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39
제 139화
51장. 다이어트 붐은 온다! – 3화
“오십 평생 살면서 국왕이 직접 상인들 앞에 나서서, 상단의 물건 판매를 홍보하는 건 처음 보는군. 아무리 왕국 직속 상단이라고 해도 너무 체통 없는 것 아냐?”
“그러게 말이야. 왕은 왕다운 맛이 있어야지, 한심하긴…….”
자레드가 한껏 차려입은 의상으로 무대 한가운데에 서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무대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무대 밖의 외곽을 가득 채운 국민이 보내는 열렬한 지지의 함성이었다.
하지만 정작 안에 있는, 일부 상인들의 얼굴은 똥 씹은 듯한 표정이었다.
이유인즉, 왕이 너무 가볍다는 것이다. 어련히 상단주에게 맡기면 될 것을 굳이 나와서 ‘유난’을 떨고 있으니 보기 흉하다는 것이다.
“그쪽은 오십 평생을 헛산 듯하군요.”
“쯧쯧, 그러니까 구멍가게 같은 상단을 꾸리면서 다닐 수밖에.”
“뭐라? 지금 당신, 나한테 뭐라고 했……. 어엇? 다, 당신은!”
대뜸 뒤에서 들려온 속 긁는 소리에 두 상단주가 버럭 화를 내려는 순간.
그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굳어 버렸다.
자신들의 뒷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두 남자의 정체를 보는 즉시 알아차린 탓이었다.
나스 대륙 서부의 대상인 듀크.
나스 대륙 남부의 대상인 패튼.
상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두 사람의 이름을 모를 수가 없었다.
올해 환갑을 넘긴 두 상단주지만, 누구보다 젊은 감각으로 시류를 분석하며 도전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르케네스라는 상단주를 부러워해야 할 거요. 상인이라고 천시하는 것이 아니라 국왕이 전력을 다해 지원해 주고 있으니.”
“어찌 보면 나스 대륙에서 가장 열려 있는 국왕이라 할 수도 있겠지. 얼마 전에 자서전을 읽어 봤는데, 참 감명 깊더군.”
“그러게 말이오. 왕의 힘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곁을 둘러싸고 있는 백성과 그들의 세계로부터 나온다. 결코 자신의 입으로 쉽게 하기 힘든 발언이었소.”
“민본(民本)이라는 말이 어찌나 인상이 깊던지.”
“그걸 두고 체통 운운하는 당신들은 생각을 깊이 하는 습관부터 길러야 할 것이오.”
듀크와 패튼이 자레드에 대한 찬사와 덕담을 주고받자, 험담을 하던 두 상인은 조용히 자리를 떠나 버렸다.
얼굴이 화끈거려, 도저히 엉덩이 무겁게 앉아 있을 수가 없는 탓이었다.
무어라 말에 토를 달고 싶어도, 상대의 이름값에서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상계에서 듀크와 패튼은 살아 있는 전설과도 같았다.
그에게 감히, 한 번이라도 날 선 반응을 한다? 그날로 상계에서 매장되는 것이 기정사실이었다.
“쯧.”
두 상인이 사라지자, 듀크가 혀를 차며 다시 무대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시작되는 시연을 지켜보며, 패튼에게 말했다.
“아르케네스 상단의 아르케네스라는 상단주도 상당히 실력이 뛰어나오. 그가 스무 살일 때, 자레드 국왕이 이미 그를 상단주 자리에 앉혔다지?”
“사람을 보는 안목이 뛰어나다고밖에. 우리가 1세대 상인이라고 한다면…… 아르케네스가 2세대의 선두 주자가 될 것이오.”
“후후, 그러게 말이오. 이제 지는 해가 되고 있는 우리의 자리를 위협하는 젊은이가 나타났으니.”
“지켜봅시다. 선의의 경쟁은 언제나 즐기고, 좋은 상품은 누구보다 빨리 선점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니 말이오.”
“지켜봅시다. 국왕의 상품 시연이라……. 크리비아 왕국이 아니면 절대 볼 수 없을 것이오. 가슴이 두근거리는군.”
“존경의 박수를 보냅시다.”
짝짝짝.
패튼이 무대 위의 자레드를 향해,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그래서 더 기대됐다.
과연 그가 팔려는 다이어트 상품은 도대체 얼마나 효과가 있는 것일까?
* * *
“자, 아르케네스 상단에서는 이 상품의 이름을 묘약이라고 지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다이어트에 정말 잘 듣는 약이라는 것입니다.”
“보여 주십시오!”
