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79
제 179화
63장. 블랙 드래곤 카스트로 – 1화
“스승님! 크리비아 왕국의 국왕이십니다.”
“크리비아……. 뭐? 왕이라고? 왕이 여기는 왜 온 것이고, 너는 왜 이런 놈을 데려온 것이냐?”
블랙 드래곤 카스트로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인간들의 세계에서나 왕이나 황제가 고귀한 존재지, 드래곤에게는 어차피 똑같은 인간이니까.
그사이, 카스트로는 빠르게 노인의 모습으로 폴리모프 했다.
어디를 뜯어보아도 절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없을 만큼,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이제 국왕 폐하와 뜻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저만을 위해서 정말 많은 것들을 준비해 주셨기에 감히 발걸음을 내디뎌 볼까 합니다.”
모이즐은 진지했다.
스승이라는 지칭에 맞게 깍듯하게 예절을 지켰고, 아울러 목소리도 살짝 떨리고 있었다.
자레드가 고개를 숙였다.
“고귀하신 드래곤을 뵙습니다. 크리비아 왕국의 국왕, 자레드라고 합니다.”
“소개는 필요 없다. 당장 이 결계 밖으로 나가라. 제자와 이야기가 마무리되기 전까지 불청객과는 대화하지 않겠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카스트로의 손끝이 가리킨 곳에는 과연 결계가 있었다.
붉은색의 선명한 결계로 보였는데, 뮤트 마법의 10배 이상은 되는 방음 기능이 탑재된 듯했다.
이윽고 자레드가 결계 밖으로 나오자, 안에서 무언가 큰 소리를 치는 카스트로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칭호 ‘드래곤의 숨결을 느낀 자’를 달성했습니다. 마력이 500 증가합니다.] [칭호 ‘인연의 시작’을 달성했습니다. 마력이 100 증가합니다.]‘역시 아낌없이 주는 드래곤!’
드래곤을 만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칭호가 두 개나 열리며, 마력 600이 공짜로 주어졌다.
절로 콧노래가 흥얼거려졌다.
‘그나저나 모이즐에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이렇게 있을 줄이야. 만약 스토리보드에서 모이즐이 블랙 드래곤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면, 플레이어들이 처음부터 눈에 불을 켜고 그를 찾았을 텐데.’
의 개발진들은 경우에 따라 중요한 인물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스토리를 숨기는 경우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클로이다.
개발진들은 이런 캐릭터들을 ‘시크릿 NPC’라고 불렀다.
나중에 추가될 대규모 패치 등에서 진가가 드러날 부분이 있기에 일부러 숨긴 것이다. 일종의 예측 스포일러 방지인 셈이다.
모이즐도 유사한 콘셉트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 말인즉슨 모이즐이 자신의 생각보다 잠재력이 더 뛰어난 신하일 수도 있다는 뜻이 됐다.
자레드는 모이즐과 함께 오는 길에 스캔해 두었던 그의 특수 성향을 다시 살폈다.
[특수 성향 : 아티팩트 미세 세공 SSS / 아티팩트 융합 세공 SS / 아티팩트 제작 S / 쾌속 무기 제작 S / 쾌속 방어구 제작 S / 금속 연구 S / 과민 S]‘마지막에 있는 과민 S만 빼면 정말 숨은 원석이 따로 없네. 그를 먼저 얻는 것은 심안이 있기에 내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겠지.’
뿌듯함에 미소가 지어졌다.
만약 이 심안이 자신에게 없었다면, 혹은 다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갔다면?
영원히 모이즐을 곁에 두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거나,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밑에서 다른 꿈을 키웠을 것이다.
‘모이즐이 아세로와 호흡이 잘 맞았으면 좋겠네.’
자레드는 아세로를 떠올렸다.
아세로는 계속 아세로 공방에서 열심히 제작에 몰두하는 중이다.
전쟁을 대비해서, 켈디아 무기 생산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었다.
