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51
제 151화
54장. 5대 성유물 – 3화
고개를 돌려보니, 낙엽을 잔뜩 뭉쳐서 만든 조잡한 망토를 걸친 채 내게 손을 흔들고 있는 헤이즈의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말이 좋아 위장이지, 움직일 때마다 부스럭거리는 것이 결코 좋은 위장은 아니었다.
“헤이즈, 뭐 하고 있는 거야?”
“완벽한 위장이죠! 어때요? 감쪽같지 않은가요?”
“위장술은 독학하지 말고 그냥 클로이한테 배워라.”
“윽……. 뼈가 아파요, 폐하.”
민망해하면서도 헤이즈는 연신 싱글벙글했다.
나만 보면 마치 미소 ‘스위치’가 켜지기라도 한 것처럼 늘 웃는다.
[신성력 : 903]헤이즈의 신성력 상태를 스캔해 보니, 지난번에 스캔했을 때에 비해서 150이나 올라 있었다.
신성력은 마력과 비교해 희소성 면에서 아예 차원을 달리해 1을 모으는 데에도 엄청 고생을 해야 한다.
보통 에서 치유사 플레이어가 신성력 100을 아티팩트 없이 확보하는 데 꼬박 3개월이 걸렸다.
그 말인즉 헤이즈가 정말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신성력 수련에 공을 들였다는 얘기다.
내게 드러내 표현하거나 자랑한 적은 없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고 있는 그녀의 투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제부터 네 신성력이 필요해. 너와 함께 사나레 성지에 진정한 축복을 내릴 거야.”
나는 아공간에서 네 개의 성유물을 꺼냈다.
돌, 지팡이, 성서, 그리고 흙이 담긴 유리병. 준비는 완벽하다.
“정말…… 구해 오신 거예요? 그냥 소원을 말씀하신 게 아니라, 정말 어디 있는지 알고 계셨던 거예요?”
“당연하지. 내가 언제 허풍 떠는 것 봤어?”
“하지만 성유물은 라디우스 교단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끝내 못 찾았잖아요? 교황 성하께서도 내 대에서는 얻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셨을 정도로요!”
“그랬지. 하지만 이젠 아냐.”
나는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이게 오롯이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나만의 특전이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이점이 있는데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를 이 세계로 환생시킨 ‘어떤 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
“멋져요, 폐하!”
“띄워 주기는 그만하고 타넥스를 착용시켜 줄 테니, 조용히 따라와.”
“네, 알겠어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헤이즈가 양손을 힘껏 좌우로 펼쳤다.
마치 예전에 ‘특촬물’에서 볼 법한 변신 과정을 보는 것 같은 웃기는 자세였다.
하지만 헤이즈는 새삼 진지하게 타넥스와의 동기화를 받아들였고, 이내 착용을 마쳤다.
‘조만간 업그레이드해야겠네.’
타넥스를 보고 있으니, 자잘한 스크래치는 물론이거니와 살짝 삐걱거리는 부분이 보였다.
사비오가 다음 6월에 연구실을 방문할 때는 깜짝 놀랄 만한 개조를 보여 주겠다고 했는데, 벌써 약속한 6월이 왔다.
-올라, 안전하게 탑승자를 모시겠어요.
“와아! 잘 부탁해요, 올라 씨!”
-네, 운전은 제게 맡겨 주세요. 편한 비행으로 모시겠습니다.
“오오오! 폐하, 엄청 신기해요! 정말 신기해요!”
헤이즈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적당히 해, 인마.”
나는 무심히 헤이즈의 손을 꼭 붙잡고는 플라이 마법으로 성지의 남쪽을 향해 날았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 * *
불과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사나레 성지 전역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자레드와 헤이즈가 가장 먼저 묻은 것은 축복의 토양이었다.
신성력을 듬뿍 담은 뒤 황무지를 공들여 개간한 ‘사나레 평야’에 축복의 토양을 깊이 묻었던 것이다.
그 순간.
실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개간하여 제법 비옥하게 변모시키기는 했어도, 여전히 척박함이 느껴졌던 사나레 평야 전체에 윤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농작물들 사이에서 눈에 띌 정도로 그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자레드도 놀랐지만, 더 놀란 것은 헤이즈였다.
최상위 치유술도, 하이클래스 마법도 이런 변화를 순식간에 만들어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성유물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기적과도 같았다!
기적은 계속됐다.
심판의 지팡이는 사나레 성지 외곽에 위치한 사나레 산에 박혔고, 그와 동시에 지력(地力)이 크게 높아졌다.
이제는 산지를 이용한 계단식 농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산 전체의 지력이 극대화됐다.
그리고 백지 성서는 사나레 대신전의 지하에 위치한 특수 금고에 보관됐다.
누군가가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한, 계속해서 무한한 신성력을 뿜어내며 성직자들의 수양과 깨달음을 도울 터였다.
마지막 승천의 돌은 사나레 성지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대광장’에 있는 라디우스 석상에 박혔다.
승천의 돌은 백금 성배처럼 치유의 능력을 갖는다.
백금 성배가 치유의 샘을 통해 물로 신도를 치유한다면, 앞으로 라디우스 석상은 주변을 휘감는 치유의 기운으로 신도들에게 기적을 내릴 불가사의(不可思議)가 될 터였다.
그리고 마지막 퍼즐인 라디우스의 백금 성배.
나 홀로 알고 있는 위치에서 성배를 꺼내 와서, 헤이즈와 일사천리로 소유권 리셋을 진행했다.
