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57)
형제의 축구-57화(57/251)
형제의 축구 57화
-네, 순조롭게 선제골을 기록하면서 대한민국이 앞서가게 됩니다. 수많은 유커들의 응원 소리가 일순 잠잠해졌네요. 저들도 알 겁니다. 한정우 선수가 대한민국에서도 이슈를 불러 모은 최연소 국가 대표라는 걸요.
-네, 한정우 선수의 득점 장면이 리플레이됩니다. 슈팅 페인트를 주면서 선수를 한쪽으로 묶어 뒀는데, 그걸로도 모자라서 한 번 더 옆으로 띄워서 선수의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볼을 왼쪽으로 밀어 주면서 왼발로 정확하게 감아 찹니다. 골대 앞에서 저렇게 침착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성인 선수라도 어려운 법인데, 아주 어린 선수가 굉장히 침착하게 깔끔한 골을 만들어 냈어요.
-아무래도 축구 유전자라는 게 따로 있긴 한 것 같습니다. 형도 그렇고 동생도 그렇고, 저 가문의 무슨 특별한 유전자가 있는 거 아닐까요?
-그거 일리 있는데요? 하하하.
정우의 골로 해설들도 그랬지만, 선수단 자체 분위기도 좋아졌다.
패기 넘치던 중국의 선수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멍한 얼굴로 있다가 이내 씩씩거리면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둘러 하프라인으로 공을 가져가선 어서 경기를 재개하자 독촉한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들의 흥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소 경기를 거칠게 진행하기 시작했다.
오른쪽 윙을 맡은 뤼쉐펑이 공을 가지고 올라오다 오재성이 붙어 오자 거칠게 팔꿈치로 오재성의 목을 때리면서 옐로카드를 받았다.
이어서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 황보원은 떨어지는 공을 받기 위해 기선용과 경합하다 기선용을 밀면서 연달아 옐로카드를 받았다.
순식간에 두 장의 카드가 나오면서 경기는 과열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에 한해서였다.
이미 한 수 아래로 보이는 상대인 데다가, 앞서가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선수들은 굳이 그들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경기가 중국의 뜻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애초부터 중국은 5백, 거기에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면서까지 최소 비기는 경기를 하려고 했고, 수비를 바탕으로 장기인 역습을 준비하려 하고 있었습니다만, 지나치게 흥분해서 되레 역습이 아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준비된 플레이가 중요합니다. 중국, 분발하지만 중원에서 싸움이 되질 않고 있어요. 골대 앞에도 쉬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우의 화려한 골 아래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린 가운데 뒤에서 윤석은 수비로서 선전을 이어 가고 있었다.
옆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기선용도 감탄할 정도로 공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 내고 맥을 차단하면서 공격의 흐름을 끊어내고 있었다.
양쪽 윙 포워드인 위하이와 쑨커, 그리고 우레이에게 조차 공이 가질 못하거나 공을 가져도 윤석의 가세로 좁은 공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백 패스를 할 뿐이었다.
그렇게 차츰 수비형 미드필더인 우시와 황보원이 가세하기 위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쓰리백만을 남겨 둔 채로 모두가 올라오다시피 한 상황.
그 순간 윤석의 눈이 빛났다.
너무나도 익숙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공격진에게 전달되지 못한 볼이 백 패스로 후진하고 있는 가운데 윤석이 기습같이 공을 가지고 있던 리쉐펑에게 달려들어 공을 빼앗아 들고 전방을 향해 롱패스를 보냈다.
뻥!
시원하게 뻗어 나간 공은 우시와 황보원의 뒤를 넘어 수비수의 바로 앞 넓은 공간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은…….
-넓은 공간 속에서 공은 한정우 선수가 받습니다!
-이런 장면을 잘 연출해 곧잘 골을 넣던 형제입니다! 어떻게 보면 소속 팀의 필승 패턴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보시다시피 한정우 선수, 굉장히 빠릅니다!
벼락!
정우는 한 줄기 벼락이 되어 공을 몰아 중앙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세 명의 수비수들이 당황해서 정우를 바라보며 주춤주춤한다.
달려들자니 아까 보여 준 볼 터치가 걸리고, 몸싸움을 시도하자니 그 전에 도망가 버릴 것 같다.
