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65
제 165화
58장. 아그라트 – 1화
1416년 6월 30일 밤.
나는 현생에서 눈을 뜬 이후, 세 번째 아웃브레이크를 준비하고 있다.
벌써 7월 1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내가 현생에서 깨어나기 전까지 이 아웃브레이크는 크리비아 영지에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던 재앙이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모든 대비를 하게 된 이후, 2년 동안은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7월 1일을 기다렸다.
경험치를 빨아들이며, 급성장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니까.
준비는 일찌감치 끝내 뒀다.
늘 그렇듯이 차원문을 타고 넘어온 몬스터가 무한 ‘뺑뺑이’를 돌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놨다.
다만 작년보다 차원문 사이의 간격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타넥스로 마력탄 난사만 해도, 튀어나온 고블린을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참 많은 일이 있었네.”
나는 케베눔을 공략한 직후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가장 먼저 기억나는 것은 역시 그라시아의 인도로 도착했던 신의 정원이었다.
그라시아의 말대로 그곳에 신이 직접 강림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나를 아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아니나 다를까.
특히 내 모습을 가까이서 관찰하게 된 네프리아나 아소스는 열렬한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 봤자 응원 멘트가 전부였지만, 신의 응원인지라 무게감이 남달랐다.
‘어디 보자…….’
나는 상태창의 수많은 분류 중에서 ‘가호 & 주시’라고 표시된 창을 열었다.
말 그대로 내게 가호를 내렸거나,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는 신의 목록을 표기한 것이었다.
주시창을 확인하자.
[신 ‘이토르스’가 당신에게 관심을 갖고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이하 총 서른넷의 동일 형태의 메시지가 존재합니다. 확인을 원하시면 ‘여기’를 눌러 주세요.]끝없는 메시지의 향연이 이어졌다.
‘큭. 무슨 장바구니 담기도 아니고, 주시가 뭐 이렇게 많아?’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인기투표에서 사랑을 독차지한 느낌이랄까?
물론 신의 정원에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기는 했다.
나를 상품이라고 생각하고, 신들에게 열심히 내 능력을 소개했다. 기꺼이 모든 능력을 선보였다.
어차피 그들은 신이기에 내 능력을 숨기지 않았던 것이다. 알고자 하면 다 알 수 있는 존재들이니까.
어쨌든 쇼케이스는 성공적이었고, 나를 주시하겠다고 말한 신들 중에는 상급의 신도 제법 있었다.
초월의 신은 하나도 없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신계에서의 위치만큼이나 엉덩이가 무거운 존재들이다.
이런 ‘가벼운 자리’에 나와서 흥밋거리를 찾을 존재들이 아니었다.
어쨌든 신의 관심은 많을수록 좋다.
성마 대전이라는 것이 인간과 마왕의 대결이지만, 동시에 신과 악신의 대결이기도 하다.
인간계에 개입하기 힘든 신들이 벌이는 대리자의 대결인 것이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을 통합할 주인공이 되어 성마 대전에 대비하기로 한 이상.
내게 도움이 된다면, 이름 없는 신의 가호라도 싹싹 긁어모아야 할 판이었다.
“곧 자정이 되면, 이 세계에서 눈을 뜬 지 2년하고도 반이 지났네. 얼마나 성장했는지 볼까?”
오랜만에 스탯창을 열었다.
로스트 아일랜드에서 굵직한 아티팩트를 얻은 데다가 그라시아 5종 세트까지 모두 착용한 상태.
예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급성장이 예상됐기에 내심 기대를 많이 했다.
[자레드 – Lv. 199] [근력 : 535][체력 : 450] [마력 : 27,509][지혜 : 1,135] [민첩 : 190][매력 : 330] [물방 : 855][마방 : 1,843] [신성력 : 400] [잔여 스탯 : 0]‘마력! 하, 정말 기가 막히는군.’
헛웃음이 났다.
