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07
제 107화
40장. 세 번째로 맞이하는 새해 – 1화
시간이 바뀌고.
새해, 1416년의 0시 0분 1초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바로 라피르의 물약을 마셨다.
그러자 레벨이 1 올랐다.
126레벨.
그간 영지의 일에 매진하느라 상태창을 살필 겨를이 없었기에, 이참에 스탯을 살펴보기로 했다.
일전에 타락한 지하 사원을 솔플 하면서 레벨업과 칭호로 올린 스탯이 쏠쏠했기 때문이다.
[자레드 – Lv. 126] [근력 : 335][체력 : 250] [마력 : 8,314][지혜 : 535] [민첩 : 190][매력 : 330] [물방 : 355][마방 : 1,162] [신성력 : 175] [잔여 스탯 : 0]‘사제지간 시스템 덕분에 추가한 마력이 500은 족히 되네? 참, 어디 보자. 4클래스까지 면역되려면, 마방 요구치가 1600이었지?’
확실히 더 높은 수준을 대비하려 하면 할수록 요구되는 스탯의 총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훗날 5클래스 면역이 되려면, 마방을 3200까지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곱절로 계속 상승한다.
마방 800으로 3클래스 마법에 면역이 됐을 때만 해도 온 세상을 다 가진 듯했는데!
막상 시간이 흐르니, 4클래스 마법에 면역이 될 수 있는 마방 1600이 간절해졌다.
‘뭐,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할 수 있다는 건 좋은 거니까.’
스탯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실력과 능력의 성장이 수치로 보이지 않았다면, 막연한 느낌에 어느 순간부터인가 욕심을 내려놓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철컹! 철컹!
“영주님, 준비 끝났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 플레이트 메일의 완전 무장을 끝낸 엘라가 나를 찾아왔다.
새해를 여는 첫 행사는 내 직속 친위대이자, 앞으로 형제 친위대로 생사고락을 함께할 두 친위대에게 말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디미오스 마법사단.
아그레시오 기사단.
명칭도 이렇게 나눠 확정했다.
기존의 친위대라는 이름으로는 모든 직업군을 아우르는 느낌이 났기에 보다 명확히 구분한 것이다.
아직까지 수가 썩 많지는 않았다. 게다가 디미오스 마법사단의 단장은 나였다.
영지 내에 유능한 마법사가 없는 것은 아니나, 통솔에 특화된 하이클래스 마법사는 없어서다.
‘말루스 왕국에 있는 나오미 그레이스 정도면 마법사단 운영에는 최적일 텐데. 좌 나오미, 우 엘라면 거의 교육과 훈련, 지휘에 특화 아닌가?’
나는 아직 내 곁에 없는 인물 하나를 떠올리며, 열심히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나오미 그레이스.
마법사로서 본다면 평범하지만, 전장의 판세를 보고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이 매우 좋은 마법사다.
실제로 성마 대전에서 신성 연합군의 최정예 마법사단인 ‘라디우스 마법사단’을 통솔했던 네임드이기도 하고.
다만 나오미의 현 상태는 훗날의 찬란한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궁벽한 처지였다.
이 엄청난 인재가 말루스 왕국의 외곽에서 조용히 개인 아카데미를 열고, 취미 삼아 후학을 양성하며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직언을 서슴지 않는 그녀의 성격이 국왕 말자리스 8세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 그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5년 전쯤부터 좌천된 채 여전히 마법계 주류로 편입되지 못하고 있을 터였다.
‘일단 나오미에 대해서는 전쟁 전에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나는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연병장에 도열해 있는 부하들을 둘러보며 관심을 빠르게 돌렸다.
디미오스 마법사단은 붉은 바탕에 백장미가 그려진 견장이고, 아그레시오 기사단은 푸른 바탕에 백장미를 그려진 견장이다.
장미가 신성 교단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한데다가, 내가 워낙에 좋아하는 꽃이기에 견장에도 적용한 것이다.
멋졌다.
가슴이 쿵쿵 뛸 정도로!
나는 도열한 단원들을 향해 음성 증폭 마법을 이용해 큰 소리로 외쳤다.
“크리비아 영지의 자랑스러운 제군들! 그대들이 있기에, 나는 작년보다 더 멋진 올해를 꿈꾸고 있다! 약속한다! 그대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은 물론, 최상의 무기를 공급하여 그대들의 품격과 가치를 높이겠노라고! 다시 한번, 이 자리에서 선언하는 바이다!”
