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54)
형제의 축구-54화(54/251)
형제의 축구 54화
복귀
-아…… 경기…… 종료됩니다! 아쉽습니다, 대한민국. 브라질을 맞이해 선전했지만, 1 대 0으로 결국 패배하면서 은메달을 거머쥡니다! 금메달이 아니어도, 잘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누가 이들을 골짜기 세대라고 불렀나요? 와일드 카드들의 활약도 좋았지만, 젊은 선수들도 그 못지않았습니다. 그 중심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20세 신예 한윤석 선수가 있었습니다.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강했어요!
윤석은 멍하니 필드를 바라봤다.
경기가 끝났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브라질에 무릎을 꿇었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후…….”
아쉽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손형민이 윤석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고생했다, 막내. 네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
“아…… 아니에요. 형 덕이죠. 뭐. 그리고 군 면제…… 축하드립니다, 형.”
“하하, 그래. 군 면제구나 참. 너도 축하한다, 자식아. 군 면제라니.”
“하하하, 그러게요.”
이름을 빛내고, 나라의 위상을 세우고, 그리고 군 면제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은 다 얻었다.
그 가운데 누군가가 윤석에게 다가왔다.
“한윤석 선수!”
윤석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묘령의 여인이 웃으면서 윤석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대뜸 한윤석에게 마이크를 내밀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앞에는 카메라도 있었다. 방송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은메달을 차지하는 데 큰 공헌을 하셨습니다!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윤석은 그녀의 물음에 멍해졌다.
“아…… 그…….”
TV는 처음이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이런 게 싫어서 참여하지 않을 정도로 윤석은 TV가 두려웠다.
필드 위에서 카리스마를 줄줄 뿜어내던 윤석은 어디로 갔는지 없고, 어리바리한 청년이 그 자리에 있었다.
“조, 좋습니다.”
“호호, 많이 긴장하신 거 같은데, 편안하게 한 말씀 해 주세요. 가족분들께 한 말씀 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래요? 으음. 일단은 올림픽 은메달이라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할머니, 보고 있어요? 은메달이에요, 할머니! 그리고…… 정우야.”
윤석은 정우를 생각했다.
할머니와 함께 지금 이 모습을 보며 기뻐하고 있을까? 아니면 졌다고 핀잔을 주고 있을까?
동생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다음에는 함께하자. 그래서 꼭 금메달 따자.”
“아, 그 말씀은 다음 올림픽도 참가하겠다는 건가요?”
“일단은 그러고 싶습니다. 동생과 함께.”
“네, 형제애가 대단하시네요! 멋진 경기 펼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그럼…….”
윤석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더 물어볼 것이 있는 듯, 아, 하고 탄성을 저지르는 아나운서를 뒤로하고 서둘러 필드를 빠져나갔다.
그런 윤석을 보며 형들이 손가락질하며 낄낄 웃음을 흘렸다.
로커 룸 안으로 들어갔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스태프들이 선수들을 향해 샴페인을 터뜨렸다. 비록 오늘 경기에서 지긴 했지만, 은메달이라는 값진 메달을 차지한 선수들을 향한 마음이 듬뿍 담겨 있었다.
“이야, 내가 맥콜은 터뜨려 봤어도 샴페인은 또 처음이네! 맥콜보단 덜 뿜어진다, 야!”
샴페인을 터뜨린 신태형 감독이 신나게 흔들면서 그리 말하는 사이, 어느새 샴페인을 건네받은 선수들도 샴페인을 마구 흔들어 신태형 감독에게 뿌렸다.
“축하드립니다! 감독님!”
“풋, 어푸, 그, 그래, 자식들아! 너네들도 축하한다!”
“우핫하하하!”
“야, 누구야! 그만 뿌려, 자식들아! 이거 우리가 치워야 한다!”
“뭐 어떻습니까, 은메달인데!”
선수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순식간에 로커 룸이 난장판이 되었다. 남은 샴페인을 마시고 준비된 과일과 비스킷을 곁들어 먹은 선수들.
그들은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그리고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 * *
-한정우 선수 두 번째 골! 강원과 격차가 어느새 4점 차로 벌어지게 됩니다.
