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77
제 177화
62장. 모이즐 – 1화
반나절 정도가 지나고.
자레드와 아르케네스는 렌투스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울롱 왕국에 들어와 있었다.
사전에 아르케네스가 사전 작업을 착실히 해 둔 덕분에 진입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이윽고 모이즐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도시 ‘아시나’에 들어섰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수많은 대장장이가 모여 거대한 집촌을 이룬 곳으로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전생에 에서 본 적이 있던 자레드지만, 실제로 구현된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공방의 거리답네.”
“그렇죠? 그래서 모이즐 님의 위치를 수배하는 데 애를 먹었어요. 워낙 공방이 많은 데다가 내부 구조도 무척 복잡하더라고요.”
“고생했다, 아키.”
“고생은 뭘요! 사람 찾는 재미도 쏠쏠해서, 제가 직접 발 벗고 나서서 찾으러 다녔죠.”
정말 사람이 많았다.
울롱 왕국의 사람은 물론이고, 타국에서 온 사람들도 제법 보였다.
유능한 대장장이가 많은 곳이라 그런지, 고가의 무기나 방어구를 들고 오는 이들이 많았다.
“자! 무슨 고민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막툼 님의 공방으로 오십시오. 5년 연속 방문 고객 1위! 명성은 어디 안 갑니다!”
“아티팩트 수리는 누구? 앞뒤가 똑같은 대장장이, 카스카! 카스카 공방입니다!”
“방문 고객 순위에서 1, 2위를 다투는 것이 막툼과 카스카지?”
“네. 사실 뒤로 있는 대부분의 공방이 막툼과 카스카에게 들어온 의뢰를 하청(下請) 받고 있죠.”
“사실상 독점이나 다름없군.”
“거리에 있는 공방의 8할은 전부 막툼과 카스카의 영향권 안에 있을 거예요.”
“음. 돈이 돈을 벌고, 손님이 손님을 물어오지. 확실히 독점 체제를 제대로 구축해 두면, 후발 주자들이 들어오기가 쉽지 않아.”
“맞습니다.”
뜻하지 않게 자본주의의 시장 논리를 곱씹어 보게 됐다.
이런 구조 때문에 예전부터 자신의 공방을 우직하게 운영한 모이즐은 좀처럼 빛을 보지 못했다.
모이즐이 나스 대륙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성마 대전이 벌어진 이후다.
대륙 전역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쟁으로 수많은 대장장이가 희생되면서 뒤늦게 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간 것이다.
그제야 모이즐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들이 그에게 중임을 맡기기 시작했지만, 때는 너무 늦었고.
그래서 성마 대전은 양측이 일진일퇴를 반복하며,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지금의 이름값만 따져 본다면, 대장장이 막툼이나 카스카를 영입하려고 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둘의 한계는 명확했다.
지금의 모습이 그들이 성장한 최대치다.
현실에 안주하던 그들은 성마 대전 이후로도 모험을 전혀 시도하지 않았고, 그런 모습은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이즐은 달랐다.
특수 성향에서부터 압도적으로 두 대장장이와 차이가 난다. 잠재력은 거의 무한에 가깝다.
다만 딱 한 가지가 없다.
바로 명성.
이것이 없는 탓에 공방 거리에서 10년을 넘게 우직하게 일해 왔음에도 무명이었다.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몇몇 단골이 있기는 했지만 실상은…….
“쿠스파 공방에서는 검을 세 자루를 사면 한 자루는 공짜로 주던데! 모이즐, 우리도 이 정도 거래했으면 서비스는 좀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무가치한 선물은 대장장이의 이름을 먹칠할 뿐입니다. 앞으로도 서비스 같은 것은 일절 없을 테니, 다른 곳을 찾아보시지요.”
“에이! 또 왜 그래? 장난을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쓰나!”
“아까부터 가격이 비싸다느니, 인심이 나쁘다느니 하는 헛소리를 자꾸 하셔서 그렇습니다.”
