아니, 역사상 최강의 팀으로 불리고 있었다.
찾아오는 23-24시즌.
미키타리안이 은퇴하고 자리를 잃어 가던 린델뢰프가 떠났으며, 네베스와 윌 휴즈도 팀을 떠나게 되었다.
여전히 월드 클래스, 세계 최강의 선수들을 보유한 맨유였지만, 지금의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맨유는 새로운 선수들의 수급이 필요했다.
유소년 팀에서 스트라이커와 미드필더 위치에서 활약할 수 있는 유망주 아쉴베코프와 카이라는 독일인 선수들이 콜 업 되었고, 중원을 보강하기 위해서 라이프치히에서 뛰던 마르코 카이저가 영입되었다. 수비수로는 스물두 살, AT 마드리드에서 기량을 만개하며 벌써부터 세계 정상급 선수로 분류되기 시작한 네덜란드의 수비수 리퀴엔시 리젤이라는 선수가 영입되었다.
아쉴베코프, 카이, 리젤은 어린 나이임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면서 맨유를 더욱더 단단하게 만들어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심에는 윤석과 정우가 있었다.
윤석은 비록 부주장이었지만, 필드 위에서 주장 못지않은 영향력을 과시하며 팀을 하나로 만드는 역할을 제대로 해냈고, 정우는 그 어떤 순간에도 놀라운 골로 팀을 승리로 이끄는 맨유의 가장 위대한 ‘7번’으로 불렸다.
23-24시즌 팀의 선수들이 일부 변화하면서 맨유는 아쉽게 우승을 놓쳤지만, 리그 2위,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FA컵 우승을 거두는 위업을 달성했다.
윤석은 리그 21골 19도움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을 만들었으며, 정우는 이번 시즌 부상이 겹쳤음에도 불구하고 리그 37골 9도움을 기록하며 또다시 득점왕이 되었다.
그렇지만 무리뉴나 형제에게는 만족할 만한 시즌은 아니었다.
그리고 맞이한 24-25시즌.
윤석은 어느덧 한국 나이로 스물일곱 살이 되었고, 정우는 스물여섯 살이 되었다.
세아도 한국에선 일곱 살로 내년이면 초등학교를 들어가야 할 나이였고, 동생인 세경도 네 살이 되었다.
시간은 참으로 유수같이 흘러갔는데, 다행이라면 어느새 팔순이 넘으셨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께서 한창때인 것처럼 정정하셨다는 거다.
할머니를 위한 성대한 팔순 잔치를 치루면서 할머니가 만수무강하길 바라며 맞이한 시즌.
절치부심했던 만큼 맨유는 무서운 기세로 시즌을 이어 가면서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무섭게 추격한 이웃, 맨시티와 승점 1점 차를 둔 진땀을 뺀 우승이었지만, 맨유는 세계 최강의 팀이라는 자존심을 지키게 되었다.
윤석은 리그 11골 20도움, 정우는 리그 40골 13도움을 기록했다.
25-26시즌.
서른다섯 살의 나이로 다비드 데 헤아가 은퇴하면서 윤석이 맨유의 주장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번 시즌은 맨유에서 은퇴하는 선수들이 유난히 많은 시즌이었다.
그리즈만이 서른네 살의 나이로 은퇴하게 되었고, 포그바도 비록 서른두 살이지만 지지난 시즌 당했던 심각했던 부상이 악재로 적용해 이른 나이에 은퇴하게 되었다.
팀을 이끌던 핵심적인 선수가 셋이나 은퇴하게 되었고, 팬들은 유명한 선수들의 영입을 원했지만, 무리뉴의 선택은 맨유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었다.
유소년 팀에서 대대적으로 선수들이 콜 업 되었다.
사람들은 무리뉴가 지나치게 퍼거슨을 의식한다며(놀랍게도 아직까지 거론되는 퍼거슨이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비난했지만, 이 선수들은 열아홉 살에서 스물세 살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활약을 보여 주면서 팬들의 비난을 잠재웠다.
하지만 리그 우승을 하기에는 역부족.
윤석이 26골 13도움, 정우가 47골 1도음을 기록했지만, 팀은 리그 3위에 그치게 되었다.
그 와중 놀라운 사실은 정우가 맨유에서 맞이하는 일곱 번째 시즌 만에 240경기에서 리그 3백 골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이는 15시즌 동안 441경기 260골을 기록하며 통산 득점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앨런 시어러의 기록을 그 반도 안 되는 일곱 시즌 만에 뛰어넘는 대기록이었다.
그리고 정우는 개인 통산 474골, 국가 대표 경기까지 포함한다면 501골이나 되었다.
한국에서부터 시작해 독일, 영국까지 이어지는 9시즌이라는 시간 동안 정우가 만들어 낸 대기록이었다.
