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01
제 101화
37장. 야금의 아버지, 아세로 – 4화
얼마 후.
부쿠는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장부 조작으로 어렵지 않게 아세로를 광산에서 내보내 버렸다.
아주 깔끔하고 용의주도한 일처리였다. 그만큼 자레드에게 받은 돈이 엄청났다는 반증이었다.
“왜 이런 녀석에게 관심을 가지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원하시는 일이 잘되길 바랍니다.”
부쿠는 연신 싱글벙글했다.
엄청난 돈을 손에 넣었으니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저기, 감독관.”
“예?”
진즉 자레드의 말이 반말로 바뀌었지만, 부쿠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는 돈 많은 사람이 윗사람이고, 없는 놈은 무조건 아랫것이니까.
“똑같이 금화 주머니 하나를 더 줄 테니, 내 소원을 들어줄 수 있겠나?”
“그게 무엇입니까?”
“더도 말고 한 대. 딱 한 대만 내 주먹을 맞아 줬으면 하는데.”
제안을 듣는 순간 부쿠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부쿠는 비록 자레드가 제법 근육을 가진 몸이기는 하나, 주먹 한 대 정도는 문제없으리라 여겼다.
그 대가로 3년 치 돈을 더 준다? 솔직히 말하면 한 대가 아니라 열 대를 맞아도 될 것 같았다.
“아이고, 요즘 세상 사는 게 팍팍하지요. 스트레스도 많으실 겝니다. 저야 뭐 남는 게 맷집 아니겠습니까? 시원하게 쳐 보시지요. 힘껏 받아 내 보겠습니다. 하하하!”
부쿠가 만면에 미소를 띤 채로 양팔을 벌리고, 자레드의 주먹을 받아 낼 준비를 했다.
바로 다음 순간.
뻐어어엉!
“헐…….”
곁에 있던 아르케네스와 아세로는 동시에 무언가가 시원하게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자레드의 오른손이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며, 일순간에 부쿠의 얼굴 한가운데를 강타한 것이다.
두 사람은 눈을 의심했다.
부쿠가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을 저 멀리 날아간 뒤, 광석이 잔뜩 쌓여 있는 곳에 얼굴이 처박힌 채 기절해 버렸다.
저벅. 저벅. 저벅.
부쿠가 쓰러진 자리에 도착한 자레드가 발끝으로 그를 툭 밀치고는 넝마가 되어 버린 얼굴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을 이었다.
“폭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아. 뿌린 대로 거두는 법. 앞으로 죄 없는 사람을 핍박하는 일은 없도록 조심해라.”
쩔렁!
그리고 인사불성이 된 부쿠의 피투성이 얼굴 위로 금화 주머니를 내던졌다.
“아키, 가자. 그리고 아세로 님, 이제 당신은 자유입니다. 나와 함께 갑시다.”
“영주님! 힘 조절 안 하셨으면 부쿠가 죽었을 겁니다!”
아르케네스가 놀라 소리쳤다.
자레드가 사용한 것은 트랜센던스 스트랭스로 강화된 무지막지한 근력이었다.
스트랭스나 헤이스트 같은 버프 마법은 싱글 트랜센던스밖에 안 된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쿠 같은 거구도 단번에 골로 보낼 엄청난 근력 상승을 경험할 수 있었다.
“됐어. 깽값 물어 줬으니까 가자. 그나저나 아르케네스, 내가 시키는 대로 다해 뒀지?”
“네, 제가 오기 전에 부쿠에 대해 수집한 정보들을 관계자들에게 보내 놨으니 곧 법의 심판을 받을 겁니다. 자기 부정부패는 눈감아도, 남의 부정부패는 눈에 불을 켜고 단죄하는 게 파우페르 왕국 관료들의 얍삽한 특징이니까요.”
“돈을 써 보기도 전에 감옥살이를 하겠군.”
“네, 그럴 겁니다.”
“감사합니다. 저 자식을 누군가가 흠씬 두들겨 패 줬으면 하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는데…….”
아세로가 연신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리며, 자레드의 통쾌한 복수에 감사를 표했다.
“마음이 좀 시원해졌습니까?”
“아주 많이요! 감사드립니다!”
아세로가 진심으로 기뻐했다.
까짓것 금화야 벌면 되는 것.
자레드는 그렇게 자신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야금의 아버지, 금속의 마술사.
