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
제 1화
1장. 내가 영주라니? – 1화
“……주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영주님?”
꿀맛 같은 단잠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내 몸을 연신 흔드는 누군가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그 손을 뿌리치고 몇 번이고 단잠의 군침을 삼켰다.
더 자고 싶어.
더 자고 싶단 말이야.
하지만 바로 그때.
놀라우리만치 이성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것은 내가 어디서 마지막으로 잠을 청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에이씨, 젠장! 회사에서 잔업 중이었지, 나!”
벌떡 몸을 일으켰다.
분명 내가 잠든 곳은 사무실 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내 자리였다.
잔업을 했다.
워낙에 업무 할당량이 많은 악질 회사라 잔업을 밥 먹듯이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거기까진 좋다.
하지만 동료들 모두 맨 정신으로 잔업을 하고 있을 때, 나만 실컷 잠을 퍼질러 자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을 누군가 알게 되면 좋지 않은 얘기가 돌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래서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는데.
“어?”
뭔가 이상하다. 많이 이상하다.
내가 잠든 곳은 분명히 삐걱거리는 오래된 의자 위였는데.
지금의 나는 아주 아늑하고 푹신한, 웬 침대 위에 누워 있다.
게다가 누군가가 쟁반을 들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쟁반 위에는 물이 담긴 유리잔 하나와 물을 살짝 적신 듯한 수건이 놓여 있었다.
가장 빠른 반응은 현실 부정.
“뭐야, 이거 꿈이야?”
“영주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꿈이냐고 물었는데, 되돌아오는 대답이 영주님이란다.
뭐가 영주님이라는 거야?
나는 전한무역에 다니는 말단 회사원 신태풍이라고.
영주님이 아니라.
바로 그때.
“크으으윽!”
머리가 미칠 듯이 아파 왔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마치 누군가가 억지로 머리를 열어서는 그 안에 온갖 지식과 깨달음을 쑤셔 넣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들어갈 것이 없는 공간에 억지로 욱여넣는 기분이었다.
매우 불쾌했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고통은 이어졌고, 그때마다 수많은 정보와 사실들이 내 머릿속에 박혔다.
그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이곳이 내가 살던 지구가 아니며, 내가 잠들었던 사무실의 의자 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과로사. 실화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삶.
회사원 신태풍으로 살았던 나의 삶은 어느덧 ‘전생’이 되어 버렸다.
그랬다.
전생의 나는 죽었다.
그것도 과로사로.
잔업을 하다가 엎드려 잠을 청한 것이 인생의 마지막이 된 것이다.
‘와, 서른네 살에 연애 한 번도 못 해 보고 이렇게 죽었다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내 머릿속에서 일어난 자각이 확실하게 현실을 인지시켰다.
나는 회사원 신태풍이 아니다.
그는 이미 죽음으로 끝난 전생의 한 조각 단편에 불과했다.
알겠어, 알겠는데.
일단 충격을 가라앉히고, 적응할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았다.
“영주님, 혹시 악몽이라도 꾸셨어요?”
이제야 나를 깨운 사람이 누구였는지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헤이즈.
내 밑에서 일하는 하녀 중 하나다.
어떻게 이름을 바로 아냐고?
모든 기억이 자연스럽게 합쳐졌기 때문이다. 전생과 현생의 기억이 말이다.
“괜찮아, 헤이즈. 신경 쓰지 말고 나가 봐. 필요하면 부를게.”
“네에, 영주님.”
내 말에 헤이즈는 한 마디 군말도 없이 바로 자리를 비웠다.
이내 방 안에는 나만 남았다.
덕분에 좀 더 이성적으로 상황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일단 몸을 일으켰다.
전생의 몸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는데, 현생의 몸이 지금 어떤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거울을 본 기억이 오래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10년 전쯤의 어렸을 때의 몸만 기억이 났다.
왜일까?
되짚어 보니 적어도 10년 전까지는 꽤 잘생겼던 얼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억이 없다.
일단 지난 시간 동안 변화한 내 몸을 직접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전신 거울을 찾았다.
한데 뭔가 이상했다.
보통 거울은 방 안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기 마련.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거울은 멀리, 한참을 찾아 들어가야 보이는 방구석에 놓여 있었다.
그것도 먼지가 잔뜩 내려앉고 거미줄까지 주렁주렁 매달린 채로.
나는 옆에 마침 보이는 수건으로 대충 먼지를 닦아 낸 뒤, 전신 거울 앞에 당당히 섰다.
그런데.
“헐.”
웬 돼지가 서 있었다.
전신 거울에서 도드라지게 보인 것은 날렵한 몸도, 멋진 외모도 아닌 출렁거리며 흘러내리는 뱃살과 블랙홀 같은 배꼽이었다.
