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89)
형제의 축구-89화(89/251)
형제의 축구 89화
이보네는 프랑크푸르트 출신으로 지금은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으로 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런 그녀의 유일한 취미는 사진 촬영.
강의가 없는 날이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간신히 모은 돈으로 산 그녀의 보물 1호, 카메라를 들고 라이프치히의 거리를 찍고는 했다.
오늘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공원을 나와 챙겨 온 샌드위치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공원을 거닐며 마음에 드는 것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얼마나 그렇게 걸었을까?
벤치에 앉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열심히 운동을 한 듯 땀을 흘리며 앉아 있던 그는 문득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 좋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눈을 감고 바람을 만끽하고 있었다.
유럽의 공원에서 동양인 남자의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이색적이고 신비롭게 다가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카메라 셔터를 눌렀던 것이다.
그 남자는 멀리서 본 것보다 정말로 키가 컸다.
유럽에서도 키가 큰 편에 속하는 독일 여자라고 하지만 그중에서도 그녀의 키는 177센티미터로 여자 중에서도 상당히 큰 키에 속했다.
동양인은 유럽 사람들보다 평균 신장이 낮은 편이라고 들었는데, 이 남자는 어림잡아도 2미터를 넘으니 어지간한 유럽 남자들도 이 남자 앞에서는 난쟁이로 보일 것 같았다.
그리고 선이 굵어 정말로 남자답다 느껴지는 외모 아래 소를 연상케 하는 순박한 눈으로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그 모습은 큰 키와 어울리지 않아 왠지 모르게 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순수하게 관심이 갔지만, 당황하면서 아무런 말도 못 하는 그 남자를 뒤로하고 모처럼 평범한 일상에서 기억될 것 같은 경험이라 생각하던 찰나.
누군가 자신의 손목을 잡는다.
그 남자였다.
그 남자는 자신이 잡아 놓고도 매우 당황한 듯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힘겹게 이야기했다.
차를 좋아하냐고.
차는 그렇게 즐기지 않지만, 그녀는 이 남자를 향한 관심을 담아 말했다.
[홍차 좋아하는데, 같이 가실래요?]……라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남자와 처음 가 보는 카페 안에서 찻잔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푸훗.]이보네는 남자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곳 카페의 의자는 제법 품이 넓었는데 이 남자가 앉으니 마치 유아용 의자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이보네가 웃자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런 남자는 처음이라 생각될 정도로 숙맥이었다.
평소 활발한 성격에 운동을 좋아하는 남자를 좋아하는 그녀로서는 전혀 상반되는 그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을 법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신선했다.
[제 이름은 이보네에요. 이보네 바이스.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이보네가 남자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요, 이름. 네임.] [아, 한윤석입니다. 윤석 한.] [유……석? 유운석. 윤, 석.]발음하기 힘든 이름이었다. 그녀는 이 이름이 어딘가 낯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하하…….”
윤석은 그녀의 말에 웃음을 흘렸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것도 골수 축구팬이라면 윤석의 이름을 들어 봤을 법도 하다. 하지만 유럽에선 축구가 아니라 자신의 연고지 팀이어서 그 팀만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무리 축구를 사랑하는 독일이라고 해도 모두가 축구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윤석은 그리 생각하며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이보네의 눈에는 그게 또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고풍스러워 보이는 찻잔이 윤석의 손에서 마치 아이들 장난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키가 너무 커도 불편하겠어요.] [음, 음…….]윤석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렇게 허무하리 만치 시간이 흘러갔다.
찻잔에 홍차는 점점 줄어드는데 윤석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들이 많았지만 대화가 되질 않았고, 핸드폰 번호를 물어보고 싶어도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별다른 대화가 없기를 한참.
그녀가 빈 찻잔을 만지다가 시간을 보고서 말했다.
[아, 저는 이만 시간이 되어서 가 봐야겠어요.] [시간…….]다 알아듣긴 힘들었지만, 윤석은 그녀가 가 봐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쉬웠다.
작은 테이블 하나를 가운데 두고 건너편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를 볼 수 없다는 것도 아쉬웠고, 연신 코를 간지럽게 하는 향기도 아쉬웠다.
