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13
제 213화
72장. 치명적인 일격 – 3화
지금껏 나는 동료, 신하들과 연계할 수 있는 수많은 플레이들을 준비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기사단, 마법사단과 진행했던 훈련으로 일전에 파우페르 왕국과의 전투에서 재미를 본 적도 있었다.
내가 전투마다 즉흥적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경험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임기응변에 기대는 전투보다는 정해진 매뉴얼이 있는 전투가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는 에서의 경험에 따른 판단이기도 했다.
어떤 던전을 공략할 때.
숙련된 플레이어가 아닌 파티원이 있다면, 그 사람은 변수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공략을 시작하기 전에 확실한 임무를 주고, 그것에만 충실하도록 만들면…….
보통 십중팔구는 자기 몫을 완벽히 해냈다. 설령 실수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말이다.
이렇듯 나도 경험이 썩 많지 않은 헤이즈를 상대로 ‘헤이즈 사용법’을 제법 여러 개 만들어 놨다.
그리고 오늘, 수많은 방법 중에 하나를 응용할 참이었다.
“헤이즈, 타넥스와 연계해. 일전에 말했던 폭죽놀이, 알지?”
예전에 적당한 비유를 섞어 이름을 지었던 계획명을 그녀에게 읊어 주었다.
“네, 이해했어요.”
헤이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배운 모든 것과 경험한 모든 일들을 꼼꼼하게 정리하는 것이 헤이즈의 성격이다.
그러니 ‘폭죽놀이’가 무엇인지 모를 일은 없었다.
스으윽.
이윽고 타넥스가 헤이즈의 모습을 완전히 가리고 섰다.
-완전 방어 체계 가동.
그리고 헤이즈를 최우선 방어 대상자로 선택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헤이즈는 타넥스의 완벽한 보호를 받을 것이다.
“우리 대왕을 죽인 원수! 살려 두지 않겠다!”
그때, 엘프족 전사들이 대거 케즈만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우 독기가 올라 있었다. 눈앞에서 왕을 잃고, 그 형제를 잃는 모습을 봤으니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는 그들을 보조하기 위해, 트랜센던스 윈드 커터를 준비했다.
아까 6만의 마력을 소모하는 초월 마법을 한 번 사용한 터라, 회복이 살짝 더뎠기 때문이다.
아티팩트와 타넥스 등에 저장된 마력은 만약을 위해서 아꼈다.
지금 썼다가는 정작 필요할 때에 끌어다 쓰기 힘들 수 있으니까.
“잔챙이들은 흥미 없다.”
케즈만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흘렀다.
그리고 손짓을 하자, 차원문 안에서 추가로 마수가 뛰쳐나왔다.
방금 전에 모조리 전멸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준하는 숫자가 다시 밀려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제길.”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아웃브레이크는 일전에 여기에 다녀갔다는 암흑 교단의 소행이 틀림없었다.
즉, 카코 교단의 소행이다.
이놈들은 도대체 어떤 수단을 가지고 있기에 그레이 엘프의 땅에 재앙을 심었을까?
좀처럼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나지만, 이번에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뭔가 불완전하면서 모자란 느낌이 났던 움브라 교단과 달리, 카코 교단은 완숙한 악의 집단을 보는 느낌이었다.
터엉!
그때, 케즈만이 내가 날린 윈드 커터를 왼쪽 팔로 아주 쉽게 막아 냈다.
마치 배드민턴 채로 셔틀콕을 후려치듯이, 너무 편하게 마법에 대응해 버렸다.
그리고.
쇄애액! 쇄액! 쇄액!
수십 개의 검날이 박혀 있는 듯한 오른팔을 이용해, 달려드는 엘프 전사의 목을 베었다.
정말 종이를 가볍게 베는 것처럼 엘프들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
파리 목숨보다도 못한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 너무 짧았다.
‘놈의 난동(亂動)을 막아야 해.’
나는 간단하게 전략을 세웠다.
케즈만과의 전투가 호각세가 될지, 내 열세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우위를 점할 수도 있고.