잠옷의 배 부분은 눈에 띌 정도로 잔뜩 해져 있었는데, 이 빌어먹을 뱃살 때문인 것 같았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이건 꿈일 거야, 꿈이어야 해.
그런 생각으로 볼을 꼬집어 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쓰디쓴 아픔뿐이었다.
‘아니, 내가 아무리 현생에서 운동을 게을리 했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뚱뚱할 수가 있어?’
기가 막혔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 보면 보통 환생을 하면 잘생기고, 멋진 남자로 태어나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면서 살던데!
꽝도 이런 꽝이 없었다.
차라리 전생의 삶이 나았다.
비록 연애 한 번 못 한 모태솔로의 34살 남자이긴 했지만, 그래도 틈틈이 해 온 운동으로 제법 몸은 봐줄 만했던 나였다.
하지만 현생의 내 몸은 완전히 엉망이다.
얼굴에도 덕지덕지 살이 여기저기 붙어 있어서 그런지, 10년 전의 얼굴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일단, 일단…… 스테이터스.”
무의식중에 이 말이 튀어나왔다.
아까 두통과 함께 있었던 자각 현상에서 얻은 지름길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앞에 스탯창이 펼쳐졌다.
[자레드 – Lv. 1] [근력 : 5][체력 : 5] [마력 : 75][지혜 : 15] [민첩 : 5][매력 : 0] [물리 방어력 : 5] [마법 방어력 : 5] [잔여 스탯 : 0] [*경고 : 상태 이상 ‘초고도비만’이 적용 중입니다. ‘초고도비만’이 적용 중인 동안에는 매력 수치가 0으로 고정됩니다.] [*경고 : ‘초고도비만’의 상태가 10년째 유지되고 있습니다. 기대 수명이 20년 줄어듭니다.]‘뭐, 기대 수명이 20년이나 줄어?’
붉게 빛나는 경고 메시지에 내 시선이 쏠렸다.
그리고 적힌 문구를 보자마자 경악했다.
이런 몸뚱이로 환생한 것도 화가 나는 판에 기대 수명까지 20년이나 줄어들다니!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후-.”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한숨을 토해 내며 시선을 올리는데, 상태창 상단에 날짜 목록이 보였다.
[나스 대륙력 1414년 1월 1일]‘잠깐만, 이거…… 내가 하던 게임 에서 쓰던 대륙력이랑 대륙 이름이 같잖아? 그것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잠시 잊고 있었던 현생의 기억을 빠르게 떠올렸다.
먼저 떠오른 것은 이 세계의 신이었다.
초월의 신.
상급, 중급, 하급의 신.
신이라고 해서 과묵한 이미지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신 중에서는 아주 험악한 장난을 치는 것을 좋아하는 신도 있다.
그래서 나처럼 애먼 사람을 데려다가 영혼을 바꿔치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아마 중급의 신 정도만 되어도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신이니까.
절대적인 존재에게 불가능이란 없는 것이니까.
‘문제는 이런 신에 대한 지식도 내가 하던 게임 의 세계관과 일치한다는 거고.’
중구난방 식으로 흩어져 있는 듯했던 기억의 파편들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어렸을 때부터 오랜 시간 즐겼던 게임 가 현생이 됐어. 영문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유는 모르겠다.
신의 장난인지, 꿈인지, 아니면 정말 이런 평행 우주 같은 세계가 있는 건지.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의 세계관 안으로 완벽하게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방금 전의 자각 과정에서 전생의 기억도 남김없이 내 머릿속에 저장됐다.
그렇기에 전생의 기억 중 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일사이사, 삼사. 1424년 3월 4일. 나스 대륙에서 성마 대전이 발발하는 날이잖아. 의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는 날. 주인공이 위대한 여정을 시작하는 날 말이야.”
날짜를 기억한답시고 달달 외워 놨던 터라, 가장 굵직한 이벤트가 벌어지는 시점을 바로 떠올렸다.
현재 날짜, 1414년 1월 1일.
퀘스트 시작일, 1424년 3월 4일.
앞으로 10년 후가 되면, 이 세계에서 거대한 전쟁인 성마 대전의 불씨가 태동(胎動)한다.
수백, 수천만의 인명이 죽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닐 정도의 종족 전쟁이다.
이때, 의 주인공이 나타나 마왕, 그리고 마왕의 군단과 맞서 싸우게 된다.
게임 플레이어의 스토리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이후 마왕의 마수로부터 나스 대륙을 지켜 내거나, 대륙 전체를 정복하여 군주가 되는 식으로 진정한 엔딩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는 게임이기 때문에, 가상현실이라는 틀 속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지만.
하지만 여긴 다르다.
게임이 아닌 현생의 세계다.
단지 게임 속 세계관의 탈을 몰래 쓰고 있을 뿐이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여기가 게임 속 세계관이라는 것을 전혀 모를 것이다.
그들에게는 현실이니까.
물론 내게도 냉정한 현실이다.
