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14
제 114화
43장. 바람의 정령왕, 비에나 – 1화
갈라딘 공작과의 만남 이후.
자레드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우선 신데르스 왕국에 사신을 보내, 렌투스 제국의 침공 가능성을 알렸다.
단순한 선의(善意)가 아니었다.
신데르스 왕국이 아무 대응도 못 하고 무너지게 되면 다음은 자신의 차례가 되므로, 영리하게 그들에게 위험을 경고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동안 꾸준히 재고를 쌓아 온 자레드 지뢰를 신데르스 왕국에 대량으로 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렌투스 제국도 견제하고, 신데르스 왕국의 호의도 얻고, 군사 무기도 팔고! 일석삼조였다.
그다음.
여러 번의 심도 있는 군사 회의를 거쳐, 1416년 2월 1일을 디데이로 결정했다.
그것은 바로.
말루스 왕국의 해안 도시 프라시노와 보누스 왕국의 해안 도시 리라키를 공격할 날이었다.
그간 착실히 준비해 왔다.
특히 지난 4개월간!
아세로는 밤잠까지 반납해 가며 켈디아를 활용한 무기 생산에 매진해 왔다.
자레드가 뜯어말려도, 오히려 본인이 직접 나서서 달려온 강행군이었다.
그리고 켈디아 검과 창은 기밀 유지를 위해 아직까지 영지군에게 전혀 보급되지 않고 있었다.
외부로 알려진 정보 역시 하나도 없었다.
자레드와 라키스, 아세로를 포함한 모든 관계자가 완벽히 함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장간에서 아세로와 함께 일하고 있는 대장장이들은 아예 대장간 밖을 나가지도 않았다.
그들은 모두 아세로가 데려온 인맥으로 입이 무거운 동료들이었다.
자레드는 그들에게도 다른 대장장이가 전혀 부럽지 않을 높은 봉급과 성과급을 약속했다.
그리고 진심을 담은 대화로 그들에게 영지의 운영 계획과 나아갈 길을 설명했다.
파우페르 왕국처럼 꿈도, 미래도 없는 곳에서 고통 받던 그들에게 크리비아 영지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자레드의 진심에 대장장이들은 빠르게 감화됐고, 진심 어린 충심을 담아 크리비아 영지를 위해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레드가 원했던 선순환이었다.
한편.
자레드는 혹시나 디데이를 앞두고 두 왕국에서 대규모의 병력 재배치가 있지 않을까 걱정했다.
아무리 숨긴다고 해도, 최근 훈련의 빈도를 높여 가면서 영지군의 컨디션을 바짝 끌어올리는 것까지 감출 수는 없어서다.
하지만 놀라우리만치 두 왕국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오히려 2월 1일, 대축제를 앞두고 왕도(王都)에서는 축제 준비에 한창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천재일우.
때를 노리는 자레드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고 있었다.
* * *
1월 15일.
미아의 생일을 하루 앞두고.
나와 미아는 아네모스 고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와아! 저기가 영주님이 말씀하신 아네모스 고원이에요?”
“그래. 확실히 신기하지? 올라가는 길목은 깎아지른 절벽처럼 경사가 심한데, 막상 표면은 평탄하니 말이야.”
“밑에서 보면 이런 벌판이 있다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예전부터 아네모스 고원은 많은 수련자의 좋은 수련 장소가 되어 왔지.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말이야.”
9월에 미아와 했었던 약속을 잊지 않고 지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다.
나는 타넥스를 이용해 미아와 공중 경로로 이동 중이었다.
지상 루트는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이동 경로에 전부 트랩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설치자는 다름 아닌 블루 드래곤(Blue Dragon)이다.
외부인의 접근을 극도로 싫어하는 블루 드래곤에게 아네모스 고원은 심리적인 저지선이었기 때문이다.
아네모스 고원에서 조금만 북쪽으로 더 가면, 그들의 생활 반경과 겹치기에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그래서 애초에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고원 근처에 트랩을 미친 듯이 깔았던 것이다.
덕분에 아네모스 고원은 태초의 자연이 잘 보존되고 있었다.
콰아아앙!
바로 그때.
지상에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며 트랩이 폭발했다.
타넥스를 이용해 고도를 높이며 아래를 살피니, 반으로 쪼개진 멧돼지의 시체가 하늘 높이 날고 있었다.
저런 식이다.
멧돼지니까 그나마 몸이 반 토막만 났지, 사람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미아가 나를 꼭 껴안으며 소리쳤다.
