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67)
형제의 축구-67화(67/251)
형제의 축구 67화
유종의 미
FA컵 2차전의 날이 밝았다.
1차전이었던 부천 종합 운동장에서 경기에서 울산은 부천을 잘 막아 내며 무승부를 이끌어 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2차전이 결과가 FA컵의 우승자를 가리는 경기가 되었다.
울산의 홈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비록 K리그에서는 당초 목표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지만, FA컵 결승에 진출하면서 울산과 팬들은 이번 경기가 사활을 건 경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FA컵 우승자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참가 티켓을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었고, 최소한 FA컵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만으로도 이번 시즌을 위안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인 윤정안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이번 우승컵을 들어 올려야 본인의 입지와 체면을 지킬 수 있었다.
감독이 그런 판이니 선수들도 두말할 것 없었다.
울산은 그만큼 비장했다.
그렇다고 부천이 울산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번 경기에 임하는 것은 아니었다.
부천은 우승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는 팀이었다.
아주 과거 계보를 잇는 최초의 전신인 부천 유건 코끼리가 89년 당시 K리그 우승, 그리고 94년에 지금은 폐지하고 없는 리그컵 우승을 거둔 것과 부천 SG에서 96년과 2000년도 당시 리그 컵을 들어 올린 것이 다였다.
엄밀히 따져서 부천 유나이티드 1995라는 정식 명칭에서 볼 수 있는 창단 시점으로 역사를 따지고 본다면 그들은 단 한 번의 우승도, 단 한 번의 FA컵 우승컵도 없다는 소리였다.
FA컵은 그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시발점이 되어 줘야 했다.
다음 시즌부터 K리그 프리미엄으로 입성하는 부천이 프리미엄의 팀들을 향한 도전장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도 이번 경기를 결연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결연하게 준비하고 이번 경기를 맞이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형제였다.
형제는 독일에서 날아온 라이프치히의 직원이 건네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 이적이 확정되었고, 이 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구단 내부의 스탭과 선수들은 모두가 알게 되었다. 이번 경기는 부천에서 형제의 마지막 경기가 된 것이다.
형제는 생각했다.
이번 경기에서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고.
자신들을 이 자리까지 키워 준 감독을 향한 최고의 이별 선물이 우승컵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가…….”
“뭐?”
정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늘 경기가 데뷔전 때보다 더 긴장된다.”
“음, 다른 경기와 다를 바 없어. 너무 긴장하지 마.”
윤석의 말에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리그는 이번에 져도 다음 경기에 잘하면 되잖아. 물론 막판에는 똥줄이 탔지만, 근데 FA컵은 이제 오늘 이 경기 하나로 모든 게 결정되잖아. 우승이냐 아니면 실패냐. 컵대회는 영 별로인 것 같아.”
“일리는 있네. 근데 생각해 봐.”
“뭘?”
정우가 바라보자 윤석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승리가 짜릿할 거다.”
형의 말에 정우는 오, 하고 탄성을 지르다가 형의 팔을 툭 하니 치며 말했다.
“형이 그런 말 하니까 뭔가 엄청 이상한데? 아무튼, 형 말도 틀리진 않네. 엄청 짜릿할 거야. 키스보다도 더.”
“……키스는 해 봤냐?”
윤석의 물음에 정우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형제는 모태 솔로였다.
심지어 여자 손도 잡아 본 기억이 없었다.
그걸 상기한 정우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 도대체 내가 어디가 모자라서 지금까지 모태 솔로인 거지?”
“글쎄…… 여자랑 만날 기회가 있었나, 어디.”
“으으…… 이럴 줄 알았으면 학교 다닐 때 나 좋다고 고백했던 지영이를 밀어내는 게 아니었는데…… 주희도…… 민영이도……. 아, 소현이도 있는데.”
“…….”
윤석은 문득 동생이 얄미워졌다.
