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70
제 170화
59장. 대균열 – 2화
“헤이즈, 지금부터 이 균열 안으로 진입할 거야.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비정상의 연속일 거야. 당황하지 마.”
“폐하, 한 가지만 여쭤보고 싶어요. 여기는 어떻게 생기게 된 공간인지 알고 계시는 거예요?”
헤이즈의 질문은 제법 예리했다. 알다마다. 모르고 이곳에 왔을 리가 없지.
하지만 헤이즈에게 맵 버그니, 가비지 데이터가 모인 곳이니 하는 의 게임적인 지식을 말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적당한 비유를 찾았다.
“주신 라디우스 님께서 본의 아니게 만든 신의 실수랄까? 신도 결국은 완전무결한 존재는 아니라는 거지.”
“아……. 신의 실수! 그렇군요!”
헤이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에서도 대균열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됐다.
애초에 플레이어들이 전혀 올 일이 없는 망망대해의 한가운데에 만약을 위한 ‘백업’의 개념으로 만든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제법 높은 파도가 치는 데다가 오는 내내 구경할 거리가 하나도 없어 플레이어들이 관심을 가질 일도 없었다.
‘하지만 늘 플레이어들은 개발진의 머리 위에서 놀았지.’
침술 다이어트가 엉뚱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어 발견되었듯, 대균열도 그렇게 발견됐다.
레벨업 따위는 관심 없으니 바다 유랑이나 즐기자며, 배를 타고 다니던 플레이어가 우연히 대균열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호기심에 들어갔던 플레이어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애초에 대균열이 비정상적인 형태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보니, 내부의 급격한 변동으로 발생한 대미지를 버티지 못한 것이다.
‘딱 최소 조건을 달성할 시기를 기다렸는데, 이번에 케베눔 링을 얻으면서 목표를 달성했지.’
내가 그간 알면서 오지 못한 이유도 내부의 대미지 때문이었다.
계산상으로 내부에서 나와 동행자를 미친 듯이 공격해 올 폭풍으로부터 안전을 유지하려면…….
최소 2만 4천의 마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외부에서 가져다 쓰는 마력이 아닌 순수 마력으로 말이다.
“자, 이제 꽉 잡아. 대균열 안에 들어가면 그 안에서의 이동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어.”
“네! 네!”
헤이즈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따뜻했다.
나는 긴장하고 있는 듯한 헤이즈를 좀 더 끌어당겨 안아 주었다.
그리고 바로 퍼펙트 실드를 펼쳤다. 이제부터 이 실드를 유지하면서 내려가야 한다.
“와…….”
헤이즈가 반짝이는 퍼펙트 실드를 보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일반 실드와는 명확하게 구분되는 두꺼운 실드로 언뜻 보기에 반짝이는 큰 비눗방울처럼 보이기도 했다.
“간다.”
“네!”
이윽고 나와 헤이즈의 몸이 동시에 대균열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예상대로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우리를 반긴 것은 수많은 세계의 단면들이었다.
나와 헤이즈는 거스를 수 없는 내부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주변을 둘러싼 통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영화 속에서 종종 본 적이 있었던 ‘웜홀’을 보는 듯했다.
통로의 단면마다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가 보였다.
어떤 단면은 사람 없이 동식물만 번성한 밀림이, 또 다른 단면은 척박하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사막이 보였다.
그리고 흐릿흐릿하기는 했지만, 동양풍의 무복을 입고 있는 사람과 구조물의 모습도 보였다.
찰나였지만, 저것이 혹시 동방 대륙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잉! 시잉! 시키잉!
한편 연신 퍼펙트 실드의 역장을 할퀴는 외부의 충격이 소리로 가감 없이 들렸다.
6클래스 마법인 퍼펙트 실드였기 때문에 초당 160의 마력이 고정으로 소모되고 있었다.
이 안에서 최소 150초, 그러니까 2분 30초는 버텨야 한다.
만약 퍼펙트 실드의 역장을 거둔다면?
그 즉시 나와 헤이즈의 몸은 파쇄된 종이처럼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팔방으로 흩어질 것이다.
‘당신들의 희생을 잊지 않을게.’