쥐어짠 용기는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윤석은 그녀가 떠난 자리에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어휴, 등신.”
좀처럼 하지 않는 욕을 하면서 말이다.
한편, 카페를 벗어나 걸음을 걷던 그녀는 문득 멈춰서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윤석이 앉아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재미있는 남자네.]그녀는 그런 윤석의 모습을 보고서 웃음을 흘렸다.
[윤석…… 윤석이라고 했지.]그런데 이름이 어디선가 들어 본 이름이다.
어디서 들어 봤던가?
다시 한참을 걸음을 옮기면서 이름을 되뇌던 그녀는 조그마한 가게를 지나치다 멈춰 섰다. 라이프치히 지역 일간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일간지 메인에는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가슴에 두 마리 황소를 달고 있는 축구 유니폼…….
[아, 한윤석.]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라이프치히의 스타와 마주했음을 알게 되었다.
[어머나.]신기한 경험이었다.
자신 앞에서 숙맥 같은 표정을 짓고서 부끄러워하던 그가 축구 선수였다니.
그녀의 가족들은 모두 축구를 좋아하고, 온 가족이 오랜 시간 프랑크푸르트를 사랑했지만, 정작 그녀 본인은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축구 선수…….]큰 키와 다르게 영 숙맥이었던 그는 알고 보면 누구보다도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이었다.
[운동 좋아하는 남자…….]그녀의 이상형이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네.]거기까지였다. 그녀는 그와 인연이 여기서 끝이리라 생각했다.
* * *
한국으로 향하는 길.
윤석은 멍하니 비행기 창밖을 바라봤다.
새하얀 구름이 아래로 깔린 모습은 장관이었지만, 이것도 몇 번 하고 나니 그다지 감흥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하아…….”
연신 터져 나오는 한숨.
가슴 한편이 무겁기 그지없었다.
“요 며칠 왜 자꾸 한숨이야?”
옆 좌석에 앉아 안대를 쓰고 잠을 청하려던 정우는 안대를 이마 위로 올리면서 인상을 찌푸리고 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
“요 며칠 자꾸 한숨만 그리 쉬냐고. 무슨 일 있어?”
“아, 아냐. 아무것도.”
형의 반응에 정우가 자세를 고쳐 잡고서는 형을 빤히 바라봤다.
“아무것도 아닌 표정이 아닌데? 수심이 짙어. 나라 잃은 표정이야. 아, 나라는 이미 잃었나?”
“무슨 소리야, 그게.”
“무슨 소리긴 대한민국에 오방색 우주의 기운이 팽배한 지가 몇 달인데. 뉴스 좀 봐라, 형.”
“너보다 잘 챙겨 보고 있으니 그건 걱정 마라.”
“아무튼, 그게 문제가 아니라 도대체 무슨 일이야? 요즘 진짜 표정이 안 좋아. 할머니도 걱정하고 난리도 아닌 거 알아?”
할머니까지 자신의 표정을 읽었단 말인가.
윤석은 자신의 얼굴을 큼지막한 두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런 일이 좀 있었어.”
“이제야 실토하기 시작하는군. 뭔데? 무슨 일이야?”
“그냥…… 뭐, 아무튼 있었어.”
“아이고, 이 답답한 양반. 말 좀 해 봐. 동생한테 못 할 말이라도 있어?”
그런 정우의 말에 윤석은 정우를 바라봤다.
왠지 더 말하기 싫어졌다.
“네놈에게만은 죽어도 말하기 싫은 말이다.”
“뭐어? 진짜 너무하네. 형, 혹시…… 여자한테 까였어?”
움찔.
윤석은 심장을 찌르는 그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을 귀신같이 포착한 정우가 음흉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가 보구먼? 진짜 까인 거야?”
“까, 까이다니! 그게 아니라…… 음…….”
정우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맞구먼?”
“음…….”
침음을 흘리는 윤석의 모습에 정우가 몸을 형 쪽으로 내밀며 물었다.
“뭔데, 뭐야? 진짜 까인 거야? 아니면 좋아하는 여자가 생긴 거야? 뭐야? 말해 봐, 형.”