어찌할까 고민하던 사이에 어느새 정우는 공을 몰고서 페널티에어리어 가까이 접근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수비수 중 중앙의 정즈가 정우에게 달려들었다.
다가오는 정즈를 보면서 정우는 멈출 줄 몰랐다.
이거 미친놈 아냐?
정즈가 당황한 얼굴을 하다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사라졌……?]없다.
눈앞에 있던 정우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옆에 봐! 왼쪽!]다급하게 들려오는 다른 수비수, 펑샤오팅의 목소리에 정즈의 고개가 왼쪽으로 돌아갔다. 정우가 그 옆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라 크로케타!
-라 크로케타요?
-네, 흔히들 팬텀 드리블이라고 부르는 기술인데요, 바르셀로나의 메시나 이니에스타 같은 선수들이…… 아앗!
해설이 목소리를 높였다.
털썩.
정우가 뒤로 발라당 넘어진 것이다.
왜?
정즈가 정우의 유니폼을 잡아당긴 탓이었다.
넘어진 정우가 그대로 벌떡 일어나서 정즈에게 바짝 달려든다. 정즈는 뻔뻔한 얼굴로 양팔을 들어 올렸지만,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정우의 두 눈이 너무 매서웠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 하나는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이었다. 작고 앳된, 거기에 곱상하게 생긴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무서운 눈빛이었다.
[뭐, 뭐?]“하, 나 진짜…….”
주먹이 파르르 떨렸지만, 참았다.
동네 싸움을 할 나이는 끝나지 않았던가.
그사이에 다가온 주심은 정즈에게 옐로카드를 내밀고 있었다.
대한민국 선수들이 항의하기 위해 주심에게 달려들었다. 노골적인 반칙이었고, 레드카드를 줘도 할 말이 없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묻는다. 그 와중에 뻔뻔하게 중국 측에서는 이게 왜 옐로카드냐고 항변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레드카드를 줘도 할 말이 없는 반칙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렇게라도 막지 않으면 1골을 더 먹었을지도 모를 상황이었습니다.
-네, 제가 선수로도 꽤 오랫동안 해 왔고, 저도 나름대로 발이 빠른 선수였습니다만, 저도 현역 때 저런 속도에서 저런 드리블을 할 수 없었어요. 와, 대단한데요?
-이청수 해설위원이 이렇게 인정하는 모습 처음 보는데요?
-솔직히 진짜 할 말이 없네요……. 영상이 아니라 직접 보니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선수네요.
-아, 말씀드리는 순간 프리킥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페널티에어리어에서 불과 2미터 떨어진, 직접 슈팅으로 골을 노려 볼 수 있는 상황인데요, 프리키커로는……. 한정우 선수가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정우 선수에게 특별히 프리킥을 준비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본인이 만든 기회이기도 하지만, 글쎄요, 지난 경기를 살펴보면 소속 팀에서 프리킥을 찬 것을 본 적이 없는 선수입니다. 스틀링켈 감독이 특별히 지시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정우는 잔디를 꾹꾹 밟으면서 앞에 놓인 공을 바라봤다.
지난 훈련 기간에서 스틀링켈 감독이 특별히 시킨 개별 훈련.
그것은 다름 아닌 프리킥이었다.
그리고 그의 프리킥을 본 대표 팀 형들은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한정우 선수, 슈팅합니다!
뻥! 철썩!
어마어마한 정확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고오오오올! 한정우 선수의 두 번째 득점!
-네, 들어갑니다! 크게 휘어서 골대 좌측 상단으로 들어갑니다! 이번에는 오른발로 프리킥을 통해 득점에 성공합니다!
-감아 차는데 휘어들어 가는 게 일품이네요!
-저렇게 넣기도 쉽지 않은데요, 대단합니다! 골키퍼 알고서도 손써 볼 수 없는 그런 골이었어요!
정우는 골이 들어가는 순간 그대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어깨에 달린 태극 마크에 키스하면서 달렸다.
그런 정우를 향해 관중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고, 정우는 그 소리에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수만 관중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었다.
TV를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으리라.
부천에서, 챔피언십이란 곳 안에 있던 송곳이 기어이 그곳을 뚫고 나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 자식!”
“이 귀여운 놈!”
