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88)
형제의 축구-88화(88/251)
형제의 축구 88화
봄, 그 안의 봄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귀와 가슴을 울리는 클럽 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샴페인과 같은 술을 마시면서 클럽 음악에 맞춰 가볍게 몸을 튕기고 있었다. 오늘은 다비 젤케가 주도해서 열린 클럽 파티의 날이었다.
대부분의 라이프치히 선수들이 찾아왔고, 젊은 선수들과 어울리기 위해 모여든 여자들이 야한 옷차림으로 선수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정우는 여자들 틈에서 샴페인 잔을 들어 올리며 웃었다.
“이곳이야말로 천국이군!”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술을 마신 정우가 한국말로 외쳤음에도 여자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정우의 옆에서 환호하고 있었다.
은밀한 손길에, 자극적인 모습에 쭈뼛거릴 법도 하지만 정우는 이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는 듯 처음 클럽에 왔음에도 아주 즐겁게 놀고 있었다.
“타고났구먼.”
한쪽 바에 앉아서 토닉워터를 섞은 보드카를 휘휘 돌리며 윤석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윤석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윤석에게 이곳은 그다지 맞는 장소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독일어를 하면서 다가오는 여자들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뭘 그리 심각하게 앉아 있어?]그런 윤석의 옆에 카이저가 나타나 앉았다.
카이저는 바텐더에게 술을 주문하면서 윤석을 바라봤다.
[나는 이곳, 불편하다. 시끄럽다.]윤석의 말을 들은 카이저가 피식 웃었다.
[나와 같네.]카이저도 이런 곳은 그다지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저 주장으로서, 그리고 모처럼 다 같이 모이는 파티에서 빠질 수 없었고, 이 젊은 선수가 행여나 사고라도 칠까 걱정되어서 나온 것뿐이었다.
물론 자신도 젊은 편이긴 하지만 라이프치히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선수들은 20대 초반, 자신보다도 한참이나 어려서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선수들이 있었다.
[그래도 다들 즐거워 보이기는 하네.] [그래, 오늘 같은 날은 즐겨야지.]불과 저번 시즌에만 해도 하부 리그에 있던 팀이 분데스리가 3위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즐기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내일 걱정은 나중에! 지금은 지금에 충실하도록!]물론 그 성적 덕분에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있었다.
오늘 이곳을 찾은 선수들은 분데스리가에서 3위라는 위업을 달성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 주긴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안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3위는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팀으로선 1위, 우승은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반면 좋은 성적을 낸 RB 라이프치히에선 더 큰 욕심을 내고 있는 상황이었고.
지금 주전으로 한 시즌을 뛰었다고 해도 다음 시즌에는 주전이란 보장이 없어진 것이다.
이름값이 높아지면, 좋은 대우에 라이프치히로 더 많은 선수들이 오고 그들과 주전 경쟁을 해야 할 것이다.
자신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불안하지 않은 선수들도 없었다.
아니, 그렇지 않은 선수도 있는 것 같긴 하다.
[내년도 잘 부탁해.]카이저는 윤석에게 잔을 내밀었다.
윤석은 카이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치며 단숨에 술을 들이켠다.
그런 윤석의 모습을 보며 카이저는 웃었다.
내년에 더 발전할 이 거대한 선수는 올해에도 그랬지만, 아마 내년에는 더욱더 대체할 수 없는 선수로서 황소의 심장이 되어 줄 게 분명했다.
[나도, 주장.]윤석의 말에 카이저는 씨익 웃었다.
“오예! 샴페인 폭탄이다!”
그 가운데 클럽 한가운데서 정우가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었다. 기겁할 만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정우가 뿌리는 샴페인을 그대로 맞으면서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네 동생은 클럽이 마음에 드나 보군.]그것을 본 카이저가 실실 웃으며 말하는 사이 윤석은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 처음 함께 술을 마셔 본 동생은 술을 못 마시지만 취하면 한없이 기분이 업되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어, 저 자식 지금 골든 벨을 울리려는 것 같은데?] [골든 벨?] [여기 다 사는 거.]카이저의 말을 들은 윤석은 사색이 되어서 정우에게 달려갔다.
[하하하하.]카이저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 * *
“으어어…….”
다음 날 일어난 정우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인상을 찌푸렸다.
“몇 시야…….”
침침한 눈을 뜨면서 정우는 핸드폰을 바라봤다.
“뭐야, 벌써 12시야!”
