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05
제 105화
39장. 동료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니 – 1화
9월 5일, 아침.
나는 반드시 아티팩트를 전해 줘야만 하는 네 사람을 먼저 영주 저택으로 불렀다.
총행정관 율리안, 선전 장관 발데스, 상단주 아키, 그리고 요리장 메리였다.
우선 새벽에 도착한 보고에 따르면, 아세로는 별장에서의 삶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쓰러지기 직전의 가건물에서 살다가, 영주가 살았던 대저택으로 이사를 왔으니 마치 천국에라도 온 느낌이겠지.
내가 아는 아세로는 돈을 밝히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그랬다면 진즉에 감독관 부쿠의 아래에서 알랑방귀를 뀌었을 것이다.
오히려 아세로는 사치를 극도로 경계하는 편에 속했다.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아세로의 부인인 키르민이 요리장 메리에게 허드렛일이라도 좋으니 영주 저택에 헌신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시 그녀를 만나 심안으로 살펴보니, 요리에 관련된 특수 성향들이 제법 있었다.
메리와 시너지가 좋을 듯하여 그녀를 적극 추천했고, 메리 역시 기쁘게 그녀를 받아들였다.
“다들 내가 이유를 알려 주지 않고 불러서 그런지 너무 옷을 잘 차려입고 왔구려. 아, 아키는 제외하고. 너는 너무 튄다, 튀어.”
“영주님……. 이거 요즘 진짜 귀족가의 트렌드라니까요.”
“도대체 어떤 남자가 치마에 바지를 입고, 귀걸이에 아이라인을 그린단 말이야?”
“다들 영주님처럼 틀에 박힌 패션을 추구하지는 않는다고요!”
아키의 일침에 나도 모르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사실 아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나는 파격을 싫어해서 항상 무난한 복장을 즐겼다.
화장도 당연히 안 했다.
공적인 자리에 가야 하거나, 발데스를 통해 선전 영상 촬영을 할 때나 보정을 위해 살짝 했을 뿐이다.
어쨌든 나는 외모와 같은 부분에서는 타인의 관심을 그다지 받고 싶지 않았다.
뭐, 잘생겼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굳이 떠벌리고 다니고 싶진 않다. 그런 말을 듣고 싶지도 않고.
다만 영지 운영이 탁월하다, 최고의 영주님이다, 실력 좋은 마법사다! 같은 칭찬은 항상 듣고 싶었다. 질릴 정도로 말이다.
“영주님, 괜히 긴장됩니다. 혹시 해고 통지입니까?”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율리안이었다. 요즘 율리안과 만남이 조금 뜸해지긴 했는데, 소식이야 뭐 매일 챙겨 들었다.
지금도 남는 시간마다 춘화를 그리기에 여념이 없다고 했다.
고블린 로드 이바니바는 물론이거니와, 레드 고블린 상류층의 수컷 고블린들도 춘화에 목을 맨다나 어쩐다나?
그래서 밀린 물량을 맞추느라 퇴근하면, 손이 마르고 닳도록 춘화만 열심히 그린다는 후문이다.
-자레드, 츄르 줘랑.
오랜만의 만남이라 그런지 데리도 전에는 좀처럼 하지 않던 꾹꾹이까지 해 가며, 츄르를 요구했다.
그래서 몇 개를 창밖으로 던져 주자, 칼같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정리되고, 나는 율리안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럴 리가. 내가 품은 가신들은 반드시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것이 오래된 내 생각이오.”
“그럼 무엇입니까? 솔직히 저뿐만이 아니라, 여기 오신 모든 분이 긴장하고 계실 겁니다.”
율리안의 말대로 발데스, 아키, 메리의 표정이 영 떨떠름했다.
다들 머릿속으로 지방 발령이라든가 좌천, 혹은 호된 꾸짖음을 떠올리고 있는 듯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도 아닐 텐데!
“자, 율리안. 이리 와 보시오.”
