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03
제 103화
38장. 타락한 지하 사원 – 2화
‘확실히 는 방대한 세계관만큼이나 많은 인력이 투입됐고, 창의적인 공략법만큼 꼼수도 많았지. 덕분에 하루에도 패치 노트가 몇 번이나 올라오는 일이 허다했고.’
자레드가 전생을 떠올리며, 아련한 기억에 미소를 지었다.
는 처음부터 완성도 높은 게임은 아니었지만, 완성도 100%를 추구했던 게임은 맞았다.
전생의 자레드 – 신태풍 – 가 죽기 전, 동방 대륙 업데이트를 앞두고 대규모 수정 패치 노트를 올렸을 정도였으니까.
‘정말 어지간한 꼼수나 버그는 그 시점에 다 막혔는데…… 문제는 내가 환생한 시점은 메인 스토리의 10년 전이라는 거지.’
핵심은 그것이었다.
다수의 버그나 꼼수가 픽스 되기 전의 시점으로 돌아왔기에 쓸 수 있는 선택지가 상당히 많았다.
무엇보다 이 세계는 자신의 움직임을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운영진이라는 존재가 없었다.
뭐, 지켜보고 있는 신을 ‘운영진’이라고 말한다면, 의미가 어느 정도 들어맞을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자레드는 정정당당하게 벨라레, 벨라로를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그럴 생각이었으면 최소 권장 인원은 데려왔을 것이다.
벨라레와 벨라로는 연계 플레이가 우수한 보스 몬스터로 반드시 두 명의 메인 탱커와 두 명의 서브 탱커가 필요한 녀석이었다.
이런 녀석을 혼자서 잡으려면 보통 방법으로는 안 된다.
아까 자레드가 사용한 꼼수를 이용해 설령 타락의 방에 온다고 하더라도, 그다음이 없는 셈이다.
‘저기군.’
그때, 부지런히 타락의 방 내부를 훑던 자레드에게 특이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안전지대, 약칭 안지.’
플레이어가 절대로 보스의 공격에 맞지 않는 위치다.
지칭이 그렇기는 한데, 완전히 100% 안전지대는 아니다.
화염 공격에 강한 벨라레의 파이어 브레스 스킬.
빙결 공격에 강한 벨라로의 빙하의 숨결 같은 급속 결빙 스킬.
이 두 가지가 정면으로 닿지는 않지만, 열기와 냉기는 확실하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접 피해를 걷어 낼 수 있는 실드와 때때로 강화된 스킬의 냉, 열기를 피할 플라이는 반드시 필요했다.
즉, 마법사로 따지면 최소 3클래스는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언제 날아올라야 할지, 언제 실드를 펼칠지도 알아야 한다.
이 타이밍을 모른다면, 설령 안전지대에 자리를 잡는다고 해도 비명횡사한다.
‘이 포인트를 찾아내려고 얼마나 많은 레이드 팀이 희생됐는지 짐작도 안 가는군. 거의 6개월 만에 찾아냈었지?’
진짜 수많은 유저의 피와 땀, 절규와 비명이 뒤섞여 만들어진 노하우다.
자레드는 도약에 앞서, 안전지대를 향해 인사를 하는 것으로 나름대로의 예를 갖췄다.
가끔이지만, 그리울 때가 있다.
에서 동료 유저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고, 하루의 일과를 재잘거리던 날들이.
“후!”
뜨거운 숨결과 함께 상념을 털어 낸 자레드가 플라이 마법으로 힘껏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고도가 제법 올랐다.
안전지대로 향하는 도중에 그것과 유사하게 생긴 수많은 돌출부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부 가짜다.
언뜻 보기는 꽤 괜찮은 자리처럼 보이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함정들이었다.
저기서 공격을 하다가는 갑자기 ‘급속 도약’을 하는 두 도마뱀 형제에게 낚아 채여 잡아먹히게 된다.
녀석들은 악력, 치악력이 모두 세기에 한번 잡히면 답이 없다.
손아귀의 힘에 몸이 찢어져 죽거나,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이빨의 힘에 죽어 나가는 것이다.
에서는 이를 즉사 패턴이라고 불렀고, 모든 공략집에는 이와 같은 경고가 있었다.