-부천 최근 공격력이 무섭습니다! 수비가 강점인 팀이었는데, 최근 공격력을 보면 수비력이 묻히는 감이 있을 정도예요!
-그 중심에는 한정우 선수가 있습니다. 가장 어린 나이로 챔피언십의 최다 연속 골 기록인 7경기 연속 골 기록과 타이를 이룹니다.
-연속 골 기록도 대단하지만, 어느덧 27경기 27골로 경기 수와 골수가 같아졌습니다! 최근 7경기 15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선수를 누가 감히 어린 선수라고 무시할 수 있을까요?
-감히 누가 그럴 수 있습니까? 오히려 이 선수에게 골 넣는 법을 배워야 할 정도예요!
-하하, 한정우 선수의 활약을 바탕으로 부천은 승점 54점! 안산과 동률이지만, 골득실차로 1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리그 선두! 이 기세를 이어 나가 우승을 거머쥘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다음 경기에서부터는 올림픽 은메달을 하드캐리한 한윤석 선수가 복귀합니다!
-아…… 부천의 다음 상대 팀이 안쓰럽게 여겨질 정도네요. 동생만 해도 이렇게 무서운 팀인데, 형이 가세하면…… 부천, 반칙입니다. 너무 강해요!
-정확히는 형제가 반칙입니다. 역대급 재능의 형제입니다.
정우의 활약으로 강원을 무릎 꿇린 가운데.
정우는 필드에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금쯤 도착했으려나?”
돌아오는 윤석을 누구보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정우였다.
* * *
모처럼 꼬막을 무친다.
주방에는 갈비와 곰탕을 끓이느라 후끈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제사할 때나 쓰던 커다란 교자상에는 맛난 음식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호박전, 동태전, 동그랑땡 같은 전부터 해서 잡채, 육회,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된장찌개까지.
“어이구, 오랜만에 했는데도 맛은 그대로네.”
홀로 음식을 장만하고 있던 할머니는 양념을 맛보고는 자화자찬을 아끼지 않았다.
남편이 일찍이 죽기 전까지는 누구보다도 유복했던 가정이었고, 엄한 시어머니 밑에서 별별 음식을 다 배우며 시집살이를 하셨던 할머니였다.
가세가 기울고 홀로 힘겹게 일을 해 오면서 요리다운 요리를 제대로 해 본 지 수십 년은 된 것 같은데, 그렇게 밉고 미웠던 시어머니의 추상같은 호령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 어렵지 않게 기억을 더듬어 요리들을 해낼 수 있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밉더니만, 지금은 이리도 고맙네.”
지금에 와서는 맛난 음식 잊지 말고 자신을 대신해 해 주라고 그리 엄하게 가르쳤나 싶어 고마울 지경이었다.
시어머니는 하나뿐인 자식이 죽고 충격으로 치매를 앓게 되면서 그리도 자신을 힘들게 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 시어머니마저 그립다.
“엄니, 엄니 증손주가 한씨 가문을 이리 빛내고 있소. 자식 잡아먹었다 그리 내 욕을 하시더니만 내 덕에 한 씨 가문 체면을 세운 거 아니겠소?”
뿌듯했다.
힘들게 홀로 많은 요리를 하는데도 평소보다 몸이 가볍다 느껴질 정도로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내 새끼들은 언제 오누?”
시간을 바라보니 어느덧 저녁 9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올 때가 된 거 같은디…….”
꼬막을 마저 무쳐서 상 위에 올려놓은 할머니는 압력 밥솥을 열었다.
형제가 저렴하게나마 전기밥솥을 사 줬지만, 자신이나 그런 거로 밥 먹지, 손주들에게는 찰진 밥을 먹인다며 항상 압력 밥솥을 사용하는 할머니였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꼬들꼬들한 밥을 휘휘 저어 큼지막한 밥공기에 고봉으로 쌓아 올렸다. 이가 성치 않아 정작 본인은 고두밥을 하면 물 말아 드셔야 넘어가시는 분이, 형제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리 밥을 하신다.
철컥.
그 가운데 현관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할머니!”
“할머니!”
형제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오자 할머니가 반색하고서 부엌에서 나온다.
