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62
제 162화
57장. 케베눔 – 2화
“레나, 메인 탱킹은 절대 욕심내지 말고, 케베눔이 내게 붙으려고 할 때만 어그로를 끌어 줘.”
“네, 폐하. 보조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겠어요.”
“놈이 한 사람을 집중 공격하면 위험하니까, 계속 교대하면서 관심을 끌자. 알겠지?”
“네, 알겠어요!”
나와 레나는 계속해서 케베눔의 공격을 교대로 받아 냈다.
클로이는 케베눔의 후방에만 자리를 잡고, 빈틈이 날 때마다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전투 초반만 해도 케베눔은 자신에게 가장 귀찮은 클로이를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했지만.
포르미도의 밀착 강의를 빠르게 흡수하며 성장한 클로이는 케베눔에게 쉽게 잡히지 않았다.
미아는 내 요청대로 계속 바람의 기운을 모으고 모으다가, 거대한 바람 구체를 날리는 패턴 공격을 반복했다.
미아의 마법을 보니, 안정적으로 기운을 응축시키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바람 마법에 한정해서는 나보다 손재주나 감각이 훨씬 더 좋았다. 놀라울 정도로.
그래서 바람의 힘을 최대로 모을 수 있을 때까지 응축한 다음, 마치 ‘대포’를 쏘듯이 바람의 포탄을 날리도록 한 것이다.
효과는 좋았다.
내가 미아의 공격이 도착할 즈음에 늘 케베눔의 시야를 가렸고, 바람 구체가 도착하기 직전에 피하면서 깜짝 공격을 펼쳤기 때문이다.
단단한 외피를 가진 케베눔이라고 해도 무적은 아니었다.
투타타타! 타타타!
한편 헤이즈는 타넥스에 탑승한 채, 공중에 자리를 잡고 계속 마력탄을 쏘아 댔다.
중간에 화력이 떨어질 때가 되면 아공간에서 마정석을 꺼내 던져 줬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방아쇠를 당기던 헤이즈였지만 지금은…….
“폐하! 이번에는 위에서! 위에서 놈의 정수리를 노리고 내리쏘도록 할게요!”
“헤이즈, 너 하고 싶은 대로 다해! 착용 해제만 하지 말고!”
“네, 알겠어요!”
-여유 한번 넘치는군! 뒈져라, 인간!
“이번에는 내 차례다, 두꺼비 자식아!”
쿠우웅!
“크윽!”
정해진 교대 순서에 맞게 레나가 케베눔의 공격을 받아 냈다.
케베눔은 보스 몬스터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무식한 공격법을 가진 녀석이었다.
힘만 믿고, 그냥 들이받았다.
문제는 그 힘이 너무 강력해서 어지간한 헌터라면 일격에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점일 뿐.
‘트랜센던스 플레임 애로우.’
나는 체력이 빠지고 있는 케베눔에게 맞춤형 선택지를 꺼냈다.
놈의 체력을 직관화를 통해 퍼센티지(%)로 확인할 수 있어 과한 화력을 쓸 필요가 없었다.
“매콤한 불맛이나 봐라!”
쿠웅!
-쓸데없는 짓이라고 몇 번을 말하느냐?
화르르륵!
케베눔은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불길을 온몸으로 막아 냈다.
정작 케베눔은 멀쩡하고, 곁에서 탱킹을 하던 레나가 뒤로 물러서야 할 정도의 열기였다.
‘80% 구간을 지났어.’
이윽고 케베눔의 체력이 불길과 함께 쭉 빠지면서, 80% 미만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제 본격적인 유희를 시작해 보실까! 크하하하!
기분 나쁜 웃음소리와 함께 케베눔의 몸이 들썩이더니, 이내 전신에서 붉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대회복.
‘썩을 X.’
순식간에 체력 바의 체력이 쭉 차오르며, 이내 체력을 상징하는 구슬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헤이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회복과 함께 죽음의 치유술, 데스 힐의 대미지가 누적되었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20% 체력을 회복했으니, 4%의 대미지가 저장된 셈이다. 물론 아직 터지지 않은 시한폭탄이지만!
“레나, 이번에는 내가 간다!”
“네!”
-네놈이 이 여군(女軍)의 리더군. 널 죽이고, 이 녀석들을 모두 내 노예로 만들어 버리겠다!
“망상은 자유지!”
빠직! 빠지지지직!
이번에 꺼내 든 것은 트랜센던스 체인 라이트닝.
보통의 체인 라이트닝 마법이 일반적인 고압의 전류라면, 트랜센던스가 이뤄지면 특고압 전류가 된다.