달려가는 정우에게 형들이 달려들었다.
손형민이 가장 먼저 달려와 정우의 이마에 뽀뽀한다. 정우가 질색하는 가운데 이번에는 기선용이 정우의 어깨 위에 팔을 올려놓고 마구 머리를 비볐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스틀링켈 감독은 통역사를 바라봤다.
[이래도 저 선수를 차출하지 말았어야 했나?]그의 물음에 통역사는 고개를 저었다.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원더 보이네요.] [그렇지? 하하하.]스틀링켈은 매우 만족스러워하며 웃었다.
그 가운데 경기가 재개되었다.
중국 선수들의 표정은 침통하기 그지없었다.
어린 소년에게 전반 35분 만에 2골이나 먹혔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그것은 중국의 응원단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3 대 0으로 한국을 이겼던 과거를 떠올리며 축구굴기로 새롭게 태어난 중국은 이제 한국과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며 찾아온 길이었다.
결과는 보기 좋게 지고 있었다.
그 반대로 한국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었다.
관중도 마찬가지였다.
한 수 가르쳐 주길 간절히 바라던 차였으니 지금 이렇게 앞서나가는 것이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논란을 벗고 두드러지는 활약을 하는 정우의 모습에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활약 앞에 중국은 기가 죽을 법도 하지만, 침통해할 뿐 기세가 죽지는 않았다. 흥분은 하되, 사기가 꺾이지 않고 여전히 저돌적인 저 모습이 중국의 최대 장점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의 저돌적인 모습은 2골이 먹힌 직후 두 번의 역습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침투 능력은 생각보다 좋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중국의 역습보다 한국의 수비가 좋지 못했다.
장헌수와 오재성은 빌드 업해 공격을 지원할 때 그럭저럭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지만, 쉬이 내려올 줄을 몰랐다. 경기 자체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사실 이런 단점은 한국 선수들에게 자주 보이고 있었다.
기술과 전술이 아닌 실적과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체력이 위주가 되는 한국 유소년 시스템에서 성장한 탓이 컸다.
그래서 한국 선수 중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은퇴할 즈음이 돼서야 경기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몸은 그것을 받쳐 주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정도였다.
그런 그들의 빈자리를 메꿔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윤석이었다.
오늘 윤석은 올라가서 공격을 주도하는 역할보다 수비를 보완해 주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기선용보다 수비력이 좋은 윤석이 더욱더 아래로 내려간 경향이 있었다.
윤석이 홍전호와 김기휘의 앞에서 차단해 주거나, 그들이 막지 못한 선수를 막아 내 주지 않았다면 진즉에 1골이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이진 않지만 나름대로 전술과 기술을 중시하고, 타고난 윤석의 재능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윤석은 수비적인 부분에서 빛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점 때문에 홍전호와 김기휘가 지나치게 윤석에게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윤석이 올라갈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스틀링켈 감독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경기에서 중국에게 실점을 허용했을 수도 있었다.
오늘의 경기는 완벽하게 실점 없이 이겨 사기를 키울 필요가 있는 경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윤석이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윤석은 평소 플레이 스타일과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후방에서도 전방을 향해 치명적인 패스를 넣어 주면서 경기 자체를 지배하던 피를로.
그와 같았다.
단 한 번의 패스가 전방에 연결되는데 그게 그렇게 치명적일 수가 없었다.
경기 자체를 읽어 내는 시야가 없었다면, 강력한 킥력과 그 킥력을 바탕으로 하는 뛰어난 패싱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안드레아 피를로에겐 자신을 보호해 주고 지원해 줘야 하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가투소와 같은 친구 말이다.
하지만 윤석에겐 그것이 필요 없었다.
필요하면 본인이 가투소가 되고, 피를로가 되었으며 부족한 수비력을 메꿔 주기 위해 본인 스스로가 마케렐레가 되었다.
중국 선수들의 시선에 윤석은 점차 넘지 못할 철옹성, 그것도 단 한 방에 치명적인 살상력을 보이는 대포를 지니고 있는 철옹성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또 막힙니다! 한윤석 선수에게 또다시 막히는 중국!
