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88
제 188화
65장. 타천사 가즈넬라 – 2화
“…….”
클로이가 잠들어 있는 베이스캠프로 돌아와서도 한참 동안 자레드는 말이 없었다.
우선 카이클의 시체는 바로 아공간에 보관을 했다.
지금보다 더 시체의 부패가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마침 카이클의 살리트 가문은 신데르스 왕국이 기반이었다.
그렇기에 돌아가는 길에 이즈엘을 통해 카이클의 시체를 인계하면 될 것 같았다.
‘진 주인공 후보 중 하나였던 카이클이 죽다니. 녀석은 악신의 가호를 받던 녀석도 아니었고, 제법 실력도 있어 보였는데.’
카이클과 동료는 아니지만 나탈리나 이카젤라와 다르게 선(善)의 신인 루나티쿠스의 가호를 받고 있었기에 동질감을 느꼈던 그였다.
‘아무리 신의 가호가 있다고 한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면, 그리고 만용을 부리면 죽는 건 같아.’
자레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카이클의 죽음이 씁쓸하게 느껴지기는 했으나, 이 또한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운명은 늘 그렇다.
주인공이 될 사람에게 더 모질고 거칠게 굴며, 나아갈 길을 가시밭길로 만든다.
‘카이클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고 성장해야 내가 더 강해지는 거지.’
착잡한 마음을 털어 냈다.
카이클은 카이클이고, 자신은 자신이었으니까.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하며, 그와 운명마저 하나가 된 것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바로 그때.
“아.”
파앗!
잠결에 눈을 뜬 클로이가 반사적으로 몸을 날리며, 지면에 자리를 잡았다.
과연 클로이다웠다.
순간 자레드도 클로이의 몸의 이동을 놓쳤을 정도로 빨랐으니까.
“일어났어?”
“네.”
“출발하자. 이제 올라오는 내내, 네게 수없이 브리핑했던 25층의 보스 몬스터를 잡을 시간이다.”
“가즈넬라…….”
“날개 잃은 천사에게 안식을 줘야겠지. 준비됐지? 컨디션은?”
“정말 좋아요. 푹 잤어요.”
“가자.”
자레드가 모닥불을 끄고는 클로이와 함께 이동을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으니까.’
한 번 더 생각을 간결히 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카이클의 명복을 빌었다.
* * *
가즈넬라의 보스 방까지 이동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중간중간 대형 몬스터들이 길을 막아서기는 했지만, 키 몬스터에 비하면 어린아이 수준이었다.
나와 클로이는 요리조리 멍청한 녀석들을 요리해 가며 무너뜨렸고, 이윽고 보스 방 안으로 진입했다.
“클로이.”
“네. 준비됐어요.”
“내게 어떤 상황이 생기건 간에 목표한 계획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절대 전장에 합류하지 마.”
“네. 명심할게요.”
재차 전략을 강조했다.
이것이 가즈넬라를 공략하기 위해서, 최소 2인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스르륵.
이윽고 클로이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기척도 순식간에 없어졌다.
나는 헤이스트를 활용한 빠른 움직임으로 보스 방의 중앙으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중앙에 마련되어 있는 넓은 공터에 마치 사색에 잠긴 것처럼 검을 들고 서성이는 존재가 보였다.
[타천사 가즈넬라] [나스 대미궁 지하 25층의 보스 몬스터입니다.] [대미궁의 낙인으로 인해, 정보를 열람할 수 없습니다.]심안을 통한 스캔은 불가능했다.
에서도 그랬었다.
대미궁의 낙인은 보스 몬스터의 스탯 공개를 막기 위한 일종의 시스템적 안전장치였다.
“음?”
그때, 가즈넬라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오른손에는 검, 그리고 왼손에는 캐스팅된 마법 구체가 있었다.
마검사라는 얘기다.
마법 쪽으로는 6클래스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고, 검술 쪽으로는 소드 마스터에 근접한다.
그래서 까다로운 존재였다.
검과 마법을 이용해 근접전과 원거리 전투를 모두 능숙히 소화하니, 약점을 쉬이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인간들은 학습 능력이 없는 건가? 자, 불청객. 잘 들어. 도망칠 기회를 줄게. 네 주변에 흩뿌려져 있는 시체들을 봐.”
가즈넬라가 경고하듯 말했다.