내가 패배하거나 죽으면, 모든 것이 끝장난다.
전생에서도 죽고, 현생에서도 죽는 것이다. 두 번 죽는다!
‘그렇다면 내 스타팅 포인트가 어딘지가 정말 중요해.’
나는 최대한 머리와 가슴을 차갑게 하고, 이성적으로 하나씩 짚어 가기 시작했다.
는 전형적인 RPG 게임이지만, 동시에 전략 시뮬레이션의 요소가 혼합되어 있었다.
즉,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면서, 동시에 영지를 꾸려 나가고 세력을 확장하는 게임이었다.
그래서 정말 힘들고 어려웠다.
많은 시간을 게임에 갈아 넣어야만 했던 것은 당연지사.
‘그럼 지금은 메인 스토리 10년 전이니 5제국, 16왕국 시대겠네.’
나스 대륙력의 날짜를 보니, 지금이 가장 춘추전국시대에 가까운 시점이다.
5개의 대제국, 그리고 16개의 왕국이 서로 각축을 벌이며 싸우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5년 후.
의 메인 퀘스트 스토리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말하자면 5년 전.
나스 대륙력 1419년에 대전쟁이 발발한다. 통칭 ‘나스 대전쟁’이라고 불리는 내전이다.
이유는 하나.
국가의 기반이자 필수 요소이며, 때로는 전부가 되는 식량 때문이다.
가뭄과 대기근.
화산 활동과 대지진.
전염병의 대유행.
이렇게 3가지 대재앙으로 불리는 일이 나스 대륙에 일어나면서 전 대륙적인 식량 부족 현상이 벌어졌다.
당연히 게임 속 각국의 황제와 왕들은 서로가 비축해 둔 식량을 빼앗기 위해 전쟁을 벌여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국가를 운영할 동력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스 대전쟁에는 모든 국가와 영지가 휘말려 참전하게 된다.
즉, 영주인 나도 피해 갈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영지의 중요성은 더더욱 커진다. 아주 많이.
‘아까 헤이즈가 나에게 영주님이라고 했었지? 그럼 어딘가에 영지를 가지고 있단 얘긴데.’
과연 이 몸, 영주 자레드라는 놈이 경영했던 영지는 어디일까?
확실한 건 자레드라는 이름을 가졌던 유저에 대한 기억이 나에겐 전혀 없다는 것이다.
즉, 네임드는 절대 아니었다.
어쩌면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기 전에 의 세계관 속에서 사라진 비운의 영주일지도 모른다.
일단 몸뚱이부터가 엉망이다.
기본적으로 영주 유저들은 자기를 치장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이런 대책 없는 몸을 가지고 있던 유저는 드물었다. 아니, 없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비정상이었던 놈이 있었던 모양이다. 도대체 얼마나 관리를 개판으로 한 거야?
“제발.”
아직 아무것도 확인한 것이 없는데, 나도 모르게 손이 모아졌다.
자연스럽게 기도를 하게 됐다.
제발 최악은 아니게 해 달라고.
영지창을 확인했다.
그러자 이름이 나타났다.
[크리비아 영지 – 소영지]“뭐야, 이 듣보잡 영지는.”
꽤 많은 영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던 나지만, 크리비아 영지는 전혀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한 가지 더 있음을 알아차렸다.
“망할, 내 스탯.”
나는 초고도비만이라는 상태 이상에 정신이 팔려, 스치듯 지나가 버렸던 상태창을 다시 보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죄다 5라는 숫자로 도배되어 있는 스탯.
마력과 지혜만 살짝 높았는데, 그것도 영주로서 갖춰야 할 자질을 겨우 맞춘 것에 불과했다.
‘4클래스 마법사. 그것도 마력 40을 쓰는 4클래스 마법을 두 번 이상 시전하기에도 버거운 처참한 마력 스탯치. 이게 내 현실이군.’
표정이 자연스럽게 어두워졌다.
4클래스 이상의 마법사는 나스 대륙에 널리고 널려 있으니까 말이다. 특별하다고 볼 수도 없다.
그리고 마력과 지혜 스탯을 제외하면, 나머지 스탯은 사실상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그나마 높은 마력과 지혜 스탯도 정상이 아니었다.
클래스를 생각하면 지금보다 10배는 높은 스탯이어야 하는데, 한참 낮은 것이다.
그래서 나의 종합 판단은.
“C급, 하급, 아니 이 정도면 폐급 무장이잖아! 쓰레기, 개쓰레기라고!”
그랬다.
나는 말만 영주지, 사실상 쓰레기 스탯이나 다름없는 상태를 가지고 현생에 환생했던 것이다.
저질스러운 몸은 덤으로 가지고 말이다.
나는 이 세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을 왕이나 황제, 제후가 아닌…….
완벽한 듣보잡 엑스트라 영주로 환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