오랜만의 소유권 리셋 버그 활용이라 그런지, 옛 생각도 나고 감회도 새로웠다.
[라디우스 백금 성배의 소유권이 ‘헤이즈’에게 이전되었습니다.] [경고! 라디우스 백금 성배의 소유자가 바뀌었습니다! 1분 내로 다시 원상복구하지 못하면, 기존 성유물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라디우스 백금 성배의 소유권이 ‘자레드’에게 이전되었습니다.]‘시스템 한번 칼 같네.’
찰나의 순간에 붉게 반짝거렸던 경고 메시지에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문제없이 계약서를 통해 소유권이 왔다가 갔고, 작업은 무사히 끝났다.
내가 진행하는 일이라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무조건 협력해 주는 헤이즈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다섯 개 성유물이 하루아침에 한곳에 모여, 진정한 성유물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는 에서도 전례가 없었고, 현생에서도 당연히 전례가 없는 유일무이한 사건이었다!
‘하, 드디어.’
최고의 조합이 이루어졌다.
특별하고도 매우 희귀한 황금 칭호 둘의 시너지효과 때문인지, 나와 헤이즈를 중심으로 금빛의 기운이 쉴 새 없이 솟아올랐다.
헤이즈는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감격에 찬 눈빛으로 하늘을 수놓은 빛의 향연을 보고 있었고,
나는 ‘30000 / 30000’으로 일괄 최대치를 달성한 내정 수치를 보며 감탄했다.
모든 영토와 성지의 내정 정보가 마치 ‘치트키’라도 쓴 것처럼 전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었다.
동시에 시작된 장기간의 황금기는 덤이었다.
이 역시 1년이라는 긴 기간이 약속된, 왕국의 거대한 축복이자 성장 동력의 핵심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이, 이건 뭐지……?’
‘라디우스의 편애’라는 칭호만 얻고 끝날 줄 알았던 시스템 메시지에서 새로운 내용이 출력됐다.
그것은 나도 전, 현생을 통틀어서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특별한 메시지였다.
[주신 ‘라디우스’가 당신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주신 ‘라디우스’는 당신을 다가올 운명에 맞설 적임자의 후보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신 ‘라디우스’가 당신에게 지나친 교만과 자만, 오만을 경계하라고 충고합니다.]“와!”
주신님이 나를 보고 계셔!
헤이즈만 곁에 없었다면, 순간 감격해서 그렇게 외칠 뻔했다.
신과의 커넥팅을 알리는 메시지에서 처음으로 주신과 접촉한 것이다.
물론 라디우스가 모든 신을 아우르는 절대 신은 아니다.
하지만 에 설정된 신의 세계관에서 최상위 신에 해당하는 ‘초월의 신’인 것은 맞다.
점점 상위의 신이 나를 주목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 세계에 미치는 내 영향력이 커졌다는 뜻이다.
에서도 그랬으니까.
전부터 느끼기는 했지만, 이 메시지로 하여금 어깨에 더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졌다.
이제는 정말 만년 ‘엑스트라’ 신분을 탈출해서 진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주인공 후보군에는 확실히 들어간 기분이 들었다.
아울러 성마 대전을 대비하기 위한 유의미한 발걸음이라는 것을 ‘라디우스’가 인정해 줬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너무 뿌듯했다.
타타탁! 탁! 탁!
그때, 뒤에서 황급히 두 사람이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와 헤이즈의 시선이 함께 향한 자리에는 추기경 베니우스와 대신관 네오드가 있었다.
네오드가 다급히 물었다.
“아니, 폐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갑자기 성지 전역에서 금빛 기운이 일렁이며, 성스러운 기운이 솟구치다니요?”
왠지 이유를 알면서도 확실하게 확인 차원에서 묻고 싶은 네오드의 속내가 느껴졌다.
추기경 베니우스는 하늘을 바라보며, 거의 눈물이 쏟아지기 직전으로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라디우스 교단의 모든 성유물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성지 전역에 필요한 장소에 심어 두고, 그 힘을 발현했을 뿐입니다.”
“끄윽, 그게 정말로 현실이…….”
“대신관! 네오드 대신관!”
“아앗, 대신관 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네오드가 눈을 까뒤집고 뒤로 쓰러졌다.
상습(?)적인 기절이라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베니우스는 크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헤이즈가 바로 네오드에게 붙었고, 그에게 아낌없이 치유술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렇게 네오드가 정신을 차리는 동안, 베니우스가 내게 조심스럽게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대왕 폐하에게 어떤 경로로 성유물을 입수했는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성하께서도 엄명을 내리신 부분으로, 절대 실례를 범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하군요.”
“이번 일은 나스 대륙 전체에 엄청난 이슈가 될 겁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전부 사라졌던 성유물을 대왕 폐하께서 모두 찾아오셨으니…….”
“한데 직접 성유물을 확인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확인이야 천천히 진행하면 되겠지요. 그 전에 이미 저희는 신성력의 변화로 느낍니다. 여긴 지금 이 순간부터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신성의 땅이 되었습니다.”
“대륙 최고의 대신전을 보유한 성지의 명성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담백하게 답하는 내 말에 베니우스가 좀 더,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지금보다 더 은밀하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제스처였기에, 나는 눈치껏 뮤트 마법을 펼쳤다.
“대왕 폐하.”
“예, 말씀하시지요.”
“은밀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하께서 말씀하셨던 속마음이기도 합니다.”
“부담 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사나레 성지에…….”
“사나레 성지에?”
“라디우스 시국을 옮겨 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