“크흠……. 에이! 이거 무슨 파는 놈이 사는 놈보다 더 상전처럼 굴려고 하는지! 퉤! 더러워서 안 오고 말지! 비위 맞춰 주는 것도 이젠 질리네, 정말!”
“잘됐네요. 살펴 가십시오. 다신 보지 맙시다.”
이런 말다툼이 흔한 일상인 된 곳이 모이즐의 공방이었다.
모이즐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다.
대다수 사람이 모이즐을 서비스 정신이라곤 전혀 없는 구두쇠 대장장이라고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장장이 사이에서 출혈경쟁이 벌어지며, 무기 끼워 주기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3+1’이니 ‘2+1’이니 하는 행사를 걸고 있는 마당에 모이즐은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하물며 단가도 비쌌다.
분명 그가 제작한 무기들이 쓸 만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다른 비슷한 검 가격의 2배 이상이었다.
‘한결같네.’
잔뜩 기분 상한 표정으로 나오는 고객과 달리, 자레드는 즐겁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모이즐과 전혀 다른 점이 없어서였다.
성마 대전 이후의 모습이나, 7년 전의 모습이나 참으로 똑같았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르케네스가 말했다.
“장인의 생각은 역시 다른 걸까요? 폐하께서 예전부터 꼭 찾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분이잖아요.”
“맞아. 별종이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나쁘게 말하면…… 재수 없는?”
“정답이다.”
자레드는 모이즐에 대한 기억을 좀 더 떠올렸다.
혹시나 자신이 뭔가를 놓쳐, 그와의 만남에서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모이즐은 자기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강하지. 막툼과 카스카도 자기 기준으로는 멸시(蔑視)하는 대상이고.’
내가 곧 최고라는 마음가짐. 그것이 모이즐의 아이덴티티다.
‘누군가 터치하는 것도 싫어하고, 훈수를 두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면 의뢰고 뭐고 다 거부하지.’
모이즐을 믿고 의뢰를 맡겼으면, 이견을 달지 말아야 한다.
전생에 모이즐을 상대해 본 플레이어들이 세운 절대 규칙이었다.
왕국의 신하로 들였다 해서, 그를 이리저리 조종하려 든다면……. 아마 홀연히 떠나 버릴 것이다.
‘타협은 없음. 그 대신 자신이 추진한 일에 대한 실패는 확실하게 책임을 지는 대쪽 같은 성격.’
확실한 마이웨이.
이것이 ‘모이즐 사용 설명서’다.
“아키.”
“네?”
“가만히 서서 얼마나 버틸 수 있지?”
“음……. 여섯 시간 정도요?”
“이제부터 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할 작업이 있는데 말이야. 하루 이상 버틸 자신 없으면, 적당히 숙소 구해서 쉬고 있어.”
“네에?”
아르케네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하루를 버틸 일이라니?
“궁금하면 따라와 봐. 힘들면 언제든 얘기하고.”
“네, 폐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버텨 보겠습니다!”
그녀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자레드의 뒤를 따라나섰다.
이윽고 자레드는 설레는 마음으로 모이즐의 공방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모이즐 님, 말씀을 좀 나누고 싶습니다만.”
“바쁘오. 나중에 오시오.”
“그럼 언제 오면 되겠습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 왔을 때 안 바쁘면 얘기하는 거고, 아니면 헛걸음하는 게고.”
‘역시 모이즐이야.’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모이즐은 내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예상했던 일.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그를 응시했다.
“그러면 할 일이 끝나실 때까지 기다려도 되겠습니까?”
“그거야 손님 자유지. 하지만 없는 사람 취급을 할 거니까 그렇게 아시오.”
“알겠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옆에서 모이즐 님의 공정을 지켜보고 싶은데요. 괜찮을까요?”
“뭐, 업계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대로 하시오.”
