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8
제 18화
7장. 제작의 맛 – 2화
나는 실드로 헤이즈를 보호하며 앞으로 나섰다.
바로 마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열 명 정도 되는 산적이 비탈길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잔챙이 무리구나.’
놈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저런 놈들은 주로 소규모로 움직이는 상단이나 나처럼 마차 하나에 호위 없이 움직이는 사람만을 노리는 잡배들이다.
시쳇말로 쫄보.
“영주님!”
“꼼짝 말고 안에 있어! 나오면 내 손에 죽는다!”
“아아앗! 네!”
나는 헤이즈의 헌신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 날이 바짝 오른 한 마디로 그녀를 돌려세웠다.
10명이면 싸워 볼 만하다.
내 계산으로는 해 볼 만한 숫자였다.
심안으로 스캔하니, 무리의 두목으로 보이는 녀석이 그나마 스탯과 레벨이 좀 됐다.
[토그 – Lv. 8] [근력 : 26][체력 : 25] [마력 : 0][지혜 : 2] [민첩 : 9][매력 : 3] [물리 방어력 : 3] [마법 방어력 : 0] [특수 성향 : 없음] [일반 성향 : 약탈, 여색] [아티팩트 ‘무디두스의 낡은 지팡이’를 보유 중입니다.]‘예전에 지하 광산에서 상대했던 체드보다도 못한 수준이군. 잠깐만! 근데 이 녀석이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어? 어떻게?’
나는 심안이 알려 준 정보에 깜짝 놀랐다.
무디두스의 낡은 지팡이는 겉으로 볼 때는 고목(古木)으로 만든 허술한 지팡이처럼 보이는 아티팩트다.
무디두스라는 늙은 마법사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아티팩트이기도 했다.
봉인이 해제되지 않은 상태라면 이 지팡이는 그저 나무 막대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마나를 불어넣어 순환시키기 시작하면, 이내 봉인이 풀리고 아티팩트의 진가가 발휘된다.
그러나 토그는 이것을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살펴보니 지팡이의 색깔도 봉인된 색깔 그대로였고, 녀석은 그것을 휘휘 저으며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나를 죽이려 했다는 것 외에도 놈을 꼭 처단해야 할 이유가 생겼네. 아티팩트는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도와줄까? 잠시 빙의하거나 아니면 내 모습을 보고 놀라게 만들어 줄 수도 있는데.
“됐어. 혼자로도 충분해.”
-멋있는 척하기는. 쳇.
이자벨라가 옆에서 거들려 했지만, 싸늘하게 쳐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굳이 힘을 빌리고 싶지 않았다.
파아앗!
헤이스트 마법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급발진하며, 언덕을 따라 빠르게 무리 사이로 향했다.
“쏴! 저놈을 죽여!”
“대, 대장! 마법사 아닙니까?”
“닥치고 쏴! 마법사라고 무적이냐? 그래 봤자 쥐뿔도 없는 견습 마법사 정도나 되겠지! 우리가 마법사 죽여 본 게 한두 번이냐?”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토그가 딱 그 짝이었다.
“하아아앗!”
헤이스트를 알면서도 무시한 건지, 아니면 못 알아보는 건지.
토그는 도끼를 쥔 채, 내게 맹렬히 돌진해 왔다.
‘스트랭스.’
나는 2클래스의 스트랭스 마법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근력을 폭발시켰다.
이유는 하나.
토그가 나를 노리고 펼친 공격이 다름 아닌 도끼 투척이었기 때문이다.
후웅! 후웅! 후웅!
힘을 꽤 실었는지, 제법 큰 소리를 내며 도끼가 빙글빙글 회전하며 날아들어 왔다.
‘보인다. 잘 보여.’
헤이스트로 향상된 신체 감각과 스트랭스로 끌어올린 근력이 시너지효과를 냈다.
터업!
나는 침착하게 날아드는 도끼를 그대로 움켜쥐었다.
딱 손잡이 부분이 내게로 향할 즈음에 낚아챈 것이다.
“음!”
토그의 힘이 실려 있었기에 잡는 순간 몸이 살짝 뒤로 밀렸다.
하지만 이내 무게중심을 잡고는 오히려 역으로 토그를 향해 도끼를 날렸다.
“헉?”
그 순간에도 나는 헤이스트로 토그에게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에, 놈과의 거리는 불과 1초 전에 비해 절반으로 가까워져 있었다.
그리고.
푸우욱!
“크아아악!”
내가 날린 도끼가 토그의 어깨에 그대로 박혔다.
순간 피분수가 튀었고, 어깨의 상처가 반쯤 벌어졌을 정도로 강력한 한 방이었다.
“히이익!”
토그가 당황해서 기이한 소리를 토해 내는 찰나, 이미 나는 녀석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내가 견습 마법사라고?”
“제, 제길! 얼마 전에 눈먼 머저리 같은 2클래스 마법사도 잡아 죽였었는데!”
