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20
제 120화
45장. 무혈입성 – 1화
“리라키가 우리 영지의 영토가 되었으니, 리라키 항구와 이 일대의 도시는 해군 활성화의 거점이 될 것입니다.”
“음.”
“저는 앞으로 리라키 항구와 해군을 대륙 최고의 해군으로 육성하기 위한 장기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 중이고, 즉시 해군에 가용이 가능한 예산의 규모는 50만 골드입니다.”
“50만 골드……!”
나는 왜 게니츠가 놀란 목소리를 냈는지 알 수 있었다.
50만 골드면, 전생의 가치로는 5천억 원 정도 된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하물며 여긴 현대가 아니기에, 군함 건조와 보수에 대책 없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진 않는다.
내가 50만 골드를 얘기한 것은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끌어낸 것이 아니었다.
여유분으로 넉넉하게 빼 두어서, 즉각 활용이 가능한 재원을 언급한 것이다.
우리 영지는 그간 악몽의 숲, 마하트 3세의 무덤, 마군의 피난처 같은 던전 공략을 장려해 왔다.
상당한 재정을 투입하여 최고의 인프라를 구축한 만큼, 나스 대륙의 상당수 헌터가 이미 우리 영지에 제법 거점을 두고 있는 상태였다.
특히 헌터 길드의 본사 대다수도 우리 영지로 이전했다.
이유인즉 크리비아 영지에 거점을 둔 헌터 길드에게 그들의 전리품에 대한 세율을 크게 감면해 주는 파격적인 혜택을 줬기 때문이다.
전리품에서 거두는 세금은 줄었으나, 헌터들이 장기간 상주하기 시작하면서 사용하는 돈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졌다.
그 결과.
헌터와 관련된 문화, 숙박, 주류 산업만 놓고도 우리 영지는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영지의 곳간에 금화가 넘쳐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에 놀라울 것도 없었다.
50만 골드?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헛된 곳에 덧없이 쓰이는 것만 아니라면 말이다.
“크리비아 해군의 중심에 게니츠 제독님, 당신을 두고 싶습니다. 40년의 경력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고귀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게니츠를 한층 더 높여 주었다.
그는 무인(武人)으로서는 다소 부족한 사람이었다. 올해로 예순을 맞이한 나이지만, 오러 블레이드를 제대로 다룰 줄 모른다.
하지만 해군에 40년을 근속한 베테랑 군인답게, 실전 지식은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특히 내가 게니츠를 주목한 것은 그가 나스 대륙의 북부와 서부 일대의 해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수 성향 : 항해술 SSS / 조선술 SS / 전략적 해전술 – 대함대 SS / 전략적 해전술 – 소함대 S / 조류도, 해류도 작성 A]해군 제독으로서만 놓고 보면 게니츠는 하늘이 내린 인재나 다름없었다.
말루스 왕국의 나오미도 그렇고, 보누스 왕국의 게니츠도 그렇고.
이런 인재가 두 왕국에서는 외곽의 변방에서 썩고 있다.
멍청한 국왕과 가신들을 두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두 왕국은 미래의 전략적 가치와 가능성을 썩히고 있는 것이다.
뭐, 나에게는 잘된 일이다.
멍청한 국왕이 있어 줘서 다행이구나 싶기도 하다.
내가 만약 보누스 왕국의 국왕이었다면, 크리비아 영지가 약진(躍進)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접경지대에 요새를 높게 쌓았을 것이다.
적당히 구색만 갖춰 놔도, 우리 영지군이 넘어오기가 대단히 껄끄러웠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몇 곳의 허술한 소형 요새와 적은 감시 초소, 경계 병력을 둔 것이 고작이었다.
그들은 변방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고, 너무 쉽게 전략적 요충지를 내다 버렸다.
게니츠가 놀라 되물었다.
“제게 크리비아의 해군을…… 맡기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예전에 사람이 왔었을 겁니다. 제독에게 뜻을 함께할 것을 권했었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이미 제독을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단지 서로의 소속이 달라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선택하였을 뿐입니다.”
“아아.”
