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37
제 137화
51장. 다이어트 붐은 온다! – 1화
철푸덕!
지면에 떨어진 베라트의 시신을 향해 달려드는 헌터는 아무도 없었다.
베라트에게 충성을 바쳤던 헌터도 죽음에 대한 공포 앞에서는 꼬리를 내렸다.
무엇보다 여전히 자레드가 두 눈을 뜨고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오히려 뒷걸음질을 칠 뿐이었다.
플라이 마법으로 가볍게 지면에 안착한 자레드가 베라트의 몸을 뒤지며, 그에게서 아티팩트를 취했다.
헌터 중 누군가가 그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도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이 녀석이 갖고 있던 아티팩트는 내가 가져간다. 모두 불만 없지? 신사답게 행동하자고. 둘만의 승부였으니까, 모든 건 승자의 권리인 거다.”
“…….”
꿀 먹은 벙어리처럼 모두가 입을 닫았다. 일부는 원망하듯 서로에게 눈치를 주며, 앞으로 나서라는 눈짓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익스퍼트급에 도달한 자신의 대장이 비명횡사를 한 마당에 나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두려워했다.
그가 정체를 숨기고 이곳을 찾아온 대마법사는 아닐까 싶어서.
자레드는 심안을 통해 확인했던 베라트의 아티팩트 3개를 챙겼다.
각각 대검, 중갑주, 장화였는데 그중에 쓸 만한 것은 장화 정도로 보였다.
대검은 어차피 사용할 계제가 아니었고, 중갑주는 기동전을 중요시하는 자신에게 맞지 않았다.
‘라키스에게 몰아주는 게 좋겠지. 지금 내게 1순위는 누가 뭐라고 해도 라키스니까.’
검과 갑주의 처분은 정해졌고, 장화는 왕국으로 돌아가는 대로 재차 살필 생각이었다.
지금 하나하나 옵션을 확인하고 비교할 시간은 없었다.
너무 많은 이의 관심을 받았다. 얼른 자리를 뜨는 것이 좋아 보였다.
바로 그때.
타탁! 탁!
나탈리가 자레드에게 달려왔다.
아티팩트를 챙긴 자레드가 곧 떠날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탈리가 레드 퀸이라는 사실도 알았고, 소재 파악이 끝난 마당에 오래 있고 싶진 않았다.
“저기! 당신! 로하드 씨! 당신을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죠?”
나탈리의 뒤로 이룡이 바짝 붙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네임드로 알려진 그들이 자레드를 정면으로 마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아주 미세하게, 시선을 다른 곳으로 흘리는 것이 보였다.
자레드가 웃으며 답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테니 걱정 말아요. 오늘 만나고 끝날 사이는 아닌 듯하니까.”
“다시 만난다고요?”
나탈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처음 본 마당에 어떤 이유로 자신을 다시 본다는 걸까?
그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정신 탐지를 시도했다.
수준급 마법사라 모두 읽어 낼 수는 없지만, 그의 기억 단편이라도 읽어 내면 쓸모가 있을 듯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통하지 않아? 설마 그렇다면 예전에 신데르스 왕국의 술집에서 본 그 사람……?’
태어나서 두 번째로 정신 탐지가 막혔다.
그때, 자신의 탐지를 너무나도 가볍게 튕겨 낸 남자에게 나탈리는 깊은 관심을 가졌었다.
그런데 오늘 같은 일이 반복된 것이다.
즉, 그 남자가 오늘의 이 남자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억하는 얼굴은 전혀 달랐다.
‘원래의 얼굴을 숨겼어!’
나탈리의 눈빛이 당황스러움에 흔들리는 사이.
파팟.
자레드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작정하고 텔레포트로 모습을 숨긴 자레드를 추적할 방법은 없었다.
“…….”
자레드가 사라진 자리에서.
나탈리는 싸늘한 시체로 변한 채, 아티팩트를 탈탈 털려 버린 베라트를 덧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마스터……!”
최고의 – 그들에게만 최고이고 사실은 최악인 – 마스터를 잃어버린 헌터들의 오열이 시작됐다.
* * *
자는 라키스를 깨운 나는 그와 함께 데스먼드 제국을 빠르게 떠났다.
돌아갈 길은 일찌감치 봐 두었던 터라, 바로 초장거리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 나스 대륙 북쪽으로 빠져나왔다.
이용 요금이 200골드에 달하는 터라 이용객이 매우 적었지만, 내게는 부담되는 지출은 아니었다.
