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61)
형제의 축구-61화(61/251)
형제의 축구 61화
에이전트
-우리는 그 둘을 관찰하고 있소.
“그게 나한테 전화한 이유요?
-…….
“흐음…….”
풍성한 수염의 유럽인 사내는 자신의 수염을 긁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 사내를 향해 전화기 너머에서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시점에서 자국에서 한국에 네트워크를 두고 있는 에이전트 중 가장 명망이 있는 사람은 그대뿐이지. 그래서 우리는 그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굳이 나를 거치지 않아도 그쪽이라면 충분히 그 둘을 영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내의 물음에 잠시 대답이 없던 수화기 너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미 한 번 실패했소. 타국으로 올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더 좋은 조건으로 제시한 곳이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들을 포섭해 우리 쪽으로 연결해 줬으면 좋겠소. 만약 성사된다면 선수 계약과 별개의 이익이 추가될 거요.
“흐음…… 하지만 생각한 것보다 나는 한국에서 그리 유명하지 않습니다. 내 선수라면 모를까.”
-아무것도 없는 에이전트보다는 그대가 훨씬 영향력이 있겠지. 우리는 그대에게 토마스 크로트와 같은 역할을 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오로지 우리에게만 연결될 수 있도록 해 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토마스 크로트는 독일의 에이전트로 일본의 선수들을 저렴한 가격, 아니면 자유계약 상태에서 독일 유수의 팀으로 연결해주는 것으로 유명한 에이전트였다. 주 고객은 노이어가 있고, 일본과 연결해서 이적을 성사시킨 대표적인 선수만 해도 카가와 신지, 하세베 마코토와 같은 선수가 있었다.
-아, 물론 터무니없는 이적 금액이 없으면 좋겠지.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이적료는…….
이적료를 전해 들은 사내의 눈은 휘둥그레 떠졌다.
만약 이 자리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면 크게 손해를 볼 정도로 격정적인 표정이었다.
사내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답변했다.
“그럼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이내 끊어진 전화를 바라보며 사내는 입을 열었다.
“자국 선수들로도 모자란다는 건가. 다른 곳도 거치지 않고 바로 ‘본진’으로 그들을 데려올 생각이라니…….”
그것도 에이전시를 이용할 정도로 말이다.
문득 자신의 선수가 뛰었기 때문에 자신도 지켜봤던 월드컵 최종 예선을 떠올린다.
한국에서 자신의 선수 이상의 재능을 지닌 선수는 다시는 없을 거로 생각했던 것을 완전하게 뒤집었던 그들.
“그들이라면 이쪽에서 관심을 보일 법도 하지. 뭐, 나로선 손해 볼 일이 절대 없으니까.”
사내는 그리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처럼 즐기던 맥주는 잊힌 지 오래였다.
서둘러야 한다.
아마 지금쯤 자신과 같이 그들을 노리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핸드폰으로 부하 직원에게 전화를 건다.
“빌, 나야. 당장 한국으로 갈 비행기 편을 알아봐 줘. 자네도 준비하고. 그래, 공항에서 만나도록 하지. 알았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
“한국은 지금 몇 시려나?”
* * *
“자, 할머니, 어떠세요?”
“아이고, 시원하네. 이리도 시원할 수 없어.”
할머니의 말에 간호사는 웃으면서 물리치료기의 벨트를 단단히 고정하고서 자리에서 일어서며 뒤돌아섰다.
“이대로 30분 정도 지나면 소리가 날 거예요. 그때 저 불러 주세요.”
간호사를 바라보며 윤석과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형제를 바라보며 머뭇거리던 간호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어, 가능하면 사인 좀…….”
간호사의 말에 윤석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정우가 말했다.
“사인지 가져오면 열 장이고 해 드릴게요. 신경 좀 더 써 주세요.”
“아무렴요. 혹시 그럼 저희 병원 직원들하고 사진도 가능할까요? 원장님도 바라시는 것 같은데.”
“당연하죠. 할머니 물리치료 끝나면 해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두 분 다 팬이에요!”
“하하, 감사합니다.”
형제는 기분 좋게 웃었다.
오늘은 할머니를 위해 병원 이곳저곳을 열심히 다닌 날이었다.
부천에서 가장 큰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은 뒤, 부천 유나이티드를 후원하고 있는 한방병원에 들러서 침을 맞고 할머니가 평소 아파하던 부위인 허리와 무릎을 대상으로 물리치료를 받고 있었다.
따듯한 찜질기 덕분인지 할머니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해 보여서 형제의 기분은 좋았다.
“할머니, 어때, 개운해?”
“그려, 따시니 좋네.”
“여기 원장님이 우리 팀 후원하시는 분인데 특별히 신경 써 주실 거예요. 시간 있을 때마다 들러서 물리치료 받으세요.”
“어이구, 염치없이 무신…….”
“물리치료 정도는 공짜로 해 주실 수 있으신 분이에요. 자선사업으로 독거노인 분들도 공짜로 치료해 주시고 좋으신 분이야, 여기 원장님.”
