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84
제 184화
64장. 나스 대미궁 – 2화
자레드와 클로이가 무언의 시선을 주고받는 사이.
휘리리릭!
몇 개의 단도가 두 사람을 노리고 빠르게 날아들었다.
평범한 사람 같았으면, 진즉에 당황해서 몸을 숙이든 비명을 지르든 했겠지만.
클로이는 자레드를 믿었고, 자레드 역시 준비가 되어 있었다.
까앙! 까앙! 까앙!
두껍게 펼쳐진 바람의 장벽은 쉽게 단도를 막아 냈다.
제법 위력적인 비도술이었지만, 그뿐이었다. 자레드의 장벽을 뚫고 들어올 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쉽게 일이 풀린다 싶었어. 그렇지?”
“그러게요.”
여유롭게 웃어 보이는 자레드의 말에 클로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스 대미궁이 이런 질 나쁜 녀석들이 많은, 악명 높은 곳이라는 얘기는 들었다.
하지만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이 시간에 대범하게 활동하는 놈이 있을까 싶었는데……. 있었다.
“클클클.”
“오호! 인간 남자에 엘프 여자? 너, 능력 좋은 놈이구나? 엘프를 끼고 다닌다고?”
“저 엘프 얼굴 반반한 것 좀 봐라! 예쁘기는 또 엄청 예쁘네!”
“캬……. 저런 엘프를 아내로 삼았어야 되는 건데.”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헌터가 내뱉는 말은 무척 저질스러웠다.
수는 열하나.
결코 적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니, 희미하기는 하지만 여기저기 핏자국들이 보였다.
이곳이 녀석들의 주 활동 무대인 듯싶었다. 자리를 잡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공격하는 방식.
다만 매번 기습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상대의 수를 봐 가면서 나오는 것 같았다.
즉, 전형적인 비겁한 놈의 조건을 모조리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자레드가 심안으로 11명의 ‘도적’들의 스탯을 훑었다.
파악은 이미 끝났다.
지나가는 헌터를 노려서 쏠쏠한 재미를 봤는지, 다들 괜찮은 아티팩트도 하나씩 끼고 있었다.
“클로이.”
“네.”
“네가 갈래? 내가 갈까?”
자레드가 간결한 양자택일의 선택지를 클로이에게 주었다.
그 말은 곧 자레드 혼자서 충분히 처리할 계산이 섰다는 뜻이다.
클로이의 계산도 같았다.
보통의 암살자는 첫 번째 공격의 수위와 실력을 보면, 전투 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녀의 계산으로는 두 놈 정도만 빼면, 나머지는 잔챙이들이었다. 머릿수 채우는 용도라는 뜻이다.
‘그간 달라진 모습을 폐하에게 보여 주고 싶어.’
이것이 클로이의 속마음이었다.
포르미도의 지도 아래 맹훈련을 거듭하는 동안, 클로이는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자벨은 드레자 주술단의 단주로서 카리스마를 확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특히 어린 레나와 미아의 성장이 눈부셨는데, 아직 10대 초중반도 지나지 않은 둘을 생각하면 정말 급성장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헤이즈의 경지도 어느덧 디바인 파이브. 절대 가벼이 볼 수 없는 치유사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뭔가 정체된 느낌이었다.
이렇다 할 실전을 치르지 못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근데 마침 좋은 측정 도구(?)가 나타난 것이다. 자신의 성취도 측정도 할 겸, 자레드에게 실력 어필도 확실히 하고 싶었다.
어느 던전을 가거나, 어떤 곳을 가게 될 때! 자신을 파트너로 맨 처음 생각해 주었으면 했다.
곁에 없으면 빈자리가 느껴지는 것처럼. 딱 그런……. 허전한 느낌이 들게 하는 사람 말이다.
“제가 갈게요.”
“그럴 줄 알았어.”
클로이의 대답에 자레드가 씨익 웃으며 품속에 있던 멸살의 단검을 던져 주었다.
동시에 몇 개의 수인이 빠르게 맺히고, 그녀에게 들어올 수 있는 모든 버프 마법이 주입됐다.
“기다리고 있을게.”
“네. 맡겨 주세요.”
