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06
제 106화
39장. 동료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니 – 2화
미아의 폭탄선언으로 졸지에 러브스토리가 탄로 난 메리는 내게 차근차근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나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우선 스스로에게 크게 반성을 했다.
내가 너무 무심했다고 느껴서다.
지금까지 나는 라키스가 결혼도 하고, 슬하에 자식도 둔 유부남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돌싱도 아닌 모태솔로!
오랫동안 군에서 젊음을 불태운 탓에 이렇다 할 인연을 만날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메리의 경우는 미아를 임신했을 때, 그녀의 남편과 병으로 사별했다고 했다.
처음 라키스가 메리에게 호감을 표했을 때, 그녀는 몇 번이고 라키스를 밀어냈다고 했다.
사별한 남편에 대한 기억도 남아 있었을뿐더러 혹여 자신이 라키스의 미래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러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라키스의 꿋꿋한, 한결같은 애정 공세에 메리도 결국 마음의 문을 열었고…….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일과가 끝나고 나면, 틈틈이 만나서 데이트를 즐긴단다.
때로는 둘이서, 때로는 미아와 함께 셋이서 말이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이런 사적인 일로 신경을 쓰이게 해 드려서는 안 되는 것인데…….”
“전혀. 눈치 보고 연애할 필요 없어요. 남녀 간의 사랑은 귀천도, 노소도 없는 것을.”
“하지만 영주님께 누가 될까 싶어…….”
“하하하. 본인의 연애는 관심 없더라도, 가신들의 연애에는 관심이 무척 많은 것이 크리비아 영지의 영주라던데?”
“크큭, 영주님. 죄송합니다.”
내가 남 얘기를 하듯 천연덕스럽게 분위기를 풀어 주자, 메리가 피식 웃어 버렸다.
“영주님! 영주님! 엄마가 잘못한 거예요? 엄마를 혼낼까요? 제가 혼내요?”
미아가 귀여움을 더했다.
처음부터 내게 그들의 연애는 하나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면, 적극 장려하고 싶을 정도다.
단지 미안할 뿐이다.
나는 내가 가신들을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이 아닌, 영지 운영을 위한 ‘도구’로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반성했다.
부정할 수 없었다.
물론 진심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가신을 가볍게 생각했다.
내 곁에서 멀어지면 알아서 움직이는 로봇처럼, 그저 정해진 일만을 하며 쳇바퀴 같은 하루를 보냈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오산이었다.
라키스도, 메리도 결국은 가슴속에 감정이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
미안한 마음에 가라앉은 목소리를 헛기침으로 달래고는 메리에게 말을 이어 갔다.
“메리, 아니 요리장.”
“네, 영주님.”
“절대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서로에게 진실한 불꽃같은 사랑을 하길 바랄게요. 주어진 일에 소홀해지는 것만 아니라면, 영주의 이름을 걸고 끝까지 응원해 줄 테니까.”
“죄송합니다, 영주님.”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 말고.”
“그럼…… 감사합니다.”
“미아는 만약에 라키스 아저씨와 엄마가 싸우면, 몰래 나한테 와서 알려 줘야 한다. 알았지?”
“네! 엄마 몰래 와서 영주님께 다 일러바쳐야지! 킥킥킥!”
미아의 유쾌한 웃음 속에 잔뜩 상기되어 있던 메리의 표정도 많이 풀렸다.
나는 아직 건네지 않은 아티팩트를 아공간에서 꺼내서는 그녀에게 전해 주었다.
성녀 이프노스의 치유 국자.
스토리에 따르면 성녀 이프노스가 평생을 사용하던 국자로 신성력이 잔뜩 배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을 벨라레, 벨라로 형제가 몰래 물고 가는 바람에, 이프노스가 아끼던 국자를 잃어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렸을 적 벨라레, 벨라로는 도벽(盜癖)이 심한 녀석들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치유 국자의 효과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국자를 이용해서 조리한 모든 음식에 대해서는 섭취자의 면역력이 기존보다 100% 상승한다. 이는 6시간 지속된다.
둘째, 음식 조리자의 특수 성향에 ‘엄마의 집밥’이 있을 경우, 지속 기간이 6시간에서 10일로 대폭 늘어난다.