게니츠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가 리라키 일대에서 갖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그의 말 한마디면, 연안의 해군은 물론이고 휘하의 장성들도 모두 항복할 것이다. 그만큼 게니츠를 믿고 따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점을 노리고 있었다.
에서 게니츠는 마왕군을 상대로 끝까지 악전고투를 벌이며, 병사들과 함께 전장에서 산화했던 참된 무인이었던 것이다.
지금 그의 모습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고, 부하들도 진심으로 그를 따르고 있을 것이다.
“제독,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대륙 최강의 해군을 만들 수 있도록 제독께서 리라키에 희망을 심어 주십시오. 무능한 국왕의 전횡과 백성을 내다 버리는 참담한 망동에 더 이상 죄 없는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게니츠가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이내 굵은 눈물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군인의 눈물.
참고 억제하려 해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설움과 절망이 뒤섞인 한의 눈물이었다.
나는 그를 꼭 끌어안았다.
마음이 통하는 상대에게는 진심을 담은 설득이 가장 효과가 좋다는 것을, 앞서서 나는 여러 번 경험해 왔다.
그렇게 야장 아세로도 얻고, 클로이의 마음을 굳히게 했으며, 엘라도 사실상 눌러앉게 하지 않았던가?
매번 감정에만 호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통할 수 있는 사람에게 진심을 크게 쓰는 것은 엄청난 무기였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 미진한 능력이나마 영주님께 도움이 된다면, 전력을 다해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보잘것없는 늙은이의 여생을 감히 영주님께 바치옵나이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렇게 게니츠는 내게 완벽하게 항복했다. 그리고 이는 그의 단독 항복으로만 끝나지는 않았다.
그의 설득으로 해안 도시 리라키 전체가 내 손에 들어왔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보누스 왕국의 북동부 해군 – 게니츠의 관할에 있던 – 이 모두 항복했다.
당연히 해군이 모두 항복하면서,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함선까지 모두 내게로 넘어왔다.
그 과정에서 반대파의 사소한 반항이 있었지만, 불씨를 피우기도 전에 조기에 진압됐다.
그들은 게니츠의 진심 어린 요청에 따라 포로가 되어 보누스 왕국으로 송환됐다.
나는 준비해 온 양질의 고기와 빵을 크게 풀어, 새로이 우리 영지에 합류한 해군들을 독려했다.
그리고 재정비를 끝낸 영지군을 즉각 북쪽으로 진격시킬 준비를 마쳤다.
리라키는 얻었지만, 다음 목표인 프라시노는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말루스 왕국의 영토였다.
그렇게 막 출진을 하려던 그때, 게니츠가 나를 찾아와 말했다.
“영주님, 프라시노는 저처럼 해군 제독이 도시 운영까지 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인 루크 제독은 저의 40년 지기입니다.”
“정말입니까?”
“예, 영주님. 그러니 저를 믿고 프라시노에 보내 주시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제 친우를 영주님 앞에 데려오겠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전개지만, 한편으로는 잘됐다고 생각했다.
전쟁에서 무혈입성만큼 짜릿한 경험은 없으니까.
혹자는 이 기회를 이용해 게니츠가 도망칠 수도 있지 않겠냐고 묻겠지만, 나는 에서 보여 준 그의 강직함을 믿었다.
그는 얄팍한 수를 써서 목숨을 연명하려는 사람은 아니다.
“좋습니다. 모든 조건과 대우는 제독과 똑같을 것입니다. 무의미한 피의 복수나 학살은 절대 없을 것이고.”
“예, 영주님. 제가 반드시 루크를 데려오겠습니다.”
“이왕이면 빠른 이동이 좋을 듯싶은데…….”
말을 타고 달려도 충분히 빠르겠지만, 내게는 수십 배 이상은 빠른 특급 운송 수단이 있지.
나는 게니츠 제독의 나이가 있는 만큼,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제독.”
“예?”
“혹시…… 하늘을 날아 본 적 있습니까?”
* * *
그렇게 인공지능 올라의 관리 아래, 게니츠를 타넥스에 태워 보낸 이후.
