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12
제 112화
42장. 이이제이, 토사구팽 – 1화
-시원하당. 배 좀 더 긁어 줘랑. 잠이 올락 말락 하는데, 좀만 더 긁어 주면……. 크어어.
자정을 넘은 시각.
데리는 자신을 1순위로 사랑해 주는 헤이즈가 던전으로 떠나고 없자 오늘은 내 집무실에 와 있었다.
하도 배 좀 긁어 달라고 귀찮게 굴길래 시원하게 손톱을 세워 긁어 줬더니, 어느 순간엔가 발라당 배를 까뒤집고는 잠이 들었다.
‘벌써 레벨이 20이야? 얼마나 많은 쥐를 잡은 거야. 어디 원정이라도 나갔다 왔나?’
데리의 레벨이 꽤 올라 있었다.
에서 플레이어가 부리던 펫도 레벨업을 하기는 했다. 함께 던전에 있을 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데리를 던전에 데려간 적이 없었다.
어쨌든 ‘사냥 행위’를 하면 경험치를 얻기는 하는데, 데리는 십중팔구 쥐를 사냥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니 근력이며 민첩이며 하는 스탯이 올라 있을 수밖에.
어쨌든 나는 그렇게 데리를 재운 채, 칼라카스 꽃잎차를 홀짝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갈라딘 공작이 이 시점에 나를 찾아온다……. 그것도 왕국도 아닌 독자 세력인 우리에게?’
사신이야 얼마든지 올 수 있다.
일전에 우기 때문에 마스터 포션이 필요해졌을 때만 해도, 각국에서 사신이 찾아왔었으니까.
그래서 오는 것 자체는 문제 될 게 없는데, 오는 손님이 문제였다.
갈라딘 라스무틴.
갈라딘 공작으로 잘 알려진 그는 렌투스 제국의 유명한 소드 마스터다.
에서의 갈라딘은 소속된 렌투스 제국의 영광을 꿈꾸는 군국주의자였다.
또한 렌투스 제국의 황제 루틀러 4세는 그를 매우 신뢰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그와 절친한 친구로 가까이 지낸 것이 한몫했다.
공식적으로 갈라딘은 렌투스 기사단의 단장이지만, 사실상 황제의 막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세이기도 했다.
사신으로 그런 갈라딘이 왔다는 것은 황제가 직접 보낸 복심(腹心)이나 다름없다는 뜻인 셈이다.
‘갈라딘은 애초부터 전쟁광이었잖아. 이 인간, 머릿속이 전쟁과 정복으로 가득 찬 인간인데…….’
입맛이 씁쓸했다.
가신도 꾸준히 잘 늘어나고 있고, 사비오와의 일도 잘 풀려서 기분이 꽤 좋았던 차였다.
그 좋았던 분위기에 찬물을 시원하게 들이부은 느낌이었다.
내가 갈라딘을 경계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갈라딘은 제국의 영토 확장에만 관심이 있는 인간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에서 성마 대전이 발발했을 때.
렌투스 제국은 신성제국 연합에 참여하지 않았다. 주신으로 라디우스를 섬기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럼 그들은 무엇을 했느냐?
대군을 일으켜, 성마 대전에서 마왕군과의 긴 전쟁으로 힘이 빠진 국가를 기습 공격했다.
신성제국 연합이 공동성명을 내고 렌투스 제국의 사악함을 규탄했지만, 그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에서는 1개월에 한 번씩, 렌투스 제국군의 공격으로부터 방어전을 치르는 이벤트가 정기적으로 있었다.
특히 렌투스 제국과의 접경지대에 영지를 가지고 있는 영주 플레이어들은 정말 치열하게 방어에 투자하고, 또 투자했다.
방어전을 치르기 위해서, 한 달 치의 월급을 남김없이 투자했다는 영주 플레이어의 인증 글이 심심찮게 올라왔을 정도다.
둘째, 갈라딘은 이이제이와 토사구팽이라는 키워드가 딱 어울리는 인간이다.
하나의 세력을 공략하기 위해, 주변에 있는 세력의 힘을 가져다 쓴다. 온갖 달콤한 유혹과 미래를 약속하고 말이다.