다만 확실한 것은 케즈만은 마족이고, 전략적 승부수를 띄울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행동하는 던전의 보스 몬스터나 평범한 마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다.
‘억제하려면 이것밖에 없어.’
나는 단 1초만이라도 케즈만이 다른 곳에서 날뛰면, 그만큼 희생자가 비례하여 늘 것으로 보았다.
녀석이 뛰어놀 무대를 최대한 억제하고, 나만 보게 해야 한다.
그사이에 다른 자잘한 마수들을 재빠르게 처리해야, 그나마 대응할 수 있는 계산이 선다.
‘퀸튜플 트랜센던스 디멘션 도어.’
그래서 디멘션 도어를 초월 마법 형태로 펼쳤다.
이렇게 해야 내가 펼칠 마법의 변수 창출이 가능해질뿐더러, 케즈만의 움직임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팟. 팟. 팟. 팟.
순식간에 여러 개의 차원문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일반 디멘션 도어는 단 2개의 차원문을 만들지만, 싱글 트랜센던스가 적용되면 10개가 된다.
이후 2배수로 증가한다.
즉, 퀸튜플인 지금은 160개의 차원문이 생겨나 있는 것이다.
“뭐야, 이건……? 눈이야?”
케즈만이 의외의 반응을 내놓았다.
아마도 차원문의 형상이 세로로 긴 타원의 형태로 자리 잡은 가운데, 코어가 동그랗게 빛나고 있어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즉, 마족이라고 하더라도 트랜센던스 마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뜻도 됐다.
“케즈만, 너는 내가 막겠다.”
“오호라? 내 이름도 알고 있어? 신기하군. 나는 네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데 말이야.”
“이름은 몰라도, 내가 어떤 존재인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소트라스를 죽인 놈이군. 그래서 그게 왜? 소트라스는 마족 취급도 받지 못하던 떨거지 같은 놈이었다.”
케즈만이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어쨌든 알고 있던 사실은 일치하는 듯했다.
마족은 다른 동족을 죽인 존재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너는 다른가 보지?”
“나불거릴 시간에 이거나 처먹어라, 비루한 인간!”
파아앗!
케즈만이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빨랐다. 정말 빨랐다.
일전에 상대했던 린크스나도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초고속이었다.
이런 움직임을 시각에 의존해서 피하려고 한다면 무조건 실패하게 된다. 가감 없이 100% 확률로.
나는 공기의 흐름이 좌측으로 무겁게 실리는 것을 느끼고, 바로 우측 사선으로 이동했다.
아니나 다를까.
후웅!
눈 깜짝할 사이에 케즈만의 왼쪽 팔이 내가 있던 자리를 훑고 지나갔다.
그대로 있었거나, 우측이 아닌 앞뒤로 움직이는 그림이었다면 바로 즉사했을 것이다.
‘일단은 지연이다.’
케즈만과의 전투에서 내가 우선 할 목적은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시간 지연.
이는 신성력을 고농축으로 응축시킨 형태.
이른바 ‘원기옥’으로 불리는 수단을 얻기까지 필요한 전략이다.
이름 그대로의 패턴이었다.
신성력을 최대한 모을 수 있는 수치까지 응축시킨 다음, 한 번에 폭탄처럼 터뜨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대 – 보통 보스 몬스터였다. – 의 껄끄러운 회복이나 각성 패턴을 무시하고, 바로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었다.
에서 이 방법을 알게 된 플레이어들은 이를 ‘신성력 딜뻥 버그’라고 불렀다.
엄청난 대미지 딜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영진은 이 점을 문제 삼지 않았다.
애초에 그만큼 위력을 가질 신성력을 방해 없이 모은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던전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날뛰는 보스 몬스터는 이런 작업을 가만히 눈뜨고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치유사는 방어가 극도로 취약한 직업으로 보스 몬스터가 제1순위로 노리는 직업군이었다.
그래서 신성력 버그를 사용하겠다고 신성력을 모으다가 비명횡사하는 치유사도 많았다.
