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22
제 122화
46장. 나오미 그레이스 – 1화
쿠와와아아아!
내가 거친 빗소리에 묻힌 굉음을 들은 것은 아쿠아 스톰의 구체가 제법 가까운 위치까지 당도했을 무렵이었다.
“알람 마법이었나!”
나는 즉시 더블 트랜센던스 실드를 펼쳤다. 일반 실드로는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서지 않아서다.
아쿠아 스톰은 6클래스 마법으로, 쉽게 방어할 수 있는 마법이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나오미는 물을 다루는 마법에 특히 강점이 있는 마법사였다. 미아가 바람을 유독 잘 다루듯이 말이다.
그래서 아낌없이 마력을 끌어다 썼고, 매우 두꺼운 실드의 장벽이 만들어졌다.
쿠우웅!
“크윽!”
허공에서 몸이 한참을 뒤로 밀려났다. 상당한 위력이었다.
아쿠아 스톰은 맑은 날에 100의 위력을 갖는다면, 비바람이 부는 궂은 날에는 300의 위력을 갖는다.
오늘이 바로 후자인 날이었다.
슈아아아!
한차례 방어를 해내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더 거대한 물방울이 호선(弧線)을 그리며 날아들고 있었다.
쏟아지는 빗물이 아쿠아 스톰의 크기를 더욱 키웠고, 고점을 찍고 떨어지는 속도가 파괴적인 운동량을 부여했다.
‘제법이군.’
거리가 먼 탓에 아직 나오미의 스탯 스캔과 공간 왜곡의 시계의 대상자 지정이 되지 않았다.
블링크 등으로 거리를 좁혀야만 하는데, 6클래스 마법사부터는 공간 이동 마법의 사용에 신중해야 했다.
이때부터는 의도적으로 마나를 대량으로 방출시키며, 공간 이동에 간섭 현상을 일으키는 설계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 더, 더블 실드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위에서 사선으로 내리꽂히는 물 폭탄을 힘껏 받아 냈다.
쿠우웅!
“크윽!”
완충 작용을 해 줄 수단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기에 몸이 아래로 쭉 밀려 내려왔다.
어제 상대했던 4클래스 마법사 가노프의 수준이 1이면, 나오미의 수준은 최소 5 이상이었다.
분명히 강력한 상대였다.
그런 이유로 한편으로는 제대로 해 볼 만한 상대였다. 온몸에 긴장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제격이었다.
‘역시 나오미야. 차기 마법사단장 후보로서 부족함이 없어.’
그때.
콰아아아!
그녀의 실력을 진심으로 인정하기가 무섭게, 그럼 이건 어떠냐? 하는 느낌으로 더 강력한 아쿠아 스톰이 날아들었다.
나는 다시 더블 실드를 펼쳤다.
아직까지는 탐색전이고, 마력을 2천 단위로 세 번 정도 소모하는 것은 문제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력은 4천이 넘게 남아 있다.
트랜센던스 마법이 아니면, 5클래스 마법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난사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쿠우우웅! 후드득!
“와, 엄청난데?”
이번에는 더블 실드가 깨졌다.
대(對)마법전에서 처음으로 감탄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진정한 마법사로서의 시작은 6클래스부터라고 했었지.’
위저드 플레이어들이 진리처럼 되뇌었던 말이 떠올랐다.
확실히 6클래스는 5클래스와는 전혀 다른 신세계다. 괜히 하이 클래스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탐색전은 이 정도로 할까!’
그녀의 마법이 보인 위력은 충분히 느꼈다.
그리고 날씨의 힘을 빌려, 물을 이용한 마법으로 응전하겠다는 계산도 읽을 수 있었다.
남은 것은 전면전뿐.
한데 바로 그때!
사아아아아아!
허공을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한 줄기 마법 구체가 날아들었다.
윈드 커터.
일전에 내가 가노프를 제거할 때에 썼던 바람의 칼날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플라이 마법의 추진력을 극대화하여 앞으로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다.
바람 계열의 마법이라면 대응에 가장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에나 님, 데뷔전 갑니다.’
어디선가 뿌듯하게 나를 지켜보고 있을 비에나를 떠올리며, 거침없이 돌진했다.