나는 전생에 대균열 내부 탐험에 필요한 조건을 탐색하기 위해, 끝없이 목숨을 버려야 했던 플레이어들을 떠올리며 잠시 묵념을 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현생에서 내가 대균열에 오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폐하, 정말 신기해요……. 마치 신이 되어서 수많은 세상의 단편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정확한 비유야. 이 공간은 헤이즈, 네 말처럼 말로 쉽게 설명되지 않는 초월적인 뭔가가 있지.”
“…….”
계속 시선을 자극하는 이면 세계의 단면에 푹 빠진 헤이즈는 자신도 모르게 내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두 다리가 지면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 뜬 채로 계속 이동하고 있기에 그런 듯하기도 했다.
짤랑. 짤랑.
나는 품에서 꺼낸 금화 한 닢을 손가락 위에서 퉁퉁 튕겼다.
“일, 이, 사, 팔, 십육…….”
그리고 숫자를 세어 나가기 시작하자, 옆에 있던 헤이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2의 배수, 같은 건가요?”
“맞아. 심심하면 2의 21제곱까지 계산해 봐. 왜 계산해 둬야 하는지는 이따가 알려 줄게.”
“네! 일! 이! 사! 팔……!”
시킨다고 또 열심히 하는 헤이즈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우리는 그렇게 계속 이동했다.
* * *
그로부터 약 2분 후.
자레드와 헤이즈는 안전하게 대균열의 끝에 안착할 수 있었다.
끝없이 펼쳐져 있을 줄 알았던 통로의 끝에 닿으니, 걸어 다닐 수 있는 지면이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지면의 모습 역시 평범하지는 않았다.
정사각형 타일이 수없이 깔려 있었는데, 그 타일마다 이면 세계의 모습들이 투영되어 나타났다.
“마력은 넉넉하게 남았네.”
자레드는 2만 4천을 소모하고도 충분히 남아 있는 마력을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주변에는 몇 개의 방이 보였다.
대균열 안에 위치한 ‘버려진 공간’이다.
의 개발진이 만들다 중단했거나, 혹은 여러 가지 사유로 폐기한 공간들.
예전에 에서 와 본 적이 있던 공간이라 방의 대부분은 눈에 익었다.
다른 방은 자신에게 별로 쓸모가 없었기에, 자레드는 본래 목적지였던 ‘무한 수련의 방’으로 헤이즈와 함께 들어갔다.
쑤욱.
이내 자레드와 헤이즈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응?”
진입과 동시에 수많은 고블린과의 난전을 예상했던 헤이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에 보인 것은 1m를 겨우 넘기는 작은 몸에 가시가 엉성하게 박힌 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는 한 마리의 고블린뿐이었다.
헤이즈가 물었다.
“죽일까요?”
“아냐. 그냥 죽이면 안 돼.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거든. 잠시 기다려 봐.”
“네, 폐하.”
파아앗!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레드의 몸이 순식간에 고블린 앞으로 향했다.
“퀴에에엑!”
침입자를 확인한 고블린이 괴성을 내지르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D급 던전 정도에서나 나올 법한 낮은 레벨의 고블린이기에 피하는 것은 매우 쉬웠다.
자레드는 바로 고블린의 등 뒤로 이동한 뒤.
꽈악!
고블린의 양팔을 붙잡았다.
“키엑! 키에엑!”
손도 못 쓰고 자레드에게 양팔을 붙잡힌 고블린이 아등바등하며 비명을 질렀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위해 벌린 입을 따라, 걸쭉한 침이 연신 흘러나왔다.
바로 그때.
터업!
자레드가 미리 준비해 온 금화를 고블린의 입안에 밀어 넣었다.
그다음에 바로 고블린의 앞으로 돌아와서는 목젖에 닿은 금화를 손가락으로 힘껏 밀어 넣었다.
“꺼업!”
고블린이 몸부림쳤다.
딱딱한 금화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고 있는데,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할 터.
“먹어라, 먹어!”
자레드가 손가락을 더 깊숙하게 넣었다.
입안에서 정말 참을 수 없는 역겨운 입 냄새가 치밀어 올라왔지만, 꾹 참고 계속 금화를 밀었다.