자레드는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클로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오오! 엘프가 오고 있어! 남자 놈이 죽기 싫으니까, 여자 친구를 대신 보낸 모양이야!”
“누가 먼저 저X를 잡을래? 잡는 사람이 임자로 하지?”
“나! 내가 엘프의 맛을 먼저 보도록 하지!”
앞으로 벌어지게 될 일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도적들은 더럽게 아랫도리를 흔들거리며, 클로이를 향해 접근해 오기 시작했다.
겨우 작은 단검 하나만 들고 서 있는 가녀린 엘프 여자.
이견의 여지 없이 모두가 좋은 먹잇감이라고 생각했다.
“으랏샤!”
드디어 도적 중 민머리의 남자 하나가 장검 하나를 빼 들었다.
한데 바로 그때.
쉬이이익!
“응?”
민머리는 클로이의 인형(人形)이 흩어지는 듯하더니, 어느새 등 뒤에서 느껴진 싸늘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 보았다.
다음 순간.
푸욱! 스르륵!
“억.”
이마 한가운데를 클로이의 단검이 가볍게 꿰뚫고 들어갔다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당사자도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주르르륵!
이윽고 뚫린 이마에서 피를 철철 쏟아 내며, 민머리가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즉사한 것이다.
“뭐, 뭐야!”
“어디 갔어?”
“뒤! 골른! 네 뒤라고!”
“뭐? 커헉!”
이번에 클로이가 노린 것은 골른이라는 도적의 경동맥이었다.
예리한 단검이 경동맥을 스치고 지나가자, 이내 분수처럼 피가 터지며 골른이 옆으로 무너졌다.
“…….”
도적들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느낌이라고 할까?
이 정도면 대륙의 네임드라 불리는 어쌔신의 이름을 언급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클로이는 무척 빨랐다.
하물며 그런 클로이를 곁에 두고 있는 저 마법사 – 자레드 – 는……?
“도망쳐! 도망치자!”
“으아아아아!”
오합지졸들이 전의를 상실하기까지는 생각보다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클로이가 두 도적을 제거해 버리자, 그들은 그만 싸울 의지를 잃고 말았다.
하지만 도주도 여의치 않았다.
“우아아악!”
“어? 어어? 으아아아!”
도망치는 도적을 인형 뽑기를 하듯, 텔레키네시스로 쏙쏙 뽑아내는 자레드의 마법 때문이었다.
도적들은 한참을 멀리 도망갔다가도 염동력에 이끌려 오며 다시 원위치로 떨어졌다.
당연히 놈들은 클로이의 제물이 됐다.
죽기를 각오하고 검이든 무엇이든 휘두르며 싸워 봤지만, 죽는다는 결론에 변함은 없었다.
단지 일찍 저승으로 가느냐, 좀 더 이승의 공기를 맡아 보고 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5분 후.
“……후.”
상황을 모두 정리한 클로이에게 필요한 것은 딱 한 번의 심호흡이면 충분했다.
* * *
죽은 놈들에게서 아티팩트를 남김없이 챙긴 우리는 다시 샛길을 따라 미궁의 입구로 향했다.
전투에서 활약한 클로이의 동의 아래, 놈들에게서 얻은 아티팩트는 동료들에게 분배하기로 했다.
민첩 스탯에 도움이 될 아티팩트 둘은 클로이가 착용했고, 나머지는 전부 나눠 주기로 한 것이다.
제법 다양한 헌터들을 기습해서 쏠쏠히 챙겼었는지, 획득한 아티팩트 스탯이 다양했다.
신성력 관련 아티팩트도 제법 있었는데, 클로이는 꼭 그것을 헤이즈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살뜰히 챙기는 클로이의 모습이 참 고마웠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함께 던전을 공략하고 움직이며 그녀들만의 신뢰를 단단히 쌓아 올린 것 같아 너무 보기 좋았다.
“클로이, 정말 많이 발전했구나. 포르미도 님을 만나기 전이었던 그때와 지금이 크게 달라.”
“정말인가요?”
“그때 클로이의 전투력을 1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3 이상이랄까? 빈말이 아니라, 동료로서 냉정하게 평가한 내용이야.”