그리고 윈드 커터의 코어, 중심점을 읽어 내는 데 성공했다.
‘거친 비바람이어도 바람길을 만들어 주면, 언제든 순한 양이 될 수 있지.’
아네모스 고원에서 얻은 깨달음을 재차 떠올리며, 나는 윈드 웨이(Wind Way) 마법으로 바람길을 열었다.
쿠아아아!
파공음은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들 정도로 강렬했다.
날아드는 윈드 커터의 속도만 보면, 나를 정면으로 들이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맹공이었다.
하지만 불과 1m 남짓한 거리로 마법이 접근한 바로 그 순간!
화아아악!
나는 날아든 마법 구체를 가벼운 손동작과 함께 아주 자연스럽게, 바람길로 끌어들였다.
그러자 성난 황소처럼 돌진하던 윈드 커터가 내 손끝을 따라 빠르게 반원을 그렸다.
경로가 바뀐 것이다!
‘받고, 더블로 가는 거다!’
나는 내 것으로 빼앗은 나오미의 윈드 커터 뒤에 트랜센던스 윈드 커터를 얹었다.
마력 5천의 활용.
나오미가 만든 바람의 칼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위력적인 노림수였다.
아주 잠깐.
이 공격에 나오미가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했다.
이 정도 공격에 나오미가 죽는다면, 애초에 내가 원하는 수준의 마법사가 아니었다는 뜻이니까.
‘나오미, 당신의 가치를 증명해 줘.’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힘껏!
쿠아아아아!
온 힘을 다해 트랜센던스 윈드 커터를 연이어 시전했다.
그녀가 필살필승의 각오로 아쿠아 스톰을 썼듯, 나도 한차례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 * *
같은 시각.
‘마법을 받아쳤어? 아냐, 이건 마법의 경로를 바꿔 버린 거야.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나오미는 크게 당황했다.
마법의 경로를 비트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방향을 바꿔 역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보누스 왕국의 내로라하는 마법사들도 이런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연습을 하다 크게 부상을 입고, 몇 개월 동안 환자 신세로 있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데 자레드는 바로 자연스럽게 마법을 되돌려 보내 버렸다.
저것은 한두 번 연습해 본 실력이 아니었다.
바람의 속성을 읽고, 그 본질을 깨달은 것이 아니면 절대 보일 수 없는 대응이었다.
“망할.”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분명 앞서 날아들고 있는 것은 자신이 날린 윈드 커터가 맞았다.
그런데 뒤이어 붙은 마법 구체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도 윈드 커터였다.
회오리 같은 중앙 뼈대를 기반으로, 양옆의 수많은 바람 칼날이 스크루같이 움직이는 구조니까.
다만 자신의 윈드 커터가 2개의 바람 칼날을 가졌다면, 자레드의 것은 무려 10개에 달했다.
변종인 것이다.
그것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돌연변이였다!
지이잉!
나오미가 즉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6클래스의 방어 마법.
퍼펙트 실드(Perfect Shield)!
이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를 떠올릴 수 없었다.
쿠웅!
이윽고 첫 번째 윈드 커터가 그녀의 실드를 강타했다.
“크윽!”
위력적이긴 했지만, 결국 자신이 펼친 마법이기 때문에 방어 가능한 충격이었다.
일반 실드였다면 진작에 박살이 났겠지만, 퍼펙트 실드이기에 든든하게 첫 타는 막아 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쿠우웅!
“……!”
그 순간, 나오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강한 두려움을 느꼈다.
퍼펙트 실드라는 마법의 명칭은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비록 8, 9클래스와 같은 파괴적인 마법은 버텨 낼 수 없지만.
그래도 7클래스 이하의 마법은 전력을 다해 펼치면, 제법 막아 낼 수 있는 것이 퍼펙트 실드였다.
한데 그 예상이 무너졌다.
까지직. 까직. 까지직.
나오미는 눈앞에서 쩍쩍 갈라지며, 실시간으로 금이 가고 있는 자신의 실드를 볼 수 있었다.
파사사삭!
실드가 유리처럼 깨지며 비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실드로 더 이상 버텨 낼 수 없는 충격파는 그녀의 양손을 따라 온몸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꺄아악!”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 정도 실드면 제법 위력이 약해져야 정상이지만.
