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69
제 169화
59장. 대균열 – 1화
이틀 후.
-던전이라는 곳은 참 재밌는 곳인 것 같당. 이번에 헤이즈와 함께 던전 다녀왔당. 몬스터 몇은 내가 직접 할퀴어서 죽였당.
“아니, 데리. 못 본 새에 무슨 레벨이 이렇게 높아졌어?”
-네가 나를 영 신경 써 주지 않으니, 헤이즈를 쫓아다닐 수밖에 없당. 그리고 헤이즈는 던전을 무척 좋아한당.
“미쳤네, 미쳤어…….”
나는 100을 넘긴 데리의 레벨을 보며,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론 ‘펫’의 레벨 100은 인간의 레벨 100과는 다르다. 인간의 레벨로 비유하면, 30쯤 된다.
다만 내가 놀란 것은 데리가 그만큼 성장한 것만으로도 동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어서다.
[대상체에게는 ‘수호자’의 특성이 적용됩니다.] [지정된 5인은 대상체에게 버프, 디버프, 주술, 저주 등을 주입할 수 있습니다.]이것이 현재 데리에게 적용되고 있는 부분이었다.
지정된 5인은 나, 헤이즈, 클로이, 이자벨, 라키스다. 항상 가까이 있는 동료들 위주로 짜 놨다.
수호자 특성은 이렇게 5인에게 발휘된다.
기존의 신체 능력에서 적게는 3배, 많게는 6배의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 정도면 데리 혼자서 다수의 고블린 무리를 쓰러뜨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이른바 ‘잡몹’ 처리가 가능해진 것.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기여도를 갖기에 놀란 것이다.
“헤이즈를 따라다니면서 꾸준히 곁을 지켜주도록 해. 가끔 심심하면 나한테 놀러 오고.”
-나쁜 주인. 날 깨운 것은 넌데, 정작 키우는 사람은 다르구낭. 슬프당. 내 냥생이…….
“군소리 말고 얼른 헤이즈에게 가, 인마!”
-간당. 간다공.
데리가 잽싸게 내 곁을 떠났다.
살짝 열어 놓은 창틈 사이로 몸을 납작하게 깔고는 유연하게 빠져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데리와 함께 다니면서 성장을 시키고 싶은데, 쉽지가 않았다.
왕국에 산적한 현안이 많은 데다가 여기저기 돌아다닐 일도 많기 때문이다.
‘그나마 내년 7월 1일부터는 아웃브레이크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할까?’
이번에 아그라트가 죽으며, 녀석이 운용하던 차원문 장치가 함께 박살이 나 버렸다.
정확히 어떤 구조인지는 폭발로 인해 살필 수 없었으나, 그 장치가 다른 차원에서 직통으로 악몽의 숲과 연결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추론할 수 있었다.
암흑 교단 혹은 그 배후 세력이 아주 조악하며 기초적인 단계이기는 하나, 마계의 힘이나 세력 일부를 가져다 쓸 수 있다는 것을.
“아무래도 동해로 가야겠어.”
골몰히 생각한 끝에 결심을 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자신의 성장을 채찍질하기에 앞서, 우리 왕국에 가장 필요한 작업을 한 가지 더 하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대장장이 모이즐을 영입하는 일이었다.
모이즐은 아세로와 같은 대장장이지만, 아티팩트 세공이나 제작에도 빼어난 능력을 지닌 네임드였다.
무게감만 놓고 보면 모이즐이 아세로보다 압도적으로 높다고 해도 될 정도.
이제는 그를 끌어들일 때가 된 것 같았다.
다만 그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 확실하게 ‘버그로 꿀빠는 플레이어’가 될 생각이었다.
그것은 바로 나스 대륙의 동쪽, 동해(East Sea)에 있는 대균열에 진입하는 것이다.
대균열은 맵 버그로 인해 만들어진 공간으로, 아무나 진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여러 가지 공간이 혼재되어 있는데, 내가 가려는 곳은 ‘무한 수련의 방’이었다.
목적은 돈 복사!
나는 균열이 허용하는 최대한도에서, 금화를 최대치로 불려서 가져올 작정이었다.