연애를 못 해 봤을 뿐이지 곱상하게 생긴 정우는 언제나 좋다고 따라다니던 여자가 있었다. 축구에 미쳐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여자를 마다했을 뿐이지, 정우에겐 연애의 기회가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독일 가서 여자 사귀어라. 그럼 되지.”
윤석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정우는 히죽 웃었다.
“백인이라? 그거 그림 좀 나오겠네. 그래도 난 한국 여자랑 결혼할래.”
“왜?”
“백인 여자는 된장찌개를 못 끓이잖아.”
“그 말은 된장찌개를 잘 끓여 주면 백인도 괜찮단 소리로 들린다?”
“난 요리 잘하는 여자가 좋아. 우리 할머니한테 요리도 배우고 그래 줬음 좋겠다.”
정우는 그리 말하며 양말 속에 삐뚤어진 정강이 보호대를 정리했다.
이제 입장할 시간이었다.
“아, 형은 이상형이 뭐야? 한 번도 안 물어본 것 같네?”
정우의 물음에 윤석은 멈칫했다.
이상형이라…….
많은 조건이 있겠지만…… 역시…….
“키 170센티미터 넘는 여자?”
“…….”
정우는 형이 얄미워졌다.
-한국은행 FA컵! 대망의 결승 2차전이 펼쳐집니다! 이곳은 울산 월드컵 경기장입니다! 지난 1차전에서 부천의 홈에서 울산이 값진 무승부를 거뒀죠?
-네, 맞습니다. 울산의 입장에서는 최선은 아닐지 몰라도 긍정적인 경기 결과였습니다. 윤정안 감독의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었죠. 지금까지 팀들과 다르게 윤정안 감독은 부천을 강팀으로 인정하고 오히려 울산을 약팀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필사적인 텐백 전술로 부천의 공세를 막아 냈습니다. 악명 높은 부천의 홈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으니 이제 홈에서 부천을 상대로 이기기만 하면 되는 상황입니다.
-울산의 입장에서 부천보다는 부담이 덜 하겠군요.
-그렇죠, 아무래도 홈경기니까요.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부천은 여러 측면에서 한 방이 있어요. 이 팀을 결코 챔피언십의 팀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늘 선발 출전하는 최전방의 바그지뉴, 루키앙, 한정우 모두 챔피언십에서 10골 이상을 기록하고 있고, 무엇보다 한정우 선수는 경기당 1골이라는 놀라운 골 결정력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방에는 한윤석 선수가 있습니다. 이 선수에게 공포심을 가지고 있는 골키퍼가 한둘이 아니에요.
-듣기로는 울산도 이를 예측하고 이번 경기에서는 골키퍼에게 각종 안전 장비를 착용시켰다고 합니다. 가슴 보호대부터 두꺼운 장갑까지 행여나 주전 골키퍼가 부상당하는 것을 막아 뒀다고 하더군요.
-그럴 만합니다. 겁쟁이라고 비웃을 수도 없어요. 한윤석 선수가 작정하고 슈팅하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해설들의 이야기 중 선수들이 모두 입장에 각자의 진영에서 위치를 잡았다.
이제 주심이 휘슬만 불면 경기가 시작된다.
선수들 모두가 결연한 표정으로 상대편 진영을 바라봤다.
그리고 마침내 휘슬이 울렸다.
-경기, 시작합니다! 부천의 선축입니다!
부천의 선수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공을 뒤로 물린 정우는 미친 듯이 전방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전력 질주.
질풍 같은 그 속도에 울산이 순간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윤석에게 향했던 공이 다시 바그지뉴에게, 그리고 미드필더 진영까지 올라간 루키앙에게 전달되었다.
루키앙은 울산의 미드필더를 상체 페인팅을 부려 피하면서 앞을 바라봤다.
일직선상에 정우가 보였다.
루키앙은 빠르게 정우에게 공을 패스했다.
공을 보내면서도 루키앙은 뭔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공을 받은 정우는 등진 상태에서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수비수의 힘을 반동 삼아 옆으로 턴하면서 앞으로 나선다. 다급하게 옆에 있던 다른 수비수가 정우의 코스를 막는다.
