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87
제 187화
65장. 타천사 가즈넬라 – 1화
“드디어 25층이군. 여기까지 며칠이 걸렸지?”
“들어온 시점부터 정확히 닷새 걸렸어요. 모래시계로 확인하고 있었으니까요.”
“닷새……. 이틀 내로 여기를 공략하면, 클로이 네게 말했던 일주일 공략의 약속은 지키는 거네?”
“네. 그렇겠죠.”
감격스러운 25층 진입이었다.
AZAN. NOVA. SSUN. GUU.
이 영어를 머릿속에 꼬박 외워 뒀던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던 여정이었다.
크고 작은 위기가 제법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잘 버티면서 여기까지 왔다.
아마 보스 몬스터를 직접 공략하는 ‘정공법’이었다면, 우리 여정은 15층 정도에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돌발적인 변수는 있어도 상대적으로 약한 키 몬스터를 공략한 덕분에 비교적 수월했다.
키 몬스터에게서 얻은 보상과 경험치를 제외하고, 공략자 칭호만으로 얻은 특전이 엄청났다.
근력, 지혜, 마방, 물방에서 각각 240의 상승.
이는 레벨로 환산하여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아티팩트로 따지면 최소 9성급 이상 아티팩트 하나를 얻은 것과 같은 효과였다.
특히나 지혜, 마방, 물방은 분배 스탯 1이 아니라 5를 투자해야 1이 오르는 구조가 아니던가?
희소성이 높은 스탯이기에 240이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큰 변화임이 틀림없었다.
“하아.”
“좀 쉬어. 체력, 마력 할 것 없이 완전히 회복한 상태로 가자.”
“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클로이가 편평한 바위 위에 드러누워 휴식을 취했다.
확실히 강행군이기는 했다.
나도 클로이도 공략에 푹 빠져 있다 보니, 정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던 것이다.
중간중간 내가 멈추려던 것을 오히려 클로이가 채찍질하며 앞서나갔다.
물 만난 고기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싶었는데, 딱 클로이를 두고 하는 말인 듯했다.
다른 층계에 비해 25층은 상대적으로 쌀쌀한 날씨였기에, 나는 클로이가 잠든 바위 주변에 모닥불을 충분히 피워 주었다.
클로이는 바위에 눕자마자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아이처럼 몸을 둥글게 만 클로이는 한 손에는 스텔라드 단검을 움켜쥔 채, 깊은 잠에 빠졌다.
클로이가 잠든 사이.
나는 주변에 꼼꼼하게 알람 마법진을 쭉 깔아 놓았다.
어느 경로로 오더라도 – 심지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더라도 – 침입자를 감지할 수 있는 알람 마법진이었다.
대미궁 내부에서는 층계를 뛰어넘는 텔레포트는 안 되지만, 동일한 층계에서의 텔레포트는 된다.
그래서 클로이가 자는 동안 주변 경계를 위한 알람 마법진만 확실하게 설치해 두고.
내가 25층에 온 목적 중 하나인 옥새를 찾을 생각이었다.
정식 명칭 ‘신의 옥새(玉璽).’
과거 나스 대륙에 통일 대제국을 건설했던 어스(Earth) 제국의 황제 베네타리오 7세가 만든 국새다.
신의 옥새라고 불리는 이유는 주신 라디우스에게서 직접 축성(祝聖)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서다.
신묘한 힘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옥새를 손에 넣으면 얻게 되는 칭호가 ‘황금 칭호’라는 점이다.
롱 리브 더 킹의 칭호 덕분에 우리 크리비아 왕국에 1년의 황금기가 보장이 되지 않았던가?
황금 칭호는 그 정도로 파급력이 엄청난 칭호다.
게다가 옥새를 획득하는 군왕에게는 황제로서의 정통성을 확실하게 부여하는 물건이기도 했다.
‘그런 옥새가 지금은 어느 이름 없는 백골의 시체와 함께 땅에 묻혀 있으니…….’