“폐하! 또 가시는 거예요?”
“앗!”
바로 그때.
몰래 창문을 열고 빠져나가려는 나를 발견한 헤이즈가 소리쳤다.
원래는 내가 몰래 자리를 비우려고 해도 늘 눈을 감아 주던 헤이즈였다.
하지만 이번에 아그라트를 추격하려 뒤쫓아 갔다가 대폭발로 상처를 입고 온 터라, 헤이즈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힐 마법으로는 도저히 깊은 상처들이 치료가 안 돼서, 헤이즈의 치유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실로 오랜만에 그녀의 치유술을 경험해 본 나는 놀라고 또 놀랐다.
디바인 파이브의 경지는 경이로웠다.
치유술 기운이 몸을 순환할 때마다, 생기가 미친 듯이 용솟음쳤던 것이다.
그녀의 치유술은 일반적인 치유의 개념을 넘어서서 각성의 단계로 접어들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심안으로 스캔을 해 봤더니, 그녀의 특수 성향 중에 응원이 SSS로 성장해 있었다.
응원이 SSS등급 이상을 달성하게 되면, 사용하는 버프형 기술 전체에 각성 효과가 주어진다.
헤이즈는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의 특수 성향 중에서 응원을 가장 먼저 SSS로 달성했다.
그것은 정말 잠을 반납해 가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것이 아니라면, 절대 일어나지 못했을 기적이었다.
‘메디네도 응원은 SS였으니까. 이제 네임드와의 비교는 무의미해진 것일지도 몰라!’
떠오르는 기분 좋은 생각에 흡족한 미소로 헤이즈를 보았다.
하지만 녀석은 입술을 삐죽이고 있었고,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은 볼이 연신 씰룩거렸다.
“폐하! 안 돼요! 또 이번에도 몰래 가셨다가 옥체라도 상하시면 그땐 정말 제가……. 제가……!”
“뭐? 확실하게 표현을 해 봐.”
“쓰러질지도 모른다고요! 이틀 전에 폐하께서 다치신 것을 보고, 얼마나 속상했는지 아세요?”
“알지. 알다마다.”
“폐하를 귀찮게 만드는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번에 하시려는 일이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이라면! 제가 위급 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이번만큼은 저와 함께 가 주세요.”
“음.”
생각해 보니 헤이즈와 단둘이 무언가를 해 본 지가 좀 됐다.
헤이즈는 치유사니까 함께 있어서 나쁠 것은 전혀 없다.
또한 그녀의 말대로 내가 중상을 입는 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빠르게 대처할 수도 있다.
‘대균열은 아무래도 유비무환이니까. 보험으로 헤이즈를 데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헤이즈는 나 자신보다 더 믿을 수 있는 동반자다.
대균열에서 맞이하게 될 일들이 결코 ‘정상적인’ 일들은 아니겠지만, 그녀라면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좋아. 그럼 같이 가자. 손잡아.”
“네?”
“멀티 텔레포트 해야지. 여기서 멀리 갈 거야.”
그새 마음이 변할까 싶었는지, 헤이즈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고 난 뒤, 내게 물었다.
“폐하,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나는 대답에 앞서, 먼저 트리플 트랜센던스 멀티 텔레포트로 최장 이동 거리를 설정했다.
그다음.
이동 역장을 활성화한 뒤, 좌표가 설정된 것을 확인하고는 헤이즈를 향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설마……?”
불안한 예감이 든 걸까?
헤이즈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순간!
“동해로.”
나는 덤덤히 목적지를 밝혔다.
현생에서 눈을 뜬 이후, 단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나스 대륙 동쪽으로의 발걸음이었다.
“앗……!”
깜짝 놀란 헤이즈의 비명이 채 끝맺음을 하기도 전에.
우리는 어느새 나스 대륙의 동쪽에 도착해 있었다.
* * *
반나절 후.
자레드와 헤이즈는 동해의 망망대해를 가로질러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지금 제 모습을 누군가가 보고 왕국에 알린다면, 저는 그날로 완전 매장이 될 거예요! 이런 망측한 일이…….”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 편하게 앉아 있어. 이렇게 가는 게 가장 안전해.”
