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72
제 172화
60장. 소트라스(Sotras) – 1화
“……어떻게 된 일이지?”
실험에 푹 빠져 있던 소트라스가 이곳에서는 절대 느껴서는 안 될 이질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것은 분명 인간의 냄새나 기척……. 그런 것이었다.
눈앞에 나타난 것도 아니고 소리가 들린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느낄 수 있었다.
순수한 악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공간에 돼먹지 않은 가식적인 ‘선’의 존재들이 나타났다.
심지어 숫자도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휘이이익!”
소트라스가 소리를 냈다.
자신이 관심을 갖고 열심히 키우고 있는 마계 파리들을 불러내는 신호였다.
…….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당장에라도 왜앵, 하고 날아와야 할 녀석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내 아이들을 건드린 건가?”
소트라스의 양미간에 짙은 주름이 새겨졌다.
불청객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하게 시비를 걸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느낌이랄까. 말 없는 선전포고를 받은 느낌이었다.
“한데 도대체 어떻게?”
물음표가 찍혔다.
이곳은 자신의 공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계와 인간계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곳으로서 일종의 전초기지 같은 곳이었다.
[악신의 축복 아래 고통과 죽음으로 물들 인간계에서 살아남을 작물과 곤충을 연구하라.]이것이 마계 서열 101위인 자신에게 내린 마왕의 특명이었다.
101위.
다시 말해서 서열 외의 존재라는 뜻이지만, 마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믿음을 줬다.
소트라스는 그의 믿음에 부응함은 물론이고, 그럴듯한 성과를 내고 싶었다.
공격성을 대폭 높인 마계 파리나 최악의 환경에서도 잘 자라도록 만든 식물 소트리나스는 자신의 작품이었다.
지난 몇 년간의 연구가 결코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군. 인간을 대상으로 해 보고 싶은 실험도 있었는데.”
무표정했던 소트라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의 손길이 서랍에 한가득 쌓여 있는 주사기로 향했다.
다양한 독액은 물론이거니와 강제로 인체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약물들이 담긴 주사기였다.
이곳에서는 제대로 실험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인간이 둘이나 생겼으니 참으로 잘됐다.
“일단은 사랑하는 내 부하부터 보내 보실까?”
딸깍.
소트라스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옆에 놓여 있던 버튼을 꾹 눌렀다.
여기가 아닌 마계의 본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공들여 만들었던 어보미네이션을 이번 기회에 사용할 생각이었다.
죽지 않는 괴물.
지옥 마계의 수문장.
녀석을 상대로 두 인간이 어떻게 싸우는지, 어둠 속에서 즐겁게 관찰해 보고 싶었다.
쿵! 쿵! 쿵!
이내 육중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둥지를 빠져나온 어보미네이션이 침입자를 향해 출발했다.
* * *
그 시각.
“헤이즈, 저 녀석도 뽑아! 여기에 있는 녀석들, 전부 챙겨 가자!”
“네! 살짝 잡아당겨 보니까 뿌리까지 안전하게 뽑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와, 이런 환경에서 물을 머금고 자라는 구황작물이라니, 정말 대단해요!”
나와 헤이즈는 열심히 식물을 땅에서 뽑아서는 아공간에 던져 넣고 있었다.
아공간 내부는 진공 상태가 항시 유지되기 때문에 영구에 가깝게 식물을 보관할 수 있어서다.
녀석을 나스 대륙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만 해도, 대기근은 확실하게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질긴 생명력이라면, 나스 대륙의 어지간한 곳에서는 무조건 생존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선인장 이상으로 수분을 꽉 머금고 놓아주지 않는 것도 신기했다.
유사시 강이나 하천 등에서 담수를 얻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긴급으로 구할 수 있는 수분 보충 용으로도 안성맞춤이었다.
‘마계라고 해서 긴장했더니, 의외로 우리에게 도움이 될 요소들이 널려 있잖아?’