나는 막사로 돌아왔다.
한편 영지군은 접경지대를 코앞에 둔 상태로 진을 치고 대기 중이었다. 언제든 진군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에 따라 가신들도 모두 전투 대기 상태였다.
혹시나 싶어서 슬쩍 다른 막사를 둘러봤다.
그러자 헤이즈도, 이자벨도, 엘라도, 라키스도 무장을 갖춘 채로 적당히……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두 차례의 격렬한 공방전을 치르고 왔기에 피로가 누적된 탓인 듯했다.
‘다들 무척 긴장했던 모양이군.’
충분히 이해가 가는 그들의 피로감에 나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그들의 단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래서 막사로 막 돌아오는 순간.
[칭호 ‘위저드 킬러’를 얻었습니다!] [마력이 500 상승합니다!]마법사들과의 격전 이후, 게니츠와 대화를 하느라 놓치고 있었던 칭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위저드 킬러(Wizard Killer).
4클래스 이상의 마법사 10명을 죽였을 때 얻을 수 있는 칭호다.
직전까지는 예전에 4클래스 마법사 아크론을 제거한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01/10’의 상태로 계속 유지되고 있었는데, 이번에 조건을 달성하여 칭호를 얻은 것이다.
‘마력 500이면 아주 좋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100명을 죽여 머더러, 1000명을 죽여 슬레이어를 달성하면…… 마력은 더 풍족해지겠네.’
나는 1천의 마법사가 죽어 쌓인 시산(屍山)에 홀로 선, 다소 잔인한 상상을 하며 칭호의 의미를 되새겼다.
의 쓸 만한 칭호들은 모두 이런 식이다.
카운팅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중에는 이렇게 목숨을 빼앗는 것이 미덕이 되는 칭호도 많다.
‘데이터 쪼가리를 벤다고 생각했을 때는 아무 감흥이 없었는데.’
예전의 감정은 딱 저랬다.
아무 느낌 없었다. 빨리 숫자를 채우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내가 ‘학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많았다.
악마 유희의 천인, 만인 베기도 그렇고 말이다.
‘만약에 루크 제독이 게니츠의 설득에 따라 항복한다면, 나는 바로 나오미 그레이스를 만나러 가는 게 좋겠어.’
나는 바로 다음 플랜을 짰다.
나오미 그레이스.
말루스 왕국이 그녀의 진가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변방에 처박아 두고 있는 6클래스의 마법사.
디미오스 마법사단의 새로운 단장으로 생각하고 있는 마법계의 능력자였다.
또한 전장의 사령관으로서, 그리고 마법학의 교육자로서 탁월한 재능을 지닌 인재이기도 했다.
‘지금 스탯이면 충분히 그녀와 맞붙어 볼 만해.’
나는 최종 점검을 위해, 스탯창을 열었다.
[자레드 – Lv. 149] [근력 : 335][체력 : 250] [마력 : 10,115][지혜 : 535] [민첩 : 190][매력 : 330] [물방 : 355][마방 : 1,193] [신성력 : 175] [잔여 스탯 : 0]보통의 전쟁으로는 레벨이 오르지 않는다. 일반 병사를 죽이는 것은 경험치를 1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임드를 죽이면 일정량의 경험치를 얻는다.
그래서 4클래스의 마법사를 열 명이나 제거한 이번 전투에서 레벨업을 경험한 듯했다.
그렇게 레벨이 3 오르면서 얻은 분배 스탯은 마력에 넣었다.
“마력 1만! 드디어……!”
감개무량하게 다섯 자리 숫자로 찍혀 있는 마력 스탯을 보며,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마력 수치만 놓고 보면, 8클래스 마법사도 전혀 부러울 것이 없는 엄청난 저장고를 갖게 됐다.
2년 전.
처음 눈을 떴던 날이 떠오른다.
초고도비만의 암울한 상태에 마력 수치 75를 보고 한탄했던 기억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그런데 1만하고도, 115라니.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강해졌다.
6클래스 마법사와의 전투도 이제는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다른 주인공만큼, 나 역시도 부단히 성장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