연초만 해도 일부 검과 창 위주로만 켈디아 무기가 생산됐지만, 이제는 전방위적으로 확대됐다.
검, 창, 도끼, 화살촉, 기타 등등……. 모든 무기가 켈디아 광석으로 제작된 무기로 대체됐다.
켈디아 무기에 대해서는 아무리 많은 웃돈을 주어도 타국 판매를 일절 금했다.
그리고 켈디아 광석에 대한 모든 관련 정보는 엄격하게 입단속을 시켰다.
만약을 대비해서 아세로에게는 다수의 호위 기사와 마법사도 붙여 뒀다.
누군가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가장 노려지기 쉬운 대상이 아세로이기도 하니까.
‘1414년 1월 1일에 눈을 떴고, 이제 곧 1416년도 끝나. 내년이면 4년 차……. 시간 참 빠르군.’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지난 기억을 되짚어 보니 감개무량했다.
“음.”
대화의 양상을 보니, 모이즐이 연신 눈물을 쏟고 있었다.
카스트로는 그런 모이즐을 위로해 주었는데, 둘의 모습이 어지간한 사제지간 이상으로 보였다.
‘내게도 소중하고도 깊은 인연이 있듯이, 둘에게도 마찬가지인 것이겠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지는 느낌이었다.
특히나 인간과 드래곤의 사제 관계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이는 카스트로가 인간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뛰어넘지 못했다면, 절대 이뤄지지 않았을 관계일 테니까.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대화를 마치고 나온 모이즐이 자레드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승님께서 찾으십니다. 저는 결계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폐하.”
“모이즐, 그대는?”
“하하하. 이 대화에 평범한 인간은 끼지 말라고 하십니다. 죄송합니다. 어쩌다 보니 눈물을 펑펑 쏟았네요. 훌쩍.”
모이즐은 멋쩍은 표정으로 눈물을 닦아 내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자레드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드래곤 앞에서 이런 디테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첫 만남에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
* * *
“너와 나는 일면식도 없는 관계지. 그러니 거추장스러운 인사 따위는 집어치우고, 본론만 얘기하자. 마족을 어떻게 죽였지?”
대화의 시작은 강렬했다.
카스트로는 나를 보자마자 내가 마족 소트라스를 제거했다는 사실을 바로 읽어 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스트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자 그의 정보를 심안으로 살펴보려 했으나.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초월적 깨달음을 얻은 존재로 시스템의 영역 밖에 있습니다.]확실하게 막혀 있었다.
애초에 드래곤 자체가 나스 대륙에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종족이기도 했다.
학자들마다 주장하는 수치에 차이는 있으나, 가장 최대로 예측한 학자도 50마리를 넘기지 않았다.
전성시대를 열며 번성했던 드래곤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부터 천 년도 훨씬 더 된 옛날 얘기였다.
나는 대균열에 대한 얘기는 빼기로 했다.
카스트로가 드래곤이라는 초월적 존재이기는 하나, 그에게 모든 진실을 알리고 싶진 않아서다.
“이유 없이 열린 차원문을 통해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에 마족의 기지가 있었습니다.”
“전초기지 말이냐?”
“그렇습니다. 마족 하나와 그가 부리던 하수인 일부가 있었으니까요. 마계 본계였다면, 한 놈으로 끝나지 않았을 겁니다.”
“마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도, 너는 인간답지 않게 매우 차분하군. 지금의 인간들에게 마계와 마왕, 마족은 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오래된 얘기일 텐데.”
“이제는 현실이 됐죠.”
나는 덤덤히 말했다.
물론 카스트로가 제법 예리하게 정곡을 찌르기는 했다.
헤이즈도 소트라스를 공략하고 난 이후, 정말 마족이 맞느냐며 믿기지 않는다고 그랬으니까.
나만 부지런히 성마 대전을 대비할 준비를 하고 있을 뿐…… 대다수의 사람에게 마왕이니 마족이니 하는 것은 다른 세계의 얘기였다.