당연히 그 공략은 힐러가 죽었으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나 홀로 성마 대전을 대비할 수는 없어. 이번이야말로 동료들도 함께 시험대에 오르게 된 거다. 특히 헤이즈.’
나는 그동안 나보다도 더 치열하고 부단하게 노력해 온 헤이즈의 열정과 투지를 믿었다.
남은 것은.
그녀가 묵묵히 모으고 있는 신성력의 힘이 최대 한계점에 다다를 때까지.
전력을 다해 케즈만을 막는 것이었다.
후웅! 후웅! 후웅!
찰나의 순간에 케즈만이 가한 세 번의 공격이 아슬아슬하게 목 주위를 훑고 지나갔다.
트랜센던스 헤이스트를 버프로 시전하며 한차례 대응력을 높였기 때문인지, 슬슬 케즈만의 움직임을 눈으로도 쫓을 수 있었다.
‘마족이지만, 그래 봤자 말단 서열의 마족일 뿐이야. 자레드, 걱정할 것 없다.’
나는 마족이라는 이름값에 잠시 위축됐던 마음을 털어 내고, 대공세를 취할 준비를 마쳤다.
놈이 마수의 한계를 뛰어넘는 마족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면, 내게는 마법사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 마법의 타이틀이 있으니까.
화르르륵!
그리고 나는.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화염 마법을 난전의 선택지로 꺼냈다.
플레임 애로우.
소멸하는 그 순간까지 목표물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불화살 공격의 시작이었다.
* * *
“망할 X의 차원문!”
난전이 계속될수록 케즈만은 주변을 잔뜩 둘러싸고 있는 차원문에 불같이 화를 냈다.
이 차원문 때문에 자레드가 아닌 다른 인간과 엘프들을 노릴 수가 없었다.
케즈만에게는 공간 이동 마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가려면 차원문을 지날 수밖에 없는데, 모든 차원문 출구는 내부 공간에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늪과 같았다.
나가려 해도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나가지 않으면 당연히 안에 있게 되는…… 최악의 늪.
쿠웅! 쿠웅!
“크으윽!”
게다가 케즈만을 더 골치 아프게 만드는 것은 차원문을 타고 날아오는 마법이었다.
얼마나 많은 차원문을 얽히고설키게 해 두었는지, 시간차를 두고 마법이 날아왔다.
분명 같은 시점에 자레드가 펼친 마법인데, 도착하기까지 1분이 넘게 걸리는 것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존재 자체를 잊고 있다가, 뒤에서 크게 얻어맞고 신음을 토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인간 마법사의 7클래스는 보잘것없다고 들었는데…….’
전투를 하며 케즈만이 느낀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마법사 클래스의 수준과 자레드의 실력이 극심한 부조화를 이룬다는 것이었다.
케즈만의 눈은 특수 능력이 있었는데, 상대의 마나 홀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었다.
즉, 마법사의 클래스를 감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레드의 마나 홀에 보이는 서클은 7개. 즉, 의심할 여지가 없는 7클래스였다.
초반의 교전에서 케즈만은 멀리서 날아온 한 여자 마법사 – 나오미 – 의 마법을 한차례 막기도 했었다.
한데 지금 자레드가 펼치고 있는 같은 마법을 생각하면, 위력이 다섯 배 이상은 차이가 났다.
특히 오오라 같은 것이 함께 생겨나며 펼쳐지는 마법 – 트랜센던스 – 은 단순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매우 강력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레드가 마법 공격의 수준을 높여 가자.
왼팔로 손쉽게 방어했던 케즈만도 슬슬 고통을 느끼는 중이었다.
“불쾌해. 정말 불쾌하군…….”
자레드를 또렷이 지켜보던 케즈만이 불만을 토해 냈다.
마족인 자신이 인간이 만들어 놓은 틀에 묶여 있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더 답답한 것은.
‘놈이 뚫리지 않아.’
그것이었다.
자레드는 케즈만의 집요한 맹공에도 무너질 줄을 모른 채!
난공불락의 성벽처럼 물러서지 않고, 우뚝 서 있었다.