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08
제 108화
40장. 세 번째로 맞이하는 새해 – 2화
“멀티 텔레포트가 좋긴 좋군요. 한데 영주님, 영주님은 아직 5클래스 아니십니까? 멀티 텔레포트는 제 얕은 지식으로는 6클래스 마법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소. 멀티 텔레포트는 6클래스지. 그리고 나는 5클래스고.”
“어찌 된 일입니까?”
“숨겨 둔 비장의 무기라고나 할까? 그렇게만 알아 두시오.”
“정말 매번 두 눈으로 보지만, 영주님은 믿을 수 없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 너무 칭찬할 것은 없소.”
“바렛 자작님께서 살아계셨다면, 정말 흐뭇하게 영주님의 통치를 지켜보셨을 겁니다.”
“고맙소.”
라키스의 말에 자레드는 아버지 바렛 자작을 떠올렸다.
바렛 자작과 자신의 인연은 분명 평범하지는 않았다.
자레드의 어머니는 자레드를 낳은 다음 날에 세상을 떠났고, 바렛 자작은 평생 재혼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마음에 담지 않고, 죽는 그날까지 오직 부인만을 그리워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자레드에게는 다른 이들에게는 흔한 형제가 하나도 없었다. 외아들이었다.
바렛 자작은 아기였던 자레드에게 잠시 젖을 먹이기 위해 유모를 붙였던 것을 제외하고는, 늘 자레드를 곁에서 직접 키웠다.
금이야 옥이야 자레드를 키우며, 바렛 자작은 많은 것을 가르쳤다.
그중에 자레드가 지금 가장 많은 덕을 보고 있는 것은 역시 가문의 심법인 유칼레스 마나 심법이었다.
그 덕분에 자레드는 자신의 수련법에 심법을 접목시켜, 마력과 마법 방어력을 꾸준히 올려 왔다.
그때, 라키스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주님.”
“음?”
“사비오라는 자. 경계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괜찮소. 원한 관계에 있는 엘프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오.”
“제가 곁에 없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소. 라키스, 그대는 해안가에 주둔 중인 영지군를 점검해 주시오. 그러라고 함께 온 것이니.”
“예, 알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말입니다. 게니츠 제독의 포섭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돈으로 마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군.”
“예, 천생 무인입니다. 하지만 아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병사들이 납득하지 않는 선택은 결코 옳은 선택이 아니라는 답변을 남겼다더군요.”
“병사들이 납득하지 않는 선택은 옳지 않다……. 배신에 대의와 명분이 필요하다는 것이로군.”
“예, 정확히 보셨습니다.”
자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혈입성으로 보누스 왕국의 영토를 취할 요량으로 왕국 북동부 해군 사령관 게니츠와 은밀히 접선을 했던 것이다.
성과는 라키스의 말대로 결렬.
하지만 답변에서 묘한 뉘앙스를 읽어 냈기에, 자레드의 표정은 오히려 밝았다.
“그렇다면 정면 승부로 확실한 힘의 차이를 보여 줄 뿐이오.”
“내부 장성 회의를 통해 정말 셀 수도 없이 많은 모의 전투 실험을 거쳤습니다. 영주님, 지금의 전력으로도 두 왕국의 해안 도시 장악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판단 근거를 보충해 보겠소?”
“지난 2년간, 두 왕국은 해군의 예산을 기존의 20% 수준까지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해적은 진즉에 사라졌고, 요직에 육군 장성들이 대거 입각하면서 견제가 시작된 것이지요.”
“해군의 수준이 확실히 형편없어지긴 했더군.”
“예. 새로운 함선 건조는 꿈도 못 꾸고, 그나마 기존 함선 보수도 겨우 예산을 짜내서 하는 실정이랍니다. 봉급을 대폭 줄이기 위해 다수의 베테랑 군인을 예편시킨 것은 놀랄 축에도 못 끼지요.”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립시다. 아직 무기들이 충분하게 생산이 되지 않았소.”
“전에 제게 선물해 주셨던 켈디아 검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영지군 전체는 아니라도, 중군(中軍) 정도는 확실히 무장할 수 있는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하고 싶소.”
“예, 영주님. 하명하신 대로 아세로 님은 VIP급 이상의 경호를 늘 유지 중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럼 저는 분부 받은 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나겠습니다.”