하지만 막상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그 즉시 기치창검의 끝을 협력한 주변 세력에게로 향했다.
이제 사냥은 끝났으니, 쓸모없어진 사냥개를 잡아먹겠다는 뜻이었다.
이 레퍼토리는 정말 수도 없이 많이 반복됐지만, 스토리 속의 국가들은 바보같이 갈라딘에게 많이 속아 넘어갔다.
이것 때문에 플레이어는 국가들의 멍청한 헛짓거리를 지켜보며,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스토리 퀘스트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갈라딘에 대해서 블로그에 포스팅 했던 첫 글의 첫 줄에 적었던 내용이다.
진리는 이것이다.
시작부터 악연이거나.
아니면 협력자의 관계에서 시작했다가 결국은 사냥개 신세가 되어, 삶아 먹히고 만다.
‘렌-세븐까지. 빌어먹을 빌런(악당)들이 하나도 아니고 여덟이 오네. 기가 차네, 기가 차.’
나는 어이가 없어 그만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갈라딘의 호위대로 함께하는 렌-세븐은 역대급 쓰레기들만 모아 놓은 집단이다.
원스넬, 투카, 쓰루나, 포우, 파시벤, 시클루스, 세난.
1부터 7까지의 영어를 변형시킨 작명 센스 – 개발진의 최악의 센스 – 가 돋보이는 녀석들이라 이름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대화 분위기가 썩 화기애애하지는 않겠군.”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갈라딘은 매우 강하다. 휘하의 렌-세븐 역시 마찬가지고.
그들이 작정하고 나와 싸우려 든다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타트라 넥스가 완파될 각오로 싸워야 겨우 버틸 수 있을 터.
아무리 안하무인이라도 사신으로 와서 그런 횡포를 부릴 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그럴 가능성이 1%라도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 * *
다음 날 오후.
갈라딘과 그 일행이 자레드의 영주 성에 도착했다.
갈라딘은 오는 내내 크리비아 대영지의 모습을 꼼꼼하게 눈에 담았다.
최근에 예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는 사나레 성지는 가 보지 못했지만, 그쪽으로 향하는 신자의 순례 행렬을 쉴 새 없이 볼 수 있었다.
‘말만 공작령이지, 사실상 국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군. 체계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고, 주둔 중인 병사의 숫자도 상당히 많다.’
일부러 보여 주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갈라딘은 자레드의 대영지가 규모도 클뿐더러, 국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체계가 잘 잡혀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영주 성 안으로 들어서자, 대로 중앙의 대광장에는 기록 영화를 보기 위해 나온 영지민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영상에는 자레드의 연설과 함께 끝없이 도열해 있는 영지군의 위풍당당한 기세가 담겨 있었다.
‘신데르스 왕국의 내전을 단번에 종식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이 바로 저것이고.’
갈라딘은 주의 깊게 영상 장치를 훑었다.
몇 차례나 자레드에게 판매 요청을 부탁했지만, 단호히 거절당한 장치이기도 했다.
그래서 제국 내의 내로라하는 마도 공학자들에게 영상 장치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하게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라고 엄명을 내렸었다.
결과는 대실패.
그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는 장치를 겨우 만들고는 그만 포기해 버렸고, 황제의 문책을 받아 감옥에 갇혔다.
“공작님, 거의 다 왔습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갈라딘이 가장 아끼는 렌-세븐의 첫째, 쌍검술의 달인인 원스넬의 목소리였다.
“벌써인가. 빠르군.”
“영지 전체의 도로가 잘 닦여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이 놀랍습니다.”
“같은 생각이다. 자레드 놈, 확실히 보통내기는 아니군.”
“예.”
“좀 더 속도를 내자. 자레드를 빨리 만나 보고 싶으니 말이다.”
“예. 서두르겠습니다.”
마차의 움직임이 더 빨라지자, 갈라딘이 옷매무새를 고쳤다.
이제 드디어 만남의 시간이다.
* * *
나는 VIP 전용 응접실에서 갈라딘을 만났다.