어이가 없어서라기보다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어떻게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어서다.
그라시아 세트의 효과는 단순하지만 강렬했다.
마력 5,000 증가.
그리고 신성력과 물방, 그리고 마방 100 증가.
덕분에 마력이 대폭 늘었다.
이제 순수 마력으로도 2클래스 마법을 데큐플 트랜센던스까지 강화하는 것이 가능했다.
마력 2만이라는 엄청난 수치를 일격에 운용하는 것이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된 것이다!
‘전생의 에서 보였던 내 능력과 비교하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해.’
확실히 그러했다.
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최강자라 하더라도 일대백, 그 이상을 꿈꾸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현생에서는 미래에 대한 선(先)지식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필요한 아티팩트를 ‘독점’하며 빠르게 급성장을 하고 있는 나다.
지금의 내 실력으로 일반 병사를 상대한다면, 일당천? 아니 일당만도 충분히 가능하다.
에서는 불가능했던 영화나 소설 같은 일이 이제는 현실에서도 가능해진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수십만 명의 병사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결코 날 죽일 수 없다.
단지 네임드가 적으로서 등장하는 그림이 걱정될 뿐이다. 이를테면 갈라딘 공작 같은 사람.
‘그래서 더 해내야 해.’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졌다.
동기부여도 확실하게 됐다.
내가 아니면 다가올 성마 대전을 능히 막아 낼 수 있는 인재가 없겠다는 생각도 했다.
여전히 나스 대륙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마도국과 암흑 교단은 호시탐탐 라디우스 교단과 신성국의 빈틈을 노리고 있다.
그리고 각국이 서로를 집어삼킬 절호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상황이다.
하다못해 나 역시 내년 초의 전쟁을 계획하고 있잖은가?
‘단일 깃발 아래의 통일 없이는 성마 대전에서의 승리도 없어.’
결론은 간단했다.
성마 대전이 벌어지기 전에 확실하게 대륙 전체를 통일하는 것이다.
나는 날짜를 되새기기 위해, 다시 그라시아의 두루마리를 펼쳤다.
[1422년 12월 31일]진하게 새겨져 있는 숫자, 이것이 가리키는 운명의 그날이 내 가슴을 뒤흔든다.
재앙의 시간이 당겨지는 것을 전력을 다해 막는다고 해도, 결국 6년 6개월 후면 성마 대전이 발발한다.
“…….”
두 눈을 감고 상상해 보았다.
나스 대륙 전역에 셀 수 없이 많은 차원문이 열리고.
그 차원문을 비집고 나오는 수많은 마물들의 모습을.
그리고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군단의 후방에서 유유히 모습을 드러내는 마왕을.
예전 같으면 그 모습이 그저 암울하게만 느껴졌겠지만…… 이제는 조금 희망적인 상상을 할 수 있게 됐다.
수많은 마물과 마족을 쓰러뜨리며, 단숨에 날아가 마왕의 심장에 뜨거운 불길을 꽂는 나의 모습이.
이미지 트레이닝.
그것이 제법 가능해졌다는 것은 내 스스로의 성장에 어느 정도 확신이 섰다는 얘기도 된다.
‘지금까지 해 온 대로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다른 곳에 절대 한눈팔지 말고.’
그렇게 다시금 목표 의식을 다진 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이제 곧 자정이 된다.
7월 1일.
아웃브레이크의 시작이다.
* * *
이윽고 자정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몬스터들이 차원문을 넘어 대거 나타나기 시작했다.
벌써 3번째라 제법 익숙해진 레퍼토리였기에, 자레드는 능숙하게 불길을 펼쳤다.
특수 마법인 연쇄 발화까지 곁들여 가면서 대폭발을 일으키니, 1년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몬스터들이 죽어 나갔다.
“꾸엑! 꾸에에엑!”
“키에엑! 키약! 키야아악!”
“올해도 역시 하품 나오는 학살의 연속이구나. 하아암.”