암흑 교단과 마도국의 최상위 세력은 철저히 함구하고 있을 테니, 사람들이 알게 될 리도 없고.
“마족을 죽이고 나면, 그 마족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마기가 죽인 대상자에게 덧씌워진다. 물론 어떤 부작용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고, 이놈이 나를 죽였다고 말하는 일종의 메시지 같은 것이지.”
“흔적을 남긴다는 겁니까?”
“그래. 그 마족의 이름을 들었거나, 혹시 알고 있느냐?”
“소트라스입니다.”
“그럼 훗날 다른 마족이 너를 보게 된다면, 낙인처럼 찍힌 소트라스의 흔적을 확인할 것이다.”
“…….”
처음 듣는 얘기였다.
디버프와 같은 형태로 걸리는 것이면 상태창에 표시되니 알았겠지만, 그것은 아닌 듯했다.
호기심이 생겼기에, 역으로 카스트로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일단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잠시 미루지. 너를 관찰하고 싶다. 네가 괜찮다면.”
“저를…… 관찰하신다고요?”
“인간이 마족을 상대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서열과 무관하게 마족이라는 존재 자체가 갖는 힘은 엄청나지. 한데 그런 마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하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이윽고 카스트로가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 대더니, 내 몸 전체를 스캔하듯이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마치 알몸이 되어 모든 것이 까발려지는 듯한 느낌.
유쾌하진 않았지만, 카스트로의 호기심을 뿌리치고 싶지 않았다.
나와 그 사이에 해야 할 이야기가 무척 많을 것 같았기에. 내 머릿속에도 질문이 한가득했다.
* * *
‘예상 범주에 있는 인간 마법사에게서 느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설령 대마법사라 불리는 자들도 이 녀석처럼 특이한 기운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카스트로는 자레드를 꼼꼼하게 하나하나 살펴볼수록 놀라고 또 놀랐다.
상당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그것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본인의 직감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대다수의 평범한 마법사에게서 1이라는 느낌을 받는다면, 자레드에게서 받은 느낌은 10이었다.
그래서 자레드에게 몇몇 마법의 시연을 요청했고, 그 결과는…….
‘변종? 변종이라는 말보다 인간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웅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건가?’
충격이었다.
자레드가 펼친 트랜센던스 마법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특이한 초월 마법이었다.
이것은 용언 마법의 변주 형태도 아니고, 인간이 독자적으로 만들어 낸 특수한 마법도 아니었다.
변종, 별종이라는 표현이 아닌 다른 말로 대체가 불가능한 마법이었다.
자레드는 자신을 6클래스 마법사라고 했지만, 카스트로가 판단한 위력은 8클래스를 상회했다.
특히 데큐플 트랜센던스 매직 미사일을 시전하며, 수천 개의 바람 구체를 보였을 때는 경악했다.
이것은 드래곤들도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기에!
“어떻게 이 힘을 얻었지?”
“던전에서 우연히 얻게 된 힘입니다.”
“우연히 얻은 것치고 정말 능숙하게 잘 다룬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숨기는 것이 많군, 자레드.”
“카스트로 님이 제게 마음을 여는 만큼, 저도 열 뿐입니다.”
자레드가 당당하게 말했다.
단지 드래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윽박질러 호기심을 채우려고 한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카스트로가 자신에게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만큼, 자레드도 전략적으로 카스트로에게서 호기심을 채우고 싶었다.
그래서 마계와 마족에 대한 질문을 하려던 바로 그때.
“천 년 전에 마족과 드래곤 사이에 벌어진 대전쟁이 있었다.”
카스트로가 운을 뗐다.
그리고 자레드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어 덧붙였다.
“그때도 지금의 네 모습처럼…… 자신만의 특별한 기운을 홀로 찬란하게 뿜어내던 영웅이 있었다.”
영웅.
그 말에 자레드의 귀가 솔깃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