일반인이나 항마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대가 맞으면 볼 것도 없이 즉사.
케베눔의 외피는 단단하나, 동시에 촉촉한 형태로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래서 전격 계열의 마법이 상성상의 작용에서 우월할 것으로 봤다.
-호오.
“감탄만 하지 말고, 처맞아!”
빠지지지직!
이윽고 섬광이 사방으로 번쩍이며, 고압의 전류 줄기가 케베눔을 향해 맹렬히 떨어졌다.
-클클클!
뭘 믿고 저러는 걸까?
케베눔이 양팔을 앞으로 교차시키더니, 마법을 정면으로 막아 낼 준비를 했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정면 승부라면 나도 환영이지!
다음 순간.
빠지지직! 빠지지직!
-끄아아악!
직전까지 씨익 미소를 짓고 있던 케베눔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니, 뭘 믿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네? 케베눔,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여?”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눈과 코, 입과 ‘그 부위’로 온갖 체액을 쏟아 내는 녀석을 내려보았다.
애초에 물방, 마방이 전부 1천을 넘기는 녀석이기에 어지간한 하위 마법이나 물리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다.
그래서 마법도 기본적으로 4클래스 이상의 마법만 사용했다.
물론 녀석은 자신의 단단한 외피를 믿고, 직접 몸으로 받아 내며 방어했다. 아니, 방어라기보다 그냥 몸으로 때웠다.
하지만 6클래스의 마법인 체인 라이트닝을, 그것도 초월 마법 형태로 썼는데 몸으로 받아 낸다?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케베눔은 그 미친 짓을 해 버렸다.
-으드드드! 으드드드!
“미아, 지금이야!”
“네!”
내 말이 마무리될 시점에 이미 타이밍을 읽은 미아의 ‘바람 대포’가 날아들고 있었다.
이름으로는 특정할 수 없는 바람 마법으로 수십 개의 포스 미사일 구체를 한 점으로 응축해 놓은 고화력의 바람의 핵(核)이었다.
‘트랜센던스 포스 미사일!’
바람 받고 바람 더.
딱 맞아떨어지는 잔여 마력을 이용해, 트랜센던스 포스 미사일을 얹었다.
이 정도면 미아의 ‘바람 대포’와 합쳐져 어느 정도의 효과를 낼지…… 쉬이 짐작이 되지 않았다.
“…….”
과아아아아.
귓가를 강렬하게 때리는 굉음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설령 나라도 감당하지 못했을 것 같은 거대한 바람의 폭풍이 일시에 케베눔에게 휘몰아쳤다.
이것은 나와 미아가 마법으로 만들어 낸 첫 합작품이기도 했다.
뻐엉!
-크어억!
순간 무언가가 크게 터지는 소리가 나며, 부르르 떨던 케베눔의 몸이 대책 없이 하늘을 날았다.
사방으로 피가 비산했다.
위력적인 바람 구체와 부딪힌 케베눔의 몸 여기저기가 풍선처럼 터져 버렸기 때문이다.
“음!”
그사이를 이용해, 클로이가 힘을 잔뜩 실은 단도를 던졌다.
휘리리릭! 푹!
앞서 당한 공격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케베눔의 복부에 클로이가 날린 단도가 꽂혔다.
제법 깊숙하게 박혔다.
그것은 1천을 뛰어넘는 케베눔의 물리 방어력을 충분히 무시할 만큼 클로이가 성장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
이 정도면 이론상으로는 갈라딘 공작 같은 인물도 빈틈이 ‘있다면’ 얼마든지 암살이 가능하다.
콰앙!
-크억!
후드드득. 후드드득.
보스 방의 내벽에 부딪힌 케베눔이 신음을 토해 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천장이 흔들리며, 갈라진 균열을 따라 돌멩이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방금 전의 일격이 무척이나 강렬하게 들어갔었기 때문일까?
진기한 풍경도 이어졌다.
-아직 내 유희는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날 죽일 순 없어.
대회복 패턴이 두 번 연속으로 나왔다.
체력이 단숨에 빠지면서, 70%와 60% 구간을 같이 넘겨 버린 것이다.
두 번의 대회복이 이뤄졌다. 그리고 각각 6%, 8%의 대미지가 누적됐다.
‘좋아. 순조로워.’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잘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50%와 40% 구간만 안정적으로 넘기면 된다.
바로 그때.
고개를 숙였던 케베눔이 얼굴을 치켜들더니, 이내 비릿한 웃음을 터뜨리며 몸에 변화를 만들었다.
좌아악! 좌아아아악!