진심으로 나오는 하품이었다.
자레드는 편평한 바위 위에 옆으로 드러누워, 한 팔로 머리를 괸 채로 여유롭게 학살의 현장을 구경했다.
몬스터들이 줄줄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 깨알같이 레벨 1이 올라, 이제는 200이 됐다.
여유야 차고 넘쳤기에, 자레드는 새롭게 열린 심안의 다섯 번째 옵션을 확인했다.
[심안 : 퀸튜플(Quintuple)] [생체 신호 감지 : 대상의 육체적 건강 상태를 색깔로 직관화하여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투명할수록 건강함을 상징하며, 탁할수록 질병의 발생 가능성이 큼을 알립니다.
완벽히 검게 변했을 경우, 그것은 불치병 또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중증의 병에 걸렸음을 상징하게 됩니다.]
괜찮은 옵션이었다.
자신의 곁에 오브렌이나 아빌라, 포르미도와 같은 70대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드시 필요했다.
적어도 완전히 검게 물들기 전, 색이 탁해지는 시점에서 병을 치료하거나 다른 형태로 손쓸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에서는 어차피 죽어도 부활하면 되기에 쓰레기나 다름없는 옵션이었는데, 현실이라 정말 중요한 옵션이 됐네.’
자레드는 미소를 지었다.
욕심인 것을 알지만, 지금의 노(老)가신들도 오래오래 살아 줬으면 했다.
오브렌과 아빌라는 스탯의 내용만 놓고 보면, 여전히 C급 무장 이상으로는 보아주기 힘들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가치는 엄청났다.
특히 오브렌과 아빌라는 자레드가 왕국을 선포함에 있어, 긍정적인 여론을 사전에 조성해 준 공신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얼마 전에 공작의 작위도 내리지 않았던가?
왕국의 초석을 닦은 공신들이기에 절대 잃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죽는다면, 무척이나 슬플 것 같았다.
척박한 크리비아 영지에서 자신의 선대 시절부터 충성을 바쳐 온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꾸억! 꾸어어억!”
“크르르륵…….”
한편.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비명은 점점 잦아들었다.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아웃브레이크는 종료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했고, 자레드는 차원문이 곧 닫히겠거니 했다.
과거에는 영지에 정말 많은 피해를 입혔지만, 3년 연속으로 아무 피해도 주지 못했으니 이제는 아그라트도 이 장난질을 그만두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한데 바로 그때.
피핏. 핏.
“응?”
처음으로 사람이 나타났다.
자레드는 놀라 바로 일어섰다.
차원문을 넘어와 나타난 사람은 흑색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마법사였다.
“이런 구조면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지! 머리 잘 썼네!”
그는 능숙하게 수인을 맺어 디멘션 도어를 전개하고는 손쉽게 무한 순환 루트를 빠져나갔다.
“…….”
자레드는 바로 전신의 마력 순환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뭔가 잘 풀린다 했어. 그래, 이번에는 본인이 직접 등판하시나?’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선 자레드의 시선이 차원문을 응시했다.
“크리비아 왕국의 왕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될 줄이야.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클클클.”
앞서 넘어온 마법사가 자레드를 보며 킬킬 웃어 댔다.
우웅! 우우웅!
자레드가 즉각 윈드 스피어 마법을 전개했다.
보아하니 동료들이 도착할 예정이라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는 듯한데, 탐색전이나 해 볼 요량에서였다.
쿠과과!
이내 굉음을 내며 바람 구체가 날아갔다.
직선 경로를 그리는 고속 타격이라,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닿을 속도였다.
하지만.
쿠웅!
“……?”
차원문을 막 넘어온 한 남자가 자레드의 마법을 들고 있던 검으로 쳐냈다.
다음 순간.
자레드는 그가 누군지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그라트.”
바로 암흑 교단으로 불리는 카코 교단의 교주 아그라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