아세로가 자신의 가신이 된 것이다!
* * *
이후의 일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내가 필요한 기간을 묻자, 아세로는 내일 아침까지 가족과 함께 모든 짐을 정리하고 약속한 장소로 나오겠다고 했다.
최소 사나흘의 기간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짧았다.
그래서 아세로를 기다릴 하룻밤을 위해, 아키를 데리고 유명한 온천에 왔다.
플레누스 광산 근처에는 플레누스 산이 있는데, 이곳이 화산이다 보니 예전부터 화산 온천 사업이 크게 발전했던 것이다.
플레누스 온천이라 불리는 이곳은 미용과 치료에 효험이 좋은 온천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 에서 많은 유저가 이곳을 찾았다.
그들은 온천에서 목욕을 즐기며 반영구적으로 걸린 디버프나 질병 상태를 해제하고는 원기를 회복하여 나가곤 했다.
다만 예상과 달리, 사람은 별로 없었다.
왜 그런가 싶었더니, 이용 요금이 너무 비쌌다.
대다수의 방문자가 플레누스 광산에서 일하는 역부인데, 그들이 가격을 지불하기에는 비쌌다.
전생으로 따지자면 이용 요금이 20만 원 정도 되는 느낌이랄까?
선뜻 지불하기에는 확실히 지갑을 여는 손을 떨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나와 아키에게는 머물면서 쉴 곳이 필요했고, 그래서 바가지요금을 감수하고 안에 들어왔다.
그런데.
“아키, 뭐 해? 들어가려면 일단 씻어야지. 매너 없이 안 씻고 그대로 들어갈 거야?”
“영주님, 먼저! 먼저 씻으세요. 저는 온천 내부 구경 좀 하고요. 저는 온천에 올 거라고 생각을 못 했어요.”
“아니, 온천이 뭐가 어때서? 그리고 씻고 나서 천천히 돌아다니며 구경해도 되는데 꼭 옷을 다 입고 유난을 떨면서 봐야 하냐?”
“네! 그게, 그래요!”
“유난도 참.”
나는 쭈뼛거리는 아키를 향해 혀를 끌끌 차고는 훌렁훌렁 옷을 벗어 던졌다.
전생에도 목욕탕서 뜨거운 물에 몸을 지지는 건, 매일 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했었기 때문이다.
“…….”
잠시 나와 아키의 시선이 마주쳤다.
녀석은 묘한 눈빛으로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조심스럽게 훑고 있었다.
“왜, 귀족 몸은 처음 봐? 다 똑같아. 있을 거 있고, 없을 건 없고. 적당할 건, 적당하고.”
“음, 그게……. 영주님, 사실.”
“됐어. 네 알몸 보여 달라는 거 아니니까 빨리 구경 끝내고 들어와라. 나 먼저 들어간다. 알았지?”
“네, 네네.”
아키의 눈이 빠르게 돌아갔다.
일할 때 보면 웬만해서는 부끄럼을 타는 것 같진 않은데, 내 앞에서는 유독 부끄러움이 많다.
처음에 온천을 가자고 했을 때도 버럭 화를 냈다. 왜 예정에도 없는, 하필 온천을 가느냐고 말이다.
녀석이 내게 화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바로 사과해서 별일 없이 넘어갔지만.
어쨌든 몸 지짐이(?)가 간절했던 나는 아키를 뒤로한 채, 나신을 매끈하게 씻어 내고 성큼성큼 온천 안으로 들어갔다.
발가락 끝에서부터 기분 좋은 열기가 몸을 타고 올라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자연 온천은 아니더라도, 유사한 느낌의 온천을 악몽의 숲이나 마하트 3세의 무덤 앞쪽에 조성할 수 있으면…… 큰돈이 될 것 같군.”
두 눈 위에 수건을 올리고 편히 누운 채로, 나는 사업 구상에 잠겼다.
악몽의 숲에 워낙에 많은 헌터가 몰려 포화 상태가 되면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곳이 마하트 3세의 무덤이었다.
게다가 내가 팀을 꾸려 공략을 마친 마군의 피난처도, 다시 헌터를 유치하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진행하는 중이었다.
“헌터는 돈이 되니까…….”
헌터.
그들은 아낌없이 돈을 쓰는 큰손들이다. 그리고 저마다 체면과 명예를 중요하게 여겨 돌출 행동을 하는 일도 적다.