-캐논슛으로 골키퍼 사냥꾼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면서 공격적인 면모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한윤석 선수가 가장 무서운 점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경기장을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나타나 맥을 끊어 버립니다! 태클 실력도 대단하고, 종횡무진 경기장을 누비는 활동력도 무섭습니다!
-선수들의 능력치를 도형으로 표현하자면, 한윤석 선수는 어디 하나 모자람이 없는 육각형의 완성형 선수라고 평가되곤 하죠?
-그렇습니다. 이미 완성형에 가까운 이 선수가 자신의 잠재력을 모두 만개해 완성된다면 과연 어떤 선수로 평가될지 정말 궁금합니다!
해설들의 연이은 칭찬 속에 윤석은 흘끔 전방을 보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리쉐펑을 밀어 내며 가뿐하게 롱패스를 보냈다.
패스가 빠른 속도로 필드를 가르며 나아간다.
레이저같이 쏘아진 패스는 이정용의 발끝에 걸렸다.
힘 있게 실려 날아온 공임에도 불가하고 전방으로 공을 흘리며 치고 달리기에 적합한 패스였고, 단숨에 중국의 라인을 깨부수는 패스였다.
기가 막힌 패스에 산전수전 다 겪은 이정용도 내심 혀를 내두르며 측면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남은 시간은 8분여.
1골을 더 만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 가운데 펑샤오팅이 이정용을 맞이했다.
이정용은 공을 옆으로 끌면서 펑샤오팅을 피해 페널티에어리어 중앙을 향한 코스를 찾다가 정우가 펑샤오팅의 뒤에서 나타나자 펑샤오팅에게 가벼운 상체 페인팅으로 일시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정우에게 패스하고 본인도 안으로 들어가며 펑샤오팅의 길을 막아섰다.
정우가 페널티에어리어 우측에서부터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의 정우에게 이미 한 번 당한 정즈가 긴장한 얼굴로 정우를 맞이했다.
정우는 아까와 같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정즈에게 달려들었다.
골대를 향한 코스는?
정즈와 골키퍼가 절묘하게 가리면서 골을 넣을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정우는 그대로 정즈가 있는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것을 보며 정즈는 콧방귀를 꼈다.
아까와 같이 넓은 장소도 아니었고, 정우도 속도가 붙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신이 쉬이 뚫리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게 착각이었다는 것을 아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우는 몇 걸음 떼지 않은 상황에서도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좁은 간격만 있어도 정우는 다른 사람들이 낼 수 있는 것 이상의 순간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정즈가 당황하며 정우에게 달려들었다.
아까와 같이 라 크로케타와 같은 드리블을 사용하기엔 페널티에어리어는 여전히 좁았고, 그런 드리블을 이용할수록 골대와 각도는 줄어들 것이다.
[어디 해 봐라!]정즈가 호기롭게 외치는 가운데 정우가 그대로 멈춰 선다.
[흥.]역시나, 득의양양한 마음으로 정즈는 멈춰 선 정우의 아래쪽을 바라봤다.
[고, 공이!]공이 없었다.
[위!]순간 뒤에서 또 다른 수비수인 런항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즈의 위를 향한다.
정즈는 그제야 정우의 요란한 잡기술(?)에 속아 넘어간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정우는 자신의 몸으로 공을 가리며 레인보우 플릭을 시도한 것이다.
그것도 정즈의 머리 위를 한참 넘어서는 기나긴 레인보우 플릭이었다.
정즈가 작정하고 막는다면 정우도 잡지 못할 정도로 높이 뜬 공.
무슨 의도가 있을까 싶어 정즈가 뒤로 몸을 돌리는 순간, 자신에게 경고를 날렸던 런항은 구자천에게 묶여 있고 손형민이 침투해 들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정즈는 눈을 질끈 감았다.
철썩!
-골! 골 골 골! 3 대 0! 서울에서 중국이 침몰하고 있습니다!
-막강한 공격력의 우리 대한민국! 전반에만 3골을 몰아칩니다!
-축구굴기의 꿈이 이대로 무너지나요?
골을 넣은 손형민이 댑댄스를 추더니 그대로 정우에게 달려들어 정우를 안았다.
“네이마르인 줄 알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
“그냥 뭣도 아닌 게 우쭐거리니까 장난 좀 친 거예요.”
“그래? 하하하, 멋졌다! 고마워!”
