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91
제 191화
66장. 성동격서의 계책 – 2화
자레드와 이즈엘의 밀담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레드의 노림수에 맞게 신데르스 왕국이 어떻게 장단을 맞춰야 할지는 이즈엘이 더 잘 알았기에.
이즈엘은 다시금 자레드가 자신의 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최소한 두 수 이상의 앞을 내다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간 주변 국가의 정세 파악에 공을 들인 이즈엘은 파우페르 왕국이 전쟁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웃한 렌투스 제국과 어느 정도 친교가 있어 믿는 구석이 있는 데다가, 크리비아 왕국은 대놓고 보누스 왕국과 말루스 왕국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레드는 그 허점을 노린 듯했다.
대화를 마친 자레드는 자신에게 카이클의 시신을 인계하고는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이즈엘은 카이클이 누군지는 몰랐지만, 아버지인 바하만 살리트는 잘 알았다.
그렇기에 이 시신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알았고, 그래서 감사 인사와 함께 시신을 거두었다.
그를 어디서 발견했는지는 자레드가 동봉한 서신에 잘 적어 두었다고 했다.
이즈엘은 굳이 위치를 묻지 않았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그렇게 자레드가 떠난 뒤.
만남의 끝을 확인한 레피니티가 특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이즈엘에게 질문을 던졌다.
“폐하, 크리비아 왕국을 믿으십니까?”
“레피니티 경, 이것은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오. 우리 왕국이 냉정하게 크리비아 왕국을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지.”
“불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단언컨대 불가능하오. 경, 냉정하게 말해 보시오. 크리비아 왕국의 켈디아 무기를 이길 무기를 생산할 수 있소?”
“없습니다.”
“우리 왕국의 모든 백성들이 크리비아 왕국의 백성처럼 국왕을 칭송하고 찬양하는 것 같소?”
“그건…… 절대 크리비아 왕국에 뒤지지 않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말을 할 필요는 없소. 삼면이 적으로 둘러싸인 우리 신데르스 왕국에게 유일한 우방(友邦)인 크리비아 왕국은 영원히 함께해야 할 동반자요.”
“이것이 모두 신들이 부족한 탓입니다. 신들의 능력이 모자란 탓에…….”
“자책할 것 없소. 국왕은 응당 야심을 가져야 하지만, 때로는 현실을 파악하고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하오.”
“폐하…….”
“난 크리비아 왕국의 영원한 동반자가 되고 싶소. 굴종? 굴욕? 어떤 표현을 해도 상관없소.”
“폐하……! 송구하옵니다.”
“만약 그들이 우릴 버린다면, 나는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오. 하지만 그 전까지는 그들이 펼칠 미래에 함께하고 싶소.”
“예, 폐하. 신의 생각이 짧았사옵니다.”
레피니티가 고개를 숙였고, 이즈엘은 덤덤한 표정으로 웃었다.
나스 대륙에 곧 피바람이 몰아칠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혼란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즈엘이 선택한 것은 최고의 능력을 지닌 국왕을 둔 크리비아 왕국에 전적으로 협력하는 것. 그것이 가장 확실한 답이라 생각했다.
* * *
얼마 후, 왕도로 복귀한 나는 클로이를 통해, 미궁에서 구해 온 아티팩트를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분배했다.
민첩 관련 아티팩트는 클로이에게 모두 몰아주었고, 신성력 아티팩트는 헤이즈에게 주었다.
레나, 미아에게는 부족한 방어력 보강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아티팩트를 건네주었다.
한편, 완전히 몸을 회복하고 왕도를 떠나려는 아키를 직접 배웅해 주었다.
심안으로 살펴보니 아키는 상태 이상도 없고, 몸 컨디션도 최고로 좋아 보였다.
그간 일을 멀리하고 푹 쉰 덕분인지, 얼굴에 생기가 흘러넘쳤다.
그사이에 밀린 수많은 현안의 결재 서류까지 모두 확인하고 서명을 마친 뒤.
나는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별궁으로 불렀다. 바로 라키스였다.