아, 정말 들키기 싫은 녀석에게 들키고 말았다.
사실대로 말하면 자신을 얼마나 비웃겠는가.
“진짜 왕 치사하네! 좀 솔직하게 말하면 어디 덧나?”
정우가 버럭 소리치자 비행기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형제를 향한다.
“조용히 해, 사람들이 보잖아!”
“그럼 솔직하게 털어 봐!”
“어휴…… 다음에. 다음에 이야기하자.”
윤석은 그리 말하고 안대를 쓰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절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여서 정우는 궁금했지만, 참기로 했다. 한번 입을 닫은 형은 절대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장시간의 비행 끝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공항은 형제의 귀국 사실을 어떻게 안 것인지 몰라도 많은 기자들이 찾아왔다.
공항에는 먼저 온 티스도 있었다.
“티스 씨!”
정우가 반가운 얼굴로 티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스포트라이트가 온통 정우에게 집중된다.
눈부신 스포트라이트에 정우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형과 함께 티스에게 다가와 물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래요?”
“누가 흘린 건지 모르지만, 너희들이 한국으로 입국한다는 사실이 퍼졌나 보더라. 나도 기자들 보고 당황하고 있는 중이었어.”
티스의 말에 형제는 주변을 쓱 둘러봤다.
정말로 많은 기자들이 형제를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와중에 한 사람이 마이크를 들이민다.
“성공적으로 분데스리가에 정착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기분이 어떠십니까?”
윤석과 정우는 멀뚱히 그 기자를 바라봤다.
기자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형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좋습니다.”
윤석이 간단하게 말하자 기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런 짧은 말을 들으려고 오랜 시간 기다린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자를 보고 어색하게 웃던 티스가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니 한쪽에 간단하게 기자회견을 열겠습니다. 그곳으로 와 주세요!”
기자를 보고 재빨리 공항에게 협조를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티스는 형제를 데리고 기자들과 함께 한쪽 구석 라운지에 자리를 잡았다.
간단한 기자회견이라고 말했지만 30분이나 기자들에게 의미 없는 말을 내뱉어야 했다. 정우는 불편한지 아까부터 연신 의자에서 들썩들썩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했고, 윤석의 얼굴은 잔뜩 굳어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와중에 힘겹게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난 뒤에서야 형제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티스가 렌트한 차에 올라타자 정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그러게.”
윤석도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런 형제를 바라보며 티스가 씨익 웃었다.
“그만큼 성공적인 시즌이었기 때문이지.”
티스의 말대로였다.
한국 선수 대부분이 유럽에서 선전을 펼치지 못하는 가운데 형제는 손형민과 함께 드물게 유럽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선수였다.
윤석은 핵심으로 후반기 대부분 경기를 출전하면서 3골 8어시스트라는 준수한 성적을 보여 줬으며, 정우는 11경기를 출전해서 10골을 집어넣는 순도 높은 활약을 보여 줬다.
이번 시즌 대부분 선수들이 좋지 못한 활약으로 방출까지 예상되는 선수가 있는 가운데 형제를 향한 기대가 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내년이 기대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이들의 에이전트인 티스도 일복이 터졌다.
손형민에 형제까지.
보유한 선수들 중 세 선수가 이런 활약을 펼치면서 주가를 올리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자신도 바빠진 것이다.
형제와 손형민을 향한 광고 문의가 계속 오고 있었고 이들의 몸값은 반년 전과는 또 다른 상황이었다.
“아무튼, 어색하네요. 근데 우리 이제 어디 가요?”
정우의 물음에 티스가 말했다.
“오늘 당장은 시차도 적응해야 하고 호텔로 가서 바로 쉬고 내일부터 일정을 진행할 예정이야. 내일은 둘이 같이 핸드폰 CF를 찍을 예정이야.”
“핸드폰…….”
사전에 어떤 광고를 찍을 것인지 조율을 끝낸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형제는 자신들이 CF 모델이 된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건 막상 다음 날이 되고 광고를 찍으러 온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몇십 초짜리 광고를 찍는 데 수많은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다양한 카메라 장비들과 세트장이 형제를 반겼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CF 감독이라는 사람이 사람 좋게 인사하며 악수를 건넬 때도 형제는 정신이 없었다.