갈라딘이 먼저 독대를 요청하고 렌-세븐을 물렸기에, 나 역시 함께 있던 라키스를 나가도록 했다.
비록 수적으로는 열세지만, 라키스는 응접실 밖에서 렌-세븐을 상대로도 주눅 들지 않고 입구를 잘 지키고 있었다.
한편 밖에는 혹시나 하는 걱정으로 나를 찾아온 가신이 꽤 많았다. 발데스, 율리안, 아빌라, 오브렌……. 그리고 그 외 다수.
나스 대륙의 5제국 중 하나인 렌투스 제국에서 사람이 왔으니,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
게다가 잔인하고 포악하기로 악명 높은 갈라딘이 왔으니, 혹시나 내게 해코지라도 하지 않을지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쪼르르르.
헤이즈가 없는 탓에 오늘은 다른 하녀가 찻잔에 차를 채웠다.
확실히 헤이즈와는 동작의 부드러움이나 자연스러움에서 큰 차이가 난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지금 느껴지는 헤이즈의 공백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갈라딘 – Lv. 601] [근력 : 1,335][체력 : 1,009] [마력 : 325][지혜 : 101] [민첩 : 101][매력 : 112] [물방 : 721][마방 : 809] [특수 성향 : 오러 블레이드 SSS / 항마 대응 SSS / 신성력 강화 SS] [일반 성향 : 정복, 전쟁, 견제] [아티팩트 ‘렌투스 신검’을 보유 중입니다.] [아티팩트 ‘명장 이그레토의 미스릴 갑옷’을 보유 중입니다.]‘걸어 다니는 철벽이야?’
갈라딘의 스탯을 심안으로 확인한 나는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물론 그가 절대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한 나라, 그것도 제국의 실세인 사람이 아니던가. 더 나아가 기사단의 단장이며, 동시에 소드 마스터이기도 하다.
황제가 하사한 것으로 보이는 아티팩트빨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빼도 엄청난 스탯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았다.
지금 그의 마방 수치면, 내가 3클래스 이하로 시전하는 마법은 전부 방어력에 무력화된다.
게다가 항마 대응까지 SSS급을 찍었으니! 4클래스 마법까지는 손쉽게 막아 낼 것이다.
특수 성향 자체는 3개로 많지 않았지만, 그 성향만으로 이미 그의 존재 가치는 충분히 증명됐다.
‘와…….’
상대하지 못할 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힘의 차이에 소름이 돋았다.
가장 격차를 크게 느꼈던 것은 베르하드를 만났을 때다.
하지만 그때는 레벨이 10배나 차이가 나서, 심안으로 그의 스탯을 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갈라딘의 스탯이 처음으로,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네임드의 스탯이었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조용하시군요. 자레드 공작님.”
“먼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말입니다. 사실 우리 영지와 렌투스 제국 사이에는 거리도 제법 있고 말이죠.”
먼저 운을 뗀 갈라딘의 말에 나는 적당히 선을 두고, 그의 말을 받아쳤다.
렌투스 제국과 크리비아 대영지 사이에는 가장 큰 장벽이 하나 있다. 바로 신데르스 왕국이다.
물론 그렇기에 갈라딘이 왜 나를 찾아왔는지는 충분히 짐작이 갔다.
이이제이(以夷制夷).
그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면, 분명히 오늘 대화의 화두는 ‘신데르스 왕국’이 될 것이다.
“좋습니다. 용건이 궁금하실 테니,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죠. 자레드 공작님, 영토 확장을 위해서 병력을 증강하고 계시지요?”
“그렇습니다만.”
어차피 잘 알려진 사실이라, 나는 그의 질문에 부정하지 않았다. 내가 부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통할 짬도 아니고.
“잘됐군요. 우리 제국과 손을 잡고, 신데르스 왕국을 공격합시다. 자레드 공작께서 뒤를 맡아 주시면, 내전 수습으로 휘청거리는 왕국을 무너뜨리는 것은 일도 아닐 듯싶은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
묵직하게.
갈라딘이 처음부터 대놓고 돌직구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