화들짝 놀란 정우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훈련 가야지…….’ 하고 생각하던 정우는 멈칫했다.
“그래, 시즌이 끝났지…….”
습관처럼 훈련을 생각하던 정우는 시즌이 종료되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아이고, 머리야…….”
그러고 다시 머리를 부여잡고 드러누웠다.
“하긴 그러니까 술을 먹었겠지…….”
시즌이 아니었다면 형이 음주를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기분이 좋아서 골든 벨을 울리려고 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아, 맞다.”
그것을 보고 기겁을 한 형이 죽일 듯이 자신에게 달려왔던 것까지가 자신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아이고, 내가 미쳤지. 미쳤다고…… 하마터면 애먼 데 돈 쓸 뻔했네.”
정우는 고개를 젓다가 다시 머리를 부여잡았다. 술을 마실 때까지는 기분이 좋았는데, 후유증은 보통이 아니었다.
“으이구, 이 등신아.”
그사이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온다.
“형…….”
윤석이었다. 윤석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더니 정우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뭐야?”
“할머니가 너 먹이라고 해장국 끓여 놨다. 북엇국이야.”
“북엇국? 오! 북어 북어!”
정우는 형이 내민 쟁반을 받았다. 구수한 북엇국 냄새가 머리도 아프고 속도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식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정우는 수저를 들고 북엇국을 떠먹다가 밥까지 말아서 한 수저 떴다.
“맛이 기가 막히네. 그런데…… 할머니는?”
정우의 물음에 윤석이 말했다.
“한인회 놀러 가셨어.”
“한인회? 아아, 형수님 구하러…… 아악!”
정우의 농담을 막은 윤석은 다시 혀를 차고는 방을 나갔다.
“어휴, 폭력왕 같으니…….”
정우는 아픈 머리를 쓱쓱 문지르고는 다시 북엇국을 먹기 시작했다.
벌컥.
“풉.”
갑자기 다시 열리는 문에 정우가 화들짝 놀라 북엇국을 내뱉었다.
“아씨, 뭐야, 형! 깜짝 놀랐잖아.”
“아아, 미안. 형 좀 나갔다 올게.”
“응? 어딜?”
윤석은 자신의 옷차림을 가리켰다. 운동복 차림이었다.
“갑갑해서 가볍게 조깅 좀 하고 오게.”
“시즌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좀 쉬지그래?”
“갑갑해.”
윤석은 그리 말하고는 방문을 닫고 집을 나섰다.
한국은 요즘 5월만 되어도 낮에는 더운 느낌이 드는데 이곳은 아직 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볍게 집 앞에서 스트레칭을 하고서 윤석은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와우, 한!] [한!]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몇몇 사람들이 윤석을 알아보고 윤석에게 알은체를 했다. 윤석은 그런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다 불편하다 생각하고 후드를 깊게 뒤집어썼다.
“귀찮군.”
사실 유명세가 귀찮기는 했다.
처음과 달리 라이프치히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러했다. 지나가는 형제를 보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거나 사인과 사진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언제나 그들의 요청에 응하고는 했지만, 오늘은 여러모로 불편했다. 그러고 보면 조깅을 나온 것도 처음이긴 하다. 대부분 코타베그에서 훈련에서 모든 운동을 끝내고는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눈에 들어오는 라이프치히의 거리는 언제나 보기 좋았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정취를 가지고 있는 유럽의 거리는 확실히 눈요기가 되었다. 지루하게 잔디밭을 뛰는 것보다도 이게 훨씬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뛰었을까?
녹음이 짙은 공원 안으로 들어선다.
한가한 평일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누군가는 벤치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고, 어떤 아이는 엄마와 함께 산책을 나왔는지 아장아장 뛰어다닌다.
어떤 연인은 벤치에서 진한 애정 표현을 하고 있었다.
“으음…….”
아무리 한국이 예전처럼 폐쇄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흔치 않은 모습에 윤석의 시선은 자꾸 그곳을 향했다.
얌전하고 조숙한 윤석이라고 해도 이제 나이 스물한 살.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혈기왕성한 젊음에서 나오는 호기심을 억제하기에는 힘들었다.
“에잇.”
부러우면서도 궁금한 그 모습에 자꾸 시선이 가려 하자 윤석은 이를 악물고 속도를 높여서 한참을 달려 나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리던 윤석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심호흡하면서 앞에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후.”
후드를 벗자 머리 위로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른다.
선선한 날씨라고 했지만, 막상 뛰니 땀이 나는 것은 똑같았다.