사각! 사가각!
자레드의 윈드 커터는 여전히 성난 칼날을 맹렬하게 회전시키고 있었다.
이대로는 스치기만 하더라도 최소 양팔을 잃거나,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나오미가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붉은 빛깔의 루비 펜던트가 인상적인 목걸이.
바로 돌아가신 어머니에게서 받은 유품이자 아티팩트인 ‘이브 네클리스’였다.
이브 네클리스는 시야에 있는 대상을 지정해서, 즉시 텔레포트로 이동할 수 있는 신묘한 힘이 담겨 있었다.
마법과 별개로 아티팩트가 발현하는 고유 능력이었다.
단, 외부의 마력으로는 절대 구동할 수 없어서 내부에 응축된 마력으로만 움직여야 했다.
한데 이를 채우기 위해서는 꼬박 1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군이 아니라면 적일 뿐!’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이브 네클리스의 능력을 발현했다.
반격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나오미도 자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듯했다.
‘반드시 죽인다.’
나오미가 냉랭한 눈빛을 밝히며, 펜던트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
파아아앗!
트랜센던스 윈드 커터의 구체가 방금 전까지 나오미가 있던 자리를 매섭게 할퀴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없었다.
그 대신!
다음 공격을 준비하던 자레드의 등 뒤에 나타나 있었다.
* * *
시야에서 나오미가 사라진 순간, 나는 그녀가 이브 네클리스의 특수 능력을 사용했음을 알았다.
실드를 거둬들이면 즉사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배짱 좋게 텔레포트를 시전할 수 있는 마법사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 역시 불가능하다.
집중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 전에 몸이 가루가 되고 말 테니까.
‘이브 네클리스가 있는 줄은 몰랐네. 그럼 훗날 잃어버린 건가?’
내가 자세하게 내용을 아는 나오미의 스토리는 성마 대전 발발 5년 전부터다. 그러므로 지금의 시기와는 간극이 있다.
‘뒤를 잡혔지만, 괜찮아.’
물론 지금 상황에서 블링크든 텔레포트든, 회피 마법은 못 쓴다.
쓰는 순간 마나 간섭에 걸려들어, 되레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옵션 4 : 운수 좋은 날 – 즉사에 이를 수 있는 치명상이 될 공격을 반지의 힘으로 회피합니다.1회 한정. ‘운수 좋은 날’의 발동 후 옵션 4는 사라집니다.]
나는 미련 없이 행운의 반지의 이 옵션을 희생할 생각이었다.
옵션 하나와 마법사단의 미래를 이끌어 갈 인재를 바꿀 수 있다면?
이것만큼 가성비 좋은 교환도 없을 것이다. 이런 교환이라면 백 번도 넘게 할 용의가 있다.
‘그렇다면 나도.’
그녀가 죽지 않을 수준에서 최대 화력을 낼 필요가 있다.
나오미가 어떤 마법을 시전할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치명상이 될 공격으로 판정받는다면, 알아서 반지가 4번 옵션을 사용하여 회피해 줄 테니까.
현재 마력을 체크했다.
트랜센던스 윈드 커터 사용 이후, 회복된 마력은 2천 정도.
여기에 무디두스의 기도 옵션을 활용하면, 즉각 1만이 넘는 마력을 재획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용 최대 마력은 1만 2천.
내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마비 마법 ‘패럴라이즈’의 트리플 트랜센던스 강화였다.
제아무리 6클래스 마법사라고 한들, 하루는 꼼짝없이 마비 상태로 있어야 할 포박(捕縛)의 수를 던진 것이다.
“하아앗!”
“야앗!”
거의 동시에 나와 나오미가 상대를 향해 양손을 뻗으며, 서로를 노린 마법을 전개했다.
난 트리플 패럴라이즈를 썼고.
빠지직! 빠지지직!
나오미는 6클래스의 전격 계열 마법, 체인 라이트닝을 썼다.
그리고.
“내가 이겼어!”
승리의 확신으로 가득 찬 나오미의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물론 그녀의 확신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누구나 한 방을 시원하게 얻어맞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녀라고 다를 것은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