가즈넬라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과 비슷했다. 날 수 없는 날개를 등에 달고 있는 것만 제외하면.
그의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물론 시선을 가즈넬라에게서 떼지는 않았다. 놈은 영악해서 이 시점에서도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으니까.
“음.”
가즈넬라의 호언장담대로 주변에 제법 많은 헌터의 시체가 보였다.
밖에서 보았던 것들과 달리, 이 시체들은 아티팩트도 제법 착용하고 있었다.
가즈넬라는 아티팩트에 흥미가 없었는지, 빼앗아서 착용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뭐, 가즈넬라를 쓰러뜨리면 추가 전리품의 개념으로 챙겨도 되는 건가.’
미리 김칫국 좀 시원하게 마셔 보았다. 이왕 할 전투,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게 백배 나으니까.
“자, 가즈넬라. 그럼 이제 새로운 공부를 하자. 인간에게 당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느끼게 해 줄게.”
“오호라? 당당하게 선전포고를 하시겠다?”
“널 죽이지 않고는 절대 안 내려가. 덤벼. 날지 못하는 닭과 예전부터 싸워 보고 싶었으니까.”
“겁대가리를 상실했군.”
화악!
도발이 끝나기 무섭게 가즈넬라가 내게 마법 구체를 날렸다. 3클래스의 마법인 파이어볼이었다.
“훗.”
나는 이그노어 건틀릿의 1번 옵션을 보며 웃었다.
[옵션 1 : 마법 멸시 – 3클래스 이하의 마법을 건틀릿을 이용해 튕겨 낼 수 있습니다. 마력을 1 소모합니다.]내가 대마법전에 자신 있는 이유는 열 가지도 넘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이 녀석 때문이다.
쿠아아아!
빠른 속도로 가즈넬라의 파이어볼이 날아들었지만.
투우웅!
나는 손짓만으로 가볍게 구체를 쳐냈다. 오히려 방향이 바뀐 파이어볼은 가즈넬라를 향해 다시 날아갔다.
“어?”
가즈넬라의 눈동자에 물음표가 찍히는 것이 보인다.
이 반격을 위해 내가 소모한 마력은 1밖에 되지 않는다. 완벽하게경제적인 셈이다.
“제길!”
쿠웅!
가즈넬라가 급히 실드를 펼쳐 마법을 막아 냈다.
자신이 날린 마법을 막았으니, 기분이 두 배로 더러워 보였다.
“신기한 재주를 가졌군?”
“좀 더 강한 마법은 없어?”
가즈넬라를 더욱 도발했다.
한편 나는 곁눈질로 보스 방 외곽을 쓱 훑어보았다.
지금쯤 클로이가 어딘가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강화의 구슬.’
가즈넬라 공략의 핵심이다.
가즈넬라와의 전투가 시작되면, 보스 방 전역에서 강화의 구슬이라는 구체가 출발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무엇이냐면, 구슬의 기운을 받은 존재로 하여금 신체 능력을 강화시키는 버프다.
이것이 가즈넬라 공략을 지독하게 어렵게 만드는 요소였다.
가즈넬라가 구슬의 기운을 얻기 시작하면,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기 때문이다.
‘볼 것도 없이 개발진의 더러운 안배지.’
플레이어들의 공략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개발진이 부린 심술.
나는 이것을 영리하게 이용하기로 했다. 클로이에게 버프를 몰아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조건은 매우 까다로웠다.
구슬이 나오는 순서와 위치가 달라서, 정말 클로이가 쉬지 않고 계속 보스 방 전역을 누벼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1분밖에 지속되지 않는 버프를 갱신하기 위해서 다음 넘버링의 구슬을 반드시 흡수하여 시간을 갱신해야 했다.
구슬의 위치, 순번, 이동 속도, 흡수 타이밍을 가르치기 위해 소모한 시간이 5일이었다.
가르치는 나도 기억을 되새기며 머리가 깨지는 듯했고, 클로이도 몇 번이나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었을 정도였으니까.
다행히 지금 이 시점에 첫 번째 구슬이 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클로이가 무난하게 흡수를 마친 듯했다.
‘믿는다, 클로이.’
보이지 않는 어딘가의 클로이를 향해 나는 신뢰의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짝! 짝!
양손을 힘껏 털며, 가즈넬라와 본격적으로 상대할 준비를 마쳤다.
바로 그때.
쿠과과과!