그 와중에도 토그는 반성은커녕 철 지난 무용담을 늘어놨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날 죽이려 했으니, 응당 대가를 치러야 할 뿐이다.
“마침 아티팩트가 없어 허전했는데, 네 것이나 털어 가야겠다.”
푸욱!
“크아아악! 내, 내 눈!”
나는 미련 없이 토그의 양쪽 눈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바로 얼굴을 향해 양손을 모아 겨눈 뒤, 코앞에서 매직 미사일 마법을 시전했다.
매직 미사일은 원거리에서는 짤짤이, 그러니까 견제의 용도 정도로 쓰이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사용하면 예전에 글라가스의 두 다리를 부러뜨렸던 것처럼, 충분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우드드드득!
아니나 다를까, 가감 없이 얼굴로 매직 미사일을 받아 낸 토그의 얼굴에서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억.”
이내 토그가 코와 입, 귓구멍으로 피를 쏟아 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절명한 것이다.
나는 쓰러진 녀석의 시체 옆에서 잽싸게 무디두스의 낡은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그냥 눈으로 볼 때는 평범한 지팡이. 하지만 심안 스킬을 이용해 정보를 훑자, 전혀 다른 형태의 아티팩트 정보가 표시됐다.
[무디두스의 낡은 지팡이] [분류 등급 : 2성] [옵션 1 : 마력 100 증가] [옵션 2 : 마법사 무디두스의 기도 – 마력을 모두 소진할 경우, 기도를 이용해 마력을 100% 회복할 수 있습니다. 1일 1회에 한정하여 기도 능력 사용 가능]‘좋아.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정말 횡재했네!’
마력 100은 레벨로 따지면 20을 올려야 찍을 수 있는 스탯.
그 과정을 생략하고 아티팩트 하나로 끝냈으니, 큰 횡재였다.
지팡이의 등급은 2성이었다.
의 아티팩트는 총 11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1성에서 10성까지, 그리고 초월급이다.
그중에서 2성 아티팩트면 아주 대단한 것은 아니나, 그래도 옵션이 나름 쓸모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수준이었다.
사실 1성이어도 쓰임새는 있다. 애초에 아티팩트라는 것 자체가 귀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메시지가 나왔다.
퀘스트 안내였는데,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자동으로 활성화되는 퀘스트였다.
[퀘스트 ‘산적 토벌’이 발동되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남은 산적 01 / 10] [퀘스트 완료 시, 칭호 ‘최초의 산적 토벌’을 획득합니다. 매력 10이 영구히 증가합니다.]‘시기적절하게 퀘스트가 잘 나왔네. 매력은 영주에 대한 평균적인 호감도와 같은 거니까 무조건 올려 두는 게 좋지!’
산적도 토벌하고, 매력도 올리고. 일석이조의 퀘스트가 발생했는데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가자!”
나는 거침없이 산적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이후.
정확히 1분이 지났다.
산적 아홉을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끄아아아!”
“으아아!”
“크아아아!”
토그라는 소두목이 이끌었던 산적단의 작은 산채는 나에 의해 완전히 박살 났다.
깨알같이 레벨이 올라 5레벨이 된 것은 덤이었고, 칭호 획득으로 매력 스탯 10도 영구히 얻을 수 있었다. 꿩 먹고 알 먹고였다.
* * *
같은 시각.
토그의 산채에 있는 뒷간 옆에 조악하게 만들어진 임시 감옥에서는 한 남자가 밖의 상황을 겁에 질린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살짝 벌어진 문틈을 통해 보인 것은 평범한 옷차림을 한 남자에게 도륙당하고 있는 토그 패거리의 광경이었다.
마법에 대해서는 어깨너머로 제법 주워듣고 본 것이 있는 그였기에 남자가 사용하는 마법이 무엇인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헤이스트, 매직 미사일, 패럴라이즈 등등. 특히 마비 마법 패럴라이즈는 4클래스 마법이었다.
‘어떻게 4클래스 마법사가 여기에 온 거지? 날 구하러 온 건가? 그럴 리는 없는데…….’
남자, 아르케네스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토그 일당에 붙잡혀 자신이 갖고 있던 재산을 모두 털리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던 그였다.
크리비아 영지에서 한창 크리비아 마정석이 유행이라고 해서, 그것을 구할 생각으로 교환할 물건을 가지고 오다가 기습을 당해 몽땅 털리고 말았던 것이다.
소규모 상단이긴 했지만 그래도 제법 호위대가 있었다.
하지만 막상 산적이 나타나자 호위대는 모두 내빼 버렸다. 호위 계약까지 어기면서!
싼 맛에 이름 없는 곳과 계약했던 것이 실수였다.
덕분에 아르케네스는 가진 물건을 모두 토그에게 빼앗겨 버렸고, 빈털터리가 됐다.
그나마 빌고 빌어서 감옥에 갇힌 채로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던 상태였다.
“하아, 살아 나간다고 해도 꿈도 희망도 없는데 뭘 해야 하나.”