그래서 대기 순번 없는 널널한 상태로 바로 이동을 마칠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신데르스 왕국 남부. 여기서 한 차례 더 마법진을 이용해서 북쪽으로 가면, 우리 왕국과 가까운 지점에 도착한다.
나와 라키스는 대기를 위해 마련된 대기실에서 잠시 대화를 나눴다.
“폐하, 도대체 어디를 다녀오신 겁니까?”
“바람도 쐴 겸, 잠시 창공을 가르며 거닐다가 왔지.”
“폐하의 마법은 정말…… 신묘하십니다.”
“마법사가 마법을 쓰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러오?”
“폐하의 마법은 평범한 마법이 아니지 않습니까? 모두가 드러내어 말하지 않을 뿐, 남들과 비교되는 마법임은 알고 있습니다.”
“참, 경에게 줄 선물이 있는데.”
그에게 마키아스의 대검과 클라나드 중갑주를 주었다.
예전에 카프리 백작을 죽이고 그에게 하사한 유디트의 갑옷이 있기는 했지만, 클라나드 중갑주에 비하면 한참은 급이 낮았다.
“이, 이게 무엇입니까?”
“앞으로 경이 사용할 대검과 갑주요. 출처는 묻지 마시오.”
“아니, 이건 어찌…….”
받아 든 라키스의 표정에 놀라움이 일었다.
대검을 받아 들고, 갑주를 살짝 걸쳐 본 그 순간부터 몸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아티팩트가 아님을 느낀 것이다.
라키스는 자레드처럼 아티팩트 자체가 갖는 스탯을 볼 수는 없었지만, 몸으로 체감할 수는 있었다.
“내 왕국을 위해, 경의 더 많은 충성과 노력을 요구하는 나의 소심한 압박이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군. 망자의 정원에서 얻은 마검과 용도에 맞게 바꿔가며 쓰시오.”
“폐하……!”
라키스가 허름하기 그지없는 대기실 한복판에서 부복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자레드 한정으로만 수시로 발동되는 라키스의 패시브 스킬.
“못 말린다니까, 정말.”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 * *
그날 밤.
왕국으로 돌아온 나는 라키스와 헤어지면서, 다시 그를 스캔해 스탯을 살폈다.
대검에 중갑주까지 모두 장착하고 나니, 확실히 스탯의 비율이 아주 좋아졌다.
“음……. 이 정도면 S-급 무장의 반열에는 확실히 올랐다고 할 수 있겠어. S급이라는 타이틀을 달기에는 아직 오러 블레이드가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렵지만.”
국방장관이 될 후보자이자 전군의 사령관이라면, 최소 이 정도 스탯은 되어야 한다.
만족스러웠다.
이번 던전행이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자평을 내릴 수 있었다.
게다가 뜻하지 않게 베라트를 만나 미래의 후환도 미리 싹을 잘라 버리지 않았던가?
“문제는 이 메시지인데…….”
내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베라트가 죽은 순간에 내 상태창에 떠오른 메시지였다.
라키스와 함께 있을 때는 살필 시간이 없어, 이제야 늦게 확인한 것이다.
[베라트가 사망했습니다.] [칭호 ‘두 번째 위기를 극복한 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칭호 획득에 따라 보상으로 ‘트리스티스 아일랜드’의 지도 일부를 얻었습니다!] [당신은 운명의 갈림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평온하게 유지되던 균형과 질서가 일부 무너지고, 그 자리를 새로운 균형과 질서가 채웁니다.]‘일단 내게 유의미한 변화가 생길 때마다 트리스티스 아일랜드의 지도 일부를 계속 제공한다는 것은…… 결국 나중에는 나스 대미궁을 공략하라는 얘기야.’
나스 대미궁은 나스 대륙에 있는 던전의 끝판왕과도 같은 곳이다.
애초에 지하 심연의 끝, 마지막 층에 도착하면 신을 만날 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이기도 하다.
성마 대전이 벌어지기에 앞서, 내가 반드시 공략해야만 하는 던전이기도 했다.
‘성마 대전에서 마왕군의 편에서 악영향을 미칠 존재들을 제거할수록 내게 긍정적인 변화를 준다는 걸까.’
메시지 내용대로 사심 없이 파악한 의미는 그랬다.
다만 마지막 말이 걸렸다.
일부 무너진 자리를 새로운 균형과 질서가 채운다니?
‘성마 대전으로 향하는 미래로의 시간이 가속화되는 걸까? 그렇겠지. 나라는 존재가 이미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 즐겨 보았던 수많은 소설과 영화들이 늘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
현재의 존재가 과거로 돌아가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하면, 미래로 향하는 타임 라인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고.