“대단위로 상업 지구를 확장해야겠어. 숙박, 주류 판매뿐만 아니라 유흥이나 문화생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몸의 피로가 서서히 풀려 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사업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해 나갔다.
이것이 영주로서 내가 틈날 때마다 늘 해 오던 일이었다.
한 번도 아무 생각 없이 쉬거나 머리를 비우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의 무아지경 속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조차도 시간의 흐름을 잊고, 온천의 열기에 행복해하고 있을 즈음.
첨벙.
물에 발을 담그는 소리가 나서, 수건을 걷어 내고 고개를 돌렸더니 아키가 보였다.
그런데 이 녀석.
몸 전체를 긴 수건으로 둘둘 말고는 무릎 아래만 내놓은 채로 발만 담그고 있다.
“뭐 해, 안 들어오고?”
“사실 뜨거운 물 싫어해요.”
“그럼 그냥 발만 담그면 되지, 수건은 왜 둘렀는데?”
“몸에 털이 많이 자라서요. 영주님에게 수북한 털을 보여 드리고 싶지가 않아서 가린 겁니다.”
“아니, 사람이면 뭐 털도 있을 수 있고 그런 거지……. 난 신경 안 쓰니까 괜찮아.”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온천 안에서 한 걸음 정도 녀석에게 거리를 좁혀 다가가자,
“제가 안 괜찮아요!”
아키가 바로 몸을 움직여 그만큼 거리를 벌렸다.
순간, 내가 싫은가 싶었다.
어디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나 싶기도 하고.
혹시나 싶어 심안으로 녀석을 살펴봤지만, 달리 부정적인 요소는 감지되지 않았다.
“그래, 편할 대로 해라. 난 눈 좀 여기서 감고 있어야겠다. 아우, 좋다. 아주 그냥 몸이 노곤노곤하니 당장에라도 잠들 것 같네.”
물론 느낌만 그럴 뿐!
대현자, 고르자스의 목걸이 덕분에 잠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날 새벽.
“…….”
나는 곤한 잠에 빠진 아키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장거리 비행에 지쳤던 탓인지 목욕, 아니 족욕을 마치자마자 방에 돌아와 잠이 든 것이다.
“뭔가 이상해.”
이상하다.
여럿이서 만나거나 공적인 얘기를 할 때는 나와 격의 없이 지내는 아키가.
단둘이 있거나, 특히 격려 차원의 포옹이나 스킨십이 오갈 때는 반응이 달라진다.
무척 부끄러워하고, 때때로 얼굴을 붉히기도 하는 것이다.
“이 자식, 설마…….”
남자 좋아하는 것 아냐?
취향은 존중해야 한다지만, 이성애자인 내 신념과는 너무도 달라 당황스럽다.
“하아.”
모락모락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수많은 상상 속에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으음. 아음.”
그런 복잡한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키는 입맛까지 연신 다셔 가면서 열심히 잘도 잤다.
* * *
다음 날.
나는 약속 장소에 나온 아세로와 그의 가족을 만났다.
천성이 착한 아세로의 성격답게 부인도, 자식들도 모두 하나같이 천사 같은 모습이었다.
“아키, 주마르 별장 알지?”
“네, 알지요.”
“거기서 아세로의 가족이 살 수 있도록 해 줘. 그리고 최고의 집기를 마련해 주고. 사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짐이 참 적군요.”
나는 가족 한 명당 한 보따리만 챙겨 나온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검소하게, 혹은 가난하게 필요한 살림만 가지고 살았다는 증거였기에.
“언제든 떠돌이 신세가 될 수 있다 보니, 살림을 최대한 줄이게 되더군요.”
아세로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말에서 그와 가족들의 삶의 애환이 묻어났다.
부쿠와 같은 감독관 아래에서는 매일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영주님, 함께 안 가실 건가요? 물론 신데르스 왕국을 경유해서 움직이는 장거리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할 예정이라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지만요.”
“응, 볼일이 있어서. 나는 나중에 복귀하도록 하지.”
아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세로를 만나러 오기 전부터, 이쪽으로 오게 되면 공략하기로 생각한 던전이 있었다.
‘타락한 지하 사원.’
나를 위해, 그리고 성장에 채찍질이 더욱 필요한 가신들을 위해!
요긴하게 쓰일 아티팩트가 푸짐하게 쌓여 있는 보물창고가 바로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