“와아아아!”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 연설은 영지군 전체를 소집했던 송년 연설에서도 했었다.
그때는 발데스도 함께 연사로서 말을 보탰다.
진실의 오카리나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여, 수만의 영지군 전체의 심금을 크게 울렸다.
오죽했으면 연설이 끝나자마자 이를 지켜봤던 영지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입대 지원서를 냈을 정도였겠는가.
“머지않은 시일 내에 그대들의 힘이 크게 쓰일 날이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모두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고, 영주인 내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확실한 품격을 갖추도록 하라! 모두 알겠는가?”
“예!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영주님을 위하여!”
“크리비아 영지를 위하여!”
“디미오스! 하! 디미오스!”
“아그레시오! 하! 아그레시오!”
모두가 저마다 충성이 담긴 외침을 토해 내며, 소속된 집단에 맞게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곧 시작될 보루스, 말루스 왕국 진공(進攻) 작전의 선봉에 서게 될 것이다.
나와 엘라와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하는, 영지의 최정예들이니까.
* * *
그로부터 2시간 후.
나는 새해의 시작을 가족들과 함께 보낸 것이 아닌, 던전의 몬스터와 함께 시원하게 드잡이질을 하고 돌아온 동료들을 맞이했다.
미아, 레나, 클로이, 이자벨, 헤이즈. 이렇게 다섯이었다.
이들은 마군의 피난처 공략 이후, 수시로 팀을 꾸려 나 없이도 던전 공략을 하며 다녔다.
종종 사정에 따라 한둘이 빠지기도 했는데, 그때는 그때에 맞게 난이도를 조정해서 떠났다.
내가 주요 던전마다 현재 구성원으로 공략 가능한 방법 및 수준을 알려 줬기에, 무리하게 공략에 목숨을 거는 일도 전혀 없었다.
복귀하자마자 모두 앞을 다투어 영주 저택 지하에 마련되어 있는 회복실로 들어가서는 쓰러졌다.
심지어 헤이즈도 반쯤 탈진 상태가 되어서는 해롱해롱하다가, 안에 들어가 뻗었을 정도였다.
다만 이자벨은 좀 달랐다.
이제 주술을 연달아 활용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두통이 발생하는 과부하 현상은 사라진 듯했다.
던전 안에서도 제법 안배를 잘했는지, 다소 지치긴 했으나 다른 동료들처럼 녹다운 되진 않았다.
나는 이자벨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며 말을 걸었다.
“새해 복 많이 받아, 이자벨.”
“안에 뭐 이상한 거 넣은 거 아니지? 자백을 하게 만드는 자백제라든가 갑자기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최음제라든가 그런……?”
“내가 한 모금 마시고 줄까?”
이자벨의 장난 섞인 질문에 내가 음료수를 다시 가져가려 하자,
“농담이야, 농담! 자백해도 난 거짓말한 적 없이 당당하니까?”
“요즘 얼굴이 많이 밝아진 것 같다?”
“길드 덕분인 거 같아. 동향 사람들을 제법 만나니까 반갑더라. 물론 내가 살던 시절의 사람들은 아니고, 그 사람들의 자식이나 손자, 손녀지만 말이야.”
이자벨은 내게 말한 적이 없던 과거 얘기를 갑자기 술술 털어놔 버렸다.
아마도 예전에 내게 이 얘기를 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자벨이 전에 했던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했다. 그때만큼 차갑고 매몰차게 말했던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단언컨대 너는 모르면 모를수록 좋아. 진심이야.’
어쨌든 그만큼 내게 전생의 아픔, 어둠을 드러냈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했다.
이자벨은 분명히 예전보다 많이 밝아졌다. 그리고 길드를 운영하면서 생각의 깊이나 판단력도 크게 좋아졌다.
물론 여전히 허당기도 있다.
나와의 관계를 두고, 가끔 착각하는 멘트를 칠 때 말이다.
아직도 심안을 계약할 당시, 나와 진하게 나누었던 계약의 키스가 그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듯했다.
“그나저나, 이자벨.”
“응?”
“길드 이름이 너무한 거 아니냐. 드레자(Dreza)라니? 누가 봐도 내 이름을 거꾸로 한 거잖아!”