“수고해 주시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키스는 자레드가 내린 명령대로 영지군을 점검, 점고하고자 자리를 비웠다.
그 즉시, 자레드가 바로 아공간에서 타넥스를 꺼내어 착용했다.
텔레포트를 이용해서 이동할 수도 있지만.
이왕 원주인을 만나는 김에 현란하게 타넥스로 입체 기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떨리네.”
좀처럼 긴장하지 않는 자레드도 막상 사비오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떨렸다.
사비오 역시, 클로이처럼 미래에 대한 많은 키(Key)를 쥐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비오가 쌓은 마도 공학 연구의 금자탑이 마왕군의 것이 되면…… 그때부터 인간들에게는 지옥이 시작된다.
지금 자레드가 운용하는 타넥스 같은 초월체가 수백 기씩 전장을 누비며, 이유 불문하고 인간을 마구 학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비오를 죽이면, 내가 녀석을 낚아채서 독식할 수 있는 미래의 특전이 사라지게 돼.’
그렇다고 미래의 후환을 확실하게 없애기 위해, 사비오를 죽이는 것도 별로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사비오가 죽어도, 연구 기록은 남아 있다. 누군가는 분명 그 뒤를 이어 연구를 개시할 것이다.
그러면 제2의 사비오가 등장할 것이고, 그를 죽인 일은 결국 헛수고가 될 터였다.
그렇게 북쪽으로 얼마나 움직였을까?
‘찾았다.’
자레드는 해안가를 따라 조용히 걷고 있는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피부와 헤어스타일만 봐도 다크 엘프임을 믿어 의심치 않을 외모의 소유자였다.
한겨울인 1월.
그것도 가장 춥기로 유명한 북부에서도 최북단에 위치한 메이트 항구는 일찌감치 얼어 있었다.
바다가 얼었는데도 사비오가 여기에 넘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바다가 얼기 전에 일찌감치 넘어와 있었거나, 아니면 여분의 타넥스가 있거나.
“…….”
빠르게 접근한 뒤, 자레드가 앞에서 천천히 선회하며 내려오자.
짝. 짝. 짝.
사비오가 자레드를 바라보며 계속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조롱이나 도발 따위가 아닌,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담긴 박수였다.
깔끔하게 타넥스를 기동하며 안전하게 착륙한 것을 확인한 사비오가 자레드에게 악수를 청했다.
“반갑군, 자레드 공작. 난 사비오라고 한다. 올해 스물일곱이지.”
“난 자레드. 나이는 동갑이군. 공작이란 단어는 굳이 안 붙여도 돼. 어차피 네가 사는 세계와 내가 사는 세계가 다르니.”
“그간 네가 다양하게 타트라 넥스를 활용하는 걸 직접 봤다. 내가 지켜보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된 거지?”
“이마에 마정석을 박은 아래쪽 부분의 구멍. 거기에 작은 영상 장치를 심은 것 같던데.”
“맞아, 아무도 모르는 위치에 박아 뒀는데……. 예리하군. 역시 넌 뭔가 달라! 처음 타트라 넥스를 가져갔을 때부터 남달랐지. 마치 처음부터 이 녀석의 사용법을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야!”
감탄하는 사비오의 반응에 자레드가 당당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때, 파일럿으로 쓸 만했어?”
자레드의 말을 들은 사비오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너 이상으로 이 녀석을 잘 다룬 사람, 아니 엘프는 없었어. 마치 너는 생산 단계부터 이 녀석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
“그래?”
“그래! 나조차도 셀 수 없이 녀석을 가지고 시제 기동을 했어. 하지만 너와 같이 유려하게, 타트라 넥스의 모든 능력을 100%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사비오의 목소리는 잔뜩 격앙되어 있었다.
다크 엘프 중에서 사비오만큼 내로라하는 엘리트들도 타넥스의 사용법은 잘 알지 못했다.
19살부터 연구를 시작해서 올해로 8년.
긴 시간을 개발에 투자했지만, 솔직히 자신이 옳은 길로 가고 있는지 사비오는 늘 그게 궁금했었다.
그런데 자레드가 확신을 줬다.
틀리지 않았다고.
너의 8년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말이다!
자레드가 타트라 넥스를 탈착한 뒤, 가벼워진 몸으로 사비오의 앞에 섰다.
서로 생김새도, 피부색도, 머리색도 다른 두 남자의 만남이었다.