셋째, 음식 조리자의 요리 관련 특성이 일괄적으로 한 단계 상승한다.
메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특수 성향 ‘엄마의 집밥’은 SS다.
처음 만날 때만 해도 S였는데, 그새 한 단계가 올랐다. 여기에 국자를 장착하면 SSS가 된다!
이쯤 되면 매일 그녀가 만든 음식을 잘 챙겨 먹기만 해도 마력이나 체력 회복을 3배 이상 증진시킬 수 있다.
부상자나 환자의 회복에는 그야말로 직방, 특효약인 것이다.
게다가 처음에는 단기 버프로 끝나지만, 반복해서 섭취하면 어느 순간부터 영구 버프로 바뀐다.
그래서 내가 거처를 바꿔도, 반드시 메리를 데려오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언젠가 그녀의 요리를 꾸준히 섭취한 결과물이 영구 버프로 돌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나는 메리에게 힘주어 말했다.
“이 국자로 더 많은 요리를 만들어, 나를 포함한 많은 가신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 주길 바랄게요.”
“네, 영주님. 그런데 이 국자 말이에요.”
“음?”
“만지고만 있는데도, 아주 따뜻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 온몸으로 전해져요.”
메리가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메리는 평범하게 살았다면, 평생 이런 아티팩트와 인연도 없었을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아티팩트에 더욱 감탄하며, 그 신묘한 힘을 신기해하고 있었다.
“요리장.”
“네, 영주님.”
“조만간 요리장의 요리 능력을 크게 쓸 일이 있을 거예요. 필요해지면 내가 따로 부를 터이니, 긴장하지 말고 찾아오도록 해요.”
“예, 영주님. 어떤 일이든 시켜만 주시면, 최선을 다해서 하겠어요.”
메리가 앞에 서 있는 미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모녀가 동시에 포근한 미소를 내게 보냈다.
이런 천사 같은 모습에 라키스 같은 차가운 무인(武人)도 마음이 스르륵 녹아 버린 것이겠지.
나는 메리의 요리 능력과 연계해서 만들 수 있는 자동 생산공정이 있을지 연구해 볼 생각이었다.
그녀의 요리를 좀 더 대량생산해서 공급할 수 있다면, 전장에서든 어디서든 요긴하게 쓰일 것 같아서다.
요리로도 얼마든지 치유, 회복 능력을 강화하는 식품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포션과는 또 다른 별개의 개념이다.
* * *
그렇게 메리를 다시 일터로 돌려보내고 난 뒤.
나는 미아와 함께 영주 저택 밖의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미아는 실전보다는 이론과 훈련 위주로 계속 가르치는 중이었다.
실전 경험은 일전에 마군의 피난처에서 쌓은 것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미아.”
“네, 영주님!”
“수련은 열심히 하고 있지?”
“엄마랑 밥 먹는 시간 빼고는 계속 마법 수련만 하고 있어요!”
“계속 바람 마법만 수련하니?”
“네! 불이나 얼음은 재미없어요! 제 소원은요! 바람 마법을 열심히 연습해서 나중에 바람의 정령을 만나는 거예요!”
미아의 목표 의식은 확고하고 뚜렷했다.
내게 마법을 배운 그 이후부터 미아는 오직 바람 마법의 외길 인생이었다. 다른 계열의 마법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미아 – Lv. 65] [근력 : 18][체력 : 34] [마력 : 199][지혜 : 205] [민첩 : 23][매력 : 25] [물방 : 11][마방 : 21] [특수 성향 : 마나 감지 S / 바람의 노래 S / 마나 순환 B] [일반 성향 : 효도, 탐구, 악착] [특수 성향의 강력한 시너지효과로 지혜 스탯이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아티팩트 ‘바람의 마법사 르엔나의 마법서’를 보유 중입니다.]‘미쳤네. 1년 반 만에 바람의 노래를 D에서 S를 찍었어? 이건 진짜 잠재력이 확 터진 것이 아니라면 말이 안 돼. 에서도 3년은 무조건 걸렸던 발전인데?’
미아의 발전 속도는 눈부셨다.
특히 지혜 수치가 엄청났다.