“아, 그렇게 생각했어? 나는 고어(古語)로 드레자라는 단어가 영광을 상징한다기에 거기서 이름을 땄지?”
“정말로?”
“내가 뭐 하러 네 이름을 거꾸로 돌려서 이름을 짓겠어? 관심 받고 싶은 것도 아닌데 말이야?”
분명 내게 반문을 하는 것인데, 왠지 그 말에 작명의 모든 이유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이자벨이 만든 드레자 길드에도 제법 많은 주술사가 모였다.
총 30명.
결코 적은 수는 아니다.
수장인 이자벨이 4성으로 가장 높고, 나머지 주술사 인원을 평균 수준으로 계산하면 2성 정도.
한 명의 잘 훈련된 정예 주술사는 동급의 셋 정도의 백마법사를 능히 상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길드의 인원만으로도 내게는 상당한 전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드레자 길드는 영주 직속의 주술사 길드로 100% 지원을 받으므로, 훈련이나 기타 모든 활동에도 부족함이 없다.
“다들 영주님에 대한 마음이 한결같아.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자리를 잡게 해 준 것만으로도 모두 감사하고 있어.”
“그것 반가운 소식이네.”
“누군가 딴마음을 먹는다면, 절대 곁에 두지 않을 거야! 나도 너와 함께하면서 야심이랄까? 큰 목표가 생겼거든.”
“주술사 길드를 최고로 키워 보고 싶은 그런 마음인가 보네.”
“응. 흑마법사들의 마탑이나 백마법사의 마법사단, 기사들의 기사단처럼 ‘드레자’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싶어.”
“좋아, 지금처럼 착실하게 기반부터 쌓아 가자고. 내부 관리는 철저하게 하고. 내가 신경 쓸 일 없도록.”
“걱정 마. 나보다 너에게 더 충성할 사람들만 모아 놓을 테니.”
이자벨의 말은 사실이었다.
드레자에 소속된 주술사들은 분명 내게 기본 이상의 충성도를 가지고 있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이자벨이 나에 대한 신격화(?)를 엄청나게 한다나 어쩐다나.
내가 그들의 마음을 악용할 생각은 없기에, 달리 그러지 말라고 하지는 않은 상태다.
바로 그때.
“영주님! 계십니까?”
급히 나를 부르는 라키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이자벨이 눈치껏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그럼 나는 쉬러 가 볼게. 자레드,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잘하고 있으니까!”
이자벨이 자문자답을 하고는 즉시 자리를 비웠다.
그러자 라키스가 빠르게 들어와서는 내게 서신 하나를 건넸다.
“메리 요리장의 듬직한 연인! 우리 라키스 경! 어서 오시오!”
“아앗, 영주님. 이제 그만하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벌써 4개월쨉니다!”
“그래도 재밌어서 말이오.”
“크흠! 영주님이 재밌으시다면……. 저는 괘, 괜찮습니다.”
어린애 장난을 치듯 던진 농담에 라키스가 얼굴을 붉혔다.
그의 말대로 벌써 4개월째 우려먹고 있는 농담인데, 이상하게 나는 말할 때마다 재밌다.
나만 재밌어하는 것을 보면.
내가 전생에 무척이나 ‘아싸’였다는 사실을 실감하기도 한다.
“무슨 서신이오? 금박에 이중 봉인에 보통 서신 같지 않은데?”
“봉인마다 전부 사비오(Sabio)라는 이름이 찍혀 있습니다. 혹시 아는 이름입니까? 아르케네스 길드를 통해서 기밀용 서신으로 온 문서라 제가 급히 가져 왔습니다만…….”
“드디어 올 것이 왔군.”
사비오.
언제 연락이 오나 싶었는데, 속으로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한 모양이다.
본격적으로 내가 타넥스를 사용한 지 4개월 만에 연락이 왔다.
“영주님, 누굽니까?”
“일단 서신부터 먼저 읽고 얘기해도 되겠소?”
“아, 죄송합니다.”
나는 라키스에게서 서신을 전해 받았고, 바로 봉인을 뜯고 내용을 펼쳤다.
그러자 첫 줄부터 아주 강력한, 녀석의 멘트가 적혀 있었다.
거만하기 짝이 없는 멘트!
마도 공학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콧대가 높다 못해 하늘을 찌르는 녀석다운 멘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