가즈넬라가 펼친 5클래스의 마법, 포스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내가 즐겨 쓰는 마법을 방어자의 입장에서 보니, 기분이 묘했다.
[옵션 7 : 선택적 회피 – 4클래스 이상의 마법은 ‘해당 마법의 클래스×1000’의 마력으로 튕겨 낼 수 있습니다.]이번에는 이그노어 건틀릿의 7번 옵션인 ‘선택적 회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타아앙!
5천의 마력으로 간결하게 포스 미사일을 튕겨 냈다.
물론 방향은 완벽하게 180도 돌린, 가즈넬라의 위치로.
“이놈이……!”
두 번이나 자신의 마법을 되돌려 받게 되자, 가즈넬라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검을 움켜쥐었다.
마법으로 영 재미를 못 볼 것 같으니, 주 종목을 변경하려는 모양이다.
“가즈넬라, 네 목숨을 갖겠다.”
“하찮은 인간 따위에게는 털끝만큼도 용납할 생각 없어!”
나도, 가즈넬라도 호기롭게 맞섰다. 재밌기는…… 하지만, 무척이나 고단한 난타전이 될 것 같았다.
우우우우웅!
격렬하게 솟아오르고 있는 가즈넬라의 검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일대일로 상대하기에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 * *
‘아니, 이런 미친X이…….’
전투 내내, 가즈넬라는 자레드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당연했다.
조금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집요하게 빈틈을 파고드는 자레드의 공격 때문이었다.
이따금씩 회심의 일격처럼 날리는 마법은 전부 막혔다.
저 망할 놈의 건틀릿을 빼앗아 부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얄밉게 마법을 방어했다.
단순히 쳐내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시전한 마법을 정확하게 되돌려 보내니 죽을 맛이었다.
방어하기 위해 가즈넬라가 실드를 펼치면, 그 위에 자레드가 자신의 마법을 한 번 더 얹었다.
가즈넬라를 더 놀라게 만든 것은 자레드의 마법이 보이는 수준이었다.
분명 마법의 수준은 6클래스를 상회하지 않았다.
즉, 마법 경지에서는 자신과 같은 6클래스임은 확실했다.
‘그런데 왜 나와 같은 마법인데도 내가 느끼는 파괴력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거지?’
달랐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극명한 차이를 느낀 것은 가즈넬라 본인의 포스 미사일과 자레드의 포스 미사일 – 더블 트랜센던스가 추가된 – 을 받아 냈을 때였다.
제법 두꺼운 실드로 무난하게 포스 미사일을 받아 내려던 가즈넬라는 거기서 일격을 당했다.
자레드의 포스 미사일에 실드가 박살 난 것은 물론,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강타 당했기 때문이다.
탈골(脫骨)까지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오른쪽 어깨가 불안정했다.
그 바람에 덩달아 검을 쥐는 자세까지 흐트러지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이었다.
‘하지만 놈도 마법보다는 검에 약해.’
지금까지 수많은 헌터를 상대해 온 가즈넬라답게 그는 자레드의 약점을 간파했다.
그것은 제법 능숙하기는 하지만, 마법보다는 실력이 떨어지는, 검에 대한 대응력이었다.
특히 펼치는 검기의 강도를 높일 때마다, 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 제법 보였다.
짙은 기운이 밴 오러 블레이드를 휘갈기며 맹공격을 퍼부을 때면, 자레드도 반격하지 못하고 방어 일변도로 대응했다.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하찮은 인간인 네놈이 날 이길 수는 없다.’
가즈넬라는 자신했다.
비록 초반의 전투가 까다롭게 흘러가기는 했으나, 어차피 승자는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전체 개방.’
가즈넬라가 승부수를 던졌다.
이끌어 낼 수 있는 모든 기운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것이다.
자레드의 공격에 매운맛도 제법 봤고, 변수도 경험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잘 ‘즐겼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르륵. 그르륵. 그륵.
이윽고 가즈넬라의 몸 전체에서 검붉은 기운이 솟구치며, 덩달아 움켜쥔 검에서도 모락모락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다음 공격을 이어 가려던 자레드가 자신의 변화를 목도(目睹)하고는 황급히 자리에서 멈춰 섰다.
겁을 집어먹은 모양이었다.
‘역시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가즈넬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눈앞에서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던 자레드의 입가에서.
영문을 전혀 알 수 없는 미소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