어떠한 이유로 대균열과 마계가 연결됐는지에 대한 답은 얻지 못했지만, 어쨌든 잘됐다 싶었다.
상황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이 식물들은 모조리 뽑아 갈 생각이었다.
기분 좋게도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을 따라 같은 식물들이 바람에 넘실대고 있었다.
한데 그때.
쉬이이이이이!
상공에서 갑자기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점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낙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점처럼 보였는데, 순식간에 육안으로 모습이 보일 정도로 커졌다.
“헤이즈! 위!”
“……어보미네이션이에요!”
나보다 헤이즈가 더 빨리 상대의 정체를 파악했다.
지난번 로스트 아일랜드에서 얻은 레클리스의 눈 덕분에 시력은 나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서로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재빠르게 현장을 벗어났다.
헤이즈도 성장하고 아티팩트를 얻는 과정에서 제법 민첩과 근력 스탯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렇기에 별도로 마법 따위를 쓰지 않고도 원위치를 이탈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과아아앙!
이윽고 굉음이 귀청을 찢을 것처럼 커지더니.
콰아아앙!
육중한 거구의 어보미네이션이 지면에 움푹 파인 구덩이를 만들어 내며 지상에 안착했다.
상공에서 수직 낙하한 것치고는 매우 안정적인 착지였다.
“빌어먹을.”
나타나자마자 바로 스탯 상태를 심안으로 스캔한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든 것은 녀석의 체력 스탯이었다.
[체력 : 98,113]다른 스탯은 일반 몬스터의 수준과 대동소이했지만, 체력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았다.
‘이 정도면 빼도 박도 못하는 성마 대전의 어보미네이션인데?’
전생의 기억을 되짚어 본 결과, 확실히 이 녀석은 의 성마 대전에서 등장하는 녀석이 맞았다.
일반 던전에서도 유사한 형태를 볼 수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체력 돼지는 아니니까.
“하아앗!”
나보다 앞서 헤이즈가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두툼한 어보미네이션의 살집에 죽음의 치유술을 전개하고, 그 위로 강력한 치유술을 퍼부었다.
“그르르르.”
쿠웅! 쿠웅!
하지만 녀석의 체력에는 아주 작은 스크래치만 나는 수준.
이런 식으로 공략하면 시간이 엄청나게 걸릴 듯했다.
그 와중에도 녀석의 체력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공격이다.”
에서의 경험대로라면 녀석을 공략하는 ‘신의 한 수’가 있기는 하지만 일단 유보.
이왕이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어보미네이션을 상대하고 싶었다.
지잉! 지잉! 지잉!
양손에 수인을 맺고, 트랜센던스 체인 라이트닝의 구체로 전류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마력 6천을 소모하는 일격.
녀석은 과연 얼마나 버텨 낼까?
빠지지직!
“쿠어어어어!”
고압의 전류가 몸을 강타하기가 무섭게 어보미네이션이 비명을 내질렀다.
체력이 깎이기는 했으나 전체의 1% 수준으로 낮았다.
애초에 기본 마법 방어력이 높은 데다가 덕지덕지 엉겨 붙은 두꺼운 외피가 부도체(不導體)의 역할을 해서 추가 감전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건 말도 안 되는…….”
헤이즈의 표정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맞는 말이었다.
마계의 어보미네이션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맷집과 체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후! 일단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 보는 데까지!”
한숨을 깊게 토해 낸 나는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본격적으로 마법을 쏟아부을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이왕이면 최후의 한 수는 쓰고 싶지 않았다.
제발 그 단계까지 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었다.
* * *
때때로 신은 인간의 간절한 바람을 완전히 무시하고, 그의 고통을 즐길 때도 있다고 했던가?
나는 거의 철의 장벽처럼 느껴지는 어보미네이션의 외피에 덧없이 마법을 쏟아부으면서, 이른바 ‘현자 타임’이 오는 것을 느꼈다.
나와 헤이즈가 어보미네이션의 공격에 당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놈의 느릿한 움직임을 눈뜨고 당해 줄 정도로 만만하지 않았다.