“드디어.”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케베눔을 둘러싼 푸른빛 역장이 두텁게 활성화되더니, 이내 등에서 네 개의 팔이 생겨났다.
“모두 긴장해. 이제부터는 놈이 앞이 아닌 뒤도 공격할 테니까. 위라고 방심하지 말고!”
나는 주의를 환기했다.
보스 몬스터 공략에 있어서 가장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는 시점이 바로 이때다.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시점.
케베눔이 최종 병기를 꺼냈으니, 이제부터 지겨워지는 한이 있을지언정 방어전으로 가야 한다.
지잉!
바람의 장벽을 바로 펼쳤다.
그리고.
-크하하하! 이곳을 네놈들의 공동묘지로 만들어 주마!
광기에 잔뜩 물든 케베눔의 돌진이 시작됐다.
우득! 우드드득!
케베눔이 지면을 박찰 때마다, 닿은 면이 쫙쫙 갈라지며 파괴적인 추진력의 정체를 알렸다.
콰앙!
이윽고 부딪힌 나와 케베눔.
“크으으윽!”
이번에는 내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뭘 해도, 오로지 몸으로만 때우려고 하는 정신 나간 녀석! 케베눔의 폭주가 시작됐다.
* * *
30분이 지났다.
케베눔과의 난타전을 치르며, 자레드는 온몸으로 깨달았다.
자신에게 가장 까다로운 적은 뒤를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달려드는 자라는 것을.
지금껏 상대했던 모든 적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방어기제가 무조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어떻게든 죽이고 싶어 했던 제스도 마찬가지였다.
찰나의 순간순간에 망설이는 모습이 분명 있었고, 그로 인해 빈틈을 보이곤 했다.
하지만 케베눔은 달랐다.
애초에 빈틈이 있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난 오직 한 놈만 패!’라는 콘셉트가 아주 확실했다.
난전에 들어가는 마력 소모가 상당했다.
무디두스의 기도는 물론이거니와, 이그노어 건틀릿과 타넥스에 있는 마력까지 모두 끌어다 썼다.
자레드가 전방으로 장벽을 펼치면, 빠르게 우회해서는 후방을 노렸다.
그리고 올라운드로 커버하는 실드를 만들면, 그때는 자레드를 무시하고 레나만 공격했다.
레나가 자레드의 기대만큼 듬직하게 잘 막아 주고 있었지만, 문제는 체력이었다.
지칠 줄 모르는 케베눔과 달리, 레나의 움직임은 시간이 갈수록 현저히 떨어지고 있었다.
헤이즈의 치유술이 뒷받침됐다면 얘기가 달랐겠지만, 지금은 전략적인 이유로 봉인이 된 상황이었다.
‘45%……. 대회복 유도까지 5% 남았다.’
9부 능선을 넘기는 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상황이 썩 좋지는 않았다.
미아는 탈진 상태였고, 클로이도 케베눔의 공격에 부상을 입었다.
애초에 달라붙어 공격 포지션을 잡을 수밖에 없는 그녀의 특성상, 장기전에서의 부상은 예견된 결과였다.
“하악, 하악.”
레나도 방패를 들고 있는 팔이 눈에 띄게 내려가 있었다.
가드 유지가 안 된다는 것은 탱커에게는 치명적인 빈틈이었다.
‘어쩔 수 없군.’
자레드는 승부수를 던지기로 했다. 동료들은 충분히 제 역할을 해 줬다.
[옵션 8 : 흡혈 – 생체의 선혈을 흡수하여 체력을 회복합니다. 5회 이상 흡혈을 사용하면, 뱀파이어화가 진행됩니다.]악마 유희의 8번 옵션이 보였다. 죽지 않을 정도의 부상이라면, 언제든 흡혈로 회복할 수 있다.
5번의 기회가 있으니, 한 번 정도는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간다!”
망설일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자레드가 케베눔에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남은 마력은 더함도, 모자람도 없이 딱 떨어지는 4천의 수치.
싱글 트랜센던스 형태로, 4클래스의 마법을 쓰면 알맞은 수치였다.
다만 원거리에서 날리는 마법으로는 한 방의 대미지가 부족할 것 같았기에 고육지계를 쓰기로 했다.
이에 필요한 사전 작업은 바로.
터업!
“크억!”
케베눔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확실한 포지션으로 놈에게 붙잡히는 것이었다.
케베눔의 우락부락한 양손에 잡힌 자레드의 몸이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폐, 폐하!”
“폐하! 아니, 이게 무슨!”
“꺄아아악!”
그의 속내를 알지 못한 나머지 넷이 황망함에 절규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케베눔만 미쳤는 줄 알았더니, 더 미친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