CF 내용은 형제가 축구 경기를 뛰는 모습을 관중석에서 한 아이가 핸드폰으로 그 모습을 찍으면서 시작되고, 윤석에게서 공을 받아 골을 넣은 정우가 그 아이를 보고서 핸드폰을 가져가 형과 함께 셀카를 찍어 아이에게 건넨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래서 야외에서 촬영하리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관중석 세트장에 엑스트라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고, 사방은 온통 파란 벽으로 둘러싸인 데다가 바닥에는 인조 잔디가 깔려 있었다.
“생각하는 것하고 완전히 다르네.”
정우가 그리 말하는 사이에 코디로 보이는 스태프들이 다가와 형제에게 유니폼을 건넸다.
라이프치히의 유니폼과 비슷하지만, 팀과 스폰서들의 로고 같은 것들이 하나 없이 등 번호와 이름만 달랑 적힌 유니폼이었다.
“이거 입으시고 메이크업 준비 들어갈게요.”
한 여성 스태프의 말에 윤석의 얼굴이 구겨진다.
“메이크업도 해야 해요?”
윤석의 물음에 스태프는 당연하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졌다.
그 뒤로는 지옥 같은 촬영의 시작이었다.
윤석은 인조 잔디 위에서 공 없이 롱패스를 하는 모션을 계속 취해야 했고, 정우는 한쪽에서 그 공을 받는 척하고 골대를 향해서 골을 넣는 시늉을 해야 했다.
어떻게 보면 익숙한 상황이었지만, 막상 공이 없고 촬영이라 생각하니 형제의 모습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거의 1시간을 같은 모습으로 촬영을 계속했지만, 감독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NG 사인을 보냈다.
“그 진짜 경기처럼! 경기에서 하듯이 해 주세요! 너무 어색하고 뻣뻣한 것 같은데, 형제분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그 말에 정우는 한숨을 내쉬다가 말했다.
“감독님! 차라리 축구공을 주시면 안 돼요? 그럼 실감 나게 할 텐데.”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장비들 다칠까 봐 어렵습니다.”
감독이 난색을 보이자 정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차라리 탱탱볼이라도 주시든가…… 거기에 CG 같은 거 입히면 되지 않을까요?”
감독은 정우의 말에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아 CG 담당자에게 물었다. 공을 어떻게 잘하면 충분히 CG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촬영 내용이 바뀌고 잠시 뒤 형제의 앞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고무공이 자리 잡았다.
정우는 그제야 밝은 표정으로 공을 가지고 트래핑하면서 말했다.
“차라리 이게 있으니 좀 낫네. 시작해요!”
정우의 말에 정우를 촬영하던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정우는 공을 한번 띄워 올려서 떨어지는 것처럼 연출을 하고 그대로 발리슛을 때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감독이 감탄사를 터뜨리며 말했다.
“진작에 이렇게 할 걸 그랬네요!”
공이 없을 때와 달리 감독이 원하던 모습이 한 번에 연출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순조롭게 패스하고 슈팅하는 장면이 촬영되었다.
문제는 그다음.
꼬마 아이에게서 핸드폰을 뺏어가 셀카를 찍는 장면인데, 정우는 무리 없이 그 역할을 잘 소화하고 있었지만, 윤석이 뻣뻣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서 어색한 모습을 연출해 계속 NG가 났다.
“하, 형 잘 좀 해 봐!”
“최, 최선을 다하고 있어.”
형의 말에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이러니 형이 여자한테 차이는 거야…….”
“윽…….”
윤석은 왠지 모르게 정곡을 찌르는 그 말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또다시 이보네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오른다.
상상만 했을 뿐인데 이보네의 향기가 코를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생각한 윤석이 진지한 얼굴로 정우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잘할 거다.”
“진작에 그러지, 흥!”
정우의 말을 뒤로하고 윤석은 생각했다.
다음에 또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반드시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할 거라고.
그리고…….
“번호도 물어봐야지, 꼭.”
지금 윤석은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진짜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렇게 윤석의 마음에는 싱그러운 분홍빛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푸근한 봄이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