자레드가 물었다.
“이 녀석을 회수해 갈 건가?”
“아니,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네가 괜찮다면 계속 이 녀석을 운용해 줬으면 하는데.”
이미 사비오는 자레드에게 마음을 빼앗길 대로 빼앗긴 상태였다.
자신이 만든 물건의 진가를 누구보다 잘 알아주는 사람을 멀리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그가 같은 다크 엘프가 아닌 인간이라 해도 말이다.
“그러면 부탁이 있어. 타트라 넥스에 봉인이 2개 걸려 있는 것 같던데, 이 부분을 풀어 줄 수 없을까?”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사비오의 입이 떡 벌어졌다.
경악.
설계도를 본 것이 아니라면, 절대 그 누구도 봉인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없다.
이건 마치 한 번도 자신의 집에 온 적 없는 사람이 금고의 위치와 비밀번호까지 다 알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사비오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자레드는 자신과 타트라 넥스에 대해 도대체 얼마나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면 들수록, 사비오는 자레드에게 더 많은 마음과 관심이 생겼다.
타트라 넥스를 사랑하기에!
녀석을 빛나게 해 주는 자레드 같은 파일럿을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자레드가 은근한 목소리로 사비오에게 요청했다.
“타트라 넥스의 능력을 전부 활용하고 싶어. 확실하게 해제만 해 준다면, 정말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활용할 자신이 있는데!”
봉인된 두 가지 능력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보일 수 있는 자신감이기도 했다.
“공짜로는 안 돼. 절대 안 돼.”
하지만 사비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자레드에게 잠시 손을 뻗고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스스로를 납득시킬 만한 이유를 찾고 싶었다.
이 녀석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 정도면 타트라 넥스의 모든 능력을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명분, 바로 그것 말이다.
“그럼 뭐가 필요하지?”
“내 테스트를 통과하면 기꺼이 봉인을 풀어 주지. 하지만 그 전까지는 안 돼. 자격 미달이야.”
사비오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솔직히 자격은 예전에 갖췄다. 다만…… 너무 쉽게 타트라 넥스를 허락하고 싶지 않을 뿐.
“어떤 테스트?”
“하오스 아일랜드의 수호신이라고 불리는 네메시스(Nemesis)를 죽여 줘.”
“아, 네메시스?”
“놈을 알아?”
“알다마다. 모를 수가 없지.”
“하오스 아일랜드는 타타르 아일랜드보다 훨씬 북쪽에 있는 섬인데, 녀석을 본토에 있는 네가 어떻게 알아?”
“아는 게 중요한 거 아냐?”
자레드가 웃었다.
네메시스. 잘 알기는 하지만 상대하기 무척 까다로운 녀석이다.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삼십육계 줄행랑으로 내뺄 수는 있겠으나, 그 전까지는 목숨을 걸고 싸울 각오를 해야 했다.
자레드가 말을 이었다.
“좋아. 테스트를 받아들이지. 내가 테스트를 통과하면, 네가 만든 최고의 작품인 이 녀석을 최고의 상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줘.”
“자신 있어?”
본인이 제안을 해 놓고도 사비오는 뭔가 불안한 눈치였다.
사실 사비오는 자레드가 네메시스와 적당히 대적(對敵)하기만 해도 성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레드의 생각은 좀 더 멀리 보고 있는 듯했다.
“자신 있지. 자, 확실하게 계약을 하자고. 네메시스를 죽이면, 나를 타트라 넥스의 정식 파일럿으로 인정하는 거야. 어때?”
“…….”
“대신 실패하면 즉시 이 녀석을 반납하고, 그동안 사용한 것에 대한 이용료를 섭섭지 않게 지불하도록 하지.”
“좋아. 그렇게 하자.”
“계약 성립?”
“응, 성립이다.”
처억!
자레드와 사비오가 동시에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오늘의 인연이 과연 일회성의 만남으로 끝날지, 아니면 미래를 함께할 동반자의 관계가 될지.
자레드 본인도 아직까지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긴장됐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도 됐다.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사비오가 물었다.
“출발 준비를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 언제까지 기다리면 될까? 이틀? 사흘?”
자레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
짧고 굵게 대답했다.
“이틀은 무슨? 지금 출발하자.”
결정은 신속했고.
행동은 전광석화처럼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