“어이구, 내 새끼들!”
할머니를 보고 형제가 환하게 웃었다.
“어째 같이 들어오는 겨?”
“귀국하자마자 팀에 들렸어요, 할머니. 감독님한테 인사드리고 정우랑 같이 오는 길이에요.”
“잘했구먼, 고생혔다, 우리 장손.”
할머니는 그리 말하며 윤석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 올려다보니 윤석의 이마에 상처가 보인다. 여러 바늘 봉합한 그것을 보니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려 한다.
“어이구, 우리 장손 잘생긴 얼굴에 흉 졌네. 얼매나 아팠을꼬…… 어이구, 내 새끼.”
자신이 다친 것보다 더 아프고 속상해 할머니가 눈물을 뚝뚝 흘리자 윤석은 머리를 긁적였다.
“나 괜찮아요, 할머니. 하나도 안 아팠는데.”
“몸 성히 오라니까, 그게 뭐시여, 이놈아.”
“누가 보면 팔이라도 하나 잘려서 온 줄 알겠네, 할머니, 저 괜찮아요. 울지 마요.”
“맞아, 형이 다친 거보다 형이 다치게 한 사람이 더 많아!”
“이놈이!”
윤석은 웃으며 동생의 머리를 쥐어박고 할머니의 손을 잡고서 집으로 들어왔다.
기다렸다는 듯 번듯하게 차려진 진수성찬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 떠진다.
“이 많은 걸 혼자 다 했어요, 할머니?”
“훌쩍, 그려, 배고프지? 이 할미가 얼른 밥 퍼 오마.”
“우와 이게 다 뭐야. 할머니가 이런 것도 할 줄 알았네. 진짜 짱이다, 우리 할무이!”
아이들이 자리를 앉자 할머니도 밥을 퍼 주고는 옆에 앉아 형제가 밥을 먹는 것을 지켜본다.
워낙 잘 먹는 형제 아니랄까 봐 순식간에 한 공기가 비워지는 것을 보며 할머니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며 윤석이 말했다.
“할머니는 안 드세요?”
“이잉, 음식 준비하믄서 조금씩 주워 먹었더니 배가 더부룩 혀니, 밥 생각이 없네. 니들 어여 먹어. 이 할미는 나중에 출출하믄 챙겨 먹을게.”
“그러지 말고 할머니도 같이 드시지. 진짜 배불러서 그러는 거야?”
정우의 물음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만치 못사는 것도 아닌디 이 할미가 그짓말혀서 뭐하겄냐. 그러니 어여 먹어.”
할머니의 말에 형제는 다시 마지못해 수저를 들었다.
맛있게 먹는 형제를 보며 할머니는 다시 흐뭇하게 웃음 지었다.
그러다 문득 윤석의 이마를 바라본다.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이 속상해지는 할머니였다.
손주가 걸어 준 은메달보다도 손주의 다친 이마가 더 마음이 쓰이는 할머니.
할머니는 생각했다.
더 다치지 말고 그저 건강하게만 살아가기를 말이다.
Rrrrrrrrrrrr…….
“응?”
그 와중에 걸려온 전화에 윤석이 의아해하면서 핸드폰을 바라봤다.
“감독님이네?”
“아까 봤는데 무슨 일 있으신가?”
정우도 의아한 마음에 형의 핸드폰을 바라보는 가운데 윤석은 냉큼 전화를 받았다.
“네, 감독님.”
-그래, 윤석아. 집이냐?
“예, 지금 밥 먹고 있습니다.”
-그렇군.
“무슨 일 있으세요?”
윤석의 물음에 송진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팀 복귀가 미뤄질 것 같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갑작스러운 전화에 의문스러운 말에 윤석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송진호가 말을 이었다.
-너…… 국가 대표 팀 차출됐다.
“……네?”
윤석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옆에서 형의 통화 내용을 듣는 정우의 눈도 휘둥그레 떠지는 가운데, 송진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정우도.
“아…….”
윤석의 시선이 정우를 향한다.
그건 정우도 마찬가지였다.
놀란 두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가운데.
전례가 없는 형제의 국가 대표 차출이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