“이제야 좀 개운하네.”
고작 며칠 쉬었을 뿐인데 몸이 개운하지 못해 선택한 조깅은 나쁘지 않았다.
사라라락.
그사이 나뭇잎이 나부끼는 소리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게 좋아서 윤석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찰칵.
“음?”
윤석은 들려오는 셔터 소리에 감았던 눈을 떴다.
“음…….”
눈을 뜬 윤석은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그늘진 나무 아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조금 비추는 곳에 한 여자가 있었다.
갈색 머리가 바람에 아름답게 흩날리고, 새하얀 피부는 햇살에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카메라로 윤석을 담고 있었다.
[아, 미안해요.]렌즈를 통해 윤석과 시선을 마주친 그녀는 카메라를 내려놓으며 윤석에게 사과했다.
윤석은 또다시 아무런 말없이 그녀를 바라봐야 했다.
반듯한 눈썹 아래 기나긴 사슴같이 순진한 눈, 오뚝한 코에 도톰한 입술.
마치 헐리우드 스타 앤 해서웨이를 연상케 하는 청순하게 생긴 여인이었다.
다만 흠이 있다면 콧등 위에 자리 잡은 주근깨인데,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임을 자랑하는 것 같아 그것조차도 아름답게 보였다.
[모습이 참 보기 좋아서 저도 모르게 그만…….]“음, 음…….”
윤석은 얼굴을 붉히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것이 심기가 불편해서 그런 것이라 착각한 모양인지 그녀가 카메라를 들고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서는 그녀 덕분에 윤석의 몸은 더욱더 굳었다.
‘향기가……’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머리카락에서 과하지 않은 샴푸 냄새가 윤석의 코를 간지럽게 했다.
그사이 그녀는 윤석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카메라 자체를 만져 본 적도 없지만, 더욱더 생소한 디지털카메라였다.
[불편하시면 지워 드릴게요. 여기 이거 보세요. 여기 이렇게.]빠르게 흘러나오는 그녀의 독일어에 윤석은 당황해서 입을 열었다.
[도, 도, 독일어, 자, 잘 모른…….]말을 더듬는 것도 모자라 말끝을 흐리는 윤석을 보고서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가 다시 당황했다.
[아, 미안해요. 아, 독일어를 잘 모르신다고…… 아, 어쩌지…… 쏘리?] [음…… 음…….]윤석은 당황하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와…….]자리에서 일어난 윤석을 바라보며 벤치에서 앉은 상태 그대로 그녀가 놀라워하며 윤석을 올려다봤다.
[엄청 크다!]그녀는 마음속에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멀리서 봐도 덩치가 꽤 커 보이긴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일어서는 모습을 보니 크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음…….]윤석이 그저 머리를 긁적였다.
윤석이 어려워하는 것 같자 그녀는 어설프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진은…… 지울게요. 불편하신 거 같아서…….]그녀가 윤석에게서 멀어진다.
“아, 음…….”
윤석은 그녀가 여자치고는 키가 상당히 크다고 느꼈다. 어림잡아도 170센티미터는 가뿐하게 넘는 것 같았다. 왜냐면…… 정우보다 컸으니 말이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이런…….”
윤석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봤다.
그녀는 한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뒷모습조차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뒷모습 너머에서 정우의 모습이 보였다.
여자만 보면 바보가 되어 버리는 자신을 향해 비웃음을 머금는 정우의 모습.
‘이익…….’
괜히 오기가 치밀어서 윤석은 성큼성큼 걸어갔다.
꽤 거리가 떨어졌지만 기다란 다리로 성큼 걸어가니 금방이었다.
또다시 코를 간질이는 그 향기에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윤석은 이를 악물었다.
덥석.
윤석은 용기를 내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음?]“헛!”
그녀보다 윤석이 더 놀랐다.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는 가운데 윤석은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네?] [차 좋아하세요?]아, 이런 진부한 물음이라니…….
어디 90년대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질문을 하고서 윤석은 곧바로 후회했다. 머릿속에는 자신을 비웃는 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하지만 그 특유의 사슴 같은 눈을 동그랗게 뜨던 그녀는 얼굴을 잔뜩 붉히면서 쑥스러워하는 윤석을 보고는 소리 없이 웃었다.
다홍빛 입술 사이로 보이는 새하얀 이가 더욱더 윤석을 설레게 했다.
그녀가 윤석에게 말했다.
[홍차 좋아하는데, 같이 가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