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70)
형제의 축구-70화(70/251)
형제의 축구 70화
이역만리의 땅
부천이 더블을 달성한 직후, 공식적으로 이적이 발표되었다.
행선지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신흥 팀, RB 라이프치히였다.
분데스리가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생소한 팀일 수도 있었다. 오죽하면 신문 기사에서 형제가 이적할 라이프치히를 소개할 때 황휘찬이 소속되어 있는 RB 잘츠부르크를 언급할 정도였다.
물론 유럽 축구에 관심이 많은 선수들에게는 어느 정도 익숙한 팀이었다.
각종 축구 관련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형제의 이적에 대해서 말들이 오고 갔다.
-라이프치히면 괜찮은 선택 아니냐?
-부자 구단이라 주급도 어린 선수치고는 짱짱하게 챙겨 줬을걸?
-분데스리가에서 라이프치히 존나 싫어한다는데, 하필 이런 곳으로 가냐? ㅋㅋㅋㅋ
-윤석이는 모르겠는데, 정우가 걱정이다. 젤케랑 티모 베르너에 유스폴센까지 공격수 자원 존나 경쟁력 있는 팀인데 과연 주전으로 뛸 수나 있을지…….
-위에 사람 뭘 잘 모르네, 라이프치히는 베스트 11이 거의 없다. 완전 로테이션 시스템임. 기회는 충분히 주어질 거임. 거기서 실력만 보여 주면 되는 거고.
-한정우가 독일 피지컬을 견뎌 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나는.
└한윤석은? ㅋㅋㅋㅋ
└독일 선수들 뚜드려 패고 다닐걸?
└우리나라는 생체무기를 독일에 수출한 거임.ㅋㅋㅋ
-아무튼, 가서 잘해 가지고 명문 팀 갔으면 좋겠음.
-용형호제, 리버풀로 와라! 잘해 주께!
└맨유가 적격임.
└맹구충 님, 콥등이 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대체적으로 지나치게 비관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미 K리그 챔피언십과 국가 대표에서 보여 준 퍼포먼스가 일정 수준을 넘어선 형제였다. 한국에서는 이 나이에 이만한 재능을 가진 선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저 형제가 가서 좋은 활약으로 성공해주기를 바랬다.
그렇게 이적이 발표되고, 시즌이 마무리되고 한 달이 넘도록 형제는 주변 정리에 들어갔다.
그것은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그동안 챙겨 줘서 고맙수. 사장이 없었음 우리 손주들 먹여 살리기도 힘들었을 텐디…….”
“아이고, 할머님, 그런 말씀 마세요. 손주분들 잘 둬서 호강하시겠어요. 유럽으로 간다면서요?”
“으응, 독일로 가우.”
“타향살이가 쉽지 않은데…… 그냥 한국에 있으셔도 되지 않아요?”
매일 같이 주워 온 폐지를 사주던 고물상 여주인의 말에 할머니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웃는 할머니의 입 사이에는 새하얀 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독일로 떠나기 전에 형제가 새로 해 드린 틀니였다.
“아니여, 내가 고생하더라두, 나 없음 걱정돼서 맘 편히 못 있겠다는 아들을 어찌 달랑 둘만 보내겠수.”
“그래도…… 고생하실 텐데, 아는 사람들도 없을 테고…….”
여주인의 물음에 할머니는 알듯 말듯 묘한 미소를 지었다. 세월의 현기가 묻어 나오는 할머니의 모습에 여주인은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요, 손주 사랑이 각별하신 분이니 손주랑 있으시는 게 좋으시겠죠. 가서도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해요, 할머님.”
“그려, 걱정 말아.”
할머니는 그리 말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온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늘 고물상을 찾은 이유는 고마움도 있었지만, 사실 살림살이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독일로 가져갈 수 없어서 모든 것을 처분하고 이제 남은 것은 이사뿐이었다. 계약이 끝난 상황이 아니었는데, 형제에게 감명받은 집주인이 계약을 해지해 준 덕에 전세 계약금도 돌려받았다.
“진짜 가는구먼…….”
그리 말하면서 할머니는 집 안에 유일하게 남은 짐을 바라봤다.
큼지막한 캐리어 가방이었고, 그 안에는 할머니의 옷가지 몇 벌과 할머니가 꼭 챙겨 가야 할 것들뿐이었다.