현재 미아는 바람 계열 마법에 한정해서 2클래스까지 확실히 깨우쳤고, 마법서의 도움을 받아 선택적으로 4클래스 바람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는 상태다.
여기에 특수 성향에 바람의 노래가 S등급을 찍었으니, 바람 계열 마법은 대미지 값이 2배는 높아져 있는 상태다.
‘마력이 부족해 오래 버틸 수는 없겠지만, 마법 자체 위력만 놓고 보면 바람 마법으로 5클래스 마법사 공격도 버텨 낼 수 있어.’
미아에게 확실히 부족한 것은 마력이다. 그다음으로 부족한 것이 바람의 응용 능력이고.
미아의 바람 마법은 나와는 다르게 매우 거칠고, 정교하지 못한 허술한 면이 꽤 있었다.
“미아.”
“네?”
“내가 내년 봄이 오기 전에 시간을 꼭 낼 테니까 그때 나와 둘이 아네모스 고원에 놀러 가자.”
“아네모스 고원이요? 와! 거기 시원한 바람도 불고, 하늘거리는 갈대밭이 엄청 예쁘다 들었어요!”
“맞아. 거기서 네가 바람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수련법을 알려 줄게. 이건 반드시 옆에서 밀착해서 봐줄 사람이 필요하거든.”
“와아아! 신난다! 완전 신난다! 내년 봄 언제요? 언제 가요?”
“음……. 3월?”
“에? 지금 아직 9월인데요? 뭐야! 아직 반년이나 남았잖아요!”
미아가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생각해 보니 반년이면 확실히 가까운 건 아니다.
“그럼 2월?”
“에에! 1월! 1월에 가요, 영주님! 제 생일이 1월 16일이니까요! 그때 가요, 꼭이요, 꼭!”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미아의 귀여운 떼쓰기에 나는 함박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래, 생일 선물로 호된 마법 수련을 선물해 주마.
생일빵이 뭔지 확실하게 알려 주지!
나는 올해로 열세 살밖에 되지 않은 미아를 두고, 아주 사악하기 짝이 없는 계획을 세웠다.
온화함으로 위장한 사악한 미소까지 함께 곁들여서 말이다.
* * *
그날 밤까지 나는 몇몇의 가신을 더 만났다.
농업 개발 담당인 오브렌에게는 축산업과 농업에 연계해서 적용할 수 있는 지식이 담긴 서적을.
상업 담당인 아빌라에게는 그의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아티팩트를 전달했다.
아키에게 주기는 애매하나, 그에게 주기에는 제법 적절한 B급 아티팩트였다.
그리고 아세로에게는 대장간이 완성되는 즉시, 나와 함께 켈디아 광석 채굴 및 제련에 올인할 수 있도록.
체력을 보조하는 아티팩트를 제공했다. 대장장이만큼 체력 소모가 심한 직업군도 없기 때문이다.
체력을 소모할수록 최대 체력이 늘어나는 아티팩트인데, 업무 구조상 상시로 체력을 소모하는 아세로에게는 최고의 아티팩트였다.
그리고 그날 밤.
“디미오스 마법사단. 그리고 해군.”
나는 두 개의 키워드를 놓고, 마지막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하나는 검사로 이루어진 아그레시오 친위대같이 마법사로 구성된 친위대를 만드는 일이었고.
남은 하나는 원정은 아니더라도 연안(沿岸)을 충분히 지킬 규모의 해군을 육성하는 일이었다.
‘신데르스 왕국이 남쪽을 방파제처럼 막아 주고 있으니까 그 옆의 보누스, 말루스 왕국의 빈틈을 노리는 것 정도는 문제없지.’
나는 지도 속에 붉은 밑줄을 그어 둔 두 왕국의 이름을 보며, 손가락 위로 펜을 끊임없이 굴렸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생각이 갈무리된 나는 굴리던 펜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1416년, 우리 영지의 첫 번째 목표는 네놈들이다!’
팍! 핑그르르르!
목표로 삼을 두 왕국의 북동쪽, 해안가 일대에 정확하게 펜을 꽂았다. 고심 끝에 최종 결정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4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나스 대륙력 1416년, 1월 1일.
새해 첫날이 됐다.
현생에서 눈을 뜬 후, 세 번째로 맞이하는 새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