“체감할 수 있는 변화입니까?”
“자자, 너무 채근하지 마시고.”
음성 증폭 마법을 구현한 덕분에 내 목소리는 무대 전체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심지어 무대 밖에 있는 구경꾼들이 듣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마룬, 포션을 마셔. 꽃잎을 정제해서 먹기 좋게 만든 물약이니까 가볍게 마시면 돼.”
“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룬이 ‘묘약’을 단숨에 쭉쭉 들이켰다.
용량으로 보면 500ml 정도 되는데, 떫은맛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룬은 듬직하게 잘 마셔 줬다.
현재 마룬은 속옷 하나만 걸친 채로 서 있는 상태였다.
만인의 앞에서 거의 반나체를 드러낸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수도 있겠지만…… 마룬은 나를 위해서 희생해 주었다.
그리고 기꺼워했다.
자신과 마리의 소원이던 종합병원을 지어 주고, 환자들을 마음 놓고 돌볼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효에 가속 버그를 더해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 주지!’
나는 바로 마룬의 등 뒤에 양손을 대고, 즉각적으로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윽!”
“괜찮아. 날 믿고 편하게 받아들여라.”
“예.”
마룬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체내에 순환되는 마력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상태로 청중들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부터 이 약이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를 빠르게 보여 줄 예정입니다. 마나를 이용해서 적용 과정을 가속해서 보일 겁니다.”
만약 충분한 마나를 가진 사람이 곁에 있다면, 오늘처럼 다이어트 효과를 조기에 볼 것이다.
하지만 곁에 나와 같은 5클래스 마법사를 지인으로 두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2만에 가까운 마력을 필요로 하게 되는 만큼…… 흉내 내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으음. 음.”
“마룬, 혹시 힘든 것이냐?”
“아닙니다. 이상한 기분이 느껴져서 말입니다.”
“어떤 느낌이 들지?”
“몸 전체에서 작은 기운의 파도가 끊임없이 출렁이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잘 적용되고 있는 듯하군. 마나에 더 몸을 맡겨 보도록 해.”
“예.”
마룬을 다시금 달랜 뒤, 마력을 좀 더 힘차게 불어넣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안정적으로 마력이 공급되는 것이 느껴지며, 마룬과 나 사이에 있던 장벽 같은 것이 사라졌다.
즉, 마음 놓고 마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판이 마련된 것이다.
바로 그때.
“하아, 하아, 하아.”
마룬이 뜨거운 숨결을 토해 내기 시작하더니, 이내 땀을 미친 듯이 흘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몸 전체에서 역한 냄새가 나면서 무언가가 끊임없이 몸 밖으로 나왔다.
“욱. 죄, 죄송합니다.”
마룬이 자기 자신의 몸에서 나는 악취에 놀라 당황해했다.
“괜찮아. 집중해.”
충분히 참을 만했고, 나는 마력으로 더욱 약물 작용을 가속화했다.
바로 그때.
“오오!”
“우와!”
청중들에게서 동시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내 눈에도 보였다.
‘빠졌어!’
“오! 오오오!”
놀란 것은 마룬도 마찬가지.
자신의 뱃살이 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한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룬은 워낙에 복부 비만이 심해 배가 잔뜩 나와 있던 탓에 가시적으로 더 잘 보이는 것도 크게 한몫을 했다.
“마룬, 어때?”
“몸이 식는 느낌이 듭니다.”
“그럼 이번 약효는 끝난 거다. 바로 다음 잔을 마시자.”
“예.”
지금부터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혹시나 도중에 마룬이 쇼크를 받아 쓰러질 수도 있기에, 나는 무대 뒤에 치유사인 헤이즈를 대기시켜 놓은 상태였다.
그것으로도 수습이 안 되는 상황이 생기면, 교황 아르모니아 17세에게서 부여받은 환희의 찬미 능력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꿀꺽꿀꺽.
마룬이 바로 다음 병을 비웠다.
나 역시 쉬지 않고, 바로 마력을 불어넣을 준비를 마쳤다.
“간다, 마룬.”
“예. 잘 부탁드립니다.”
마룬은 듬직했다.
나는 녀석을 믿고, 전력을 다해 변화를 향한 노를 힘껏 저었다.
* * *
시간이 흐르고, 마룬의 몸에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수록.
“말도 안 돼…….”
“이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물약이 있다고? 허풍이 아니라? 정말 진짜였단 말이야?”
“도대체 크리비아 왕국에선 로넬라 병 치료제부터 해서 배합법이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어찌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거지?”
청중들은 감탄하고 있었다.