시즌이 마감되는 시점에서 정우의 나이는 스물여덟 살, 유럽의 나이로 친다면 생일이 지나지 않은 스물여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기록한 것이었고 이 페이스를 그대로 은퇴까지 이어간다면 메시와 호날두의 전설적인 득점 기록도 쉽게 넘으리라 사람들은 예측했다.
득점을 넣는 화려한 공격수가 주목받는 세상에서 정우의 기록이 더욱더 주목받기는 했지만, 사실 프리미어 리그에서만 벌써 120골, 2백 도움 가까이 기록한 윤석의 기록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전례를 봐도 이런 어마어마한 득점과 도움을 기록하는 미드필더는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팀은 리그에서 우승하지 못했지만, 한씨 일가에게는 경사가 두 가지 생겼다.
하나는 이보네의 셋째 임신 소식이었다.
나날이 커 가는 남매를 바라보며 아쉬움이 남았던 윤석 부부의 셋째는 태어나기 전부터 형, 누나, 그리고 삼촌과 증조할머니에게 축복받는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경사.
대한민국 서울.
꽤 이름이 알려진 웨딩홀에서 그 경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다름 아닌 정우와 주희의 결혼식이 열리게 된 것이다.
오랜 시간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도 헤어지지 않고 악착같이(?) 버텨 낸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비록…….
“아, 너 때문에 이게 뭐야! 내 결혼식! 내 웨딩 드레스으으으으!”
“뭐…… 이제 막 배 나오기 시작해서 티도 안 나는구먼.”
“죽을래?”
“……미안.”
속도위반을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첫 아이인지라 배가 나온 티도 나오지 않았지만, 웨딩드레스를 입게 되는 신부의 입장에서는 우울할 수도 있는 결혼식이었다.
“후…… 참자, 우리 아가한테 악영향을 끼칠라.”
그래도 아이를 생각하면 크게 화낼 수도 없었다.
주희가 크게 심호흡하며 시작된 결혼식.
여전히 주희의 엄마는 마뜩잖아 했고, 오랜 시간 아파서 고생하신 할머니는 이 자리에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유래가 없는 세계적인 축구 선수와 감독들이 모두 참석해 이슈가 된 결혼식이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2033년.
형제는 맨유에서 일곱 번의 시즌을 더 보내 맨유에서만 열네 번의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젊었던 윤석의 나이도 어느덧 서른다섯 살. 유럽식 나이로 친다고 해도 서른네 살로 결코 적지 않은 나이였다. 그것은 연년생인 정우도 마찬가지.
형제는 어느덧 선수 생활의 황혼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윤석은 여전한 피지컬을 과시하며 맨유의 가장 위대한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었고, 정우는 예전과 같은 그 누구도 따라잡지 못했던 속도를 어느 정도 잃었지만, 경험과 그 특유의 볼 터치, 드리블 능력만으로 손쉽게 골을 만들어 내며 팀의 부동의 7번, 맨유의 7번 계보를 완성한 가장 완벽한 7번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열네 시즌 동안 형제는 단 네 시즌을 제외한 무려 열 시즌을 팀의 우승으로 이끌었다.
수많은 선수들이 나타났다 떠나는 순간에도 형제는 열네 시즌 동안 자리 잡으면서 맨유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가 된 것이다.
아시아 변방에서 태어난 선수가 이런 자리까지 올라올 줄 과거에는 그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가장 위대한 선수들이 태어난 나라로 한국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형제의 이름을 모르는 축구 팬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저희를 사랑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팀을 떠나기 전에 저와 제 동생이 팀의 서른두 번째 트로피를 안겨 드리게 되어서 다행이네요.]프리미어 리그 32-33시즌 우승 트로피를 맨유에게 선물한 윤석과 정우는 프리미어 리그 우승 시상식에서 팀과의 이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따르던 후배 선수들이 눈물을 보이며 형제를 바라보고 있었고, 관중석의 관중들 중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오랜 시간 팀을 영광으로 이끈 선수들이 떠나는데 좋아할 팬들은 없었다.
하지만 쉽게 팀을 떠나고, 쉽게 선수를 내보내는 요즘 세상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형제의 이별은 시대를 역행하는,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그런 이별이었다.
[이제 저희는 떠납니다. 비록 오랜 시간 머물렀던 맨유와 이별은 아쉽지만, 저희는 더 늙기 전에, 은퇴하기 전에 오랜 시간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떠나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없더라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영광이 계속되길 바랍니다. 아, 정말 아쉽네요.]마이크를 잡고 있던 윤석이 이내 붉어진 얼굴로 관중석을 바라봤다.
그 옆에는 정우가 넘쳐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오늘의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윤석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리 말하자 관중들, 선수들, 그리고 모든 스태프들과 무리뉴 감독까지 그들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형제는 영예롭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나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유럽에서 형제는 거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고, 쫓겨나는 게 아닌, 스스로 팀을 떠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그렇게 맨유와 작별한 형제의 행선지.