“예? 갑자기 말입니까?”
내가 손짓을 하자, 율리안이 바짝 긴장을 하며 다가왔다.
이유는 짐작이 갔다.
그저께부터 영지 전역에서 클루제가 죽기까지의 자백 영상을 담은 기록 영화가 수시로 상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주인공은 나였고, 특별 출연자는 고(故) 클루제였다.
영지민들은 암흑 교단이라면 이를 가는 사람들이었기에 영상을 보면서 참으로 통쾌해했다.
악을 단죄하는 영주님의 참된 모습이라며, 영상의 말미에는 모두 기립하여 박수를 치기도 했다.
다만 율리안은 클루제를 단죄하기 위해, 내가 거침없이 보인 잔혹함이 뇌리에 강하게 남은 모양이었다.
“선물이오. 받아 보시오.”
나는 율리안에게 아티팩트를 하나, 휙 던졌다.
아브루찌의 목걸이.
5성의 아티팩트로, 100년 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행정관 출신의 재상 아브루찌의 유품이다.
지혜 스탯을 대폭 올림과 동시에 멀티태스킹 능력을 한 단계 높여 주는 아티팩트로 유명하다.
현재 율리안의 특수 성향 ‘다중 업무 처리’가 S등급이기에 아마 착용하면 SS등급이 될 것이다.
그러면 일의 효율이 전보다 최소 100% 이상 증가한다.
지금은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수준이라면, 이제 네다섯 가지 일을 수행함에도 어려움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 아티팩트 하나를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영지의 운영 효율이 대폭 증가하지. 몇십 명의 평범한 행정 공무원을 추가하는 것보다 훨씬 나으니까.’
괜히 에서 플레이어들이 S급이니 A급이니 하면서 가신과 무장들의 등급을 나눴던 것이 아니다.
그만큼 가신의 행동 효율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한 명의 유능한 행정관이 수십의 평범한 행정관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다.
“착용해도 됩니까?”
“그러라고 준 것인데, 그리하지 않으면 내가 섭섭하지 않겠소?”
“그럼 바로…….”
율리안이 목걸이를 즉시 착용했다. 그러자 순간 뭔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 영주님.”
“뭔가 변화가 느껴지오?”
“예! 머릿속이 엄청 맑아지는 느낌과 함께, 무슨 일이라도 뚝딱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듭니다!”
내게는 스탯과 성향의 시각적인 변화로 나타나나, 율리안에게는 감각적 변화로 느껴질 것이다.
어쨌든 효과가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다중 업무 처리가 바로 SS 등급으로 올랐으니 말이다.
“효과가 있군. 앞으로 그 아티팩트를 꼭 착용하고 업무에 임하시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귀한 아티팩트를 제게 하사하시다니…….”
율리안은 눈물을 글썽였다.
동시에 눈을 비비는 척하면서 손톱 날을 세우는 것을 보니, 약간 연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좋다!
그런 가신의 엉뚱함까지도 나는 사랑할 수 있으니까.
“자, 다음은 아키. 앞으로 와.”
“저도 잔뜩 긴장이…….”
“받아. 포르투나의 일기다.”
내가 아키에게 무심히 건넨 것은 아티팩트로 분류된 신묘한 서적 중 하나인 포르투나의 일기다.
평범한 사람이나 연계 성향이 없는 사람이 읽어서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그저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만 난다.
하지만 아키처럼 특수 성향인 흥정이 S등급 이상의 판정을 받는 사람이 읽는다면, 극한의 효율을 발휘한다.
일기를 완독하는 것만으로도 내면에 큰 깨달음을 얻어, 흥정을 SSS등급까지 두 단계나 상승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예? 이게 포르투나 님의 일기라고요? 예전부터 너무 보고 싶었지만, 사본도 없이 오래전에 실전(失傳)된 책이라 도저히 구할 수 없었어요! 대륙 전역을 수소문해도 찾을 수 없었는데, 어떻게 여기에? 영주님, 정말 대단하세요!”