캐리어 가방을 열었다.
캐리어 가방 안, 가장 위에는 오래된 사진이 액자 속에 고이 들어 있었다.
빛바랜 사진이지만, 그 안에는 훤하니 잘생긴 사내와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영감, 보고 있수?”
아주 먼 옛날, 추억이 떠오른다.
결혼도 하기 전, 죽은 영감을 처음 만나고 사랑을 키워 가던 추억들.
그곳에서 인연이 결실을 맺어 결국 지금의 손주들이 태어났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때였다.
끼이익.
“할머니, 우리 왔어!”
형제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구, 바쁜디 뭐하러 집으로 왔어, 내가 가도 되는디.”
할머니의 말에 윤석은 웃으면서 할머니의 캐리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걸 할머니 혼자 어떻게 들고 가요. 제가 들고 가야죠.”
그리 말하는 사이 한 사람이 형제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뒤에는 누구여?”
“안녕하세요, 한윤석 선수와 한정우 선수의 에이전트가 된 티스 블리히마이스터라고 합니다. 편하게 티스라고 불러 주세요.”
“독일인이시우?”
“네, 부인. 제가 한참 어리니 편하게 대해 주세요. 부인께서 미리 집을 비워서 좀 더 빠르게 독일로 가게 되었습니다. 집도 이미 구해져 있습니다. 짐은 우리 직원들이 따로 보낼 겁니다. 그 전에 독일 관광이나 다니시죠. 독일은 멋진 곳이랍니다.”
“그렇수? 흘흘, 수염 많은 양반은 고향이 어디요?”
할머니의 물음에 티스는 웃으며 답했다.
“함부르크입니다. 아름다운 항구도시죠.”
“함부르크 말이우? 흘흘.”
“아세요?”
티스의 물음에 할머니는 또다시 추억에 잠겼다.
함부르크라니……
이것도 인연인 모양이다.
흐르는 강물, 아름다운 도시의 야경, 멋들어진 다리들.
그리고…….
“장크트미하엘리스 교회는 여전히 아름답수?”
“……네?”
티스도 형제도 당황한 얼굴로 할머니를 바라봤다.
할머니는 웃으며 티스에게 말했다.
“구텐 탁 이히 하이쎄 정례.”
발음이 세긴 했지만, 정확한 독일어로 할머니가 티스에게 인사했다.
형제는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고, 할머니는 그저 웃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이게 맞는가 모르겠구먼.”
오늘 형제는 살면서 볼 수 없던 할머니의 새로운 모습을 맞이하게 되었다.
* * *
“파독 간호사셨군요?”
“그려, 내 나이 스물이 넘어서 독일로 건너갔었지.”
티스가 모는 차에 탄 채로 할머니는 티스와 대화를 나눴다.
할머니는 1972년 2차로 파견된 파독 간호사였었다.
어려운 집안을 살려 보고자 지원해 독일로 건너간 할머니는 그곳에서 유학 중인 형제의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고 5년이란 시간의 연애 끝에 한국으로 건너와 정식으로 허락받고 결혼을 하게 되었고, 이듬해 형제의 아버지를 낳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부러울 게 없는 할아버지의 집안에서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고되긴 해도 유복하게 살아왔지만, 할아버지가 죽고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이후로 급격히 가세가 기울어 신앙촌의 집 같지도 않은 집으로까지 몰렸던 것이었다.
형제로서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할머니, 왜 그런 말을 안 해 줬어?”
“뭐 자랑할 게 있다고 말하누?”
“그래두 간호사씩이나 했는데…….”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 쳤다.
“말이 간호사지, 아이고, 서독 가서 돈 번다고 벼락치기로 간호사 되 가지구 한 거라고는 시체 닦고 똥오줌 받는 일이나 했응께. 그러다 보니 배운 것도 다 까먹고…… 그게 아니었음 니들 할아버지 죽고 바로 간호사라도 해서 벌어 먹었겄지. 니들 굶어 죽일 일도 없을 테고…….”
물론 만약이라는 가정이지만, 그게 그렇게 씁쓸하다.
가진 기술도 까먹고 힘들게 손주를 키워 온 시간이 그렇게 속상하고 아쉽다.
“그래도 정말 신기하네…….”
정우의 말에 할머니는 씁쓸히 웃었다.