“그럼 다행이구…….”
할머니도 내심 싫지 않았는지 한사코 거절은 하지 않았다. 그런 할머니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할머님, 좀 편하세요?”
“아이고, 원장님. 편하다마다요. 이리 좋을 수 없수.”
“하하, 다행입니다. 우리 병원 자주 찾아오세요. 찜질이나 침 정도는 놔 드릴게요. 그리고…….”
원장은 간호사에게 박스를 받아 들어 형제에게 건넸다.
“이건 할머님 보약이야.”
“에……. 원장님, 우리는 보약 시키지 않았는데…….”
윤석의 말에 원장이 웃으며 말했다.
“팬이 주는 조공이라 생각하게. 연예인들 보면 팬들이 조공이니 뭐니 하면서 선물하고 그러더군.”
“그래도…….”
“별거 아니니 받아 둬. 할머니가 건강해야 자네들도 맘 놓고 경기할 거 아닌가.”
윤석이 머뭇거리자 정우가 냉큼 그것을 받아들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골로 보답할게요.”
“하하하, 역시 정우군 답네. 요즘 골 넣는 거 보면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기분이야. 남은 경기도 부탁함세.”
“헤헤, 감사합니다.”
“아이고…… 정우야, 그런 걸 다…….”
여전히 넉살 좋은 정우를 윤석과 할머니가 흘겨보는 가운데 원장이 주변을 휙휙 둘러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나저나 요즘 어디 이적 오라는 소리는 없던가?”
“아…….”
“역시 있었군?”
“그게요…….”
“유럽이 아니라면 그 이적, 팬으로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거 알지? 어디에서 왔는가, 나에게 슬쩍 좀 말해 보게.”
원장의 말에 윤석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안 그래도 자국이나 중국, 일본 이적은 감독님이 다 거절하셨어요.”
“유럽은? 유럽에서는 없어? 소문을 듣자니 유럽에서도 관심이 있는 곳이 있다는 것 같던데.”
“글쎄요…… 그것 때문에 안 그래도 감독님이 저랑 정우를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야기 좀 하자고…….”
“그런가? 하긴, 아끼는 제자들인데 송 감독이 알아서 하겠지. 이거 자칫하다간 이번 시즌을 끝으로 자네들을 부천에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군. 함께 K리그 프리미엄으로 진출하는 것도 기대했는데…….”
“하하…….”
윤석과 정우가 멋쩍어하자 이내 원장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부천 팬이라서 후원하고 있긴 하지만, 자네 형제의 팬이기도 하네. 원망 같은 건 안 해. 한 사람의 팬으로서 어디까지 올라가나 지켜보고 싶지. 오늘 사진 한 방 꼭 찍고 가. 나중에 성공하거든 나도 자네들 성장에 한몫 거들었다고 자랑 좀 하게. 알았지?”
“하하, 알겠습니다.”
원장은 형제를 보고 예뻐 죽겠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두들겨 주고는 물러났다. 그런 원장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참으로 여러 곳에서 신세를 지는구나.”
“그러게요…….”
“그 신세 잊지 말거라. 잘되는 게 다 저런 분들 때문 아니여. 알겠누?”
“당연하지! 더 성공하면 꼭 보답할 거야!”
“그래, 그래.”
할머니는 형제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신세를 진다고 하지만, 다 형제가 열심히 하고 좋은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저런 분들이 관심을 보이고 사랑해 준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할머니는 그런 형제가 대견스러웠다.
* * *
“아, 왔구나.”
열심히 무언가를 훑어보던 송진호는 형제가 슬그머니 사무실로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님 병원은 잘 다녀왔냐?”
“네, 한방병원에서 신경 써 주셔서 잘하고 왔습니다.”
“건강검진 결과는 내일모레 오래요.”
“그래, 잘했다. 할머님이 건강해야 너희도 맘 편히 축구하지.”
“헤헤.”
“그래, 여기 앉아 봐라.”
송진호 감독이 사무실 내부에 자리 잡은 소파를 가리키며 말하곤 형제가 앉는 것을 보며 냉장고를 열었다.
“주스 줄까?”
“주면 감사하죠.”
“그래.”
이내 형제의 앞에는 음료수가 자리 잡았다.
형제가 음료수를 들이켜는 것을 보며 송진호는 마주 앉았다.
새삼스럽게 형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 어리던 아이들이 어느덧 의젓한 어른이 되어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을 마주하고 순댓국 먹으며 감탄하던 것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속에서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삐뚤어지지 않고 훌륭하게 자라 주머니 속 송곳처럼 벌써부터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짜식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이런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니…….
입이 쓰고 아쉽긴 하지만 송진호는 입을 열었다.
“부르기 전에 말했지만, 이적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네…….”
“음…….”
무거운 얼굴을 하는 제자들을 바라보며 송진호는 말을 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너희들과 K리그 프리미엄에 입성해서 함께하고 싶지만, 내 마음대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들이 있어서 너희를 불렀다. 우선 개별로 영입하고자 하는 곳부터 말해 주마. 윤석이는…….”