아키가 반색한 것은 포르투나가 75년 전에 나스 대륙 전체를 휘어잡았던 거상이었기 때문이다.
상계의 끝, 최고의 정점을 꿈꾸는 상인이라면 누구나 롤 모델로 삼는 인물의 일기를 얻은 것이다.
“자, 이제 네가 원본을 가진 거다. 목숨 걸고 잘 관리해. 잃어버리는 순간, 네 목숨도 같이 버리는 거라고 생각하고.”
“물론이죠! 이건 제가 저택의 대형 금고 안에 삼중, 사중으로 금고를 넣어서라도 지킬 겁니다!”
아키가 이글거리는 눈빛을 가감 없이 내게 쏴 보냈다.
다만 아직 읽지는 않았기에 성향 등급의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다음은 발데스, 이것을 받으시오.”
“이것은 무엇입니까? 언뜻 보기에는 오카리나처럼 보입니다만.”
“맞소. 진실의 오카리나라고 불리는 아티팩트지. 굳이 오카리나를 연주할 필요는 없고, 가지고만 있어도 되오. 연사로서 진실을 말할수록 상대에게 전달력과 설득력이 배가(倍加)되지.”
“연설할 일이 많은 제게는 정말 맞춤형 아티팩트라고 할 수 있겠군요.”
“자, 이것을 몸에 지니고 어떤 말이든 진심을 담아서 해 보시오.”
발데스에게 진실의 오카리나를 건네주자, 그가 조심스럽게 그것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뒤, 내가 말한 것처럼 진심을 담아 자신의 말을 이어 갔다.
“제가 감히 꿈꾸는 소원이 있다면, 나스 대륙 최고의 위치에 오른 영주님의 곁에서 영원히 가신으로 함께하는 것입니다. 저 발데스, 뼈가 부서져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충심을 다해 영주님을 모시겠습니다!”
그 순간.
나는 오카리나의 영향을 감안하고 있었음에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뽕! 아니, 감동의 향연에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조차도 이럴진대, 일반 영지민에게라면 심금을 울리는 진심의 호소력이 엄청날 것이다.
[특수 성향 : 유려한 화술 SS / 선전용 웅변 S / 광신적 추종 A / 대중적 문화학 A / 집단 최면 B]아티팩트의 효과답게 모든 특수 성향이 한 단계씩 올라갔다.
이 정도면 어지간해서 발데스의 말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곧이 믿을 것이다.
‘좋다, 좋아.’
가신들의 급성장을 보니 기분이 뿌듯해졌다.
모두가 하나같이 영지 운영에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가신들이었다. 행정, 선전, 상업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메리군.’
메리를 요리장으로 들인 지는 꽤 됐다. 항상 같은 저택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리와 얘기를 나눠 본 적은 의외로 적었다.
요리장의 일을 맡기 시작한 이후로 그녀가 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업무 외의 시간에는 딸인 미아를 돌봐야 했기에, 달리 독대할 일이 흔치 않았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메리와 깊은 대화를 나눠 보고 싶었다.
“요리장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모두 물러가 보시오. 돌아가서 아티팩트의 효과를 직접 체험해 보도록 하고.”
“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영주님!”
“진실의 오카리나로 언제나 변함없는 진실을 노래하겠습니다!”
율리안, 아키, 발데스가 차례대로 감사를 표하며 집무실을 나섰다.
이윽고 집무실 안에는 나와 메리만이 남았다. 그녀와 내가 단둘이 있어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 살짝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한데 바로 그때.
“엄마! 엄마아! 라키스 아저씨가 엄마 어딨냐고 물어보래! 엄마, 여기에 있어? 엄마! 남자친구가 찾아!”
“미아! 여기 영주님 계시…….”
갑자기 밖에서 달려오며 외치는 미아의 폭탄 발언에 메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항상 평온하면서도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는 메리의 차분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메리와 라키스, 그리고 남자친구라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