최대 하나.
플레이어들이 알아낸 고블린의 금화 최대 섭취량이었다.
여기서 하나를 더 먹이려고 하면, 다음번에는 몸이 견디지 못하고 위장이 터져 죽는다.
그래서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꺽! 꺽! 꺼윽! 꾸울꺽!”
“됐다!”
이윽고 금화를 삼킨 고블린이 자신의 목과 배를 황망하게 어루만지며 뒤로 물러섰다.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먹은 것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었다.
“후!”
자레드가 아공간에서 적월검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망설일 것 없이 그대로 고블린을 세로로 내리쳐, 일격에 반으로 쪼개 버렸다.
쫘악!
반으로 갈라진 고블린의 몸.
일반적인 경우라면 전투는 여기서 종료되어야 맞지만…….
“어머나!”
뒤에 있던 헤이즈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반으로 나뉜 고블린의 양쪽 몸에서 새로운 부위가 자라나며, 순식간에 똑같은 두 마리의 고블린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 그럼 폐하께서 제게 말씀하신 것이 이렇게 분열되는 고블린의 몸에서 금화도 똑같이 늘어난다는 것이었나요?”
“맞아. 신의 실수가 만들어 낸, 참으로 특수한 신비지.”
자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죽을 때마다 고블린은 계속 분열한다.
본체의 모든 정보를 그대로 복사해서 분열하기에, 체내에 있는 금화도 함께 복사된다.
돈(금화) 복사 버그의 가능성!
‘무한 수련의 방’이 출시되지 못하고 폐기되어 대균열에 처박히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파이어 월.’
이어서 자레드가 다시 생성된 두 마리의 고블린 밑에 파이어 월의 불길을 깔았다.
“끼에엑.”
“쿠엑!”
마법 방어력이 형편없는 고블린이기에 불길이 솟구치자마자 바로 즉사했다.
순식간에 불에 탄 고깃덩어리 신세가 된 고블린의 숨은 바로 끊어졌고, 분열이 또 시작됐다.
슈우우욱.
순식간에 고블린은 넷이 됐다.
즉, 고블린이 보유하고 있는 금화의 수도 한 닢에서 네 닢으로 늘어났다.
“헤이즈, 아까 계산한 2의 21제곱이 얼마라고 했지? 말해 봐.”
“209만 7152이었어요!”
“고블린은 정확히 스물한 번째까지 분열이 될 거야. 그때까지는 이 넓은 공간에서 녀석들을 계속 불길로 쓸어 담든, 감전시켜 죽이든 해야 한다.”
“그다음에는요?”
“최종 분열이 끝난 다음에 죽으면 전부 한 줌의 재가 되어 산화할 거야. 그리고 현장에는 놈들이 드롭 한 금화가 남겠지.”
“이건 말도 안 돼요……!”
헤이즈가 놀라 소리쳤다.
계산대로면 획득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금화의 총합계는 209만 7152골드다.
‘약 2조 원.’
자레드가 전생의 가치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대장장이 모이즐이 원하는 초특급 공방을 두 개나 지어 줄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다.
‘에서의 복사 버그는 사용하면 영구 정지였지만…… 이 세계에서는 누가 나를 막겠어?’
신난 자레드의 손길이 연신 열화의 불길을 만들어 내며, 고블린을 집요하게 태우고 또 태웠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경험치가 최소 수치인 1밖에 오르지 않는다는 점.
앞으로 등장할 고블린을 모조리 없앤다고 해도, 레벨은 2에서 3 정도 오르는 것이 고작일 듯했다.
“헤이즈, 모조리 쓸어버리자!”
“네, 아낌없이 죽음의 치유술을 쓰겠어요!”
“쌓인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 보자고! 내 밑에서 일하면서 신경 많이 썼을 거 아냐?”
“맞아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 헉, 폐하! 죄송해요!”
“하하하, 아냐. 저 고블린이 나라고 생각하고, 아주 시원하게 힘껏 두들겨 패 봐.”
“정말요?”
“응.”
“다 죽어 버려, 이 나쁜 고블린들! 남김없이 다 쓸어주겠어!”
“…….”
헤이즈는 너무 솔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