이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최소 9성급 이상의 아티팩트로 무장한 것이 아니면, 무조건 종이처럼 찢긴다.
괜히 헌터들이 B코스 공략을 꺼리는 게 아닌 것이다.
실제로 B코스를 공략하더라도, 타락의 방 직전까지만 공략하고 빠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터업.
이내 안전지대에 도착한 자레드가 사뿐히 그 위에 안착했다.
안전지대의 범위는 성인 한 명이 양반다리 자세로 앉아 있을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공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벽과 단단하게 붙어 있어 화염이나 결빙 스킬에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어디 보자.’
자레드는 공격 준비에 앞서, 마지막으로 꼼수를 위한 아티팩트 옵션 확인에 들어갔다.
[성녀 이프노스의 반지] [분류 등급 : 2성] [사용자가 옵션 1, 2의 정보 열람을 생략한 상태입니다.] [옵션 3 : 소모 마력의 2배를 사용해서, 마법 공격에 신성력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오케이, 신성력을 묻힌 공격으로 차도살인을 완성하는 거다.’
자레드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슈아아아아!
벨라레, 벨라로 형제의 잠을 깨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빠르고 신속한 매직 미사일과 함께!
자레드의 공격이 시작됐다.
* * *
“크르르르!”
누군가의 공격에 곤한 잠에서 깨어난 벨라레와 벨라로가 저마다 기분이 잔뜩 상한 소리를 냈다.
침입자가 나타나는 것 자체는 꽤 흔한 일이었다.
인간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오래된 지하 사원으로 피신하듯 도망 온 것이 벌써 100년 전의 일.
그때만 해도 여기는 벨라레와 벨라로의 비밀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검붉은 기운이 지하 사원 전체를 감싸며 일대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하더니,
벨라레와 벨라로를 지금과 같은 괴수로 만든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몬스터를 각각의 방에 가득 채워 넣어 버렸다.
졸지에 던전이 되어 버린 이곳에서 벨라레와 벨라로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보스 몬스터’가 됐다.
처음에는 매우 두려웠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오히려 재밌어졌다.
자신들을 죽인답시고 나타난 인간들은 하나같이 나약하기 짝이 없어서 몇 번의 손짓과 물어뜯기만으로도 능히 목숨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설령 침입자에게 목숨을 잃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곳으로 부활하여 소환됐다.
완벽하진 않지만, 반영구적인 영생 정도는 얻은 느낌이었다.
다만 둘에게는 공통된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오래된 지하 생활과 노화(老化)로 인해 시력에 매우 나빠져 있다는 것.
그래서 시각으로 적을 판단하기보다는 기운으로 적을 판단했다.
이곳에 오는 헌터 모두가 신성력 무장이나 버프를 두르고 오기에, 신성력의 유무로 적을 판단하면 됐다.
바로 그때.
벨라로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엄청난 양의 신성력이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말 코앞이었다.
“크워어어어!”
벨라로가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냅다 달려서는 상대를 들이받았다.
와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모르긴 몰라도 인간 침입자라면 십중팔구 목이든 허리든 뼈가 부러져 죽었을 것이다.
“클클클클!”
벨라로가 승자의 쾌감으로 가득 찬 웃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크륵. 끄르르륵.”
벨라레의 신음이 들렸다.
스르륵!
동시에 어디선가 날아온 무언가가 벨라로의 몸에 달라붙었다.
“쿠욱?”
영문을 알 리 없는 벨라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몸에 붙은 기운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
신성력!
벨라로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인간들이 치유의 개념으로 쓰는 구체와 매우 유사한 기운이라는 것을.
한데 이것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몸 전체에 덧씌우듯 기운이 붙어 있었다.
다음 순간.
“쿠어아아아아!”
성난 벨라레의 광속 돌진이 시작됐다.
감각으로 피아(彼我) 식별을 하는 서로의 특성에 맞게, 벨라레도 자신을 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구왓!”
벨라로가 오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의미 없는 아우성이었다.
뻐억!
“뀌엑!”
모양 빠지는 비명과 함께 벨라로의 몸이 포물선을 그리며 한참을 날아갔다.
거구의 두 도마뱀이 서로 부딪히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아울러 타락의 방에서 짙은 먼지바람이 일어나며, 주변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때.