살아온 세월 속에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도, 그 빛나던 추억들도 모든 게 모래알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은 고된 세월 속에서 이리 깎이고 저리 깎여 흉하게 늙은 자신만이 있었다.
“어쩐지 우리 할머니 글도 알고 그런다 했어. 글 모르는 할머니들도 많은데.”
“흘흘흘.”
할머니는 웃었다.
글뿐이랴?
“우리 손주들보다 독일어도 잘하지 않겠누? 그렇지 않수, 티스씨?”
“하하, 금방 다 기억하실 겁니다.”
“그래야지 않겠수? 우리 손주들이랑 길 잃어 먹음 나라두 말을 허야 하니께.”
“하하하하.”
유쾌한 웃음과 함께 티스의 차는 예약된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당도한 할머니는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아이구, 이런 호텔은 비싸지 않아? 이럴 줄 알았으면 이틀 정도는 더 있다 간다고 집주인한테 말했을 텐디.”
할머니가 걱정스럽게 말하자 티스는 웃었다.
“부인, 전혀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호텔 며칠쯤이야 제가 충분히 제공해 드릴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값이 만만치 않을 틴디…….”
할머니는 걱정을 덜지 못했다.
걱정보다는 티스에게 신세를 진다고 생각했다.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며 티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제가 형제분들 덕분에 번 돈을 생각한다면 이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장기 투숙을 해도 아깝지 않습니다.”
“잉?”
할머니가 놀라워하자 티스가 형제를 바라봤다.
“할머님에게 수익에 관해서 설명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아, 그게…….”
윤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말씀을 드렸는데, 실감이 나질 않으시나 봐요.”
윤석의 말을 듣고 할머니가 말했다.
“아니, 사실 말이 그렇지 않수. 축구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길래 그 큰돈을 계약금으로 준다고 하는거유? 연봉도 그렇구 말이오.”
“아이고, 이런. 부인, 형제의 몸값이 지금 얼마인지 아십니까?”
“글쎄…….”
“두 분이 120억입니다.”
“아이고, 세상에나!”
할머니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형제를 바라봤다.
형제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고, 티스는 유쾌하게 웃었다.
“지금은 고작 120억뿐이지만, 나중에는 두 분을 1천억에 모셔 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생겨날 겁니다. 제가 장담하죠.”
“1천억……!”
“연봉도 수백억을 받는 날이 올 겁니다. 지금은 고작 20억이 조금 넘지만.”
할머니는 얼이 빠졌다.
자신의 독일에서 월급은 그 당시 7백 원 남짓이었다.
그런데 수십억이라?
그 돈도 실감이 나질 않는데, 이 에이전트라는 양반은 수백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 손주들이…….”
그래도 기쁜 것은 있었다.
자신이 키운 손주들이 그 정도로 인정받는 소리가 아니던가.
당장 수십억의 돈보다는 그것이 더욱 기쁜 할머니였다.
* * *
독일로 출국한 형제와 할머니는 티스와 함께 일주일간 독일을 여행했다.
여행이라고 해 봤자 할머니의 추억이 서린 함부르크 일대를 구경하고 다닌 것이 거의 전부였지만 말이다. 할머니는 그때와 또 다른 함부르크의 모습에 신기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해했다.
변한 자신 만큼이나 사라진 추억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형제는 처음으로 하는 관광에 정신을 놓았다.
모든 게 다 신기했고, 모든 게 다 즐거웠다.
고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형제에게 있어서 독일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어려서는 없어서 못 먹었던 소시지를, 그것도 본토의 소시지를 마음껏 먹었다.
이런 음식들이라면 평생 독일에서 생활해도 될 거라고 여겨질 정도로 말이다.
함부르크에서 라이프치히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이것도 경험해 보고 싶었던 부분이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경치에 넋을 놓고 가기를 한참.
“오, 드디어 도착했군요.”
티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티스는 사실 지루한 길이었다.
비행기를 타면 금방 도착할 길을 기차를 이용했으니 오죽하랴.
하지만 티스도 살면서 들러 보지 못한 중앙역에 당도하면서 다소 들뜬 얼굴로 말했다.
“라이프치히의 중앙역입니다.”
형제를 바라보며 티스가 말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역이기도 하지요.”
티스는 형제를 장난스럽게 웃었다.
“좀 진부한 말이긴 하지만…….”
티스는 중앙역을 가리키며 말했다.
“라이프치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