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3)
형제의 축구-3화(3/251)
형제의 축구 3화
새벽이 되면 할머니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일을 하러 나간다.
새벽에는 신앙촌 아래 아파트에 위치한 헬스장에서 청소를 하는 일을 하고서 남는 시간에 폐지를 줍고 시간이 되면 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했다.
고된 하루지만 할머니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그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할머니가 집을 나선 뒤 기다렸다는 듯 형제의 눈이 떠졌다.
“할머니는?”
“간 거 같은데?”
정우가 슬그머니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면서 웃으며 말했다.
“우리 할머니 걸음도 빠르지, 벌써 저 아래로 내려갔어.”
“그래…….”
정우의 말에 윤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우리도 가자.”
“응, 형.”
형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세수를 하고는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이제 겨우 새벽 5시 정도.
막 빛이 들기 시작한 골목길을 따라 길을 내려간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안녕하세요!”
그런 형제들이 당도한 곳은 신문 보급소였다.
이제 막 중학교 입학을 앞둔 윤석이 신문 배달을 시작하면서부터 형제의 일과는 아침 일찍 일어나 신문 배달하는 일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 니들 왔냐.”
그런 형제를 신문 보급소 사장이 반갑게 맞이했다.
“자, 너희들 배달할 거 여기 있다. 얼른 다녀와라.”
“네!”
사장에게서 형제는 신문을 받아들었다.
제법 많은 양의 신문이 윤석의 손에 들렸지만, 윤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비록 중학생이라고 하지만 덩치는 어지간한 어른 못지않은 데다가 힘도 남달랐기 때문이다.
“다녀올게요.”
“그래, 밤길 조심하고!”
신문을 들고 나온 윤석과 정우가 길을 나서는 것을 보고 사장은 딱한 얼굴로 혀를 찼다.
비록 나이가 어린 아이들이었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이 딱해서 윤석만 고용하는 형식으로 알바를 시키기 시작한 게 어느덧 두 달이 넘어갔다. 형제가 함께 배달을 시작했는데 힘이 남달라서 그런 건지 집안 사정 덕분에 독기가 올라서 그런지 어느새 어지간한 성인 배달부들보다 많은 양의 신문을 배달하고 있었다.
형제가 배달을 하는 곳은 아파트도 아니었고, 아파트 단지 아래에 위치한 주택가였다.
아파트보다 훨씬 배달하기 힘든 장소인데도 형제는 용케 그것들을 다 배달하고 왔다.
매일같이 배달을 하기 때문에 형제는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덕분에 또래 아이들보다 체력이 월등히 좋았다.
특히 무거운 신문을 홀로 들고 있는 윤석의 체력과 근력은 점점 남달라졌다.
할머니는 그런 윤석을 보고서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장군을 해도 모자람이 없다고 좋아했다.
“자아, 정우야!”
골목길에 들어서자 윤석이 신문을 삼등분으로 접어서 정우에게 던졌다.
“응!”
빙글빙글 돌면서 자신에게 날아오는 신문을 바라보며 정우가 발을 들었다.
톡!
정확하게 신문의 아랫면을 차자 신문이 빙글빙글 돌아서 주택의 대문을 넘어 현관 근처에 툭 하고 떨어졌다.
담 너머로 그것을 확인한 윤석이 씨익 웃었다.
“이제 제법 정확해졌는데?”
“응, 신문도 별거 없더라. 공보다도 쉬운 거 같아, 이제.”
“짜식.”
유난히 발놀림이 좋은 정우는 공이 아닌 것들을 가지고도 트래핑을 잘 하곤 했다.
장난삼아, 호기심 삼아 시작한 일명 신문 차기는 어느덧 배달 일 중 형제가 할 수 있는 작은 놀이가 되어 있었다.
“자, 이번에는 저기다. 던진다?”
윤석이 가리킨 곳은 골목 한편의 단독주택 3층이었다. 정우가 늘 실패해서 다시 들어가서 제대로 놔두고 오는 장소였다.
정우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던져, 형!”
휘익. 툭!
회전하며 다가오는 신문을 평소보다 조금 강하게 차올린 정우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 3층을 바라봤다. 신문이 회전하면서 우아한 포물선을 그리며 툭 하니 떨어진다.
“에이, 아쉽다.”
신문은 현관보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 떨어져 버렸다.
정우가 아쉬움에 발을 구르는 사이 윤석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올라가서 제대로 놔둘 필요까진 없을 거 같은데? 많이 늘었어.”
윤석의 말에 정우는 씨익 웃었다.
“그건 그래. 예전에는 어림도 없었는데, 헤헤.”
“그래, 잘했어. 이제 얼른 움직이자. 빨리 돌려야지 안 그러면 늦겠다.”
“응, 형!”
형제가 나란히 달려갔다.
* * *
신문을 다 돌린 형제는 다시 신문 보급소를 찾았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이거라도 마실래?”