라키스는 그동안 계속 군사, 진법, 전술 훈련에 매진해 왔다.
군인이 되기 전부터 검술 외에도 병법, 전략에 대해서 꾸준히 연구를 해 온 그는 전략가로서의 기질도 다분했다.
[특수 성향 : 질서 정연 SSS / 정의 구현 SSS / 쾌검술 S / 전략적 교전술 SS / 오러 블레이드 S / 항마 대응 A]못 본 사이에 라키스의 특수 성향은 제법 많이 성장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오러 블레이드 S였다.
S등급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가 진정한 검기를 다룰 수 있게 됐다는 뜻이었다!
“폐하, 신이……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턱없이 실력이 부족한 치안대장에 불과했던 신이…… 이제 검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사옵니다!”
라키스는 나를 보자마자, 두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그 마음이 충분히 공감이 됐다.
3년 전의 라키스는 기껏해야 B급 무장, 그 이상의 가능성은 전혀 없던 검사였다.
충심으로 똘똘 뭉친 군인이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하지만 내 곁에서 함께 도전하고 끊임없이 홀로 수련하면서, 그는 수많은 각성 과정을 겪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각성이 7차 각성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계를 그만큼 깼다는 얘기.
이는 각성에 돌입하기 위한 필수조건, 즉 국왕인 나에 대한 충성심이 없었으면 불가한 일이었다.
오로지 나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끊임없이 수련하며 채찍질해 온 것이 믿기지 않는 결과를 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듯, 평범한 군인이 검의 오의를 깨우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확률 운운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희박한 확률이다. 그것을 라키스가 해낸 것이다!
내 앞에서 유려한 검술과 함께 오러 블레이드를 펼쳐 내는 라키스의 모습을 보며.
어느덧 나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진심으로 기뻤기 때문이다.
가장 아끼는 충신, 라키스.
그는 아버지 때부터 대를 이어 내게 충성을 바쳐 온 소중한 가신 중의 하나였으니까.
“경이 내게 최고의 선물을 주는구려.”
라키스를 꼭 끌어안았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짙은 땀내가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나를 만나기 직전까지도 전력을 다해 수련을 했다는 증거였으니까.
“신의 모든 변화는 폐하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변화입니다. 그러니 신의 모든 것은 오롯이 폐하의 것입니다. 이 영광을 폐하께 바치나이다.”
“그대의 노력이 없었다면 결코 이뤄지지 않았을 기적이오. 어쨌든 너무 기쁘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군.”
“폐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나이다!”
“맛 좋은 와인이라도 한잔합시다. 예전에 글라가스를 처벌한 이후로 완전히 술을 끊었는데, 라키스 경과는 꼭 한잔하고 싶소.”
“폐하께서 하사하시는 와인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마시겠습니다!”
“하하, 좋소. 그간 밀린 이야기들을 해 봅시다. 그대와 해야 할 이야기가 많소.”
밤에 이뤄진 라키스와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자정을 넘기는 술자리로 이어졌다.
* * *
적당히 오가는 와인 속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술기운에 휩쓸려 의미 없는 가벼운 이야기들이 충분히 오갈 법도 하련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레드와 라키스의 대화는 점점 더 무거운 주제와 함께 깊어지고 있었다.
“서쪽 전선의 준비는 어떻소?”
“두 왕국과 맞닿은 전선에는 계속 전력을 증강하고 있습니다. 녀석들도 아예 작정하고, 전력을 다해 방어선을 치는 모습입니다.”
“보누스, 말루스 해군 쪽은?”
“게니츠, 루크 제독을 잃은 이후로 새로 부임한 해군 제독의 역량이 떨어지는 듯합니다. 보강이 더딥니다.”
“함선 건조는 어떻소?”
“기존에 있던 함선의 수리 및 개조는 모두 끝났습니다. 그리고 수송선 위주의 함선 건조는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든 게 계획대로군.”
“예, 폐하. 준비는 순조롭습니다. 대대적인 도로 정비 덕에 보급로 확보도 수월해졌습니다.”