사람들은 은퇴를 앞두고 형제가 각자의 팀을 찾아 갈라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끝까지 비밀로 붙여진 형제의 다음 행선지.
그곳은 고향이었다.
자신들이 축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줬던 곳.
살아 있는 전설이 된 자신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던 곳.
16년, 그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형제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천 유나이티드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내가 너희들을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는 온연히 늙어 할머니만큼이나 머리가 새하얗게 된 송진호 감독이 형제를 바라보며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기껏 왔더니 섭섭하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
대부님이라는 호칭은 어느덧 아버지라는 호칭이 되었고, 그것이 너무나도 익숙해진 정우의 말에 송진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고맙다, 더 늙기 전에 와 줘서, 이눔아!”
“그나저나…… 요즘 연고지 이전까지 고려한다면서요?”
로커 룸에 들어서기 전 정우의 말을 듣고 송진호가 흐린 얼굴로 말했다.
“그래, 시에서 더 이상 지원하기 어려울 정도로 재정이 좋지 못하니……. 연고지 이전은 팬들이나 나나 반대하고 있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전보다 사정이 많이 나아진 K리그였지만, 부천과 같은 시민 구단은 여전히 가난했다.
지금에 와서 부천은 형제 이후로 한국을 대표하는 뛰어난 선수들을 여럿 배출한 곳이 되었지만, 유망한 선수를 잘 키워서 비싸게 팔아 팀을 유지하는 그런 곳이 되어 버렸다.
“바르셀로나를 꿈꿨는데, 아약스가 되어 버렸네요.”
“아약스도 아냐, 이제? 흘.”
송진호의 웃음에 정우는 씨익 웃음을 흘렸다.
사실 부천뿐만이 아니라 리그 전체가 중국이나 해외로 선수를 비싸게 팔아 구단을 유지하는 형식의 셀링 리그가 되었지만, 정우는 개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호기라고 생각했다.
지난 14년.
형제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였고…….
“저랑 형이 꿈에도 그리던 게 있는데…… 동참하실래요, 아버지?”
아주 오래전 꿈꿨던 버킷리스트를 해결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윤석과 정우의 눈이 빛났다.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2033년이 지나가고 찾아온 2034년.
반년이란 시간을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하며 은퇴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던 형제가 정식으로 부천의 선수로 등록되었다.
정우는 예전의 등 번호가 아닌 맨유에서부터 사용하던 7번을, 윤석은 8번을 착용하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환호할 만한 사건이었고, 다시 부천에 관중들이 몰릴 만한 일이었는데, 부천은 충격적인 고백을 하게 된다.
기존에 시에서 운영하던 시민 구단의 형태가 바뀌게 되면서 시에게서 독립해 자치적인 구단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기업이 낀 것은 아니었다.
유럽의 체제와 같은 형태.
구단주는 여정례.
회장 겸 감독은 송진호.
구단 디렉터 겸 플레잉 코치 한윤석, 한정우.
팀명은 여전히 부천 유나이티드.
꿈에도 그리던 순간.
구단주는 할머니가 되었지만, 형제의 것이나 다름없게 된 부천, 그리고 형제는…….
“이제 부천을 영광의 계단으로 이끌 때가 되었네.”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2034년 K리그 프리미엄! 개막전이 열리는 이곳은 부천 종합 운동장입니다! 새롭게 재편된 부천 유나이티드를 보기 위해서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관중들이 몰려들었어요.
-부천 종합 운동장이 만석이네요!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불과 1년 전, 맨유에서 전설을 써 내려가던 형제가 부천으로 돌아와 맞이하는 첫 시즌입니다! 구단을 인수하는 일로 인해서 반년을 쉬었다고 하지만 꾸준히 경기력을 유지하기 위해 훈련을 참여하며 오늘을 기다린 ‘용형호제’아니겠습니까?
-용형호제! 오랜만에 듣는 별명이네요. 그립습니다. 그리운 과거가 현실이 되었네요. 제가 어린 시절 저 두 사람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 설렜는지 아십니까? 직접 눈으로 보고 경기를 해설하게 될 줄이야!
-하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네, 말씀드리는 순간…… 경기 시작됩니다!
세련되어진 부천의 유니폼이 어색하지만, 그 유니폼 위에 주장 완장을 두른 윤석이 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동생아.”
“찔러 줄 테니까 때려 넣으라고? 지겹다, 그만해. 중요할 때마다 꼭 그 이야기 하더라?”
“하하, 그래. 아무튼…….”
윤석이 전방을 바라보는 순간 휘슬이 울린다.
“가자.”
“응.”
형제의 축구가 또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