슈아아아아! 쿠웅! 퍼어엉!
어디선가 날아온 마법 구체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벨라레와 벨라로를 강타했다.
“크익?”
“쿠루룩?”
서로 치고받느라 집중이 흐트러져 있던 두 녀석의 시선이 일제히 같은 곳을 향했다.
볼 수는 없어도, 마법에 피격된 위치에 따라 적의 위치를 짐작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다, 이 도마뱀 새끼들아!”
그리고 시원하게, 귓가를 때리는 침입자의 도발 멘트가 들렸다.
“크와아아아아!”
반드시 죽인다!
촤악! 촤악! 촤악!
누가 먼저랄 것도 두 녀석이 거친 발길과 꼬리질로 지면을 후려치며, 빠르게 침입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화르르르르륵!
벨라레의 열화의 숨결과.
지그르르르르!
벨라로의 빙하의 숨결이 침입자를 노리고 날아갔다.
방어구를 착용하거나 보호 마법을 두른 어지간한 헌터도 단번에 불에 타 죽거나, 얼어붙어 죽기로 유명한 기술.
벨라레와 벨라로는 승리를 자신했다.
나의 세계, 나의 공간!
이 구역 안으로 함부로 들어와 목숨을 건진 인간은 없었다.
“……?”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불에 타 죽든, 얼어 죽든, 어떻게든 비명이 터져 나왔어야 할 상황인데 왠지 조용했다.
그리고 거꾸로 돌아온 것은.
쿠과과과과! 파아앗!
더 강력해진 적의 마법이었다.
상대는 전혀 공격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자신의 공격을 이어 갔다.
퍼엉! 퍼어어엉!
또다시 당했다.
분명 서로 공격을 주고받았는데, 성과는 저놈에게만 있었다.
“크위이이익!”
“크렉!”
벨라레와 벨라로가 분노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약간의 자비나마 베풀었다만, 이제는 절대 봐주지 않으리라!
그들이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불쾌한 침입자를 향해 전력으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맹공의 시작이었다.
* * *
그로부터 30분 후.
‘좋아. 바람직해.’
나는 웃으며, 여유롭게 벨라레와 벨라로를 상대하고 있었다.
“크륵! 크르르르!”
약이 바짝 오른 녀석들은 어떻게든 나를 죽이려고 갖은 애를 썼다.
점프를 하며, 나를 잡겠다고 힘껏 앞다리를 뻗어 보기도 하고.
최대한 기운을 끌어모은 다음에 화염과 빙결의 숨결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전지대에 딱 자리를 잡고, 필요에 따라서 방어 마법과 도약 마법을 쓰는 내게는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괜히 노하우가 쌓인 꼼수가 아니라니까?’
뻐엉! 뻐엉! 뻐어어엉!
“크웨에에!”
나는 샌드백을 치는 느낌으로 계속해서 벨라레와 벨라로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녀석들의 몸은 육중해서, 마법으로 두드려 패는 맛이 있었다.
과녁이 너무 커서 대중없이 아무렇게나 쏴도 10점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게다가 중간중간 약 올리듯 녀석들 사이에 자리를 잡은 뒤, 양쪽으로 신성력이 가미된 힐 마법을 버프 형태로 넓게 뿌리면.
“크오오오! 우오오오!”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오인(誤認)하고 치고받기를 반복했다.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놈들이 사상 최악의 시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 던전을 찾아온 헌터가 신성력 무장을 한다는 점을 착안하여, 신성력으로 피아를 구별해서 공격한다는 것을.
그래서 이따금씩 성(聖) 힐 마법을 이용해 기만 작전을 펼치면, 영락없이 속아 넘어갔다.
“크르륵…….”
30분 내내, 나는 쉬지 않고 놈들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녀석들도 끊임없이 나를 향해 숨결을 퍼부었으며, 종종 자기들끼리도 치고받는 볼썽사나운 꼴을 연출했다.
덕분에 벨라레와 벨라로의 몸 여기저기에는 깊은 상처가 가득했다.
이미 타락의 방은 두 녀석이 흘린 피가 발에 묻어 발자국을 남길 만큼, 여기저기에 뜨거운 선혈이 흩뿌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