헤이즈가 황망한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타넥스를 착용한 자레드의 등 뒤에 앉아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보면 자레드를 밑에 깔고, 헤이즈가 편하게 앉아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광경이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제가 폐하의 등에 앉아서 간다는 게 너무 죄송스럽고 면목이 없어요!”
“그럼 뭐 헤엄쳐서 갈래?”
“꺄아아악! 살려 주세요!”
자레드가 장난삼아 몸을 살짝 흔들자, 헤이즈가 중심을 잃고 옆으로 떨어질 뻔했다.
반사적으로 몸을 낮춰 타넥스를 꼭 껴안지 않았다면, 진즉에 추락했을 상황이었다.
“이제는 내가 전방 기동을 수시로 하면서 대균열을 확인해야 하니…… 타넥스를 입혀 줄게.”
위잉. 위잉. 위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레드에게서 탈착된 타넥스가 빠르게 헤이즈의 몸을 감쌌다.
“올라, 모든 통제는 네가 해. 헤이즈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나와는 30m 이상 거리를 두고 쫓아오도록 해.”
-네, 명령대로 하겠어요.
“가만히 있을게요.”
자레드가 집중하는 모습을 확인한 헤이즈가 입을 다물었다.
늘 긴장을 최대치로 하고, 주변 상황을 꼼꼼히 살펴야 할 때면 자레드는 침묵을 요구하곤 했다.
이제는 척하면 착이었다.
헤이즈는 자레드의 눈빛만 봐도 그의 속마음을 모두 읽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만큼은, 눈치가 빠른 그녀도 알 수가 없었다.
‘폐하께서는 날 얼마만큼 마음에 담아 두고 계실까?’
항상 머릿속에 물음표를 지니고 있지만, 결코 답을 얻을 수 없던 문제였다.
하녀들 사이에서는 제법 헤이즈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헤이즈와 자레드가 꽤 가까운 사이이며, 그녀가 왕후 후보군에도 올라 있다는 소문이었다.
왕후.
그런 단어나 자리가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그런 자리는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
자레드가 국왕이 아니라, 예전처럼 소영지의 영주라고 해도 자신의 마음은 한결같았을 테니까.
하지만 자레드가 왕이 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현재 왕후의 자리는 공석.
그 자리를 하루라도 빨리 채워야 한다는 여론은 계속해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미 물망에 오르고 있는 귀족가의 영애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
괜히 눈물이 고였다.
아닌 척해도, 클로이나 이자벨이 자레드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도 늘 신경이 쓰였던 헤이즈였다.
한데 생면부지의 귀족가 영애와 자레드가 부부의 연을 맺는다?
생각하면 할수록 끔찍했다!
‘나도 이자벨 언니처럼…… 마음을 접어야 하는 걸까?’
얼마 전에 이자벨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자레드를 떠나보내 주었다고 했다.
자신은 주술단과 결혼한……. 그러니까 일과 결혼한 사람이 되겠노라고 했다.
그 말을 무척 덤덤하게 하던 이자벨의 모습이 떠올라, 헤이즈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직도 자레드와 입술을 맞췄던 그날의 기억이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내가 폐하에게 부족하지 않은 여자가 되려면, 지금보다 더 성장해야 해. 디바인 파이브? 이제 시작일 뿐이야.’
헤이즈가 한없이 가라앉던 마음을 돌려, 스스로를 향한 강한 채찍질로 바꾸었다.
늘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반드시 자레드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리라 믿었다.
“…….”
헤이즈의 눈길이 자레드의 넓은 등, 그 언저리를 조용히 훑었다.
언젠가 마음 편하게, 그를 뒤에서 꼭 안아 주고 싶어서.
한데 바로 그때.
“찾았어!”
자레드의 외침이 들렸다.
이윽고 헤이즈의 시선 역시, 그쪽으로 향했다.
“와…….”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잔잔한 파도만 치던 바다 위에는 이질적이다 못해, 환상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찢어지고 일그러진 공간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자레드가 오는 내내 말했던, 태초부터 이어져 내려온 나스 대륙의 불균형.
바로 ‘대균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