‘경영에 좀 더 속도를 내야겠어. 더 많은 재원, 인재, 그리고 영토까지.’
정말 하루하루를 칼같이 나눠 쓰고, 의미 있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오로지 내 편은 아니니까 말이다.
* * *
“폐하, 아르케네스 님께서 별궁 지하에서 폐하를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언제부터?”
“어제부터 엄청 많은 자료를 챙겨 와서는 하나하나 벽에 붙이고, 지도를 펼쳐 그리고 있었사옵니다.”
“알겠다. 금방 내려가지.”
생각을 정리할 겸 산책을 하는 사이, 하녀가 내게 와서는 아키의 소식을 알렸다.
헤이즈는 저녁 이후로 일찌감치 훈련실에 틀어박혀서는, 신성력 수련에 전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어디서 만들어 왔는지, 데리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뛰어다니며 훈련할 만한 캣타워도 만들어 놨다.
덕분에 훈련실의 열린 문틈으로 데리의 모습을 살피자, 전에 비해 제법 레벨이 올라 있었다.
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보니 데리의 육성(?)을 헤이즈에게 맡겼는데, 그녀는 기대 이상으로 열심히 해 주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지하에 도착했다.
아까 하녀는 별궁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으나, 여전히 여기는 영주 저택이었다.
단지 정식 왕궁이 없어, 별궁이라는 칭호를 쓰고 있을 뿐이다.
왕궁은 발데스를 총감독관으로 해서, 터가 좋은 곳에 이제 막 기반 공사에 들어간 참이었다.
왕궁 건설은 발데스의 조언에 따라 실용성을 최대로 강조하고, 사치와 화려함을 배격하도록 했다.
무조건, 효율 중시!
그것이 내가 발데스에게 최종으로 내린 한 줄 지침이기도 했다.
화려하게 꾸미기보다는 왕궁 내에서 훈련, 육성, 어전 회의, 마법 실험, 마법 물품 생산 등등.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게 공간 확보를 최우선으로 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까짓것 왕궁 따위야.’
이 세계의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전생에 평범한 일반인이었던 나는 예의나 체면을 딱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호칭도 편하게 하고, 대화도 나이에 맞게 존댓말과 반말로 나누고 싶었다.
다만 이 세계는 현대와는 다르기에 필요한 만큼 최소로만 맞추고 있을 뿐이다.
모든 가신들에게 사석(私席)에서는 최대한 말을 편하게 하도록 지시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를 그 어느 누구도 문제 삼지 못하도록 했다.
끼이익.
지하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구슬땀을 흘려 가며 벽에 뭔가를 붙이고 있는 아키의 모습이 보였다.
“각지에서 파악된 칼라카스 꽃잎의 재고 현황과 현재 트렌드,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도를 사전 조사한 자료인가……?”
“폐하! 오신 줄도 모르고 눈치 없이…….”
“아냐, 괜찮아. 그것보다 아키, 지금 이것들 전부 상단에서 조사하고 수집한 자료인 거야?”
“네, 맞사옵니다!”
“편하게 말하라니까.”
“네, 맞아요! 드디어! 칼라카스 꽃잎의 대대적인 판매를 위한 대륙의 모든 지도가 완성됐어요!”
“너는 진짜…….”
감동했고, 감격했다.
거상 아르케네스.
녀석은 괜히 동부 대륙 최대의 거상으로 성장하는 네임드가 아닌 것이다.
아키가 내부의 전체 면적만 해도 100평은 족히 넘는 공간을 가득 채워 붙인 수많은 자료들.
그것은 나스 대륙 전역에 있는 주요 고객층의 수요와 트렌드, 그리고 최근의 구매 동향을 면밀히 분석한 자료였다.
그것도 수기로 하나하나 꼼꼼히 적어 가며 만든 알찬 자료.
제아무리 의 많은 노하우를 가진 나라고 해도, 절대 해낼 수 없을 녀석만의 특성이자 장점이었다.
“아키!”
순간 벅차오른 감격에 나는 아키를 꼭 끌어안았다.
“아차!”
“응?”
순간 나와 아키 사이에 묘한 적막이 감돌았다.
그때 나는 볼 수 있었다.
아키의 근처에 던져져 있던, 땀에 젖은 붕대의 향연을.
그것은 내 예상에 전혀 없던 곳을 감싸고 있던, 깊은 압박의 흔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