“꺄악! 영주님, 무서워요!”
“괜찮아. 우리가 함정을 밟을 일은 없으니까. 나만 믿어.”
“저건 누가 만든 함정이에요?”
“고원에서 북쪽으로 30km 정도 더 가면 블루 드래곤의 터전이 있거든. 그들이 만든 함정이야.”
“나쁜 드래곤! 이유 없이 동물이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함정을 설치하는 건 나쁘다고 생각해요!”
“맞아. 하지만 드래곤은 상식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돼. 드래곤은 재미 삼아 인간을 죽이기도 하거든. 우리가 종종 개미를 밟아 죽이듯이 말이야.”
“정말 나빠요…….”
“그게 힘의 논리란다. 이것을 바로 잡고 싶으면, 드래곤보다 더 큰 힘을 가져야겠지. 그렇지?”
“꼭! 반드시! 저는 드래곤보다 강한 마법사가 되고 싶어요!”
“나도 마찬가지다. 드래곤도 뛰어넘을 마법사가 되는 것. 그것만큼 짜릿한 일도 없을 거다.”
꿈은 클수록 좋다고, 미아를 따라 나도 더 큰 꿈을 꾸었다.
다만 지금의 베르하드도 드래곤 앞에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터였다. 즉,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좀 더 속력을 낼 거야. 고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내가 막아 줄 테니 펼쳐진 벌판을 마음 편히 감상하렴.”
“네! 감사해요, 영주님!”
“자, 간다!”
타넥스의 출력을 좀 더 높였다.
아네모스 고원은 바람이 많이 불기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진입부에서는 변화무쌍한 바람과 함께 광풍이 많이 불어,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인공지능 올라의 기동 보정을 받아 볼까 했지만, 미아가 타고 있어 보류하기로 했다.
혹시라도 거칠게 기동하게 되면, 미아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으니까.
구아아아!
마력을 한껏 소진하기 시작하며 속력을 높인 타넥스가 빠르게 고원으로 가까워져 갔다.
* * *
그로부터 10분 후.
두꺼운 실드로 모든 바람을 막고, 안정 고도를 유지했기 때문인지 미아는 풍경을 감상하다가 잠이 들었다.
‘보인다.’
목적지로 삼은 위치가 보였다.
아네모스 고원에서도 가장 중앙에 위치한 개활지로 미아와 함께 바람 마법 수련을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인 곳이었다.
그래서 의 플레이어들은 이 장소를 골드 스팟(Gold Spot)이라 불렀다.
골드 스팟은 수련에도 탁월한 곳이지만, 내가 쓰려는 바람의 정령왕 소환 꼼수를 쓰기에도 아주 좋은 곳이었다.
아네모스 고원은 바람의 축복이 내린 곳으로 오래전부터 바람의 정령들이 살아온 터전이었다.
바람의 정령들은 타타르 아일랜드의 다크 엘프만큼이나 인간에게 배타적인 종족이었다.
그래서 고원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충분히 함정을 피하도록 도와줄 수 있음에도,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만 태생이 바람의 정령이다 보니, 바람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인간에게는 관심이 많았다.
특히 마법사 말이다.
그래서 아네모스 고원을 방문한 마법사들 중 바람을 잘 다룰 줄 아는 마법사에게는 모습을 드러냈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것도 바람의 정령왕, 비에나가 직접 말이다.
‘정령들과 정령왕을 불러낸다면, 나와 미아의 성취를 한층 더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어.’
나는 정령왕 비에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의도된 꼼수를 쓸 생각이었다.
방법 자체는 간단하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아네모스 고원에서 열심히 바람 계열의 마법을 수련하면 된다.
특히 내게는 트랜센던스 마법이 있으니, 이것까지 곁들여 쓰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바람 마법에 관심이 많은 비에나라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특히 특수 성향 ‘바람의 노래’가 SS 판정을 받고 있는 미아에게서는 깊은 친화력을 느낄 것이다.
미아도 마찬가지.
처음 보는 정령왕이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친밀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에나는 분명 나와 미아에게 관심을 가질 거다. 그녀의 호기심은 정말 못 말릴 정도니까.’
[화염 계열 마법 : SSS] [결빙 계열 마법 : B] [바람 계열 마법 : B] [흙 계열 마법 : C] [기타 계열 마법 : C]마법 평가에 관련된 정보창을 보자, 확실히 2% 아쉬운 바람 계열의 판정이 눈에 들어왔다.
‘최소한 전부 A는 찍어야, 올라운더 마법사라고 할 수 있지!’