급하게 달려오느라 어정쩡했다.
달려오는 방향으로 들어갈 듯 모션을 주면서 수비수를 더 깊숙이 들어오게 하면서 정우는 오른쪽으로 공을 밀어내며 그 수비수의 등 뒤로 파고들었다.
뒤늦게 수비수가 몸을 돌렸지만, 정우는 이미 수비수의 발이 닿는 범위를 벗어나 골키퍼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아아, 이거, 이거이거!
퉁!
가벼운 슈팅.
철썩!
-고오오오오오올! 골골골! 전반 14초! 한정우 선수가 단시간 만에 골을 만들어 냅니다!
-와, 이럴 수가! 정말 대단합니다! 그야말로 바람이었어요! 아무도 한정우 선수의 질주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울산 시작부터 경기가 꼬이는군요! 이런 기습은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골을 넣은 정우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늘은 뭔가 좀 되려나 보네.”
지난 경기에서 애를 먹었던 정우였다. 정우의 주변을 돌아가면서 순차적으로 막아 내던 울산의 선수들 앞에 쉬이 골을 넣지 못했었다. 정우의 입장에서 변명하자면 그날은 컨디션이 영 좋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더할 나위 없이 가벼워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날은 뭘 해도 되는 날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뭘 해도 되려나 보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일말의 긴장감이 단숨에 날아가 버렸다.
그 순간 형들이 모두 몰려들어 정우를 안았다.
시작부터 부천이 기세를 올렸다.
울산 선수들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먹은 첫 골에 당황한 듯 이어지는 경기에서 실수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당황도 당황이지만, 흥분하고 조급해진 것처럼 보였다.
울산의 입장에서 부천의 1골은 치명적이었다.
무승부로 끝난다고 해도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서 부천이 이기기 때문이다. 울산은 이제 최소 2골을 뽑아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부천과 달리 한 방이 모자란 울산은 수비를 강화하고 기습적인 역습으로 골을 만들거나, 아니면 승부차기까지 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다급하게 윤정안 감독이 라인 가까이 서서 선수들을 독촉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여유로운 송진호 감독도 윤정안처럼 나서서 선수들에게 뭐라 주문하기 시작했다.
“더 공격적으로 나서! 템포를 올리자!”
공이 라인을 넘어서 조준석이 스로인을 준비하는 사이에 송진호가 라인 가까이 붙은 윤석에게 지시했다.
윤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사이에 조준석이 던진 공이 윤석을 향했다.
윤석은 공을 받는 즉시 울산의 선수들을 등지며 빠져나와서 문지형에게 패스했다.
“형! 빨리요!”
윤석의 외침에 문지형이 즉각 윤석에게 공을 패스했다.
윤석은 다시 공을 받으면서 이번에는 측면으로 올라가는 조준석에게 공을 패스하며 연신 빨리빨리를 외쳤다.
윤석의 그 외침이 공격 템포를 올려야 한다는 의미인 것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점차 부천의 패스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차츰 부천의 라인도 올라갔다.
이는 울산이 원하는 상황이기도 했기 때문에 울산의 선수들은 라인을 내리면서 부천의 선수들을 압박해 들어갔다.
이제는 호흡이 물이 오른 부천의 선수들은 점차 좁아지는 공간 속에서도 즉각 동료를 찾아서 패스했다. 혹시 주변에 보이는 사람이 없다면 윤석에게 패스한다.
그러면 윤석은 바로 활로를 찾아내 그쪽으로 공을 몰아 줬다.
부천의 패스가 끊기지 않는 비결이었다.
울산은 윤정안이라는 당대 최고로 불리던 플레이 메이커 출신의 감독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윤석과 같은 인물이 없었다.
윤정안이 보고, 하고자 하는 경기를 풀어 내는 선수가 없다는 소리였다.
그것이 이번 시즌 울산을 힘들게 한 원인이었고, 부천은 오히려 윤정안이 바라는 그런 선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중원은 점차 부천의 소유가 되었고, 점유율이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