“이쯤이면 누가 봐도 두 왕국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겠지?”
“그렇습니다.”
“라키스 경.”
“예?”
“우리는 곧 파우페르 왕국을 칠 것이오. 예전부터 내게 노림수는 따로 있었소.”
“보누스와 말루스가 아니라 파우페르 왕국을 친다는 말씀이십니까? 폐하, 잠시. 잠시만 신에게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얼마든지.”
자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키스는 방금 들은 자레드의 ‘충격 선언’을 곱씹어 보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라키스가 박수를 치며 외쳤다.
“진정 혜안이며 명안이십니다! 폐하의 노림수는 어느 누구도 모를 것입니다. 더군다나 파우페르 왕국의 뒤에는 렌투스 제국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소.”
“하지만 신속히 진군하여 왕도를 함락시킨다면, 그들이 손을 쓰기 전에 충분히 장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의 생각이 바로 나의 생각과 같소. 우리 왕국의 전력은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파우페르 왕국에는 어떤 연결 고리도 없었으니, 폐하의 노림수를 쉽게 파악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그들은 국가 전체가 타락한 부정부패의 온상. 나스 대륙에는 그들처럼 곪아 터진 나라,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나라가 발을 붙이고 있어서는 안 되오.”
“옳으신 말씀입니다.”
“출진하는 그날까지 세상에는 적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들만 보여 주도록 하시오. 누가 봐도 보누스, 말루스 왕국과의 전쟁을 대비하는 것처럼 말이오.”
“예! 모자란 신은 그저 폐하의 혜안에 감탄할 따름이옵니다. 어쩜 이리 절묘하신지요!”
“띄워 주는 칭찬은 그 정도만 합시다. 하하하.”
“진심입니다, 폐하.”
눈치 빠른 라키스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을 보면, 확실히 계획은 성공한 듯했다.
남은 것은 실행뿐이다.
누가 봐도 오른쪽을 노리고 있는 것 같은 흐름에서 기습적으로 왼쪽을 친다면……?
준비가 되지 않은 왼쪽의 상대에게는 지옥이 될 현실이 펼쳐질 것이다.
완벽한 기만(欺滿).
그것이 자레드가 그동안 착실히 준비해 온 첫 번째 전쟁의 필승 전략이었다.
* * *
파우페르 왕국의 공략 건에 대한 이야기가 충분히 오간 뒤.
다시 화제는 자연스럽게 일상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나는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라키스와의 옛일을 말하며 추억에 잠겼다.
한데 어느 순간.
라키스가 몇 번이고 입을 오물거리더니, 살짝 난감한 표정으로 운을 뗐다.
“저, 저기. 폐하.”
항상 시원하게 내게 속마음이나 하고자 하는 말을 털어놓던 라키스인데, 오늘은 뭔가 이상했다.
평소의 라키스와는 달리 연신 뜸을 들이고 있기에 참다못한 내가 먼저 물었다.
“자꾸 저, 저, 이런 말만 반복하지 말고 시원하게 말을 해 보시오. 내게 할 얘기가 있으면 거침없이 하던 그대가 아니었소?”
“폐하……. 그것이…….”
“참 답답하군! 왕명이오! 지금 당장 경이 하려는 모든 말을 하나도 남김없이 털어놓으시오.”
술기운이 제법 오른 터라, 나도 살짝 열이 올라 소리쳤다. 그러자 라키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폐하, 신이 결혼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치르려 하였는데…….”
“오오오! 평생 남자의 순정을 소중히 간직해 온 우리 라키스 경이 결혼을 한다, 이 말이오?”
“폐, 폐하! 부, 부끄럽습니다.”
항상 강인한 군인의 얼굴을 하는 라키스였지만, 오늘만큼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것은 마치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을 보는 것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간 나를 기쁘게 한 소식은 정말 많았지만, 이번만큼 함박웃음을 짓게 한 일은 없었다.
올해 마흔두 살의 노총각 라키스. 사랑하는 나의 충신이 드디어 장가를 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