깡! 깡! 깡!
시종일관 시선도 주지 않던 모이즐은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무두질을 시작했다.
공방에서는 계속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고, 모이즐은 연신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적당히 그에게 거리를 두고 선 채, 공정을 조용히 살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무두질 한 번에 제법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동작.
그것은 그저 정한 횟수를 채우기 위해 의미 없이 내려치는 것이 아닌, 혼을 담아서 내리치는 느낌이었다.
시간은 물 흐르듯 흘러갔다.
나는 흐트러짐 없이, 제자리에 선 채로 모이즐의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감탄이 절로 나왔다.
다른 대장장이와 달리 최소한의 무두질로 최대의 효율을 냈다.
내가 대장장이의 세계를 완벽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세로를 통해서 제법 배우고 들은 것이 있었다.
장담컨대 아세로도 모이즐을 보면 바로 고개를 숙일 만큼, 그에게는 남들과 다른 빼어난 실력이 있었다.
모든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심지어 오차도 없었다.
기계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규격화된 움직임이었고, 동시에 매우 정교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하찮아 보이는 녹슨 검이라고 해도, 혼신의 힘을 다해 새 옷을 입혔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
여섯 시간 경과.
꾸벅꾸벅.
지친 아키가 졸기 시작했다.
그녀의 피로는 당연하다.
여섯 시간 내내 움직이지 않고, 붉은빛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공방의 현장을 지켜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아키를 살짝 깨워서는 눈짓으로 자러 가라는 시그널을 보냈다.
도저히 밀려오는 잠을 참을 수 없었는지 아키는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자리를 떴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를 떠 버려서 웃음이 날 뻔했지만, 이를 꽉 물고 참았다.
아주 잠깐.
모이즐의 눈길이 내게로 살짝 향하는 것이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은 몸서리쳐지는 지겨움이 아닌 기쁜 즐거움이다.’
나는 에서 모이즐이 남겼던 명언을 떠올렸다.
아티팩트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며칠을 꼬박 밤을 새워 가며 세공을 하고.
수만 번의 무두질을 하고.
쉴 새 없이 마정석 가루를 부어 가며 연마를 반복하고.
그에게는 일상과도 같았던 일이 바로 기다림이었다.
나는 전생의 그가 에서 준 가르침을 현생에서 그대로 적용하고 있었다.
보여 주기 위한 쇼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그의 말이 지닌 의미를 깨닫고, 기다림을 기쁜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그의 손길이 닿은 무기나 방어구가 새 생명을 얻을 때마다, 나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마치 내가 새로 태어난 것처럼 말이다!
우적우적. 쩝쩝.
어느덧 식사 시간이 되었는지, 모이즐이 허겁지겁 밥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게는 자지 않고, 먹지 않고,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고르자스의 목걸이가 있다.
엉덩이 무겁게 기다릴 준비는 진즉에 끝났다.
남은 것은 내 진심이 모이즐에게 가 닿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 * *
사흘의 시간이 지났다.
모이즐은 사흘이 지났음에도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이 자신을 지켜보는 남자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아예 정신이 나가 미친 건가?’
그는 사흘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고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심지어 모이즐이 공방 앞에 자리를 깔고 누워 잠을 잘 때도, 그는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무서웠다.
처음에는 스카우트니 뭐니 하는 생각으로 왔을 귀족가의 사람 정도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적당히 놀려 먹다가 돌아가게 만들 생각이었다.
십중팔구 한나절을 못 버티고 화를 낼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사이에 비바람이 불고, 심지어 장대비까지 쏟아졌지만, 그는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다.
결국 먼저 말문을 연 것은 모이즐이었다.
“당신, 왜 이리 내게 관심을 갖는 거요? 나는 그저 공방의 거리에 널리고 널린 이름 없는 대장장이일 뿐인데?”
떨림.
그것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이즐이 다른 사람에게서 느낀,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