송진호가 말을 하려는 순간 윤석이 입을 열었다.
“잠시만요,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감독님.”
“그래, 왜?”
“우선 개별이라는 말씀은…… 우리 형제를 함께 영입하고자 하는 곳도 있다는 말씀이세요?”
“그렇지.”
“그러면 그곳만 말씀해 주세요. 다른 곳은 필요 없어요.”
“맞아요, 감독님.”
형제의 말에 송진호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응? 그래도 이거 조건들이 좋은데? 기회이기도 하고 말이다. 윤석아 당장 너는 독일 레버쿠젠에서 콜했단다. 알지? 레버쿠젠? 그 손형민이가 뛰었던 거기 말이다. 정우, 너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팀에서 영입 의사를 보내왔단다. A매치 경기를 봤던 모양이다. 스포르팅과 아약스는 들어 봤겠지?”
레버쿠젠과 스포르팅, 아약스.
모두 무시할 수 없는 명문 구단이었다.
이곳을 발판으로 유수의 강팀으로 이적한 선수가 얼마나 많던가. 당장 레버쿠젠에는 손형민이, 스포르팅에는 축구의 역사이자 전설로 남을 위대한 선수 호날두가 몸담았던 구단이었다.
그런 곳을 마다한다?
아무리 형제라고 하지만, 이 조건은 갈라서더라도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던 송진호였다. 그런데 이리 단칼에 거절하다니…….
“마음 같아서야 당장에라도 가고 싶죠. 그런데 감독님, 그렇게 되면 우리 할머니가 걸려서요…….”
“할머님이 왜? 아…….”
무언가 알겠다는 듯 송진호가 탄성을 내질렀다.
“형 말대로 할머니 때문에 아직은 힘들 것 같아요. 우리도 결혼하고 가정이 생긴다면 한쪽에서 모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지금은 아니잖아요. 이왕이면 형이랑 저랑 같이 할머니 모시고 싶어요. 그렇다고 할머니를 한국에 홀로 두고 싶지도 않고요.”
“그러냐…….”
형제는 한국에서 할머니를 홀로 두는 것도, 그렇다고 한쪽에서만 모시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이왕 데려가서 모실 거면 함께 모시고 싶었다. 그게 가능하지 않다면 가능할 때까지, 아니면 둘 중 하나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룰 때까지 한국에서 있을 생각도 있었다.
“그래, 너희 생각이 그렇다면 너희 둘을 모두 원하는 구단만 이야기해 주마. 사실 아까 말해 준 개별적인 요청이 있던 구단보다는 손색이 있단다. 보자…….”
그렇게 송진호가 이야기해 준 곳들은 잉글랜드의 2부 리그 팀 두 곳과 독일 분데스리가의 잉골슈타트라는 곳이었다. 잉글랜드의 2부 리그의 팀은 승격은커녕 시즌이 몇 개월 지난 지금 강등이 예상되는 팀이었고, 잉골슈타드 역시 하위권을 달리고 있는 팀이었다.
그 외에 헝가리나 오스트리아, 벨기에 리그에서도 형제를 원하는 곳이 있었다.
“으음…… 3부 리그는 좀…….”
“그래, 내가 봐도 K리그보다도 손색이 있다고 본다. 너희들에게 손해야. 잉골슈타드는 그래도 괜찮다고 본다. 강등된다고 해도 너희들이 그곳에서 반 시즌 잘해 주기만 해도 데려가려는 곳이 있을 테니 말이다. 아니면 벨기에나 오스트리아도 나쁘진 않지. 휘찬이도 오스트리아에서 시작하고 있지 않냐. 잘츠부르크던가?”
형제는 생각에 잠겼다.
사실 쉽게 마음이 정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부르면 무조건 가기에는 어떻게 보면 인생을 건 모험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해지고 싶었던 탓이다.
“뭐, 급한 것은 아니니 차분히 생각해 봐라. 이거 생각보다 대화가 일찍 끝났네.”
“사실 아는 게 너무 없어서 걱정입니다. 언어 문제도 그렇고 생활도 그렇고…….”
“그렇지, 쉽진 않지. 하지만 유럽행은 흔치 않은 기회다, 축구 선수로서 말이지. 사실 아시아는 아직까지 축구 불모지라 생각하거든.”
“네…….”
무지로 인한 두려움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가만히 형제를 바라보던 송진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면 에이전트를 고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에이전트랑 연결을 해 줄까?”
“일단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급한 거 아니니 당장에 집중하자. 이 스승에게 트로피 하나는 안겨 줘야 할 거 아니냐?”
송진호가 농담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정우가 씨익 웃었다.
“이왕이면 두 개 안겨 드릴게요.”
“그래? 그러면 나야 더 좋지, 하하하.”
세 사람은 나란히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더블.
하지만 시즌이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에 와서는 손 안에 잡힐 듯 가까워져 있었다.
형제는 아직은 시간이 남은 이적보다도 남은 경기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신들을 키워 준 스승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