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10
제 210화
71장. 악신 사냥꾼 – 3화
-함께하자.
제법 형체를 갖춘 악신 프로디오와 페레디스가 나를 향해 손을 뻗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역겨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안젤루스 링의 11번 옵션인 ‘악신 사냥꾼’을 발동하기로 했다.
악신의 힘이라면 단 1%도 얻고 싶지 않은 것이 내 생각이었으니까.
“크윽…….”
힘겹게 지면을 짚은 린크스나의 두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쥐었고, 품에서 꺼낸 멸살의 단검을 그녀의 목에 갖다 댔다.
그리고.
쇄애애액!
미련 없이 그녀의 목을 그어 버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크어억! 어어어억!
-가, 감히 네놈이?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프로디오와 페레디스가 빠르게 산화하는 자신의 몸을 보며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신(神)이기에 영생을 꿈꿨던 걸까? 아니면 영생은 보장된 것이라고 여겼던 것일까?
자신의 존재 자체가 소멸되는 것을 확인한 두 악신의 표정에 당황이 짙게 깔렸다.
-사, 사, 살려 줘!
-제발 살려 줘!
모양 빠지는 두 악신의 목숨 구걸이 이어졌지만, 이제는 내 손을 떠난 일이었다.
그들은 목을 움켜쥐고, 신음을 토해 내며 몸부림치다가 그렇게 한 줌의 연기로 화하여 사라졌다.
[악신을 제거하여 칭호 ‘심판자’를 얻었습니다.] [악신의 가호를 받고 있는 자를 상대로는 50%의 추가 대미지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좋아.’
악신을 제거한 보상을 얻었다.
내용은 간단하지만 위력적인 것이었다. 추가 대미지 옵션들이 이렇게 점점 쌓여 가고 있다.
[칭호 ‘네 번째 위기를 극복한 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칭호 획득에 따라 보상으로 ‘트리스티스 아일랜드’의 지도 일부를 얻었습니다!]추가로 지도도 얻었다.
이제 60층까지 헤매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차원문 조합 공식을 얻게 되었다.
“후…….”
나는 숨이 끊어진 린크스나의 손가락에서 짙은 마기가 뿜어져 나오는 반지 하나를 빼냈다.
이것은 일반인이 사용하기에는 하자가 많은 아티팩트였다.
모든 옵션이 마기를 수련하는 상태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자칫 잘못했다가는 마기에 잠식될 우려가 컸다.
‘이 정도의 마기를 버텨 내면서 수련을 위한 자극제로 쓸 수 있는 사람은 하나뿐이군.’
이 반지는 헤이즈에게 갖다주기로 했다.
그녀가 아니고선, 이 반지를 완벽히 다룰 사람이 없을 듯했다.
‘필요한 모든 자료를 찾아보자.’
교주 린크스나도 죽었고, 이제 남은 것은 내게 제대로 대적조차 할 수 없을 단원들이 전부였다.
파팟! 팟! 팟!
저 멀리서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이쪽으로 향하는 수많은 단원의 인영(人影)이 보였다.
하지만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저들은 내 상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놈들부터 정리할까.”
나는 냉랭한 표정으로 그들을 향해 들리지 않을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리고.
슈아아아아!
데큐플 트랜센던스 매직 미사일을 손끝에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대학살의 시작이었다.
* * *
1일 후.
데스먼드 제국에 위치한 마탑.
이카젤라는 부하를 통해 들어온 보고를 받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옆에는 황제 디그론 4세가 함께 있었다.
“움브라 교단의 지하 제단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폐하, 자레드란 놈이 보통내기가 아니군요.”
“그것보다 자레드가 어떻게 지하 제단으로 이동할 루트를 확보한 것 같소?”
“신의 추측입니다만…… 저희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졌던 가즈넬라가 암흑 집속진 원석을 자레드에게 건넨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혹은 자레드의 손에 죽었거나.”
“자기를 천사라고 지칭하며, 변절의 대가로 카코 교단의 간부 자리를 내놓으라던 그놈인가?”
“예, 폐하. 그때 그놈을 쫓아내는 과정에서 암흑 집속진 원석 하나가 유실되는 사태가 있었지요.”
“쯧…….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일이 있었군.”
“면목 없습니다.”
“지나간 일은 됐고. 그럼 자레드의 손으로 린크스나와 흑사마귀, 바이스까지 모두 죽인 것이 맞단 말인가?”
“예. 홀로 제단 전체를 박살 냈습니다.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까지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봐서는 내부 구조를 상세히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황의 짓인가?”
“관련성이 높아 보입니다. 실제로 시국을 옮긴 시점에 벌어지기도 한 일이니까요.”
“저주 받은 꼬마 놈!”
콰앙!
디그론 4세가 마탑 내벽을 강하게 후려쳤다.
그러자 층계 전체가 심하게 흔들리며, 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카코 교단과 움브라 교단은 서로 협력하진 않았어도, 심리적 동질감을 지닌 관계였다.
신념의 차이로 가까이하지 않았을 뿐, 둘 다 마왕의 현신을 준비한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유입되는 마기의 양은?”
“정확히 2할이 줄었습니다. 이러면 현신과 동시에 마수에게 주입될 제단의 지원도 80% 수준에 그치게 됩니다.”
“자레드 놈, 정말 사사건건 개입해서 짜증을 나게 만드는군!”
디그론 4세의 불쾌한 표정은 가실 줄을 몰랐다.
지금 암흑 제단에 모이고 있는 마기의 힘은 매우 중요했다.
현신과 더불어 인간계에 강림하게 될 수많은 마수들의 ‘힘’과 관련된 근원이었기 때문이다.