-손형민 선수의 침투도 좋았지만, 한정우 선수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패스로 정즈를 묶어 버렸습니다. 정즈는 순간 공이 없어진 줄 알았을 거예요. 레인보우 플릭으로 저런 패스를 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더 놀라운 것은 골키퍼도 그것을 제대로 못 봤다는 겁니다. 절묘한 각도에서 골키퍼의 시야도 가려 버린 거죠! 그 이전에는 라인을 단숨에 붕괴하면서 치명적인 패스를 한 한윤석 선수가 있고, 펑샤오팅을 묶어 두는 이정용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공격력이 무섭습니다!
공격적인 모습에서 대한민국은 압도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3골이나 허용한 중국이 힘없이 경기를 재개하는 가운데 얼마 가지 않아 그렇게 전반전이 마무리되었다.
로커 룸에서 스틀링켈 감독은 공격진들에게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대신 수비진에게는 호된 질타가 이어졌다.
윤석이 없었다면 벌써 몇 번이나 실점을 허용했을지 모른다는 그의 말에 수비수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수비수를 질타한 스틀링켈 감독은 윤석을 바라보고 말했다.
[수비적으로 가담한 것은 매우 잘했다. 후반전에서부터는 상황에 따라서 최전방으로 올라가 보게. 그 무시무시한 캐논슛을 직접 보고 싶군.]스틀링켈의 농담 섞인 말을 건네자 윤석은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하…….”
스틀링켈의 말을 알아들은 손형민이 옆에서 말했다.
“감독님이 너에게 살인 면허를 부여했다. 잘할 수 있겠지?”
“살인 면허라뇨…….”
“거기까지. 반문은 불허한다!”
손형민의 말에 윤석은 별다른 말 없이 웃으면서 땀에 젖은 유니폼을 벗었다.
꽉 짜여진 단단한 윤석의 근육을 보고 계속해서 장난을 치려던 손형민이 입을 다물었다.
저것이 윤석의 힘의 근원이니라.
철갑같이 둘러진 몸은 보디빌더 대회를 나가도 될 정도였다.
특별히 먹는 것을 가리지 않고, 운동을 과도하게 한 것도 아니지만, 윤석의 몸은 그렇게 단단했다.
모두가 감탄, 아니, 질린 표정을 짓는 가운데 어느덧 후반전이 다가왔다.
선수들이 하나둘 로커 룸을 빠져나가는 사이 일일이 선수들의 어깨를 두들겨 주던 스틀링켈은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까지는 10번다운 활약이었네.]통역사가 말을 번역해 주자 정우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쭉 10번을 달 수 있을 활약을 보여 주게나.]스틀링켈 감독은 그리 말하고 정우보다 먼저 로커 룸을 빠져나갔다. 잠시 멈춰서 생각에 잠기던 정우는 입술을 삐죽였다.
“나는 7번이 더 좋은데…….”
정우는 그리 투덜거리며 로커 룸을 나섰다.
경기장은 여전히 사람들의 응원 소리로 요란스러웠다.
“형, 이 사람들 입장료만 생각해도 돈이 얼마일까?”
문득 수많은 사람을 보며 정우가 물어오자 윤석이 정우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뭔 생각만 하면 돈 타령이냐, 인마.”
“이 씨, 아파…… 그렇잖아. 저런 관중이 우리 부천에만 모여도 우리 부천 떼돈 벌지 않겠어? 매 경기 저리 오면 한 시즌 만에 클럽하우스 지어 주겠다, 부천에서.”
“흰소리 말고 열심히 뛸 생각이나 해!”
“그거야 당연하고! 쩝, 아쉽다. 그래도 우리 이렇게 활약하고 그러면 부천에서도 관중이 좀 늘 거야, 그지?”
정우의 말에 윤석이 멈칫했다. 그러고는 동생을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
“한 만 명 정도 올 수 있게 노력해보자.”
“햐, 이제야 말이 통하네, 우리 형. 형이 1골 넣고, 어시스트 세 번 하고, 내가 해트트릭하면 딱 이겠다. 그지?”
정우의 말에 윤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찔러 줄게.”
터덜터덜 걸어가는 중국 선수들을 바라보며 윤석이 말을 이었다.
“넌 때려 넣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