나는 플라이 마법으로 25층 내부를 꼼꼼히 뒤지며, 옥새의 주인을 찾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베네라티오 7세의 특명에 따라 옥새를 들고 대미궁으로 도망쳐 온 기사.
그 기사의 시체 안, 혹은 주변에 옥새가 있다.
의 스토리에 따르면, 옥새가 사라진 직후 베네타리오 7세가 급사(急死)했다고 한다.
그 뒤, 후계자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어스 제국은 5분할로 찢어졌고 결국 쇠락의 길을 걷고 말았다.
이후 시간이 흘러 영토가 갈가리 찢긴 전국시대로 변한 것이 바로 작금의 나스 대륙이고 말이다.
“…….”
25층을 살피는 내내, 정말 많은 시체를 보았다.
제대로 시체를 수습할 수 없는 이 험지에서 얼마나 많은 헌터들이 피를 뿌렸는지 알 것 같았다.
다만 몬스터가 아닌 인간의 공격에 죽은 것으로 보이는 시체들도 꽤 많았다.
특히 그런 시체에서는 금화 한 닢, 혹은 작은 장신구 하나 얻을 수 없었다.
아마도 동행한 자들이 가져가거나, 혹은 ‘빼앗았을’ 것이다.
‘보인다.’
기사의 시체를 찾던 내게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특수한 방이었다.
나스 대미궁 지하 25층의 보스 몬스터, 타천사 가즈넬라가 있는 보스 방이다.
무슨 여닫이문이 있고 그래서 보스 방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특수 결계가 쳐져 있기 때문이다.
결계는 절대 지나갈 수 없다.
결계 안쪽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결계 중앙에 위치한 차원문을 통해서 들어가는 방법뿐이다.
‘마족과 싸우고, 타락한 천사와도 싸우고. 이러다가 나중에 마왕을 넘어서서 신과도 한바탕 싸우는 것 아니야?’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신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인간……. 과연 어떤 느낌일까?
‘성마 대전에서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하지만 이내 나는 현실적인 부분으로 관심을 돌렸다.
성마 대전 이후의 미래를 생각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당장에 7클래스 진입부에서 막혀 있는 퀘스트도 있고.
“어?”
한데 바로 그때.
백골 하나가 보였다.
미궁의 건조한 날씨 덕분에 부식이 많이 진행되지 않아, 형태는 제법 남아 있는 백골이었다.
내가 그 백골에 시선이 멈춘 이유는 시스템이 알려 준 정보 때문이었다.
[기사 클레드의 백골] [많은 사연을 홀로 품고 쓰러진, 사연 많은 백골입니다.]고맙게도 시스템 메시지가 단서를 줬다.
스토리나 시스템과 연관성이 없는 시신은 정보가 표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백골이 걸치고 있던 옷과 무구들은 이미 삭아 없어지거나 벗겨진 상태.
그래서 주변을 쓱 둘러본 뒤, 가볍게 1클래스의 디그(Dig) 마법으로 땅을 팠다.
그렇게 몇 개의 구덩이를 제법 파내려 갔을까?
“아…….”
보였다.
황량하기 짝이 없는 미궁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찬란한 빛깔의 옥새가.
그것은 내가 예전부터 미궁에 오게 되면, 25층에서 꼭 찾겠노라고 다짐했던 옥새였다!
기회를 놓칠세라 단숨에 구덩이 속으로 뛰어든 나는 옥새를 움켜쥐었다.
다음 순간.
금색 배경에 검은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진 칭호가 드러났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황금 칭호였다.
독보적 업적이 있을 때만 나타나는 황금 칭호.
“후.”
나는 조심스럽게 상태창에서 반짝이고 있는 칭호를 눌렀다.
그러자 글자 위를 가리던 검은 칠이 사라지며, 이내 칭호의 내용이 보란 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정한 황위의 계승자]“드디어…….”
옥새를 얻었다 해서 저절로 국가들이 통합되고, 내 밑으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륙에 유일무이한 아티팩트이자 동시에 황제로서의 정통성을 인정할 물건을 얻었다는 사실이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나는 바로 황금 칭호 ‘진정한 황위의 계승자’가 부여한 특전을 살폈다.