암흑 제단이 전부 파괴되면, 마수들은 인간이나 다름없는 육신으로 현세에 강림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인간도 마수를 상대해 볼 법한 계산이 가능해진다.
마왕군의 절대적인 우위가 될 수 있는 전투가 호각(互角)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제 자레드의 목숨을 확실하게 노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아울러 그간 미뤄 왔던 교황의 질긴 목숨도 거둘 때가 된 듯합니다.”
이카젤라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지금까지는 의도적으로 암흑 교단의 대외 활동을 자제해 왔던 데스먼드 제국이었다.
신성 제국의 세력이 강성한 지금 시점에 돌출 행동을 해서 좋을 것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생각이 달라졌다.
상황을 관망하는 동안, 자레드는 형제 교단이었던 움브라 교단을 박살 내 버렸다.
이대로라면 카코 교단에도 똑같이 비수를 꽂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즉, 가만있다가 눈뜨고 코 베이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대륙 전역에 뿌려 둔 우리의 안배를 발동할 때가 됐군.”
“시간을 버는 데에는 그만큼 좋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아울러 자레드의 모든 행보를 쫓도록 하시오. 사소한 것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예, 폐하.”
바로 그때.
통신석으로 급보가 전해졌다.
-폐하, 보고 드립니다.
“무엇이냐?”
-크리비아 제국의 황제 자레드와 다수의 사절단이 그레이 엘프의 땅으로 향하고 있다 합니다.
“사실이냐?”
-아르케네스 상단까지 대규모로 합류한 것으로 봐서는 틀림없습니다.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찾아왔군.”
디그론 4세와 이카젤라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나스 대륙을 혼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기 위해, 은밀히 펼쳐 두었던 수많은 안배.
그중 첫 번째가 드디어 발동의 적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 * *
나는 그레이 엘프의 땅으로 향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계속 물밑 교감을 해 왔던 그레이 엘프와 드디어 공식적인 대화를 하게 된 것이다.
그들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했기에 이번에는 다수의 인원을 데려가는 중이었다.
공식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신하 중에는 라키스와 엘라, 나오미가 동행했다.
세 사람의 위상도 위상이지만, 만약을 대비하기 위함도 있었다.
이유인즉슨, 그레이 엘프의 터전이 데스먼드 제국과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라도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세 사람을 데려갔다.
그리고 대규모 거래를 위해 아르케네스 상단도 함께했다.
사전 조율을 통해, 그레이 엘프가 꼭 수입하고 싶어 하는 물품 위주로 꾸렸다.
그중에는 국외 판매가 제한되어 있는 대형 영상 장치 및 켈디아 무기 일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레이 엘프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나름대로 크게 마음을 쓴 것이다.
그 외에도 헤이즈, 레나, 미아, 이자벨도 함께했다.
뭐랄까……. 출발하기 전부터 묘한 직감 같은 것이 있었다.
데스먼드 제국에서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체크하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
움브라 교단의 지하 제단이 완전 ‘개박살’이 난 것을 본 터라, 분명 날이 잔뜩 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다.
아울러 그레이 엘프에게 우리 제국의 주요 인물을 미리 인사시킨다는 그럴듯한 명분도 있었다.
한편 내 옆에서 살짝 앞서 나가며 길을 안내하던 클로이가 불쑥 말을 꺼냈다.
“폐하.”
“응?”
“저희 그레이 엘프에게 깊은 관심을 가져 주셔서, 오라버니를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무슨. 그레이 엘프와는 예전부터 좋은 관계를 맺길 바랐어. 다만 신뢰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지금까지 기다렸을 뿐이야.”
“대장로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외부 세력과의 교류가 정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아, 그게 정말이야?”
“네.”
클로이가 말하는 ‘대장로 회의’란, 우리 제국으로 따지면 어전회의 같은 것이었다.
집단 운영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신하(대장로)가 모여,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다.
물론 그레이 엘프의 왕에게 최종 결정의 권한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장로의 의견을 무시하고 안건이 결정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은 고대(古代)부터 인간보다 훨씬 먼저,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을 진행해 온 종족이었다.
“이유를 좀 더 자세하게 말해 줄 수 있을까? 그레이 엘프의 신뢰를 얻었다는 사실이 너무 기분 좋아서 그렇거든!”
진심이었다.
다크 엘프도 그렇고, 그레이 엘프도 그렇고. 엘프는 기본적으로 성향이 배타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뢰를 얻는 것은 평범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보다 10배는 더 힘들었다.
실제로 에서도 게임 통계상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호감도 1을 올리기 위해 인간에게 1시간을 투자한다면, 엘프에게는 10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게다가 그렇게 힘겹게 쌓아 올린 신뢰지만, 무너지는 것은 또 한순간이었다.
“큭.”
클로이가 부끄럽게 웃었다.
대답으로 꺼내야 할 말에 뭔가 부끄러워지는 포인트가 있는 모양이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말해 봐. 네가 그러니까 더 궁금하잖아.”
“제가 폐하의 밑에서 눈부신 성장을 경험했다는 점에 모두가 놀라워했어요. 포르미도 스승님을 직접 목숨을 걸고 구해 오신 이야기도 알고들 계시고요.”
“미담(美談)이구먼.”
클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미담이 되길 바라서 했던 일은 아닌데, 그것이 클로이나 그레이 엘프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모양이다.
“그리고 다크 엘프가 유일하게 수교를 맺은 국가가 폐하의 제국이라는 사실도 결정에 크게 한몫을 했어요.”
“아, 다크 엘프!”
클로이의 말에 나는 자연스럽게 뒤에서 따라오던 아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바로 일등공신이었다.
아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도 다크 엘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시간을 투자해 가며 노력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헤……!”
내 시선을 오롯이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일까?
나와 눈이 마주친 아키가 헤벌쭉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