“세 배나 발전했다니……. 놀랍네요.”
“내가 네 움직임을 예측하지 못했다면, 저 도적놈들을 어떻게 죽였는지 구경도 못 했을 거다.”
나는 등 뒤 비탈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시체들을 가리켰다.
다들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죽은 녀석들뿐이었다.
아마 그중에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를 녀석도 꽤 있을 것이다.
“폐하.”
“응?”
“혹시 다음번의 전쟁이 있다면 그때는 꼭 참여하고 싶어요.”
“하지만 클로이.”
“알아요. 그레이 엘프라서 외교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거. 그래서 위장을 하고 참가하려고 해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라면, 문제 될 것은 없겠죠.”
“인간들끼리의 전쟁에 꼭 참여해야 될 이유가 있어?”
클로이의 말에 나는 냉정한 질문으로 반문했다.
클로이가 전쟁광도 아니고, 그레이 엘프가 특정 인간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폐하의 곁에 더 오래 있고 싶으니까요.”
“응?”
클로이의 대답을 듣고, 바로 뜻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제가 가진 능력이 폐하에게 보탬이 되려면, 그만한 가치를 증명해야 하니까요. 단지 저를 옆에만 두고 싶은 건가요? 장식품처럼?”
클로이의 말이 예리하게 정곡을 찔렀다.
맞는 말이었다.
그간 그레이 엘프가 괜한 분쟁에 휘말리는 일을 막고자 조심했지만, 클로이가 이에 대해 위장이라는 좋은 대책을 꺼냈다.
“아냐, 네 힘은 내게 필요해.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내게 소중한 인재지.”
“그럼 스스로 빛을 내어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폐하에게 증명하고 싶어요. 제 가치를.”
“클로이…….”
“지금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 폐하라는 존재를 빼면, 제겐 어느 것도 남지 않으니까요.”
클로이가 나를 지그시 쳐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것은 오랫동안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었던 속 깊은 얘기를 하는, 그런 진지한 눈빛이었다.
그래서일까.
클로이가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클로이라는 존재가 당신, 폐하에게 각인될 수 있도록 뛰어놀게 해 줘요. 정말, 자신 있어요.”
나는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의 의지를 충분히 느꼈기에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 * *
나스 대미궁 지하 1층의 진입은 다른 헌터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시간에 이뤄졌다.
오늘 날짜, 차원문 색깔, 그리고 원하는 미궁의 타입이 정리된 내용이 지도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장 난이도가 낮은 A타입의 미궁만 골라서 입장할 생각이었고, 그것에 알맞은 차원문의 색깔을 골랐다.
1분에 한 번 차원문의 색이 바뀌는데, 이에 맞춰 A타입 미궁으로 들어갈 기회를 잡은 것이다.
다른 헌터들에게는 내가 가진 ‘트리스티스 아일랜드 지도’ 같은 답안지가 없다.
그러니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차원문의 색깔과 미궁 타입을, 오늘의 날짜라는 3박자로 맞추는 게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제는 붉은 문이 A타입 미궁으로 연결하는 문이었다고 해도, 오늘은 다를 수 있어서다.
그리고 일단 진입하게 되면, 1층을 공략 완료해야 나올 수 있다. 일방통행인 셈이다.
“클로이, 달리자!”
“네.”
나는 미궁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클로이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꼼수 실행을 위해서다.
‘1층에서 10층까지 단번에 뛰어넘는 꼼수가 있지!’
지름길을 알지 못했다면, 당연히 미궁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대미궁의 숨결] [60초 동안 대미궁의 모든 독성 및 물리적, 마법적 타격에 대해 면역입니다.]이윽고 나와 클로이에게 버프가 걸렸다.
대미궁의 숨결.
누군가에게는 그저 내부 분위기를 파악할 1분의 여유를 주는 보잘것없는 버프지만.
내게는 단숨에 10층으로 뛰어넘을 골든타임을 확실하게 지켜줄 소중한 버프였다.
오늘도 난, 그렇게 버그와 꼼수로 꿀을 빨려고 한다! 늘 그랬듯, 새삼스러울 것 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