손끝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무척 기분이 좋으면서도, 스스로 긴장한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2회에 한정해서 제국 전체의 모든 내정 수치를 최고치로 상승시킵니다. 즉시 모든 지역에서 황금기가 도래합니다.] [최고치를 찍은 내정 수치는 이후 2년에 걸쳐, 원래의 수치로 아주 천천히 하락합니다.] [당신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모든 사람은 당신을 상대로 최소 70 이상의 충성심을 갖습니다.]이것은 내 왕국 혹은 제국에 적용할 수 있는 특전이었다.
롱 리브 더 킹의 칭호 효과와는 차원이 달랐다.
일회성이 아니라, 두 번으로 한 번 더 활용하는 것이 가능했고.
내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뒤에 하락하는 기간도 2년으로 길었다. 즉, 완만한 하락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충성심도 롱 리브 더 킹의 50과 달리, 70의 최저치 확보.
이 정도면 내 곁에 있는 사람은 웬만한 유혹이 아니고서는 나를 배신할 가능성이 0%에 수렴한다는 얘기가 된다.
특전은 더 있었다.
[칭호의 소유자인 당신이 지정한 10명의 동료에게 성장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에게는 불가능합니다.] [계약이 이루어지면, 특수한 수련의 방으로 그들을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수련의 방은 아공간으로서 이면 세계의 일종입니다. 이 안에서는 현실계의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 [……(중략)]정말 많은 설명이 적혀 있었기에 다 읽어 보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듯했다.
핵심은 확실하게 이해했다.
내가 아끼는 동료들로 하여금 수련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되, 현실과 분리된 곳이라는 것이다.
즉, 엄청난 특전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부족한 것이 늘 아쉽게 느껴지는 인재들이 내 곁에는 많았으니까.
‘시기가 좋아.’
이제 곧 나는 정복 전쟁을 시작할 예정이다.
계획대로 주변국의 영토를 우리 왕국으로 편입하면, 제국의 선포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게 된다.
그때.
칭제(稱帝)와 함께 옥새를 세상에 내보인다면, 누구도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황제……. 괜히 웃음이 나오네.”
헛웃음이 나왔다.
아직도 전생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나다.
비록 자레드의 몸으로 열심히 살고는 있지만, 전생의 ‘신태풍’을 잊어 본 적은 없다.
신태풍은 그저 무역회사의 말단 사원일 뿐이었는데, 새로운 현생에서는 황제를 꿈꾸고 있다니?
새삼 인생 대역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장난이 아니니까.’
달라진 삶.
그리고 최고의 자리, 정점을 바라볼 수 있는 삶이 되었기에 더욱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성공하고, 성장하겠어. 내가 이 세계의 주인공이 되겠어. 반드시!’
나는 다시금 의지를 다졌다.
뒤를 돌아보기에는 여전히 달려 나가야 할 앞길이 훨씬 더 창창한 나를 위해.
다시 클로이가 있는 베이스캠프로 돌아오기에 앞서.
옥새를 아공간에 고이 보관한 뒤, 기사 클레드의 시체를 봉분까지 만들어 잘 묻어 주었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까지 옥새를 보호하고 숨겨 두려 했던, 그의 투지와 충성심을 기리며 묵념했다.
나는 텔레포트를 이용해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려 했지만.
지이잉! 지잉! 지이잉!
갑자기 25층 전역에서 심해진 마력 간섭 현상에 플라이 마법으로 방법을 바꾸었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
여기저기서 보이는 익숙한 죽음의 흔적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며 이동하는 찰나.
“……?”
나는 목숨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남자의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길어야 이틀?
이제 막 부패가 시작되긴 했지만, 미궁의 날씨 덕분에 변형이 심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시체가 된 남자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단 한 번 마주쳤지만, 선명했던 기억이라 절대 잊을 수 없었던 사람의 얼굴.
그것은 바로.
“카이클……?”
루나티쿠스의 든든한 가호를 받고 있었던 진 주인공 후보.
카이클 살리트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