보급소 사장이 건넨 것은 우유였다. 신문 보급소를 운영하는 것만으로는 돈이 되지 않아서 우유 배달도 같이 하는 탓에 우유가 남아돌았다.
윤석이 사양하려는 차에, 정우가 넉살좋게 그것을 받아들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하, 그래. 시원하게 쭉 들이켜라.”
“네! 형, 뭐 해, 받아.”
정우가 건네는 우유를 받아들며 윤석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자신의 동생이긴 하지만 넉살은 참 좋다. 하긴 그 탓에 아저씨나 아줌마들이 정우를 많이 좋아했고, 어려서부터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곤 했다.
“햐, 좋다.”
우유를 단숨에 들이켠 정우는 흘끔 형을 바라봤다.
자신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형이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한배에서 태어났는데 신은 불공평하게도 형에게만 키를 준 모양이다. 이제 열네 살인 형은 고등학생들보다도 키가 크니 말이다. 자신에게도 좀 나눠 줄 것이지.
“우유 많이 먹으면 키 크겠지?”
정우는 우유를 많이 먹고 키가 크길 바랐지만, 글쎄, 왠지 불안하게도 형만큼은 절대로 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그리고 이건…….”
그사이 사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형제의 시선이 절로 사장을 향했다.
“이번 달 월급이다.”
사장이 건네는 봉투를 바라보며 형제의 얼굴이 절로 밝아졌다.
“요번 달 82만 원, 맞지? 이 아저씨가 정우까지 일한 거 생각해서 많지는 않다만 5만원 더 넣었다.”
“우와, 진짜요? 아저씨,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아껴 써라.”
좋아하는 형제를 바라보며 사장은 흐뭇하게 웃었다.
형제는 월급봉투를 가지고 서둘러 집으로 달려왔다.
아무렇게나 신발을 던져 놓고 집 안으로 들어온 형제는 방 안에 장롱을 끌어냈다. 그러자 곰팡이가 잔뜩 설고 크게 균열이 생긴 벽이 보였다. 벽 아래에는 쥐가 한 마리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구멍이 하나 나 있었는데, 신문지와 박스 등을 구겨 넣어 막은 상태였다.
윤석이 신문지와 박스를 끄집어내고서 그 안에서 조그마한 함을 꺼내들었다.
녹슨 함은 엄지손가락만 한 자물쇠 두 개로 잠겨 있었다.
형제가 비장한 얼굴로 주머니에서 각자의 열쇠를 꺼내들었다.
누군가가 몰래 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물쇠 두개로, 열쇠를 각자 나눠 가진 것이다…… 하고 형제는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드라마나 만화영화에서 나오는 금고를 보고 어린 마음에 자기들 나름대로 따라한 것이었다.
“자, 열자.”
형제가 번갈아 가며 각자의 자물쇠를 따고서 함을 열었다.
노란 고무줄에 묶인 돈뭉치가 두 다발, 그리고 구겨진 지폐 몇 장과 동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형제는 그곳에 봉투에서 돈을 꺼내 돌돌 말아 고무줄에 묶어서 채워 넣었다.
정우가 기쁨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와, 형. 이제 우리 부자다, 그지?”
250만 원이 넘는 돈이 조그마한 함에 담겨져 있었다.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할머니가 준 돈까지 모아 놓은 결과였다.
이제 막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형제에게는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응, 그러게.”
“이걸로 축구공하고 축구화 사도 되겠다. 그지?”
정우가 부푼 가슴을 안고서 형에게 말하자, 형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더 모아야지.”
“응? 왜?”
정우의 물음에 윤석은 안색을 흐리며 창밖을 바라봤다.
조그마한 창밖에는 높디높은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었다.
“우리 가족도 언젠가는 아파트 공사 때문에 집에서 쫓겨날 거야. 집 얻을 때 할머니한테 보태야지.”
열네 살답지 않은 생각이었지만, 정우는 형의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재개발이 이뤄지면서 신앙촌도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한때 같은 동네에서 크던 친구들이 하나둘 가족들과 울면서 쫓겨나는 것을 봤던 정우였다.
어린 나이에 세상이 험하다는 것을 알아 버린 형제는 자신들이 언젠가는 자라 온 이 동네에서 쫓겨날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집을 얻어야 하나는 것도.
“벼룩시장 보니까 천만 원만 있어도 이것보다 좋은 집을 얻을 수 있대.”
“진짜야, 형?”
“응. 월세라고, 다달이 돈을 내야 하긴 하지만…… 그래서 우리가 이 돈 모아서 할머니한테 보탬이 돼야지.”
윤석의 말에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추운 겨울날.
죽은 아버지 품에서 처음으로 만난 친할머니는 이제 형제들의 유일한 보호자이자, 가족이었다. 더없이 사랑으로 자신들을 품는 할머니를 위해서라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 그지, 형?”
“그래. 더 열심히.”
형제는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로 다짐하며 다시 각자의 자물쇠를 걸어 함을 숨기고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언젠가 기뻐할 할머니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