욕심이 난다, 격하게!
당장이라도 빨리 꼼수를 이용해서 바람의 정령왕, 비에나를 소환하고 싶다.
성장과 한계 돌파의 기쁨은 늘 새롭고 짜릿하니까!
* * *
골드 스팟에 도착하자마자 자레드는 정말 극한에 가까울 정도로 미아를 굴리고 또 굴렸다.
혹독한 훈련으로 미아의 ‘생일빵’을 대신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진심이었다.
바람 마법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시전 전, 중, 후의 호흡.
순풍, 역풍에 맞춰 예리하게 계산하고 적용하는 컨트롤.
그리고 주변의 지형지물을 적극 활용해서, 적의 빈틈을 공략하는 노림수까지.
자레드는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압축하여, 미아에게 끊임없이 전수했다.
물론 이를 체득하기 위한 과정에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했다.
자레드는 수련하는 동안 1시간에 한 번 정도는 휴식을 취할 계획이었다.
올해로 14살이 된 미아의 체력과 집중력을 고려한, 나름대로의 안배였다.
“계속요! 안 쉬어도 돼요! 정말이에요! 더 알려 주세요! 네?”
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진즉에 뻗거나 헛구역질을 하며 쓰러질 줄 알았던 미아는 엄청 좋아하면서 훈련에 매진했다.
오히려 자레드가 잠깐이라도 숨을 돌리려고 하면, 채근하며 다음 훈련을 알려 달라고 할 정도였다.
“힘들지 않아?”
“네! 영주님과 이렇게 단둘이서 정신없이 수련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걸요?”
미아의 말대로였다.
사실 지금까지 자레드가 미아를 가르친 것은 원 포인트 레슨에 가까운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아가 눈부신 성장을 해 왔던 것은 그녀가 바람 계열의 마법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지 시찰에서 미아라는 유망주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정말 평생을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 같을 정도로 미아의 실력은 우수했다.
“좋아. 그럼 지쳐 쓰러질 때까지 맹훈련이다. 각오 됐지?”
“네! 작은 것도 좋으니까, 무엇이든 가르쳐 주세요! 영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거라면, 저는 무조건 좋아요!”
자레드는 순간 미아에게서 헤이즈가 살짝 겹쳐 보이는 듯한 느낌에 흠칫했다.
무조건 좋다.
이런 말은 참 위험한데.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상대를 완전히 신뢰할 수 있을 정도로 순수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난 이미 때가 많이 묻어 버렸지. 특히 전생의 때가.’
자조 섞인 웃음과 함께 전생의 자신을 떠올렸다.
순수함과 순진함은 영원히 자신의 감정은 되지 못할 것 같았다.
사실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영지를 운영해 나갈 수 없기도 하다.
당장에 고개를 살짝 돌려도, 갈라딘 공작과 같은 악인들이 득시글거리는 것이 현실 아니던가.
‘괴물을 잡으려면 그보다 더한 괴물이 되어야 해. 악인을 잡으려면 그보다 더한 악인이 되어야 하고.’
그건 자신의 몫이다.
어깨 위에 수많은 영지민과 가신, 동료들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자레드의 숙명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미아는 지금처럼 영원히 순수했으면 했다. 때 묻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렇게 자레드와 미아의 맹훈련은 3일 동안 쉬지 않고 계속됐다.
잠은 4시간을 잔 것이 최대였고, 식사는 매 끼니에 10분이면 끝냈다. 그것도 간편식으로.
아네모스 고원 전체가 마치 자기 집 앞마당이라도 된 것처럼.
자레드와 미아는 지쳐 쓰러질 때까지 바람 계열의 마법을 시전하며 휘저었다.
덕분에 두 사람이 머무른 베이스캠프 근처의 갈대는 전부 바깥 방향으로 누워 버렸을 정도였다.
그렇게 맹훈련이 4일 차로 접어들고, 강행군을 해 온 미아가 슬슬 체력의 한계를 드러낼 즈음.
“영주님! 저기! 저거 뭐예요?”
미아가 갑자기 상공에 나타난 무언가를 보고는 깜짝 놀라 그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자레드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그러자.
[정령왕 비에나]‘왔군.’
불청객, 아니 귀빈(貴賓)의 이름이 보였다.
정령왕 비에나.
바람 정령의 처음이자 끝이며, 자레드와 미아에게 한 단계 성장할 밑거름을 뿌려 줄!
자애로운, 그저 빛이 될 여왕님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