이는 매의 눈으로 지켜보던 패튼과 듀크도 예외가 아니었다.
1시간 사이에 정말 소설이나 연극 속에서나 볼 법한 일이 일어났다.
시작할 때만 해도 마룬은 집채만 한 뱃살에 성인 여성 두 명을 합쳐도 모자랄 법한 덩치의 사내였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 반 토막이 났군.”
“여기서 중단한 것은 이 이상으로 살이 빠지면, 피부가 늘어지고 처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가?”
“그런 것 같소.”
듀크와 패튼의 말대로 정말 사람의 몸뚱이가 절반이 됐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자레드가 보여 주겠다던 약효가 결코 허풍이 아니었다.
신묘한 다이어트의 물약이 있다는 것은 이로써 확실해졌다.
“사야 돼.”
“아르케네스 상단주와 접선하면 되는 건가? 뇌물을 쓸까? 닥치는 대로 사들여서 가져가 팔기만 해도 이득이 될 거야!”
이미 상인들은 들썩이고 있었다. 두 눈으로 똑똑히 약효를 봤기 때문이었다.
본 것은 마법으로 만들어 낸 눈속임도 아니었다.
몇몇 상인들이 무작위로 뽑혀 나가 직접 마룬의 상태를 확인하고, 정말로 변화가 일어났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할루시네이션이나 이미지 카피 같은 마법을 이용한 장난질이 결코 아니었다.
상인들도 놀랐지만, 사실 더 크게 놀란 것은 마룬 본인이었다.
그는 자레드가 헤이즈를 시켜 가져온 전신 거울을 본 뒤, 깜짝 놀라다 못해 눈물을 쏟아 냈다.
“와…….”
불과 1시간 만에 엄청난 양의 지방이 노폐물처럼 땀과 뒤섞여 밖으로 흘러나오며 사라졌다.
덕분에 무대 위는 그 흔적으로 인한 악취가 났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헤이즈, 목욕 준비는 됐지?”
“네! 일찌감치 싹 준비해 놨죠. 마룬 씨, 가서 기분 좋게 목욕해요! 이제 폐하께 드릴 수 있는 도움은 전부 주었으니까요!”
“폐하,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하하, 원래 산다는 건 놀라움의 연속이지.”
자레드가 마룬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엄지를 치켜 보였다.
확실히 마룬의 외모가 크게 달라졌다.
살이 빠지고 체형이 변하니, 원래의 잘생겼던 얼굴이 드러났다.
“예전에 폐하께서 살이 잔뜩 찌셨던 그때…….”
“헤이즈, 쉿! 내게는 잊고 싶은 과거다. 거기까지만.”
“호호, 어쨌든 정말 잘됐어요! 이보다도 극적인 변화가 어디에 있을까요?”
헤이즈의 말에 자레드를 둘러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의 변화를 지켜보던 마리도 마찬가지였고, 함께 약효를 다시금 실감한 아르케네스도 마찬가지였다.
“아키.”
“네, 폐하.”
“준비됐지?”
“상담용 창구는 잔뜩 마련했어요. 접촉할 상단의 ‘급’에 따라, 담당자를 달리 배정할 거예요.”
“좋아, 그럼 이제부터는 네가 맡을 차례다. 네 시간이야. 화끈하게 불태워 봐. 알겠지?”
“네, 폐하! 맡겨만 주세요!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 내겠습니다!”
아르케네스가 이글거리는 두 눈으로 전의를 불태웠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자레드는 무대의 한가운데로 다시 향한 뒤, 음성 증폭 마법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장내의 모든 상인을 향해 소리쳤다.
“매진 예감! 지금 당장, 이 다이어트 물약에 관심이 있는 분은 아르케네스 상단의 상담 창구로 오십시오. 선착순 100명!”
“우와아아아!”
“이건 사야 해!”
“비켜! 우리 상단이 먼저야!”
“돈은 여기에 잔뜩 있으니, 제발 가져가 주시오!”
상인들의 돌진이 시작됐다.
모두가 자신이 운영하는 상단을 가지고 있는 상단주거나, 상단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자들이었다.
물약에 흥미가 없어 뒤돌아서서 자리를 뜨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미친 듯이 창구를 향해 내달렸다.
“좋아.”
자레드가 흡족하게 웃었다.
수많은 상인들의 질주가 거대한 복덩이가 달려드는 것처럼 기분 좋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키가 고생 좀 하겠군.”
이제 남은 것은.
아르케네스의 신들린 거래와 흥정, 그리고 계약의 수주(受注)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