살려 달라고 소리치려 했는데, 생각해 보니 앞이 깜깜했다.
빼앗긴 물건은 이미 토그 일당이 모두 팔아서 술과 고기, 그리고 여자를 끼고 노는 데 썼다.
돌려받을 가능성이 없다.
5년을 꼬박 모은 자본으로 야심 차게 시작한 상인으로서의 첫 발걸음이 무참히 박살 났다.
그 상실감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백 번이나 하곤 했었다.
“그래도…… 일단은 살자. 살아 있으면 뭐라도 할 수 있겠지.”
마음을 다스린 아르케네스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토해 냈다.
그래도 여기서 힘껏 소리를 지르면, 밖에 있는 저 마법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은 살아야 한다.
지금은 그것밖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살려 주세요! 여기에요, 여기! 제발 살려 주세요! 사람이 여기 갇혀 있어요!”
아르케네스가 젖 먹던 힘을 다해 소리쳤다.
* * *
산채 안에서 들려온 살려 달라는 소리에 나는 죽은 토그의 몸에서 열쇠를 찾아서는 문을 열었다.
끼이익!
“감사합니다! 구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러자 한 남자가 초췌해진 얼굴로 달려 나와, 와락 내 품에 안겼다.
생각지도 않았던 포옹이라 당황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인명 하나를 구했으니 다행이었다.
애석하게도 토그의 산채에서는 쓸 만한 것을 구할 수 없었다.
놈을 죽여 레벨업을 하고, 매력 10을 올리는 퀘스트를 완수했다는 것에 만족해야겠지 싶었다.
사실 무디두스의 지팡이라는 아티팩트를 얻은 것만으로도 대만족이기는 했다.
그냥 이곳을 지나쳤다면, 영영 아티팩트를 얻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이대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아아.”
내 품에 안겨 있던 남자는 서서히 뒤로 물러서며, 내게 직각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홀로 갇혀 있었던 것을 보면 사연이 있는 사람이겠지 싶었다.
그래서 귀족일지, 평민일지, 혹은 군인일지 싶은 궁금함에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한데 바로 그때.
‘설마 아르케네스?’
내 기억 속에 있는 인물들 중 하나와 얼굴을 쏙 빼닮은 모습이 눈앞에 있었다.
아르케네스.
의 메인 스토리 시작 이후, 3년째가 되는 시점에 나스 대륙 동부를 평정한 최대 군상으로 등장하는 네임드다.
뛰어난 예측 능력과 유행 분석을 바탕으로 미리 트렌드를 선도하고 유행품을 싹쓸이하는 인물.
성마 대전의 격전지였던 나스 대륙 동부는 수많은 전략 물자와 무기를 필요로 했다.
아르케네스는 바로 그곳, 동부 지방에서 엄청난 부를 얻었다.
그 결과, 천문학적으로 번 돈을 이용해 왕국 하나를 샀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을 매수했고, 그들로 하여금 쿠데타를 일으키게 만들어서 자신을 왕으로 옹립하게 했던 것이다.
워낙에 국왕의 폭정으로 악명이 높았던 왕국이었기에 체제 전복은 쉽게 이뤄 낼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평민 출신 상인의 인생 대역전 스토리라 볼 수 있었으나…….
그는 마왕군이 보낸 암살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엔딩 자체는 새드 엔딩이었던 셈이다.
어쨌든 아르케네스는 상재가 탁월한 네임드였다.
다만 지금 시점은 서른다섯의 그가 등장하기 15년 전이니, 나이는 정확히 스물일 터.
그래서 내가 아르케네스를 바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얼굴의 나이보다 훨씬 어렸으니까.
‘여기서 상단 유망주까지 손에 넣는다면, 정말 최고의 기회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내 예상이 틀릴 수도 있는 만큼, 심안으로 그의 스탯을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르케네스 – Lv. 10] [근력 : 9][체력 : 11] [마력 : 0][지혜 : 25] [민첩 : 3][매력 : 25] [물리 방어력 : 0] [마법 방어력 : 0] [특수 성향 : 유행 예측 S / 흥정 S / 예리한 직감 A] [일반 성향 : 좌절, 죽음] [*경고 : 상실로 인한 좌절감과 우울감이 계속되고 있어, 감정 기복이 매우 심한 상태입니다.]‘내가 아는 아르케네스가 맞아. 와, 이 시기에 아르케네스가 우리 영지 근처에 있었단 말이야? 동부 최대의 군상으로 성장하는 녀석이 도대체 북쪽의 한지에는 무슨 일로 왔던 걸까?’
모든 유저들이 아르케네스의 과거를 궁금해했다.
스토리 보드에도 아르케네스의 등장 배경이 뚜렷하게 알려지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현생에서 깨어난 뒤 많은 상단 유망주를 떠올렸지만, 아르케네스는 논외로 뒀었다.
그가 어딨는지 통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행운의 여신이 내게 미소를 짓는 걸까? 이렇게 또 하나의 인연이 나와 연결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