이따금씩 내뱉는 강산성의 독액이 위협적이기는 했지만, 그것도 사전에 준비 동작이 있어 빠르게 대응이 가능했다.
문제는 우리가 어보미네이션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듯, 녀석도 같은 마음이라는 것이었다.
이대로 마냥 장기전을 가기에는 부담이 컸다.
이곳은 나스 대륙이 아닌 마계의 어딘가로 보이는 위치.
그렇다면 이 공간의 주인 또는 관리자쯤 되는 마족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최하위, 혹은 서열 외 마족이라고 해도 마족은 마족이지.’
썩어도 준치라고 마족의 이름은 무시할 수 없다.
성마 대전에서의 마족은 무슨 동네북처럼 터지고 다니는 호구가 아니라, 하나하나가 대단한 실력과 자부심을 가진 녀석들이었다.
이 공간의 마족도 크게 다를 것이 없을 터였다.
“헤이즈.”
“네?”
“내가 보이지 않더라도 절대 당황하지 말고, 지금처럼 어보미네이션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공격해. 알겠지?”
“어디로 가시려고요?”
“위치도, 장소도, 이유도 묻지 마. 그저 지금의 임무에만 충실해!”
“……알겠어요!”
내 표정이 일순간 어두워지는 것을 보자, 헤이즈가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수단을 써야 할 것 같았다.
초월 마법을 계속 썼음에도 불구하고 체력이 빠지는 속도가 이 정도면, 정말 한세월 싸워야 한다.
“후!”
망설임을 털어 내고, 결심을 굳힌 나는 헤이스트를 이용해 빠르게 어보미네이션의 하단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거리를 두고 집요하게 마법 공격을 퍼붓던 내가 가까워지자.
“쿠오오옷!”
쿠웅!
어보미네이션이 괴성을 내지르며 뱃살로 나를 깔아뭉개려 했다.
눌리기만 해도 그 자리에서 압사다. 실드고 뭐고 필요 없이 완벽한 즉사인 것.
하지만 타이밍을 잘 맞춘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머리카락만 조금 잃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흐으으읍.”
심호흡을 한 뒤.
깔아뭉갠 엉덩이를 들어 올리고 있는…… 어보미네이션의 신체 한 부위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곳은 바로 항문(肛門)이었다.
파아앗!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전에 나는 온 힘을 다해서 몸을 날렸다.
동시에 그리스 마법을 이용해, 몸 전체를 둘러쌌다.
저 안으로 들어가려면 제법 미끌미끌해지지 않고선 뻑뻑해서(?) 진입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
혐오스러운 부위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하지만 이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임을 알기에.
나는 그 어떤 생각도 머릿속에 떠올리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쑤우우욱!
부드러운 마찰음과 함께 내 몸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외부 세계의 빛과 완벽하게 단절된 어보미네이션의 신체 탐험의 순간이었다.
* * *
안으로 들어온 나는 필사적으로 코어를 찾았다.
코어는 어보미네이션의 육체 전체를 구축하고 있는 중추.
수많은 시체와 뼛조각들이 뒤섞여 단단하게 굳어진 몸을 분해할 수 있는 트리거다.
“산소가 부족해.”
다만 내부에 가득한 유독가스와 함께 희박한 공기가 느껴졌다.
애초에 시체와 살점이 부글부글 썩고 있는 신체 내부가 아니던가?
좋은 향기가 나거나 맑은 공기가 있기를 기대했다면 그게 더 미친 생각이었을 것이다.
신장 14m에 달하는 거대 어보미네이션이기에 내부를 휘젓고 다니기 위해서는 몸의 어디든 붙잡아야 했다.
터업! 터업!
‘부드러워.’
내 예상은 확실히 맞았다.
강철을 엮어서 만든 듯한 단단한 외피와 달리, 녀석의 신체 내부는 연하디연한 순두부 같았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딱 그런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